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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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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40


BY 제인 2003-11-21

6월 하순으로 접어들자 장마가 시작되었다.

아침부터 후덥지근한 날씨에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졌다.

미연은 장미를 학교에 데려다 준 후 전철을 타고 회사로 향했다.

전철역에서 나와 회사를 향해 다다랐을때 건물앞에 검은색 승용차 두대가 입구를 막고 서있는 것이 보였다.

'뭐지?'

미연이 발걸음을 빨리 옮겨 그 검은 차량들 가까이로 걸어갔다.

건물안에서 사람들이 몰려나왔다.

영준을 가운데 두고 낯선 남자 둘이 영준의 양팔을 붙든 채 차에 함께 올라탔다.

뒤따라 나온 다른 두명의 남자들도 다른 차에 올라탔다.

두 승용차는 이내 잇달아 출발했다.

미연은 깜짝 놀라 회사로 뛰어 올라갔다.

"무슨 일이예요? 영준씨 지금 어디로 가는 거예요?"

미연이 다급한 소리로 물었지만 다른 직원들도 어찌된 영문인지를 몰라 어수선하게 수근거리기만 했다.

영준의 후배가 미연에게 말한다.

"저희도 모르겠어요. 조금전 아침 회의를 하려고 모이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형사들이 와서 형을 데리고 갔어요."

"형사? 형사들이 왜요? 영준씨를 왜 데려갔어요?"

"글쎄....잘...."

옆에서 듣고 있던 여직원 하나가 신경질적으로 후배에게 다그쳤다.

"모른다고 하지만 말고 좀 알아봐요."

"어디다 알아봐? 어떻게?"

"그럼 그냥 이러고 있어?"

"그럼 어떻게 해?"

"아까 그 사람들 어디서 나온 형사들이랬는데? 강남서라고 그래?"

"그랬나?"

"거기 전화해서 물어보자."

"전화하면 가르쳐줄까?"

"아까 무슨 검찰이라고 했던 거 같던데..검찰하고 경찰하고는 다른 거 아냐?"

사람들은 갈팡질팡했다.

모두들 어쩔 도리없이 소식이 올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답답한 얼굴로 기다리던 중 "그러지 말고 뉴스라도 틀어봐, 무슨 얘기 없나."하고 누군가가 말했다.

라디오를 틀자 마침 정오뉴스가 시작되었다.

"....오늘 음반기획사인 바람기획의 박영준 대표가 공금횡령혐의로 검찰에 소환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경악을 하였다.

"공금횡령??? 영준형이????"

"말도 안돼!"

"가만히 있어봐, 더 들어보자구!"

모두들 다시 아나운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박영준 대표는 지난해 바람기획을 코스닥에 상장하면서 증자대금을 정상 입금한 것처럼 회계처리하는 방법으로 공금 5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검찰이 얼마전 TK엔터테인먼트 대주주의 공금횡령사건 이후 그러한 횡령수법이 연예기획사들 사이에 만연해 있을 것으로 파악, TK 관련회사들을 중심으로 확대 수사를 하던 중 밝혀졌읍니다."

사람들이 놀라 할 말도 잊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예, 바람기획입.. 예? 글쎄요...저희도 잘...아뇨, 그게...네..."

후배는 전화를 받으며 몹시 난처해했다.

전화를 끊더니 사람들을 돌아다보며 말한다.

"큰일났어. 이번 음반 출시정지 먹었대."

"뭐야? 다 만들었는데 무슨 소리야?"

"지금 장미래씨네 사장님한테서 전화온거야. 거기서 유통까지 하기로 했잖아. 그런데 조금전에 검찰에서 출시정지명령이 떨어졌다고...사장님 펄펄뛰고 난리났어."

"뭐야 그럼? 우리 다 망한거야?"

사람들은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두리번거린다.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영준형이 그런 사람 아니라는 거 다 알잖아. 그런 일 없었어."

"그래, 맞어. 게다가 TK하고 우리가 무슨 관련이 있어? 거기다 배급맡긴 거 밖엔 없잖아."

지난번 유선아의 앨범은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TK의 레이블을 달고 출시가 되었었다.

