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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전 같이 살집에 대한 이자부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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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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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37


BY 제인 2003-11-19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 미연은 엄마에게 들렀다.

점심먹을 시간이 지났는데 엄마는 그제서야 낮잠에서 깨어났다.

미연은 입맛이 없다는 엄마를 위해 수제비를 끓이려고 멸치국물을 내었다.

'고수는 혼자서 점심이나 챙겨먹었나 몰라...?'

국물을 넉넉하게 내어 그중 조금만 냄비에 덜어서 엄마먹을 것만 끓여 들여갔다.

"넌 왜 같이 안먹니?"하고 엄마가 묻는다.

"난 아직 배가 안고파서. 집에 가서 먹을래."

엄마가 먹는 것을 보고는 방에서 나와 미연은 멸치국물과 밀가루 반죽한 것을 챙겨서 장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고수에게 전화를 한다.

"집에 있니? 점심은 먹었어?"

- "아니, 아직 안먹었어. 오늘 약속있다더니 아직 안갔어?"

"갔다왔어. 점심 안먹었으면 얼른 와. 내가 수제비 끓여줄께."

- "그래, 금방 갈께."

고수는 부리나케 달려왔다.

고수는 수제비 반죽을 떼어넣으려는 미연 옆으로 와서 반죽을 빼앗는다.

"내가 할께 이리줘. 그런데 어디 갔다 온거야?"

"....박영준씨 사무실에."

"거기 왜?"

고수는 밀가루 반죽을 떼어넣다 말고 멈춰서 미연을 쳐다본다.

미연은 반죽을 빨리 떼어넣으라고 손짓을 한다.

"불잖아, 얼른 넣어."

"거기 왜 갔었어?"

고수는 마저 남은 반죽을 떼어넣으며 미연을 내려다본다.

"이제 거기서 일하게 되었어."

"거기서? 거기서 뭐하는데?"

"작곡..."

"그 사람이 그냥 저번에 그 곡만 사준다고 그랬던 거 아니었어?"

"자기랑 같이 일하재. 내 음악이 맘이 든다고..."

고수는 시무룩한 얼굴이 되어 묻는다.

"그래서 이제 선물가게는 그만둘거야?"

"그래야겠지."

"그럼 나랑도 못만나겠네?"

"못만나긴...일요일날 이렇게 우리집에 오면 되잖아."

고수는 마음이 불안해졌다.

미연이 옛사랑과 다시 만나 그에게 돌아갈까봐 두려웠다.

고수는 말이 없어지더니 오후 내내 미연의 집안팎을 왔다갔다 하며 궂은 일을 하였다.

저녁이 가까워지니까 미연과 장미를 위해 저녁을 지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미연을 앉혀놓고 자기 혼자서 설겆이를 하였다.

식탁도 정리하고 걸레를 빨아 마루도 닦았다.

고수가 우울한 얼굴로 계속 집안 일을 하니 미연은 너무 미안하였다.

"고수야...이제 그만하고 집에 가서 쉬어, 응? 그만해."

"괜찮아."

"너 조금 있으면 학기말 시험 아니니?"

"응."

"공부 안해?"

"........"

"다 했어?"

고수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화장실로 가 손을 씻고 나오더니 미연이 앉아있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누나한테 할말이 있어."

"뭔데?"

"누나, 나랑 결혼해줘."

미연은 고수의 구혼에 깜짝 놀랐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미연에게 고수는 말을 이었다.

"지금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몇일 후, 몇달 후, 아니면 몇년 후라도 괜찮아. 기다릴께. 누나, 나중에 언제라도 나를 사랑한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내게 와줘, 응? 나, 누나 기다릴거야."

"너....독신주의자 아니었어?"

".....그랬지만....누나하고는 아냐. 첨부터 누나는 예외였어. 나...누나 첨 봤을때부터 좋아했었어. 그래서 첨 본날 그날부터 결혼...하고 싶단 생각했었어. 누나하고는 계속 같이 있고 싶어. 결혼해서 늘 함께 같이 있고 싶어."

미연은 자신에 대한 고수의 애정이 정상적인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외로움때문에 자기에게 일시적으로 집착하고 있는 것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연은 아직도 고수가 고아인 줄로만 알고 있다.

그리고 친구들이 얘기한 것처럼 고수는 여자들을 자주 바꿔가며 만나는 것 같이 보여져왔다.

그러니 고수의 마음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고수가 그러는 것이 싫지가 않았다.

만약 고수가 없으면 자신도 외로울 것 같았다.

지난 3개월간 깊은 속마음까지도 털어놓을 정도로 친해진 그와의 생활에 미연의 삶이 어느덧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덥썩 그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나이나 자신의 처지로 봐서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는 것이었다.

또 그렇다고 딱 잘라 거절하기엔 고수가 너무 불쌍했다.

