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털나고 처음으로 들어온 보석상이었다.
은은한 조명, 깔끔한 점원들, 게다가 진열장마다 넘쳐나는 이름도 모를 빛나는 광채로 가득한 보석들.
미은이는 나의 낯설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곳저곳을 생글거리며 돌아보고있었다.
"커플링 찾으십니까?"
멍하니 진열대를 바라보고 있었던 나에게 양복을 입은 중후한 얼굴의 점원이 묻는다.
"네? 아, 저기. 저 잠깐만요. 미은아? 빨리 와봐."
엄마를 찾는 아이처럼 난 당황스레 미은이를 불러세웠다.
어리벙벙한 내가 우스운지 저만치서도 그애는 혀를 쏘옥 내밀었다가 웃고만다.
"오빤 정말 못 말려. 네, 저희 커플링 찾거든요? 근데 저희께 아니라요 노땅, 아니 늙수그레 커플을 위한 건데 이쁜거 있어요?"
순식간에 우리 앞에 다양한 커플링들이 여러 개 놓여졌다.
세상에 반지들은 다 거기서 거긴 줄 알았는데 무슨 디자인이 그렇게 다양한 지 갑자기 들이닥친 다양한 선택의 존재에서 난 더욱 어쩔 바를 모르겠다.
미은이는 보석 감정사가 된 듯 하나하나 찬찬히 살펴보고, 빛에 비춰도 보고, 자신의 손에 끼어도 보고 여념이 없었다.
"이건 너무 평범하고, 이건 또 넘 무겁지? 그렇다고 이건 언니 취향이 아니고, 또 이건 아저씨 취향이 아니고 말이야. 그래도 내 생각엔 이 두가지가 언니랑 아저씨 한테 어울릴 것 같은데 어때? 오빠 생각은?"
진열대 위애는 그 애의 까다로운 검증을 마친 두 가지 종류의 반지가 올려져 있었다.
하나는 골드로 묵직한 중량을 내면서도 약간의 빛의 반사에 따라 각이 지게 세팅된 것이었고 다른 종류는 무광처리된 플래티넘과 백금이 어우러져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어떤 게 누나와 형에게 어울릴 지는 알 수없어 망설이는 나에게 미은이는 채근하듯 물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오빠라면 어떤 거 끼겠어? 응?"
나라면?
난 주저없이 백금으로 처리된 반지를 집어들었다.
"어머어머, 어쩜 오빤 나랑 생각이 그렇게 똑같아? 그럼 우리 이거로 해. 응"
"그래…"
"사이즈는 어떻게 되십니까?"
"사이즈요? "
낭패다 , 반지를 사려면 그 걸 알아야 하는데…
"아, 여자것은 제가 그려왔구요."
그 애의 청바지 주머니에서 한 장의 구겨진 냅킨이 나왔고, 거기엔 검정 볼펜으로 동그라미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이게 뭐니, 미은아?"
"이런 걸 보고 용이주도 하다고 하는 거지, 언니가 끼고 다니는 은 반지 있지? 그게 언니얼굴 같지 않게 투박한 거, 늘 끼고 있는... 내가 반지 사려고 작전 좀 썼지, 언니한테 내가 한 번 끼어보고 싶다고 했더니 언니가 그러라고 하지 뭐야, 그 틈에 살짝 냅킨에다 사이즈 그려넣었지 뭐. 나 잘했지?"
"대단하신데요? 그럼 남자분 사이즈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그건요, 오빠 손 좀 줘봐. 그 반지 낄 분이 이 오빠보다 조금 더 손가락이 굵거든요? 이 손가락 사이즈 보다 2치수 큰 것으로 해주세요. 한 두 치수 정도는 사이즈 교정되지요?"
내 손가락에 견본 링을 이것저것 맞추던 점원은 고개를 끄덕하며 반지를 포장하러 사라졌고 난 여전히 멍청히 그 자리에 남아있었는데 동그란 눈으로 미은이가 날 바라보았다.
"오빠, 뭐해? 돈 내."
"응?"
"아이참, 반지를 샀으면 돈을 내야지, 오빠 월급받은 거 거의 안 쓰고 모은다며? 웅주아저씨가 오빠한테 진짜 형같은 사람아냐? 형의 행복을 위해서 그 정도 투자는 해야지? 안그래? 내가 오빠랑 같이 온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거 설마 몰른 건 아니겠지? 내가 알바비 받으면 오빠 맛있는 거 많이 사줄테니까 얼른, 응?"
어련할까, 난 웃음이 나왔다. 어쩜 이렇게 말하는 거 하나하나가 귀여운지.
맞다.
내가 가진 전부를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은 사람이었다 웅주형은.
게다가 미은이의 말대로 이 깜짝쇼가 제대로만 된다면 정말로 sunny누나와 형이 새로운 미래를 가질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상처뿐인 그들의 과거를 희석시킬수만 있다면 더 한 일도 난 할 수있을 것 같았다.
정말 이쁘게 포장된 작은 박스가 놓여졌고 미은이는 또 한 번 박수를 치며 예쁘다고 연발해 댔다.
우리 둘이 그래도 뭔가 좋은 일을 한다는 마음에 내 마음도 둥실 떠오르는 짜릿함이 느껴졌다.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어떻게 해? 가게에서 난리 나겠다. 오빠 우리 빨리 가야겠다. 빨랑 와."
시계를 보던 그 애가 화들짝 놀라서 가게문을 열고 토끼처럼 뛰어나갔다.
나도 덩달아 그 뒤를 쫓으려는 데 내 소매을 잡은 건 아까 그 점원아저씨였다.
"저 손님, 이거 그 귀여운 여자친구 분 가져다 주세요."
"네?"
점원 아저씨가 나에게 건네준건 하트펜던트가 달린 귀여운 목걸이였다.
"여자친구분이 아까 저쪽에서 한 참이나 들여다 보고 있던 목걸이랍니다. 커플링을 가격대가 높은 신 것으로 해서 하나 선물하는 겁니다. 귀여운 아가씨 맘도 너무 이쁘고, 나 중에 두 분 커플링 하실때도 꼭 저희 가게를 찾아주시면 더 좋구요. 손님 여자친구 보는 눈 하나는 높으신 분 같군요."
정말 그랬다.
바보처럼 어리둥절해 하지만 말고 미은이 것도 뭘 사줄걸, 속으로 서운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괜시리 미안해졌다. 이렇게 마음이 이쁜 미은이인걸.
"아저씨 고맙습니다, 저희 100일 날 꼭 커플링 하러 올게요."
저 만치 앞서가는 미은이의 뛰는 모습을 보며 나는 사랑의 메신져가 된 착각이 들었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숨은 턱에 찼지만 난 그 속에서 사방으로 퍼져가는 빛줄기를 따라 뛰는 것 같았다. 그 끄트머리에는 행복이라는 작은 선물 상자가 꼭 있을 것같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