퍽!
석윤은 성수의 면상을 향해 힘껏 펀치를 날렸다
휙 돌아가는 성수의 얼굴
[ 애인관리 잘해줘. 상처난 팔에 술이 말이 되?! ]
[ 서..석윤아…]
[ 이 쌔끼가 …! ]
성수가 벌떡 일어났다.
[ 누구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
퍽! 성수의 주먹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싶은 순간. 석윤의 몸은
옆 테이블로 맥없이 나가 떨어졌다
악!
그때였다 비명을 지르며 어디선가 뛰어나오는 정순.
정순이 달려 들어 석윤의 겨드랑이 사이에 팔을 넣어 일으켜 세우자 석윤은 또
다시 성수를 향해 달려 들었다
[ 우리 과 선배라구! 함부로 취급하지마! 아까부터 너 재수 없이
생겨 먹은 너 보구 있었어! 유선배, 너 같은 놈이 함부로 막대해도 되는 여자
아니야! ]
[ 석윤아 그만햇! ]
정순이 버럭 소리를 질럿다.
우루루 몰려온 그룹멤버들이 석윤과 성수를 떼어 놓으며 석윤을 감싸 안 듯
데리고 들어가 버렸다.
짝!------!!!!
멍하니 서 있던 나를 향해 정순이 뺨을 올려쳤다.
[ 너! 더러워! 꺼져! ]
정순은 매섭게 한 마디 내밷고는 돌아서 석윤이 들어간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의식적으로 급하게 석윤의 말을 반복해 중얼거리고 있었다
[ 함부로 취급하지마 ! 함부로 취급하지마! ……………….]
지금 나에겐 석윤의 그 말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주위의 불쾌한 눈빛과 불길한 손가락질에 대한 생각을 깡그리채 눌러 버리
는데 성공하며 석윤의 말만을 반복해서 되씹었다
그 순간만 나는 행복했다. 석윤의 목소리는 정말 마법의 주문이였다
나는 성수에게 잡힌 내 손목을 거칠게 내 빼며 노려 보았다.
성수는 씨익 웃으며 돈 봉투를 내 얼굴 앞으로 내밀었다
[ 우선 10만원 넣었다. 더 필요해지면 ……..]
[……………? ]
[ 전화해. 니 하는 행동에 따라 더 빌려 줄수도 있고 그 반대일수도 있어 ]
[ ……………………..]
[ 그리구. 이건 내 전화 번호만 넣어 둬. ]
그가 침대 위로 던진 것은 핸드폰이였다.
[ 돈 때먹고 도망갈지도 모르니까. 추적용이야 . ]
나는 그가 노려보는 동안 핸드폰을 주머니 속에 집어 넣었다.
멍한 상태로 지금부터 – 돈을 받아 든 이 순간부터 –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했다.
겨우 생각해낸 것이 이 여관에서 도망가는 것이였다.
[ 머..먼저 씻을게. ]
성수는 안심한 듯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욕실로 들어온 나는 탕속 가득 뜨거운 물을 받았다.
그래…그렇게 하면 되………니 놈한테 당할순 없어……..손톱을 물어뜯으며 왔다
갔다 서성이다 나는 묘안을 생각해 냈고 그제서야 황급히 옷을 벗었다
탕속에 물이 그득해질 쯤 예상치도 못했던 성수가 욕실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
놀라며 몸을 가리는 나를 보며 성수의 눈이 번들거렸다
…………….!!!!
성수의 손에는 내 신발 두짝이 들려져 있었다
나는 성수의 손에 들려진 내 신발을 보면서 경악하고 말았다
놈은 내가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한것일까?.
놈은 어쩌면 내 머리 꼭대기 위에 있는 지도 모른다.
떨렸다…… 용의주도한 놈………! !
성수는 내 신발을 보란 듯이 욕실안 선반 위에 올려 놓으며 벗은 몸으로 유유희
욕탕으로 들어섰다
내 등뒤로 들어와 앉은 성수는 타월에 비누를 묻혀 내 등에 비누칠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웅크릴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몸을 웅크린 채 성수에게 등만을 내 맡기고
도망갈 것에 대한 궁리를 했다
[ 언젠가 네 등에 비누칠을 해주면서 같이 욕탕에서 섹스를 하는
상상을 하곤 했었어..]
[…………..]
성수의 손이 비누에 미끌어 지듯 내려 와 나의 젖무덤을 움켜 쥐었다.
[………….! ]
[ 미칠것 같애…너와 헤어지고 나서…….내가 어떻게…..]
성수의 손은 젖무덤에서 다시 아래로 미끌어져 내려갔다.
[어떻게 지냈는지 알아?. ]
가만히 있어………..그대로…….반항하지마. 연기라고 생각해. 섹스씬을 찍는
영화말이야..
나는 자신에게 쉴새 없이 중얼거렸다
[ 집 나온거야? ]
[……………..]
이제 성수의 손은 나의 아랫배 근처에서 서서히 다리 사이로 옮겨가고 있었다
[ 아주 나온거야?. ]
[…………..]
