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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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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일하고 싶어!


BY Silvery 2004-05-12

승미와의 약속날 나는 다른 약속이 잡혔다며 미안하다는 전화를 걸었다.

승미는 안타까운 마음을 내보이면서 다른미팅을 가자고 했지만,

솔직히 별나라 세계인듯한 그미팅이라는 것이 부담스러울 뿐이어서 역시 다른 핑계를 대며 거절해버렸다.

 

하지만 그 첫 미팅이자 마지막 외출이 되었던 그날 이후로 내 가슴속엔 승미의 모습이 마치

각인 되어버린 듯, 하루종일 내 뒷통수를 따라다니는것만 같았다.

 

"어머, 예인 어머니! 어디 편찮으세요?"

 

얼마전부터 놀이방에 다니기 시작한 예인이 선생님이 내게 말을 붙였다.

 

"...네?"

"안색이 안좋아보이세요. 감기라도..?"

"아.. 네..."

 

서둘러 예인이를 놀이방에 들여보내고는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잰걸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현관에 붙어있는 거울에 비친 내모습.. 마치 병자같다.

퀭한 두눈은 초점을 잃어 방황하듯 제멋대로 굴러다녔고,

윤기잃은 머리카락은 스타일 없이 질끈 묶여있다.

푸석한 피부위에 자리잡은 입술은 몇달째 내내 부르튼 상태..

 

별로 아픈곳은 없었다.

그러나 내내 집안에 스스로를 갇아두고 지낸탓인지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봐도 병자처럼 보였다.

 

"넌.. 누구지?"

 

아무도 없는 집에서 그 말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귓가를 파고들었다.

 

"넌.. 누구지?"

 

띠리리~~

전화벨이 울리자, 마치 암흑속의 빛을 발견한것 처럼 나는 뛰어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00정보회사인데요, 혹시 전업주부십니까?"

"... 네. 무슨일이시죠?"

"네! 지금 저희가 이벤트 기간동안 무료로 돈이 될만한 재태크 정보를.."

"전화 끊으세요."

 

하루종일 집에 있어봐야 나를 찾는 사람이라곤 시어른들이나 남편 전화가 전부인 내가 무엇을 기대했던 것일까..

 

주방에 쌓여있는 그릇을 애써 외면하며 커피한잔을 타 들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습관처럼 자주가는 사이트와 동호회 사이트들을 섭렵한뒤, 포털사이트에 있는 내 메일계정에 들어가려고 포털사이트에 로그인을 했다.

메인 화면에 있는 수많은 정보들을 무시하고 메일을 펼쳐보려는 순간,

검색어에 주부아르바이트 라고 하는것이 눈에 띄였다.

아무 생각없이 클릭해서 검색해보니 생각보다는 훨씬 많은 사이트에서 주부채용에 대한 정보를 올려져 있었다.

 

'주부.. 아르바이트??'

 

나는 하루종일 아르바이트 사이트나 채용사이트를 열어서 내가 할수 있는 일에 대해서 알아보기 시작했다.

 

'주부아르바이트, 노래방도우미. 시간당 2만원.'

'주유소 아르바이트, 주부가능.'

'입력아르바이트, 주부/대학생/휴학생 모집'

.

.

.

.

 

이상했다.

나는 분명 아직은 어디에 취업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은건 아닌데도 하루종일 아르바이트나 취업사이트에 들락날락하면서 정보를 얻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일" 이라는것을 하고싶어 한다는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여보.."

"......(힐끔)..."

"여보, 신문봐요?"

"... 알면서 왜물어??"

"... 아니.. 그냥 의논좀 하려구요.."

".. 말해, 말하면 되잖아!"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하는 남편에게 나는 차라리 얼굴을 안보는게 낫겠다는 생각에 말을 꺼내봤다.

 

"저.. 나, 취업해서 일을 하고싶어요."

"뭐..? 맘대로해."

"정말요??"

"그래서.. 얼마가 필요한데?"

"!..."

 

나는 순간 화가 치솟아 오르는것을 느꼈다.

남편은 내 말을 건성으로 듣고 취업하겠다는 내 말을 무엇을 사거나 어디를 가야해서 돈이 필요하다고 알아들은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좀, 사람이 말을 하면 제대로 얼굴보면서 들어줄순 없어요!!??"

"이사람이~!?"

 

남편은 보던 신문을 확 구겨서 구석에 던지면서 말했다.

 

"하루종일 일해서 피곤한 사람이야! 왜, 무슨일인데 그렇게 또 핏대 세우는건데!!??"

 

"내가, 당신한테 사람같아 보이기는 해요?? 왜 그렇게 나를 무시하는 건데요?"

 

"이사람아! 내가 뭘 무시를 하고 그랬다고 어거지야?? 응?

