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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41


BY 제인 2003-11-21

영준은 처음에 가수생활로 벌은 몇천만원을 가지고 허름한 스튜디오를 하나 세내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상당한 재산을 지녔으리라 여겨지는 영준의 어머니는 남들 보기에 무척 화려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구두쇠였다.

영준이나 그의 누나 입에서 돈이야기가 나오면 얼굴을 돌리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영준은 그런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기 싫어 혼자 힘으로 어떻게든 회사를 꾸려가려했다.

하지만 첫 기획음반이 실패를 하고 말자 어쩔 수 없이 어머니에게 사정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누가 너보고 그런 일 하랬니? 도대체 그게 무슨 짓이냐? 대학나와서 직장에 취직을 하던지, 정 할거 없으면 차라리 정치를 하지, 그게 무슨 짓이야?"하고 못마땅해 하였다.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을 끝까지 뿌리치기가 힘들어 1억원을 내주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다짐을 했다.

"이걸로 네 몫은 끝난거야. 너한테는 이제 한푼도 더는 돌아갈 거 없다. 그걸로 네 맘대로 해봐. 또 망해도 그땐 난 모른다."

영준이 처음에 단 돈 몇천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듯, 다른 음반사들도 처음엔 거의 그렇게 가난하게 시작했다.

돈을 벌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미쳐서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조금의 자본만 있어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작비는 늘 가진 돈보다 많이 들었고, 그러다보면 빚에 빚이 늘어 기껏 만든 음반이 생각만큼 팔리지 못하면 쫄딱 망해서 문닫는 경우가 허다했다.

영준도 충분치 않은 자금으로 섣불리 기획을 시작했다가 그렇게 실패를 했던 것이다.

영준은 어머니에게서 돈을 받은 이후부터는 조금 숨통이 틔여 제대로 일이 돌아가게 되었다.

그의 음악성이 뛰어난데다 운도 마침 따라주어 기획이 연이어 성공을 하자 그의 회사는 점점 커져갔다.

그리하여 처음에 조그마한 독립음반사였던 것이 지난해에는 코스닥에 상장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량있는 중형급 회사로 변모했다.

 

유선아와의 만남은 그에게 크나큰 화였다.

개인적으로도 그녀에게 마음을 주었던 터라 다른 가수들한테 했던 거 보다도 훨씬 더 많은 정성을 쏟았고, 그만큼 제작비도 많이 들어갔다.

그래서 음반자체는 크게 성공했지만, 곧 그녀가 떠나는 바람에 회사가 크게 휘청거리게 되었다.

음반기획이라는 것은 항상 모험이 따르는 것이라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유선아의 은퇴와 그것을 둘러싼 의혹에 관한 기사가 나가자마자 투자자들이 순식간에 떨어져나갔었다.

박영준은 그들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고 회사 이미지를 만회하게 위해 이번의 장미래와의 기획을 추진했다.

하지만 예산이 어림없었다.

장미래같은 대형가수의 기획은 영준의 회사규모로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장미래의 소속사에서 반을 투자하긴 했지만 그 나머지 반에 영준은 회사예산 뿐 아니라 사재까지 포함시켜야했다.

 

검찰로 소환되어간 영준은 공금횡령건에 관한 조사를 받게 되었다.

검사는 취조에 들어가기 전, 영준에게 피의자로서의 권리에 대해 읊어주었다.

"변호사를 부르겠습니까?"

"네."

"어느 분이신가요?"

"김준필 변호사님께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검사는 김준필이라는 이름을 듣더니 표정이 약간 온화해진다.

"기다리십시요."

김준필은 매우 유명한 원로 변호사로서 법조계에서는 덕망있는 인물로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었다.

박영준의 어머니의 재산관리를 맡아주고 있는, 영준의 집안과는 오랜 연분이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검사는 한참 후 돌아와 영준에게 말한다.

"죄송하지만 그분께서는 이 케이스를 맡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영준은 깜짝 놀랐다.

어머니와 절친한 사이인 김변호사가 자신이 이런 일을 당하고 있는데도 외면을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영준이 사업상으로 의뢰하는 변호사가 있었지만 영준이 그보다 김준필변호사를 먼저 생각한 이유는 그의 영향력의 도움을 받아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저의가 변호사를 선임해 드릴까요?"

"........."

"아니면 취조에 들어가겠습니다."

"이상희 변호사를 불러주십시요."

"예, 알겠습니다."

검사는 영준을 두고 다시 취조실에서 나갔다.

변호사와의 면담이 있기까지 한나절이 다 지나갔다.

변호사가 도착하였지만 케이스 접수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고 떠났고 영준은 검찰청내에서 묵어야했다.

 

저녁 뉴스에서는 연일 박영준의 공금횡령 사건이 보도되었다.

지난번 TK 사건 전후로 연예계에서는 각종 비리사건이 터졌었는데 박영준의 사건은 다른 것들보다도 더 두드러지게 보도가 되고 있었다.

첫날은 소환조사를 받는다는 뉴스가 나갔다.

그 다음날은 바람기획에 대한 감사에 들어간다고 했고 또 그 다음날은 박영준이 회계장부를 조작한 것이 밝혀졌다고 하더니 그 다음날은 정식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일사천리로 진행되어가는 이 사건의 수사는 그 결론이 뻔하였다.

박영준은 회사 대표직에서 쫓겨나고 수년의 징역형을 받을 것이라고 아나운서가 예고하였다.

미연은 매일 뉴스와 신문기사를 읽으며 박영준을 구할 어떤 방법이 없을지 골몰하였다.

 

일요일이 되어 고수가 놀러왔다.