"....그럼 있지....일단 졸업하고 직장얻고 생활이 안정되는 거 봐서....그때가서 다시 얘기해. 지금은 결혼같은 거 생각하기 너무 이르잖아."

"알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누나가 마음을 정해주기 바래. 나랑 당장 결혼하지 않아도, 나중에 언제라도 나랑 결혼할 거라고 약속만 해줘도 나 너무 행복할 거 같아."

고수의 이런 열렬한 구애에 행복하다고 해야할지, 어이없다고 해야할지 미연은 마음이 갈피를 못잡아 어리벙벙한 얼굴로 고수를 바라보았다.

미연은 이런 야릇한 분위기에서 벗어나야겠다 싶은 생각에 입을 삐죽거리며 이렇게 말한다.

"치...뭐 이런 싱거운 청혼이 다 있어? 반지라도 하나 끼워주든지...너, 나중에 돈 벌어서 반지라도 하나 살 형편되거든 그때가서 다시 청혼하라구."

미연이 농담을 하는 건데도 고수는 그 소리에 얼굴이 심각해졌다.

고수는 고개를 수그리고 잠시 생각한다.

'맞아....반지...아이, 최소한 꽃다발이라도 준비했어야 하는 거였는데...'

고수는 아직 학생인 자신의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고수야, 왜 그래? 왜 그렇게 얼굴이 심각해? 나 농담한거야. 반지같은 거 필요없어. 그냥 장난한거야."하고 미연이 미안하여 해명하였다.

고수는 고개를 들고 눈을 반짝이며 미연에게 이렇게 말한다.

"누나, 내가 나중에 진짜 돈 많이 벌어서 누나 호강시켜줄거야. 그땐 맨날 장미랑 같이 여기저기 놀러다니고,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누나 갖고 싶은 거 다 사러다니고 그러자, 응?"

"호호...말로만도 고마와."

"누나, 나랑 같이 있는 거 좋지 않아? 좋지?"

"응, 좋아. 너랑 같이 있으면 참 편해. 다른 사람들하고 있는 거랑 정말 다르다."

"나처럼 잘해주는 남자 본 적 없지?"

"후후...그래."

"그러니까 나랑 결혼하면 행복할 거 같지?"

"그래. 넌 일등 신랑감이야."

고수는 미연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마와 누나, 그렇게 말해줘서. 누나말대로 졸업하고 직장얻을때까지 나도 기다릴께. 누나도 기다려. 그때 되면, 우리 같이 사는 거야. 결혼해서. 꼭."

"흠.....그건....그때 가봐야 알겠는데? 그때가서 네 맘이 변할지도 모르잖아."

"내 마음은 안 변해. 절대로."

"그럼 그동안 네 마음을 시험해 보겠어. 앞으로 1년후에도 네가 여전히 나를 사랑하는지."

"1년? 그건 너무 길잖아."

"1년이 뭐가 길어? 아까는 언제까지고 기다리겠다더니? 그리고 네가 그랬잖아, 양과하고 소용녀는 10년도 기다렸다고."

"아이, 그래도 그렇지....나같은 사람은 졸업하기도 전에 취직될텐데...6개월이면 충분하지."

"아냐, 그래도 1년. 직장다니면서 다른 여자들도 만나보고, 사귀어도 보고, 그래도 역시 내가 좋으면 그때 결정해."

"여자들을 뭐하러 사귀어? 다 사귀어봤어. 다 알아."

"알긴 뭘 다 아니? 아직 어려서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어리다구?"

"그래. 너...내가 너같이 어리고 잘생긴 남자랑 결혼하면 행복할 거 같지? 천만에야. 언제 맘이 변해서 다른 어리고 예쁜 여자 만나서 도망갈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에 늘 불안하게 살지도 모른다구."

"누나는 나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냐. 그리고 세상에 누나보다 더 예쁜 여자가 어딨냐?"

미연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정말 자신있어?"

"그럼."

"좋아 그럼 1년 후에 보자구."

"에이....좋아, 그럼 누나 나랑 지금 약속해. 1년 후에 나랑 결혼하기로."

미연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때까지 정말 네가 나를 좋아할거니? 정말....?'

미연은 망설이는듯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약속했어. 1년 후에 보자."

고수는 일어나 미연에게로 다가와 미연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힘껏 포옹을 하였다.

그리고 미연에게 키스를 하려고 고개를 수그렸다.

그러자 미연이 고수를 멈추고 말한다.

"잠깐. 결혼전까지 신체적 접촉은 하지 않기."

"아이, 그런 게 어딨어."

"너는 나한테 바람둥이라는 인식이 박혀있어서 그런거야."

"바람둥이 아니라니까?"

"그러니까 참아. 너는 참는 걸로 너의 사랑을 증명하는 거야, 알겠니?"

고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도로 자리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