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먹는둥 마는둥 서두르는 나를
산장지기 아저씨는 밥 숟가락 너머로 빼꼼히
쳐다 보았습니다.
"오늘은 어디로 행차를 하시려고 그렇게 서두르시나 산 아카씨?"
라고 코믹하게 물어왔습니다.
"불일암에요...."
그러자 상길이 이를 들어내고 웃으면서 말을 했습니다.
"아침일찍 주지스님이 전화 하셨어요...
내일쯤 내려 오라고..."
"언제? 주지스님 안녕하신다니? 하하하...
해서 오늘 내려 갈려구?
내일쯤이면 비가 본격적으로 내릴테니...
오늘 출발하는것이 낳겠구나.
헌데 어머님은 오신거야? 오실꺼야?"
"아침에 출발하셨다나 봐요. 그럼 뭐...오늘쯤 도착하시겠네요."
내가 알약을 삼키며 말을 할때,
밖에서 누군가가 산장지기 아저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상길이가 문을 열고 마루로
뜅겨져 나가듯이 나갔다 들어오면서 말을 했습니다.
"산이 누나. 누나 찿는 손님들 이여요."
"응?...날? 아마..."
진석씨와 현수씨는 아침일찍 서둘렀는지...
천왕봉에 벌써 다녀와서 길 떠날 준비를
마친뒤 인사를 하기 위해서 들렀습니다.
방 안으로 서둘러 들어온 나는
이미 싸놓은 베낭을 짊어지며 일어서려니까,
산장지기 아저씨는 마지막 한 숟가락의 밥을 입에 넣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 보시더군요.
"아참! 아저씨 아직 식사 안끝났군요...미안해요."
그리고 자리에 다시 앉아 변명같은 사설을 늘어 놓았습니다.
"어젯밤에 만난 그 두 사람들 있지요?...
같이 동행하려구요. 벌써들 준비를 하고
인사를 왔는데...제가 기다리라고 했어요..."
"엉? 그 소아마비 친구하고 벙어리 친구?"
"아이참 아저씨는 좀 작게 말하지..."
"작게는 뭐...소아마비가 소아마비고 벙어리가 벙어리지...."
"현수씨는 벙어리가 아니라...귀머거리라구요..."
"아참! 그랬던가? 상길아 들어오시라고들 해 ...잠깐....
산이 이렇게 서둘러 가면...내가 마음이 어수선하니까...
아이구...뭐 하나 할 것 같으면 못말리는
산 아카씨...우째누...쯧쯧쯧..."
아저씨는 저를 보시며 눈을 흘기셨습니다.
상길이 뒤를 따라 두 사람이 방으로 들어 섰지요.
"안녕하세요."
두 사람은 목을 숙여 가볍게 인사를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일어서면서.
"아침은 먹었씨유?...안들었으면..."
"아~예. 먹었습니다." 라고 진석씨가 얼굴을 붉히며 말을 하자.
"저는 배가 고프면 어디도 갈 수가 없어요...아주 많이 먹었습니다.
주먹밥도 쌌구요..미숫가루도 든든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숱기가 덜 없는 현수씨가 눈을 초롱초롱 맑게 굴리며 말을 했습니다.
아주머니가 내어 온 수박을 먹고.
마지막으로 내 방에서 상길이가 대금을 가져다
내 베낭에 단단히 집어넣자
길 떠날 준비가 다 끝났습니다.
아주머니는 나의 도시락을 들고 나와.
"산속이니 상하기야 하겠어요? 익히지 않은 음식을 드시면 안되니..
이걸로 끼니 거르지 마세요...아가씨....이"
어머니처럼 도시락을 챙겨들고 나왔고.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갈 것을 여러차례 말한
아저씨는 내가 방을 나서기도전에
비행기장 철쭉제가 있는 그 산장지기 아저씨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예! 접니다. 길산이...그 말이야..
오늘 저녘때 우리집 식솔중에 불일암 주지스님
조카딸 산이 알지? 으음...그 오늘 두 사람과 동행하는데...
잠자리좀 미리...알았네..
어? 오늘은 빗방울도 안 보일 꺼라구?...