중소 음반사들은 대형레이블의 유명세와 거대한 유통망을 이용해야 할 필요가 있을때면 종종 그렇게 대형음반사에게 배급을 맡기면서 그들의 레이블을 달고 출시를 한다.

영준은 유선아의 앨범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이전과는 다른 대규모 출시를 기대했다.

그래서 TK에게 배급을 맡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거래에 불과한 것임에도 일반 대중들 눈에는 유통을 맡긴 작은 회사가 레이블을 빌려준 대형음반사의 계열사나 소속회사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유학선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해 바람기획을 걸고 넘어지도록 일을 꾸몄던 것이다.

미연은 가만히 앉아서 사람들의 오고가는 이야기를 듣어보니 이 일이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영준과 가장 친하기도 하고 상법변호사로서 이런 일에 일가견이 있는 명민이가 생각나 전화를 걸었다.

"명민아, 나 미연이야."

-"그래, 잘 있었니?"

"너 아니? 영준씨가..."

- "영준이가?"

"검찰에 소환되었어."

- "언제? 오늘?"

"응."

- "결국..."

"넌 무슨 일인지 아는구나?"

- "혐의가 뭐라고 해?"

"공금횡령이래."

- "후.....역시..."

전화기에서 명민의 한숨소리가 수화기 구멍을 통해 불어나올 것처럼 크게 들렸다.

"역시...? 명민아, 무슨 일이 있었어? 영준씨가 그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 "미연아, 퇴근하고 내가 너희 집 쪽으로 갈테니까 그때 만나서 이야기 하자."

"그래."

하루종일 직원들과 함께 초죽음이 되다시피 보낸 후 미연은 명민을 만나러 미래클럽으로 갔다.

마침 미래가 나와 있었다.

"미연아, 어떻게 된 거야? 영준씨가 왜 그렇게 된거야?"

"나도 몰라. 공금횡령이라니..."

"이번에 우리 음반에 제작비 많이 들였잖아. 아까 출시정지 명령받고 우리 사장 졸도할 뻔 했어. 혈압 높은 양반인데.... 얼마나 놀랐는지..."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영준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사이에 명민이 도착했다.

"어서와 명민아, 여기."

명민은 장미래를 보더니 놀라는 표정이었으나 "안녕하십니까"하고 무뚝뚝하게 인사하였다.

명민은 평소에 장미래를 무척 좋아하는 팬이었다.

그래서 지난 번 미연에게서 이곳이 장미래가 운영하는 클럽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들리곤 했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가수라서 이렇게 직접 마주친 것이 무척이나 반가왔지만 영준의 일로 모두들 심난한 상태라 내색을 할 형편이 못되었다.

세사람은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명민아, 너는 무슨 일인지 알고 있지?"

"알고는 있지만...자세히 이야기 할 수가 없는 입장이야. 그냥 이렇게 알아둬. 영준이 공금횡령한 일이 없다는 거. 이건 영준이 회사에 회계감사를 하려는 구실이야."

미래는 "회계부정이 있었어요?"하고 명민에게 묻는다.

"아닙니다."

"그런데 왜 그러는 거예요?"

명민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자기 선에서 이런 내막이 새어나와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미연아. 그리고 장미래씨. 꼭 믿어야 할 것은...이건 영준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영준이의 인간성을 의심하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인간성을 의심하다니요...박영준씨가 걱정될 뿐이죠."하고 미래가 근심어린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 영준씨는 언제 풀려나?"하고 미연이 물었다.

"알아보니 지금 검찰에서 조사받고 있는 중이라던데, 글쎄다...금방 풀려날 것 같진 않아."

"구속되는 거야?"

"그럴지도 몰라."

"명민아, 말이 안돼잖아. 잘못한 일도 없는데, 회계부정도 없다면서....왜 사람을 잡아다가 막 구속을 해?"

명민은 할말이 없었다.

"이건...그냥 지켜보는 수밖엔 없어."

"너, 어떻게 친구가 되서 그렇게 말을 하니?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생각해봐야하는 거 아냐? 넌 변호사니까 잘 알거아냐?"