[ 잘 곳 없음 ,………]
성수의 심장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 성수의 숨결이 점점 거칠어 지기 시작했다
[……… 그냥…. 나랑……. 동거하자…. ]
성수는 더 참지 못하겠다는 듯 , 나를 거칠게 돌려 앉히고는 나를 쓰러뜨렸다
[ 됐어. 나 먼저 나갈 테니까. 얼른 씻고 들어와 ]
나는 발딱 일어났다 그리고 격하지 않은 거부를 나타내며 욕탕을 나왔다.
내 눈앞으로 내 신발이 보였지만 신발을 들고 나갈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부터야. 떨지마! 유나희. 저놈한테 당할순 없어, 내 머리 속에 내 심장속에
석윤이가 보고 있는데 저 놈에게 당할순 없다구! 넌 그렇게 싸구려 아니야. …
..
- 함부로 취급하지마 !
석윤의 목소리가 내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래 ………
너 자신을 함부로 취급하지마!
침착하게 조용히, 옷을 입어.
나는 내 속의 명령 처럼 침착하게 조용히 옷을 입었다.
혹시라도 벌컥 문을 열고 나를 살필 성수에게 해댈 거짓말을 속으로 수십번은 더
되새기며…….
다행히도 놈은 내 신발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문을 열고 나와 보지
않았다.
옷을 다 입은 나는 살며시 여관 방 문을 열었다.
신발이야 아무래도 좋아…
살금 살금 여관 방을 나오는데 성공한 나는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런!
여관밖으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단 몇초도 되지 않아 내 몸은 장대비속에 흠뻑 젖어 있었다.
신발도 신지 않은 내 몰골에 비까지 젖어 있으니 물에 빠진 생쥐꼴이
이보다 더 할까?.
게다가 어깨에서는 말랐던 피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람눈에 띄기라도 하면 난 정신병자 혹은 행려병자 오해를 받아 경찰에
끌려 갈수도 있을것이다.
나는 무조건 큰길로 뛰어나갔다
놈에게 목털미라도 잡힌다면 큰길에서 고래 고래 소리라도 지를 요량이였다.
장대비는 도시의 모든 모습을 삼켜버릴 듯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도시는 장대비속에 하얗게 숨져가고 있었다.
택시!
택시!
미친듯이 택시를 불러대는 나를 보고도 퍼퍽! 물길을 튕겨내며
그냥 스쳐가는 택시들…..바로 이 순간 만큼 택시 기사가 원망스러웠던 적이
있었을까?.
지금 바로 이순간이 영화라면………영화라면 주인공을 위해 마음씨 착한 택시
기사는 멈추어 줄것이고 주인공은 바로 악한 놈의 손아귀에서 도망칠수 있겠
지……그러나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 아니였던 것 처럼 결코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나 주지 않았다
비 때문인지 내 몰골 때문인지 그나마 드문 드문 보이는 택시들도 결코 내 앞에
서 멈추어 주지 않았다.
입술을 악 다물며 걸어갈 결심을 하고 몸을 돌리는 순간
바로 그순간 내 어깨 위에 얹혀지는 무거운 손.!
헉!
성수였다.
성수가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 보고 있었다.
내 십장을 파먹을 듯 분노한 눈빛으로..
[들어가지 비가 많이 와 ]
잘근 잘근 감정을 씹으며 차갑게 말을 건네는 성수는 내 어깨를 쥔 손에 힘을
가했다.
[ 돈,,돈은 내가 돈으로 갚을게 이자까지 쳐서 무슨 일을 해서라도 갚아줄게!
제발 ! ]
나는 어디서 나왔는지 알수 없는 힘으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비굴해도 상관없다, 놈에게 당하는 건 싫다.
[ 응?. 그렇게 하게 해줘. 니가 돈을 빌려줬으니까 돈으로 받으면 되쟎아?
성수야 ! ]
악!
조금의 동요도 없는 서늘한 검은 눈동자를 고통스러워 하는 내 얼굴에 고정시킨
채 그놈은 내 찢어진 어깨를 우왁스럽게 잡고는 비틀었다.
[ 비 때문에 잘 안 들려. 들어가자 ]
놈이 빙그레 웃으며 돌아섯다.
여관방에 다시 들어온 놈은 나를 밀어뜨린 뒤 내 몸을 사정없이 유린하기
시작했다. 원하지 않는 놈의 살결이 내 온몸을 샅샅이 핥아가고 있는 동안
나는 석윤의 목소리만을 떠올렸다
마법의 주문.
석윤의 노래 소리.
석윤의 노래 가사.
머리를 맞대고 부벼댔던 바로 그 순간을 ……….
드디어 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내 두다리를 강제로 벌리려 했다.
안돼! 그것만은 안돼!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다리를 오무렸다. 지키고 싶었다. 나를 지키고 싶었다
그것은 마지막 남은 나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 제발 .성수야. 그것만은 안돼! 흐흐흑 ]
나는 울고 있었다.
엉엉 소리내어 울며 결코 다리를 벌리지 않았다.