거참 장마 한번 오기 거창하다 ...하하하...
올해는 별나구먼...온다온다 하더니
계속 빗 방울은 비쳤다 고개를 감추니 말야...
그래 고맙네..."
마당에 서서 인사를 하자,
산장지기 아저씨는 경쾌하게 손을 흔들어 주시며
외치듯이 말했습니다.
"두분 좋은 산행 되십시요...그리고...
너무 무리말고 비행기장 산장지기 아저씨가
세사람 잠자리 이미 준비 해 놓을 테니...
천천히 좋은 산행 되시게나...."
하고는 합장하고 방으로 금새 들어가 버렸다.
그렇게 우리가 마당을 막 벗어나 선비셈을 향해 걸음을 몇보폭 옮기자
상길이가 숨이 넘어갈 듯이 나를 부르더구요.
그리고는 새가 날아 폴짝 뛰어 내리듯
내 앞에 헐떡이며 서서 필림통에 든 알약통을
내 미는 것 이었습니다.
나는 얼른 그것을 두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받아서
조끼 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잠궜습니다.
"고마워 상길아"
"언제와요? 누나는...."
"보름쯤...심심하면 암자로 내려와 알았지? "
"그래도 돼요?"
"그럼...언제나...내가 아저씨에게 말하면 돼잖아..."
"알았어요...그럼 잘 다녀오세요...산이 누나."
상길이는 뛰어 돌아가고.
우리 셋은 길을 나섰습니다.
뭐가 그리 좋은지...현수씨는 뒤뚱거리며
마치 작은 꼬마가 가지고싶은 장난감이라도
얻은듯이 마냥 좋아하는 것이
그의 뒷 모습에서 느껴지더군요.
"어디로 하산을 하실껀데요? 저희는 장마도 곧 올꺼고...
해서..삼정리로 하산할 꺼라서.
장터목 산장으로 갈 껀데...."
진석씨가 한사코 나를 앞서게 하고 뒤따르던 그가 조용히 말을 하더군요.
그의 목소리는 늘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저는 불일암으로 가야해요. ...
장터목 삼거리에서 헤어져야 되겠네요. 그렇죠?"
"녜에~ 그렇군요. 불일암이면...피아골 쪽으로 가는 길에 있지요?"
"예. 몇번째예요? 지리산엔?"
"아마도...이번이 여섯번 째인것 같은데요..."
라고 신음 소리를 내며 말을 해서
저는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 보았습니다.
"힘드세요?"
"힘들긴요...평길이나 다름없어서...별로..햇볕이 쨍쨍할 모양입니다."
"장마전 무더위 같은거 겠죠? 하하하"
진석씨와 제가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고 걷고 있는데,
앞서서 한참을 멀리 가 버렸던 현수씨가 되돌아 오더니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걸어 왔습니다.
"여기는 산이 아니라...평온을 가로 지르는 그런 길 같습니다."
"맞아요..비행기 장이 하나 나오는데..그곳에서 장터목 삼거리까지는 정말
평온이예요...꽃들이 만발할 껍니다."
라고 제가 말을 받았습니다.
"맞네요....여름이면...이름모를 풀꽃들이 쏟아지는 탱양볕에 고개숙이다
그래도 한점 바람이 불면 그 얼굴을 들어 나풀거리지요..."
진석씨는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시적으로 말을 하면서
더운지 잠시 베낭을 내려 놓고, 셔츠를 벗었습니다.
그러자...현수씨도 셔츠를 벗어 팔이 없는 셔츠만 입고
잠시 길 가상자리에 앉았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그 둘에게
저의 신체적 장애를 말을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걸음을 빨리 걸을 수도 없었지만....3시간 간격으로 그 필름통에 넣어둔
알약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짦은 휴식을 취한 다음.
진석씨가 리더하는데로 쉬지 않고 선비셈, 서낭당이 있는곳까지 멈추지
않고 길을 제촉했습니다.
태양은 높지 않은 나무 가지에 메달린 잎을 뚫고
열을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길을 걷는 순간순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폭풍전야의 고요가 깊게 베어
아주 오랜 기간 하늘이 메마른듯 보였습니다.