"미안하다. 나로서는 방법이 없어."

미연은 답답했다.

분명 명민은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자세히 말도 안하고 그저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라는 소리만 하고 있는 것이다.

세 사람은 말없이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그 중 가장 낙천적인 미래가 말문을 열었다.

"우리 저녁이나 먹죠. 뭐 드실래요? 제가 대접할께요."하더니 웨이터에게 손짓을 한다.

음식이 왔지만 미연과 명민은 심기가 불편하여 잘 먹지를 못한다.

미래가 그런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애를 쓴다.

"잘 되겠지. 모두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어서들 드세요. 영준씨가 깨끗한 분이라는 거 다 아는데, 설마 무슨 큰 일이 나겠어?"

명민은 미래가 그렇게 말하자 한결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미래도 명민이 표정이 달라지는 걸 보더니 그를 향해 미소를 보낸다.

그때 웨이터가 와서 미래에게 속삭였다.

"두분이 식사 마저 하시고 이야기 나누세요. 저는 손님이 찾아온 모양이예요. 그럼 다음에 또 놀러오시구요."하고 미래는 명민에게 인사를 했다.

"예, 오늘 저녁식사 고마왔습니다."하고 명민은 일어서서 깍듯이 인사했다.

"아이, 뭘요. 미연이 친구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여기 자주 놀러와주세요."하고 미래도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다.

미래를 찾아온 것은 바로 유선아였다.

유선아는 미래를 보더니 "언니!"하고 어깨에 기대며 울음을 터트렸다.

미래는 선아의 어깨를 감싸고 내실로 데려갔다.

 

남은 두 사람은 미래와 선아에게는 주의를 돌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명민이 미연에게 봉투를 하나 꺼내서 건네준다.

"미연아, 이거..."

"이게 뭐야?"

"영준이가 부탁한 건데, 집에가서 뜯어봐."

"뭔데?"

"모르겠어. 우리 이만 일어서자."

"그래."

명민은 미연을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미연은 명민의 차에서 내리려다 명민에게 "너 잠깐 들어와서 커피한잔 하고 갈래?"하고 권한다.

"그냥 집에 갈께."

"그러지 말고 잠깐 들어와. 얘기좀 하자, 응?"

명민은 마지못해 미연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미연은 커피를 끓여 명민과 자신의 앞에 놓으며 식탁에 앉는다.

"왜 내가 알면 안되는 거야?"

"........"

명민은 대답을 안하고 한숨만 쉰다.

미연은 아까 건네받은 봉투를 꺼내 뜯어본다.

안에는 천만원짜리 수표 한장이 들어있었다.

"이게...뭐야?"

"그건...영준이가 너한테 주라고 한건데. 지난번 곡에 대한 작곡로열티라고 그랬어."

"로열티? 그런 건 회사 경리가 주는 거지, 왜 너한테 전해? 그리고 왜 이렇게 많아?"

"........"

"이거, 로열티 아니지? 영준씨가 나한테 그냥 사적으로 준 돈 아냐?"

"그냥 받아둬, 미연아. 영준이가 자기 회사 다니게 해놓고 아무것도 못해주면 마음이 어떻겠어?"

"잠깐만...그럼 영준씨도 자기가 그렇게 될 줄 알았다는 거야?  그래서 이걸 미리 너한테 맡겨뒀던 거야?"

"......."

"명민아, 왜 말을 안해? 우리 사이에 그렇게 말을 안하면, 영준씨는 어떻게 해? 누가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냥 저렇게 구속되도록 내버려 둬야겠니?"

명민은 미연이 자꾸 다그치자 입을 열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얘기 할 입장이 못되어서 그랬다는 거 먼저 이해해 주길 바래."

"비밀이 있는 거라면 꼭 지켜줄께. 내 성격 잘 알잖아."

"알아...음....이일은 영준의 어머니하고 얽힌 일이었어."

명민은 영준의 어머니가 젊은시절에 저질렀던 일로 인해 영준에게 화가 미친 것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유학선으로부터 영준의 회사를 인수하는 케이스를 맡게되어 이 일에 나설 수 없는 입장이라느 것도 말하였다.