고수는 기분좋은 얼굴을 하고 들어왔다.

그런데 미연의 얼굴이 시무룩한 것을 보더니 한마디 한다.

"에이, 그 사람 그럴 줄 알았어. 인상이 안좋더라."

"뭐라고?"

"공금횡령했다잖아."

"아냐, 안했어."

"아니라고? 누나가 어떻게 알아?"

"그런 사람 아냐."

"글쎄 그걸 어떻게 아냐고? 누나, 사람 너무 믿지마. 누나 취직시켜줬다고 그러나본데, 사람은 그렇게 겉만 보고는 모르는 거야."

미연은 속이 상해 뾰루퉁한 얼굴로 비껴앉아 영준에 대한 변명을 한다.

"그게 아니라, 무슨 원한관계때문에 모함을 당한거야."

"원한? 거봐. 그 사람 원한사고 다니는 사람이잖아."

"그런 말 하지마. 그런 사람 아냐."

"어? 그 남자 편드는 거 봐?"

"편드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구....걱정이 돼서 죽겠어."

"걱정한들 무슨 소용이 있어?"

고수는 미연이 골똘히 딴 생각만 하자 미연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누나?"

"응?"

"그만 생각해. 나랑 놀자."

"너랑 뭐하고 놀아?"

"잠깐 손 좀 줘봐."

"왜?"

미연은 오른손을 내밀었다.

"왼손내봐."

미연은 다시 왼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고수는 미연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꽤 큰 다이아몬드가 박혀있는 아주 비싸보이는 반지였다.

"이게 뭐야?"

"청혼반지."

"고수야..."

"누나한테 이거 사주고 싶었어. 꼭 끼고 다녀야 해."

"얼마줬어? 너가 돈이 어디있어서?"

고수는 싱글벙글 웃으며 미연의 손을 자기의 두손으로 감싸잡았다.

미연이 보니까 고수의 손톱밑에 시커먼 기름 얼룩이 끼어있었다.

"손이 왜 이래?"

"이거? 자동차 기름이야."

"차 고쳤어? 누구 차?"

"병문이네서 방학동안 일하기로 했어."

"자동차 정비한다고?"

"응."

미연은 고수의 손을 펴서 들여다 보았다.

여자 손처럼 보드랍고 하얀 기다란 손가락 끝에 검은 얼룩이 흉하게 져있었다.

미연은 고수가 자기에게 반지를 사주려고 그런 험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깐 있어봐."

미연은 방으로 가서 크림통을 가지고 와 고수의 옆에 앉는다.

"뭐하려고?"

"그런 기름때는 크림으로 맛사지하면 잘 지워지지 않을까?"

"에이 또 묻을텐데 뭘 지워? 그냥 둬."

"손 이리 내봐. 그래도 한번 해보자."

"내 손말고 누나 손이나 하자."하며 고수는 미연의 손을 잡고 손등을 살핀다.

"이젠 많이 나아졌네? 첨에 누나 손 정말 거칠었었는데."

"그랬어?"

"그때 누나 손 잡아보고 짐승손같다고 생각했었는데...하하하...."

"뭐야? 아휴..."

"누나, 그 반지 잠깐 빼봐."하고 미연의 손에서 반지를 빼더니 크림을 퍼서 미연의 손등에 발라준다.

미연은 "이만큼은 해야돼."하고 크림을 한번 크게 떠서 고수의 손에 발라준다.

두 사람은 크림을 잔뜩 발라 미끌거리는 손으로 서로의 손을 맛사지해주며 깔깔거린다.

"앗, 간지러....하하...."

그러더니 어느새 미연과 고수는 둘다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장난하던 손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고수는 미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미연은 눈을 감았다.

몇초를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덜컹하고 방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서 방문쪽을 쳐다보았다.

장미가 낮잠을 자다 깨어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아직 눈을 반만 뜨고 있던 장미는 고수를 보더니 "아저씨!"하고 반가와 달려온다.

고수는 "우리 딸내미 잘 있었어?"하고 농담을 한다.

미연은 무안한 얼굴로 고수에게 눈을 흘긴다.

고수는 저녁 늦게까지 놀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고수가 돌아간 다음 식탁을 보니 신문뭉치가 놓여있었다.

'고수가 아까 가지고 왔었지.'

들쳐보니 스포츠 신문 일요판이었다.

미연은 앉아서 신문을 펼쳤다.

연예면을 펴보니 박영준에 관한 기사가 실려있었다.

미연은 식탁에 그 기사를 쭉 펴놓고 심각하게 읽기 시작한다.

특집처럼 길게 실린 박영준의 관한 기사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음반 기획사 대표 박영준이 공금 5억원을 횡령....유선아 은퇴시 한차례 여자 연예인 성상납파동의 의혹을 받았으며....박영준 대표의 어머니인 최고은의 자산이 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고 이 재산이 바람기획으로부터 새어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박영준은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생아인데....그의 어머니는 과거 고관대작을 상대로 하는 화류계 생활로 돈을 모았다는 소문이다."는 이야기까지 실려있었다.

미연은 언론이 박영준이 사생아이며 연예계에서 비리를 일삼는 파렴치한으로 몰았을 뿐 아니라, 그의 어머니의 과거 행적까지 들춰낸 것을 보고 경악을 하였다.

이것은 원한에 사무친 유학선이라는 자가 영준의 회사를 빼앗는 것도 모자라 영준과 그의 모친을 아예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고 언론을 사주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미연은 그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그 기사에 매달린지 한 시간 가까이 흐른 후 마침내 미연의 머리에 번뜩 스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