바람은 가끔 젖은 겨드랑이 사이를 지나
더운 기운을 한입 더 뿜어내고 스쳐갔습니다.
긴팔을 입어야만 온도가 몸에 맞는 저 마져도
셔츠 하나를 벗어야만 했었습니다.
땀에 흠뻑젖어 갑자기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는
선비셈 아래 서낭당을 앞에
두고 우리 셋은 몸을 기댔습니다.
현수씨는 우리 중 가장 부지런한 사람인듯
땀을 뚝뚝 떨어뜨리면서도 우리가 점심으로 먹을 주먹밥과
도시락을 내놓자, 미숫가루를 타기 위해
셈으로 달려가 물을 길어다 미숫가루를 탔지요.
산 속에서 바위를 뚫고 흘러나오는 물이었던지라...
목을 타고 넘어 가는 물 맛이 아주 달았습니다.
미숫가루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둘을 보다가
나도 따라서 아무 생각없이
같은 속도로 마셨을때, 갑자기 가슴을 찢는듯한 통증이 가슴에 오더군요.
세시간이 넘었었는데....제가 문뜩 잊고 있었던 것 이었지요.
저는 이마에 땀이 맺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둘은 더워서 나는 땀과
식은땀을 구별 할 수는 없었겠지요.
하지만...저는 서둘러 조끼의 지퍼를 열고
그 필름 통에서 약 한 알을 꺼내서
입에 넣고 겨우 가슴을 움켜쥐며
한모금의 미숫가루 물을 넘기자, 진석씨가
심각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것 이었습니다.
그때까지도 현수씨는 전혀 어떤 눈치따위는 채지 못하고,
주먹밥을 먹으면서 선비셈에 얽힌 전설을 누군가가 이야기
해 줄 것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지요.
손으로 게으치 말라는 신호를 보내자
진석씨는 뭔가 심상치 않은것을 눈치
챘음에도 불구하고, 애써 관심을 다른곳으로 돌리려는
노력을 하느것이 역력했습니다.
통증이 가슴에 한 번 몰려 오면, 약을 먹는다고 금새
그 통증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저는 숨을 고르게 쉬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베낭에 기대어
길게 누웠습니다.
"약 30 분만 기다려 주세요..."
나는 겨우 기어 들어가는 소리로 말을 하고.
잠시 눈을 허공으로 돌렸습니다.
"저어~...제가 뭐...할 수 있는 일이라도..."
"아니요...그냥 이렇게 조금 쉬어야..."
그리고 눈을 감았습니다.
진석씨가 현수씨 옆으로 자리를 옮겨
나를 흘깃흘깃 돌아보며 작은 소리로 이야기를
하면서 아마...현수씨가 목에 걸고있는 노트에 쓰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아주 먼 옛날.
남원에 살던 한 선비가 과거시험을 앞 두고.
이 산 속에서 혼자 글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선비는 기우러져가는 가세를 바로잡기 위해서
호랑이에게 물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꼭 과거에
급제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이곳에서 글 공부를
하며 토굴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어제 우리가 묵었던 연화천의 그 셈은
예전에는 꽤나 큰 연못같아서, 그곳을 사람들은
선녀탕이라고 불렀었다.
그 선녀탕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단다.
그때는 이곳에는 이 셈물이 없어서.
헌데 어느날 하루는 달빛이 하도 밝아서
선비는 저녘을 지어먹은 후에도 글 공부에
전념 할 수가 없어서 산책을 나갔는데....
그곳에는 하늘의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고 있었겠지.
선비는 그 아름다움에 취해 몰래 바위에 숨어서
그들이 목욕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그중 가장 아리따운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꼭꼭 숨겼단다.
새벽이 다 되어 선녀들이 다시 하늘로 승천할 시간이 다가오자.
하나 둘 선녀 탕에서 나온 선녀들이 자신의 날개 옷을 입고
하늘로 날아 오르기 시작했지.
헌데...그 옷을 잃어버린 선녀만 얼이 빠진체
백방으로 옷을 찿아 헤메다가 그만 기진할 듯이 웅크리고 앉아
울었단다.
