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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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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34


BY 제인 2003-11-15

영준은 명민으로부터 미연이 이혼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 마음이 심란해졌다.

진희가 자신과 미연의 관계를 의심하여 그렇게 되었기에 더욱 그랬다.

혼자가 된 미연에게 무엇인가를 해줘야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살게 내버려둬서는 안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녀를 다시 찾아간다는 것이 어렵게만 느껴졌다.

그녀의 피하는 듯한 인상이 영준에게는 커다란 장벽이었다.

 

영준은 조직검사때문에 입원해 있던 어머니를 퇴원시키러 병원으로 갔다.

어머니의 병은 지금으로서는 아주 심하지도, 그렇다고 안심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이제 곧 방사선 치료와 항암제 투여를 해야합니다. 내일부터 매일 두달간 통원치료하십시요."

"매일이라고요?"

"네. 매일 아침 일찍 나오셔야합니다. 방사선 치료는 한시간정도 잡으시면 됩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한번씩은 항암제 투여를 해야하는데, 그날은 시간이 더 오래걸리니까, 알고 계십시요. 그럼 나가시다가 진료 스케줄을 받아 가십시요."

"그냥 입원을 하고 계시면 안되는 건가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공연히 환자한테 부담만 주는 거죠. 입원하면 비용도 문제지만, 환자가 너무 고생합니다. 집에서 편히 지내시면서 통원치료하는 것이 훨씬 좋죠."

어머니를 모시고 매일 통원치료를 해야한다는 것은 영준에게는 굉장히 큰 부담이었다.

영준은 이번에 잡아놓은 장미래와의 기획은 회사의 사활을 건 아주 중요한 것이라 자신의 모든 시간을 다 바쳐야 할 판이었다.

그리고 이미 잡혀져 있는 장미래와의 스케줄을 통원치료때문에 변경할 수도 없었다.

통원치료 첫날은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내려놓고 다시 출근을 해야했다.

회사에 갔더니 10시였다.

장미래와의 약속은 9시로 잡혀있었다.

장미래와 그녀의 매니저가 기다리고 있었다.

매니저는 화가나서 "이렇게 시간을 못맞추시면 이번 기획 같이 하기 어렵습니다."하고 말한다.

"정말 미안합니다. 저의 어머니가 통원치료를 받으셔야 하는데, 모시고 다닐 사람이 없어서요."

매니저는 "장미래씨 내일부터 오후 생방송이 있어서 오전 이시간 아니면 못나오시거든요. 시간 꼭 지켜주세요. 또 이렇게 펑크내시면 저희도 어쩔 수 없습니다."하고 짜증을 냈다.

하지만 장미래는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어머니가 어디 많이 편찮으신가요?"하고 걱정을 하며 "아침이 안되면 밤늦게라도 스케줄을 다시 잡아야지 뭐."하고 영준의 편을 들어주었다.

영준은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이 상황이 참으로 난감했다.

"형, 전문 간병인 쓰면 돼요." 하고 함께 일하는 후배가 가르쳐준다.

"전문 간병인?"

"네, 그런 서비스 하는 회사 있어요."

영준은 용역회사에 전화를 하여 간병인을 구하였다.

그제서야 영준은 안심을 하였고 다음날부터 장미래와 계획대로 기획을 진행시켜갔다.

 

영준과 미래의 새음반은 기획과 함께 화제가 되었다.

두 사람의 합작앨범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로 인해 이미 레코딩에 들어가기도 전에 선주문이 쏟아져 들어왔다.

박영준의 아이디어가 대성공을 한 것이었다.

영준의 회사 주가는 다시 뛰어올라 재정상태가 전보다 좋아졌다.

 

유학선은 이런 사실을 언론을 통해 알게되었다.

지난번 선아의 은퇴선언에 더불어 가했던 언론플레이가 소용이 없게 되었다.

'좋아하지 마라. 그깟 음반회사 하나쯤이야... 속담에 키워서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지.'

유학선은 개인비서를 불렀다.

"이봐, 흠...선아가 말이야..."

"네, 따님에게 무슨 일이라도...?"

"걔가 가수를 하겠다고 얼마전에 음반을 하나 냈잖아."

"예, 노래를 아주 잘하더군요."

"들어봤나?"

"아, 그럼요. 우리 회사 직원들 모두 듣고는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팬클럽 만들겠다고 아우성들이었는데...그런데 뜨자마자 갑자기 은퇴를 해서 모두들 어리둥절해하고 있습니다."

"내가 못하게 해버렸어. 가수가 뭐야, 도대체 가수가."

"아이구, 왜 그러셨습니까? 선아양 재능이 보통이 아니던데요. 요즘은 세상이 달라져서 연예인들이 아주 대접받고 있지 않습니까? 지난번에 TV를 보니까 전 농수산부장관 손주분도 탈렌트로 나오던 걸요."

"아무리 그래도 난 그런 건 딱 질색이야. 아, 그런데 그녀석, 그거 못하게 했더니 풀이 죽어서 요즘 밥도 안먹고 말야...그래서 말인데..."

"예."

"선아가 데뷔했다는 그 음반회사말야."

"예."

"그거 인수해서 선아한테 주었으면 해."

"네에?"

"가수같은 거 해서야 어디 체면이 서? 적어도 음반사 사장 정도는 돼야 남들한테 무시를 안당할 거 아닌가? 내가 그 녀석한테 가수는 안되고, 음반회사 사장이면 허락하겠다 했어."