 무시한다고 치면, 당신같이 남편을 개떡같이 여기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래?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한테, 말한마디 붙일수 있게 상냥한 표정이기를 해?,

 아니면 간간히 전화하는 내 전화를 잘 받아주기를 해!

 집에 들어오면~,  당신, 뚱~한 표정으로 잦은 신경질 부리는거 참아내는것도

 얼마나 맥빠지고 힘든지 알아??"

 

"내가.."

 

말을 채 끝마치기도 전에 남편은 말을 잡아챘다.

 

"당신 자신이야 잘 모르겠지!!

 하루종일 나도 회사에서 뼈빠지게 일하고 들어온단 말야.

 응? 고된 일상 보내고 집에 올때는 집에서 따뜻하게 맞아주는 맛이 있어야지!

 당신 애들 등살에 힘든거 나두 알지만, 나도 당신한테서 위안받고 그러고 싶단 말야.

 내가, 집에오면서 얼마나 차를 돌려 어디 갈데가 없나 두리번 거리는지 당신 모르지??"

 

나는, 속사포처럼 불만을 털어놓는 남편 앞에서 다시 말문을 닫고 말았다.

그냥 조용히 있으면 집안이라도 조용할것 같아서 쓰레기 봉지를 들고 현관을 나섰다.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오는 길에 잠시 하늘을 쳐다봤다.

검보랏빛 하늘에는 구름도 없이 맑게 개어있었고, 반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산자락에 위치해 있는 우리동네에는 이런 맑은날이면 별도 많이 보인다.

 

별..

어렸을때부터 나는 별을 참 좋아했다.

그렇다고, 별자리나 별에대해서 상당히 아는 그런 지식을 갖춘것이 아니라 그냥 별을 바라다 보는것 자체를 좋아했다.

힘든 일을 하러 다녔을 때에도 언제나 아침 저녁으로 별빛을 쳐다보고는 했다.

 

'빛나고 싶어.....'

 

연예인이 되고 싶다고 안무연습을 무지 열심히 하던 내친구가 늘 내게 들려주었던 말이다.

 

'나는.. 꼭 달처럼 빛나고 말꺼야!! 해처럼 빛이 나고 말꺼야. 그래서, 다들 내 얼굴 바라보기가 힘들게 하고 말테야!!'

 

나는 그 친구가 그런 말을 할때마다, 왜 하필 달이나 해님같이 빛나고 싶어할까 의문스러웠다.

햇님은 너무 빛이나서 바라보기 힘든 존재고.. 달은 날에 따라 기울었다 찼다 변덕을 부리기도 한다.

차라리, 나라면 별빛처럼 약간은 깜빡거리고 또 약한 빛이라도 꾸준히 빛나는 그런 존재가 될거라고 생각했었다.

 

'그아인.. 지금 어디서 무얼할까..?'

 

어릴적 친구를 생각하면서 그친구가 그 재능을 살렸다면, 어디에서 무얼할지 궁금해졌다.

 

'맞다..나는? 나는 꿈이 뭐였지...?'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나는 몇년간 '나'라는 존재를 잊고 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조금전에 남편과의 언쟁에서 슬그머니 고개숙이고 밖에 나온것을 후회했다.

싸울땐 싸우더라도 내가 하고싶은 말은 해야 할것 같은 기분에,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왔다.

 

"여보. 나, 직장에 다닐래요!!"

"??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야??"

 

티브이를 보던 남편은 내게 피식하는 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애가 둘이나 딸린, 그것도 대학도 못간 당신이 무슨 일을 한다고 그래?"

"대학 못간 사람은 일도 못한대요? 내가 할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되죠."

 

생각은 용솟음치고 부아도 치밀었지만 뜻밖에 내 말투는 평온을 되찾았다.

 

"큰애 학교 끝날때까지 퇴근할수 있는 곳으로 알아봐야겠어요."

"막내는 어쩌고??"

"놀이방에 그때까지 좀 봐달라구 해야죠."

"진짜야?? 당신 진짜로 일하고 싶은거야??"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내 얼굴에서 남편은 무언가 불안함을 느꼈는지 정색하고 물어왔다.

 

"네. 나도 일하고 싶어요. 아이들, 당신 뒷바라지에서 벗어나려고 하는건 아니예요.

 물론 집에 있는다고 불행한건 아니지만, 더 나이 들기 전에 내가 할수 있는 일을 찾고 싶어요."

"....."

 

남편은 그후로도 잠들기 전까지 아무말이 없었다.

나는, 남편의 그런 태도가 무언의 허락으로 해석했다.

 

'그래. 이제 알겠어. 내가 무엇때문에 그렇게 괴로웠는지.. 나도, 내 일을 갖는거야!!'

 

마음속에 승미의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내 자신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