모든 선녀들이 떠나고, 그 울고 있는 선녀에게 선비가 다가가
자신의 두루마기를 벗어 선녀에게 입혀서 그가 기거하고 있던 토굴로
돌아왔단다.
이렇게 해서 그 꿈만같은 선녀와 선비는 아름다운 몇달을 함께
보냈단다.
그러던 어느날.
그 착하디 착한 선녀는 자신을 구해준 선비에게 늘 고마워하자
선비는 그만 자괴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이 저지른 모든 일을
고백하고 말았지.
해서 선녀는 그 선비를 잘 구슬러 날개 옷을 다시 받았겠지.
선녀는 옷을 입자마자 하늘로 승천을 해 버렸고.
선비는 그만 너무나 사랑했던 그 선녀가 순식간에
자신의 눈 앞에서 사라지는것을 보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그의 후회는 늦은것 이었지.
그래서 몇 날 며칠을 두고 선비는
눈물로 하루 하루를 보내게 되었지.
선비가 그때 너무나 슬피 울어서...
이 선비가 묵었다는 토굴 근처의 바위에는
선비의 눈물이 셈이 된
선비셈이 생겼단다.
그 목소리가 저의 귀에 잔잔히 들려 오고, 찢어질 듯한 고통이 사라지면서
저는 한기를 느꼈습니다.
벗었던 긴팔 셔츠를 다시 입었습니다.
그제서야 몸을 조금 가눌 수 있었지요.
그렇게 첫 날 부터 나는 두 사람에게 신세를 지며
동행을 하게 되었답니다.
내가 정신이 좀 드는 것을 지켜보던
진석씨는 말이 끝나기가 무서게 곁으로
다가 오더군요.
그때까지도 현수씨는 노트를 읽고 또 읽는 중 이어서,
내가 그런 통증을 느끼고 있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더 잘 된 일 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다가온 진석시는 안경을 올리며 나의 얼굴을 유심히 내려다 보더군요.
"아~ 이제 좀 괜찮습니다. 미안해요..길이 늦어져서..."
"아아~ 아닙니다. 입술이 너무 새파래서....더 쉬세요. 필요하시면.
오늘은 빗방울이 아직 안 보이니..가파르고 위험한 길도 없고하니.
비행기장에서 일박 하렵니다. 걱정하지 말고...."
"이젠 괜찮아요. 정말요."
나는 기운이 다 빠져 축 늘어진듯한 몸을 일으켜 세워
베낭에 기대고 앉았습니다.
그때, 현수씨가 다가 오면서 잊었다는듯이 활짝 웃었습니다.
"이 이야기 네가 지어낸 거야? 아니면..전설이야?"
"전설이야...밥 더 안 먹어?"
"음...한 덩어리 더 먹을래. 강산씨는 이 이야기 알고 있었지요?"
나는 고개를 천천히 가로 저으며 빙그레 웃었습니다.
"해서 그 선녀 다시는 안 왔겠지요?"
라고 내가 힘없이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녜. 다시는 안 내려 왔어요."
진석씨의 담담한 목소리가 나를 무척 걱정 하는듯한
마음이 베어 있다는 것을 금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디가 아픈지 여러번 물으려다가 참는듯한 눈치 였습니다.
진석씨는 자신의 다리를 만지작 거리며 더운지 연신
흘러 내리는 땀을 닦으며 먼 산만 바라보고 있더군요.
몸을 겨우 가눌 수 있게 되자, 저는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좀더 쉬자는 진석씨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러자, 진석씨는 저의 베낭을 벗겨서 현수에게 주었습니다.
"네가 메고 가"
"응? 그런데...아까부터. 강산씨 어디 아파요?"
처음으로 그가 눈을 노트에서 떼고 내게 그렇게 물었습니다.
"다 아프고 나았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며 일어서자, 진석씨는 나를 보고 하늘을 한번
본 후에 껄껄껄 웃었습니다.
"서두릅시다. 그러면...."
"아프고 다아 낳았어요..?"
현수씨는 베낭 두개를 짊어지고 계속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보기 위해 계속 뒤를 돌아 보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