유학선의 비서는 어안이 벙벙했다.

아무리 그래도 멀쩡한 남의 회사를 어떻게 갑자기 인수를 한다는 말인가?

아무말 못하고 가만히 있으니 유학선이 비서에게 지시를 한다.

"그 회사에 대해서 좀 알아봐 주게."

"예, 예...알겠습니다."

개인비서는 회장실을 나가면서 고개를 갸우뚱 거린다.

유학선의 측근에 의한 박영준의 회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던 때에 마침 연예계에 엄청난 비리 사건이 터졌다.

연예계에서 가장 크다는 TK 엔터테인먼트의 대주주가 공금횡령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이었다.

유학선은 머리속으로 번쩍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유학선은 장관을 지냈던 아버지의 영향력으로 정,재계에 인맥을 많이 두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국세청의 감사담당관과도 절친한 사이였다.

그에게 전화를 해서 술자리를 청한다.

"요새 신문보니까 좀 시끄러운 일이 있대?"

"뭐? 어떤 일?"

"TK 엔터테인먼트 말야. 그 친구 제법 크는 듯 하더니 이번에 단단히 걸렸더만?"

"흠...한쪽이 너무 커지면 균형을 잃는 법이니까."

"저 말이지..."하며 유학선은 슬슬 속마음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거 터진 김에 나 뭐하나 부탁 좀 들어줘."

"뭔데?"

"내가 인수하고 싶은 회사가 하나 있어."

"무슨 회산데?"

"큰 건 아니고...그냥 조그만 음반회사 하나야."

"갑자기 엉뚱하게 음반사는 웬 음반사?"

"그거 하나 인수해서 선아한테 주려고."

"선아한테?"

"응, 그래서 하나 인수하려고 하는데..."

"이번 사건하고 얽어버려라 이거지?"

유학선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흠....그래도 무슨 명분이 있어야지, 갑자기 어떻게 감사를 들어가?"

"마침 좋은 명분이 있다네."

"무슨 명분?"

"알아보니 그 회사하고 TK하고 얼마전에 거래가 있었더군. 연루시켜버려도 될 것 같은데. 내막이야 어떻든 겉으로는 둘이 관련있어 보이니 명분이 서잖아? 일단 감사들어가면 얘긴 끝난거구. 털어서 먼지 안나오는 놈 있나?"

"그렇지. 그래, 그 회사 이름이 뭔데?"

"바람기획."

 

영준은 자신의 회사가 지금 풍전등화인줄도 모르고 장미래와 한창 음반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연습실에서 장미래와 듀엣으로 부를 신곡을 연습하다가 잠시 휴식을 취한다.

"영준씨 반주로 노래하니까 참 좋네요? 피아노를 꽤 오래치셨나봐요? 전공하셨나요?"

"치기는 어릴적부터 쳤죠.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전공은 아니었죠."

"맞아...정치학과던가...거기 나오셨죠? 왜 전공하지 않으셨어요?"

"고 3 때 생각을 바꿨지요. 음악 아닌 다른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후후..잘못 생각한 거였죠. 장미래씨는 언제부터 가수가 되고 싶으셨나요?"

"저는 고등학교때였어요. 미연이 있잖아요, 걔랑 아주 친했는데...사실 걔 덕이라고 해야겠죠. 미연이랑 저랑 음악을 좋아해서 같이 음악감상실이며 CD점이며 공연장 같은데를 많이 돌아다녔었어요. 미연인 피아노도 잘쳐요. 방과후에 같이 걔 반주에 맞춰 노래부르고 놀기도 많이 했는데, 그때 미연이가 그러더라구요. 나보고 가수가 되지 그러냐고. 나보고 목소리 좋다고 어찌나 칭찬을 해댔는지...호호...거기에 넘어갔죠."

영준은 미연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림을 느꼈다.

오랫동안 억누르고 있었던 그녀에 대한 그리움이 물밀듯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미연에 대해 궁금하여 미래에게 묻는다.

"그런데 미연씨는 왜 음악을 하지 않았나요?"

"저도 그랬지만 미연이도 가정형편이 좋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어렵게 살았죠. 미연이도 영준씨처럼 피아니스트가 꿈이었는데, 그것때문에 계속 피아노를 칠 수 없었대요. 음악에 한이 맺힌 애예요, 걔가. 저같은 경우는 음대에 들어가겠다고 언니 오빠들 한테 조르고 떼써서 빚을 내서라고 레슨비를 마련했는데, 걔는 그러지도 못했어요. 애가 너무 착하기만 해서요."

"그랬군요."

영준은 처음 미연을 만났던 날이 생각났다.

그토록 무심하기만 했던 그녀가 그날 자기에게 갑자기 관심을 보였던 이유를 이제야 알것 같았다.

"그런데...영준씨는 미연이랑 잘 아는 사인가봐요? 둘이 사귀었었어요?"

"네? ......"

영준은 얼굴이 붉어지며 말을 잇지 못한다.

"참, 생각해보니, 이번 일요일이 미연이 생일이네? 우리 가게에서 파티를 한 번 해야겠다. 그날 영준씨도 오실래요? 바쁘시더라도 잠깐 들러서 저녁 함께 들고 가세요. 좋죠?"

"네, 그러죠."

두 사람은 다시 호흡을 맞춰 노래연습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