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영인은 어리석게 군 내 탓이라고 하지만......시무식이 행해지는 본사 행사장에서 상준일 봤다. 일시적인 귀국 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아니였다. 상준인 키즈디자인실 팀장으로 발령받았다.단상위의 상준인.......많이 달라 보였다.짧게 깍여진 머리와.....키가 많이 자란듯......예전과는 다른 모습이였다. 하긴....벌써 흐른 세월이 몇년인데....웬지 근접하기 어려운 사람 같아 보였다.본사 직원들 뒤에 자리 잡은 터라 얼굴을 자세히 볼 수가 없다는게 좀 속이 아렸다.그렇게 시무식 이후로 한달동안 난 상준일 보지 못하고 있었다.본사로 발령 받은 영인이완 가끔 밖에서 만나곤 했지만........영인인 본사로 들어가면서 가구 인테리어 디자인실 팀장으로 일했다.언제가 날 자기 쪽으로 불러 준다는 소리만 간간히 했다.그때 들어와서 다른 디자인들에게 씹히기 싫음 실력을 쌓으라는 말을 우스게 소리로 들려 주었다. 정작 듣고 싶은 상준이 얘긴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왜 크리스마스 이브날 원룸에 만나러 가지 않았냐고도 묻지 않았다.답답하고.....초조했지만.....먼저 물어 볼수는 없었다.그렇게 한달이 지났다.갑자기 안하던 일을 해야 했기에 바쁘게 보냈다. 몸과 정신은 바쁘고 힘들지만......눈앞에 보이는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다. 연필 잡는 감각이 쉽게 안돌아 오고 있었다. 첨 부터 기초부터 착실히 배워야 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이였다. 자기 혐오.....지금까지 난 무얼하며 살아왔는지......절망감 마저 들었다.
저녁 퇴근 시간 이였다.팀장님이 날 불렀다.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다.아마도 요즘의 내가 너무나 답답하셨을 거다. 팀장님 에게 괜한 짐만 지우는것 같아 맘이 무거웠다. 영인이 빠져나간 디자인실에 원래 나도 속해 있었던 디자인 실인데.......난 겉돌고 있었다.디자이너로 들어왔지만 제일 못찾아 헤메고만 다녔으니......너무나 긴 공백의 시간이 날 힘들게 하고 지치게 했다. 팀장님을 제외한 디자인실의 동료들의 시선......선인장의 가시처럼 내게 다가왔다. 지나친 예민함이 아닌건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내겐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 생각이였다. 벌써 디자인실에서 보내는 시간이 4개월을 접어 들었지만.....내가 낸 디자인은 .....제대로 된게 하나도 없었다. 부끄럽기 그지 없는 하루하루 였다. 일도 안하고 공짜로 월급만 받아 가는......마치 식충이 나 밥버러지가 된것 같았다.
"많이 힘들지.....?무슨 고민 있어....?얼굴이 많이 상해보여....."
저녁을 먹고 간단하게 와인 이나 한잔 하자며 팀장님이 권해 들어온 바였다.케니지의 섹소폰 연주가 흐르는 바는.....맘을 편하게 해주는 분위기 였다.팀장의 그 한마디에 순간 울음이 돌았다.눈물을 흘리면 당황해 하실텐데........그럼 안된다는 생각이 머리속에 스쳤는데 울음이 새어 나갔다.
"젊은 사람이.......가슴속의 화를 너무 참으면 병 되는거 몰라.......?난 개인적으로 이여경 씨에게 관심이 많았어.......예전 본사에 있을때 가끔 여기로 외근 나올때 그때만 해도 여경씨 눈이 반짝이며 아이디어가 무궁무진 했잖아.......신입의 냄새도 풍기고 젤 열심이서 눈이 자주 가는 직원 이였어........그때 난 여경씨가......우리 회사에서 많은 일을 해낼거라고 자신하고 있었거든......알아...?나 여기 내가 지원해서 온거.......여경씨와 함께 일해 보고 싶어서 ....그래서 왔는데.....내가 너무 늦게 왔는지........싱싱하던 여경씨가.......이렇게 시들어 버렸을줄 전혀 생각을 못했는데......운떼가 안 맞았다고 생각해......지금 부터 라도 늦지 않았잖아......."