미연은 그제서야 영준의 출생에 대해 알게되었다.

"그랬구나...그럼 그 케이스를 맡지 말지 그랬니?"

"내가 안맡는다고 달라지는 게 없잖아. 차라리 내가 쥐고 있어야 무슨 기회라도 생겼을때 제대로 처리를 하지."

"맞아, 그렇구나. 그럼 나도 너를 난처하게 만들지 않고 이 일을 해결할 방법이 없나 생각해볼께."

"글쎄...방법이 있을까 모르겠다. 그렇게 권력있는 사람들이 휘둘르는데 막을 방법 있을까? 어쨌든 고맙다. 나도 이 일을 최대한 지연시켜볼께."

명민은 화제를 바꾸어 미연에게 묻는다.

"그런데 너도 영준이랑 다시 시작할 마음이 있는거니?"

"너.....?"

"그래. 두 사람 사이 알고 있었어."

미연은 얼굴이 빨개진다.

"하긴, 둘이서 친하니까...알고 있었겠구나..."

"아직 영준이 좋아하니?"

미연은 고개를 숙이고 작은 소리로 뜸을 들여 말한다.

"내가...어떻게...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겠어? 진희하고 결혼해버려 놓고...."

"영준이는 아직 네 생각하고 있는 거 같던데..."

"내가...이혼하고 혼자사는게 안되어 보여서...도와주려는 거 같아."

"글쎄, 그럴지도 모르지. 영준이가 자기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거 같더라."

"무슨 소리야?"

"너랑 진희랑 헤어진거."

"영준씨가...자기때문에 우리가 헤어졌다고 생각한다고? ...진희가...영준씨를 알고 있었어?"

"진희가 너한테 그런 내색 안하든?"

미연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 자식, 참..."

"진희가, 진희가 알고 있었어? 우리 일을 알고 있었어?"

"그랬던 거 같아. 그래서 고민하고 그랬었어."

미연은 얼굴색이 하얗게 변한다.

"왜...나한테 아무말도 안하고...그렇게 금방 알게 될 것을...왜 바보같이 숨기려고만 했을까. 진희한테....그리고 영준씨 한테도...모두에게 그렇게 상처만 주고......"

미연은 흐느끼기 시작한다.

"미연아, 다 지난 일이야."

미연은 눈물을 닦으며 묻는다.

"진희가 어떻게 알게 되었는데? 영준씨가 말했어? 아니면 네가?"

"그게 아니라... 혼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그랬어."

"어떻게 해서?"

명민은 지난 일을 더듬어 이야기를 하였다.

장미의 돌잔치가 있었던 날, 한 친구의 실언이 화근이 되었다는 것을.

"그런데... 나도 느꼈는데.... 장미...영준이 많이 닮았어. 장미가 영준이 아이 아니었니?"

미연은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며 고개를 젓는다.

"세상에...아냐...그럴리가..."

"너, 엄마로서 그런 것도 못느꼈니? 아니면, 아니라고 믿고 싶었던거니?"

"......."

"미연아,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니라고 봐. 너 자신도 잘 모르겠다면, 친자확인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그게 너나 장미나, 영준을 위해서 다 좋을 거 같아."

"이제와서 장미가 영준씨 아이라는 거 밝혀서 어쩌라구?"

"나는 솔직히, 너희 두 사람, 서로 마음이 있다면 합치는 게 제일 바람직하다고 봐. 장미까지 그렇다면...."

"말도 안돼...내가 어떻게...영준씨한테 그렇게 해놓고 이제와서..."

미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눈물만 찔끔찔끔 흘린다.

명민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한 번 더 강조한다.

"미연아, 꼭 해봐, 친자확인. 알겠니?"

미연은 명민을 집에 보내고는 걸어서 장미를 데리러 친정집으로 갔다.

장미는 엄마를 기다리며 아직 놀고 있었다.

방에 들어가자 장미가 미연을 향해 환하게 웃음을 지었다.

장미의 웃는 얼굴을 보는 순간 다시 한 번 느꼈다.

장미가 영준을 정말 많이 닮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