성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다리를 벌리려 했지만 내 눈물에 내 우는 소리에 서
서히 힘이 빠지는 듯 급기야 하던 동작을 모두 멈추고 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 갚고 싶었어 ]
한차례의 감정의 싸움이 지나가고 성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 갚고 싶었어, 나를 떠난 너에게 복수하고 싶었어. 내 사랑을 이용해 먹고 날
버린 널 죽여 버리고 싶었다구…]
[ 흑흑흑…..]
나는 대답대신 흐느낄 뿐이였다.
[ 떠나. 이젠 내게 전화하지마. 더 이상 내 감정을 가지고 놀지마 . 나도 이제는
널 깨끗이 잊을거다 ]
그가 자조적으로 내 뱉는 말은 마치 멀리 서 들려오는 자동차의 클락션 소리처럼
아무 의미 없이 내 머리 속을 맴돌다가 사라졌다.
한번 굳어 버린 내 마음을 열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가 슬퍼하던 그가 나를 원망하든 나와는 상관없다. 난 내 감정에 충실했을 뿐
이였으니깐 .
난 단지 지금 이순간 이곳을 나가고 싶다는 열망 그것 뿐이였다.
[ 나가. 지금 당장, ]
그가 이를 악물며 조용히 말했다.
나는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발딱 일어섰다.
그리고 신발을 찾아 들고 앞만 보고 달렸다.
대학 정문은 잠겨 있었다
이런 새벽녘에 당연한 일이였다 .혹시하고 기대를 한 내가 어리석지…..무너질것
만 같은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대학 담벼락을 서성거렸다. 그제서야 , 개구멍이
떠올랐다. 미대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비밀 통로 같은 것이였다.
개구멍을 통해 무사히 작업실로 온 나는 불도 켜지 않고 작업실로 숨어 들었다
안으로 문을 잠그고 덜덜 떨며 낡을 데로 낡은 나의 국방생 침낭을 락커로부터
들어 냈다.
온몸이 매를 맞은 듯 아팠다.
신열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입술이 바싹 바싹 타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온몸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내렸지만 아무것도 이성적으로 생각할수 없었다
단지 느낄뿐이였다.
나폴레용 꼬냑이 조금 남아 잇는 것을 발견하고는 마지막 한방울까지 짜서 마신
뒤 덜덜 떨며 담배를 찾았다
담배갑은 비어 있었다.
나는 작업실 쓰레기 통을 뒤졌다.
피다 버린 꽁초들이 가득 보였다 웃기는 일이지만 반갑게 담배 꽁초를 줏
어 낸 나는 담배 꽁초에 불을 붙이고 미친듯 빨아 당겼다
독한 꽁초의 연기가 입안 가득 퍼질 때쯤에 비로서 온기를 느꼈다.
그제서야 나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감은 눈속으로 작업실 한구석에 국방색 새 한마리가 떨어져 퍼덕 거리고 있는
것이 몽환적으로 보였다.
꿈인지 현실인지…………….새는 날개 한쪽이 꺽여지고 없었다.
바다가 담긴 빈 유리병이 꺽여진 새의 날개 곁으로 뒹굴고 있었다
흰색 알약 몇알도 군데 군데 떨어져 있었다.
국방색 날개 잃은 그 새는 나를 닮아 있었다.
국방색 침낭 속에 찢어진 어깨를 하고 누워있는 나를 닮아 있었다.
숨은 쉬고 있는 거야?………….나는 새에게 물었다
살아 있느냐고……..
새의 심장 뛰는 소리가 조금씩 미약하게 들려왔다.
살아있구나…..하지만………죽어가고 있어,,,,,,
[ 여기도 없나봐! ]
바깥에서부터 나는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비몽사몽 속에 헤매고 있던 나는
어둠 속에서 감은 눈으로 고개를 돌리는 나를 보고 있는 것이였다.
저 소린 뭘까?.
무엇을 찾고 있는 걸까?….
나는 눈을 뜰수 없었다.
내 의식은 꿈속과 꿈밖의 현실을 왔다 갔다 하며 소리를 듣고 있었다.
[ 그래도 창문 모두 확인해 봐 ]
저건………..저 목소리는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내 심장에 박혀
있는 그 목소리와 비슷한 목소리다……………
[ 아! 열린곳이 한곳있어! ]
또 다시 낮선 목소리가 들려 왔다.
언듯 감은 눈꺼풀 위로 회중전등의 빛이 스쳐갔다.
뭘 찾는 걸까?…….저 새를 잃어 버린건가?…………..저 새의 주인이 온것일까?.
뭔가 안타깝다. 새를 찾는 저 주인의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
눈물이……잠결에..눈물이 흘렀다
아마도 나는 꿈을 꾸면서 울었던 것 같다.
눈물 때문일까?………………차갑게 얼어 있던 내 얼굴에 온기가 느껴졌다
[ 유선배……………….]
조용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내 영혼이 조금씩 회생하기 시작했다.
_______너무 길었나요?. 다음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