"............."
"본사에서 인사 발령이 내려 왔어......키즈팀으로 디자이너를 추천해 보내 달라는 공문이 내려왔어.......알고는 있지 ?우리 회사에 키즈가 생긴건 일년도 체 안됐잖아.....?신입을 뽑기엔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경력자 중에서 뽑아야 하는데.......마땅한 사람이 없다면서 지사로 디자이너 착출이 내려왔어......"
보라빛의 칵테일......레게의 여신 이라고 불리는 민트향과 체리향이 어우러진 달콤한 맛이였다. 검은 뿔테의 안경을 코 잔등으로 올리며 팀장이 날 봤다.
"오영인 씨가 아주 안달이 났어.......키즈팀 디자이너로 여경씰 보내 달라는 .......일주일에 서너번 전화를 하고 있어........여경씨 생각은 어때.....? 내 생각도 영인씨와 같은데......여경씬 가구디자인 보단 키즈디자인이 더 적성에 맞을 거 같은데.....영인씨에게 들었지....?요즘 여중생들에게 히트하고 있는 딸기 생쥐 시리즈......그거 원래 여경씨 디자인 이였잖아......?여경씨 디자인에 덧칠만 해서 만들어진 거잖아.......한번 도전 해봐.......여기서 물러서거나 주저 앉을 순 없잖아.......?여경씬.....숨겨눈 재주가 많은 사람 이잖아........"
".......팀장님........"
"가라 여경씨......가서 예전에 여경씰 눌러 버릴려고 약은 꾀 수는 실력도 없는 것들......눌러 버려.......이여경이 어떤 사람인지.....가서 본떼를 보여줘봐......."
"............"
"......서류는 벌써 본사에 팩스로 올려 보냈거든........이번달 만 여기서 근무하고 3월 부턴 본사로 출근해........아마도 여경씬 잘 할 수 있을꺼야.......영인씨도 있잖아......?"
가볍게 어깰 쳐 주며 웃어주는 팀장님의 얼굴을 난 감히 바라볼 수 가 없었다. 이게 무슨소린지.......어저깨 만난 영인인 내게 아무런 언질도 없었는데........팀장님의 말은 ......내 머리속을 혼란스럽게 했다.
2월의 바람은 아직은 찼다.들고온 거베라을 투명한 유리병에 꼿았다.사무실의 닫혀져 있는 창문을 모두 열었다. 이제 며칠 후면 안녕이다. 이번 주만 지나면.......난 없을 테니.......6개의 책상중.....가장 밑단에 있는 책상.......이제보니 제일 매끄럽고 맨질맨질 했다.별로 책상에 앉아본 기억이 없다.....후....실소가 절로 나왔다. 괜히 미안해 지는 기분....책상아 그동안 너무 무심해서 미안해.....실없는 말걸기를 해 보았다.
"일찍 왔네....?하긴....늘 일찍 오긴 하지....."
들어오는 기척이 없었는데........언제왔는지 앞자리의 김연지 씨였다.아직은 겨울인데 파스텔 톤의 옅은 하늘색 원피스을 입고 있었다. 우리 사무실 패션 리더 였다.
"이번주 까진가......?여기 근무.....이번주가 마지막 이지......?"
"......응....."
"......본사 팀 이면.......여기완 많이 다를텐데........잘 할 수 있겠어...?"
"........가봐야 알겠지......."
"진짜 이여경씨 다운 대답이다......핫!가봐야 안다.......어쩜 그렇게 태평할 수가 있어.....?혹시 알아 지사 직원과 본사직원의 레벨.......지사에서 몇년씩 있으면서 실력을 쌓아야만 본사 발령이 가능하다는거......물론 여경씨도 경력자 이긴 하지......근데......정말 여경씨가 경력자 일까.....?디자이너로의 경력 말야........어떻게 생각해....?"
김연지 다웠다.나보다 2년 늦은 동료인데도 늘 날 아래사람 취급이였다. 나인 나와 동갑이였고.....물론 실력은 있었다. 차기 팀장감 이라는 말이 도는 사람이니까........아마도 본사에 발령을 받을 사람은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가 올라가니 속이 많이 상했을 거다.그렇다고 저런 식으로 속을 그대로 내비치는 사람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속이 무지 많이 상했나 보다. 아직 출근시간은 30분이나 남았는데.......내게 할 얘기가 많은가 보다.....하지만 난 아무런 해줄 말이 없었다.
"낙하산 인사......알지....?여기같은 지사에선 어느정도 통하고 무마가 되지만.......엘리트 들만 모인 본사에서도 그게 가능할까?아무런 선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여경씨가 거기서 할 줄 아는 일이 뭐가 있을까....?차 심부름...?팩스 보내기 ?아님......일찍 와서 사무실 청소 하는것?어느게 맞을까...?생각해 봤어...?"
"하고 싶은 얘기가 뭐야? 내게 하고 싶은 얘기가 많은거 같은데........돌려 말하지 말고 바로 말해.....본론이 뭔데.....?"
가만히 듣고만 있기엔.......화가 났다. 아마도 연지씬 자기가 가야 할 자리에 내가 간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었다. 평소보면 그렇게 나서거나 말이 많은 사람은 아니였던것 같은데.......많이 억울하다는 얼굴이였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이번 인사건은 이해가 안가지 않아.....?아무리 우리 디자인실에서 제일 오래된 사람이 여경씨라고 해도......들어온 년수로 추천을 받는 다는건 말이 안되는 소리 아냐?더구나 우린 일반 사무직 하고는 다르잖아?실력으로 인정 받는 직종인데.....말이 된다고 생각해...?여경씨가 회사에 들어와서 뭐하나 제대로 한게 뭐가 있어?말안해도 본인이 더 잘 알지 않아....?오영인 씨 입김으로 들어가는게 그렇게 좋아...?여경씬 그 정도로 자존심도 없어.......?그렇게 까진 안봤는데......."
"내게 불만이 많은가 본데......난 할말이 없네......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 내게 확인 받아서 뭐에 쓰려고 하는지 되려 묻고 싶어...."
"정말 뻔뻔해........착한척 순진한척 그렇게 우렁이 각시처럼 굴더니.....이게 진짜 얼굴이구나?이여경씨 얼굴 두께가 얼마나 되는지 한번 자로 제볼까...?"
"유치하게 굴지마......지금 뭐라고 할 말이 없지만........지켜봐 줘 .내가 왜 본사에 들어갔는지.......지켜보면 알꺼야.....충분히 납득시켜 줄테니까....."
기막혀 하는 연질 비켜서며 사무실에서 나왔다. 얼굴이 확확 달아 올랐다. 뜨거운 오물에 얼굴을 씻은 듯한 기분........온몸에 불이 붙어 있는것 같았다.몸안 가득 기름이 들어 있어 태우고 태워도 아직 태울게 있는 것처럼.......몸에 뜨거운 불이 붙은것 같았다.
하루종일 머리가 아팠다. 몸살기가 아닐진데 머리며 온몸이 다 아팠다. 사무실에서 견디기 힘든 시선들 탓에 더 그런것 같았다.아침에 있었던 일이 어떻게 퍼졌는지 팀장을 제외한 동료들의 시선이 여기저기서 날 할퀴고 있었다. 가시 방석위에 ......사방에 송곳으로 도배를 한 그런 사각의 통안에 몸을 잔뜩 움츠리고 들어 있는 듯한 기분이 였다. 견디자.....견뎌내야 한다.이게 내게 내려진 마지막 시련 이라면 견뎌내자.....다시 한번 날수 있다면 이까짓거 충분이 견딜수 있다. 마지막 구정물이라고 생각하고 견뎌내자. 그래 이여경 지금까지도 많이 힘들었는데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잖아 ......이 악물고 견뎌내......이번만 견디면 밝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어. 견뎌내.......이여경 ......넌 할 수 있을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