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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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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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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사랑하세요


BY 이윤하 2005-11-28

진영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는 정희에게 차를 빌려 출발했다.

인천공항으로 달리다 용유도로 차를 몰았다.

- 또 바닷가군...

긴 해안선이 보이는 도로를 달리며 진영이 중얼거린다.

이곳에 있기는 한 걸까?

정희가 알려준 전화번호로 걸어볼 까도 생각했지만 자신이 가는 줄 알면 또 사라져 버릴 지도 몰랐다.


수아의 집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조개구이 천막집이 길게 늘어서 있는 백사장 반대편 끝자락에 생뚱맞게 지어진 이층집이 있었다.

원래는 부모님이 별장식으로 지은 집이었는데 자식들 대학 졸업 시켜놓고는 아예 들어가 사신다고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차를 주차했다.

수아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차를 몰아 오긴 했는데, 들어가려니 망설여 졌다.


"좀 더 있다가지, 약도 곧 올텐데."

"아냐 엄마, 내일부터 출근해야 하는데 어서 내려가서 준비해야지. 지금 내려가 봤자 저녁에 도착하잖어."

"그럼 약은 택배로 부쳐줄께 꼬박꼬박 챙겨먹어. 아버지 한테 좀 태워다 달라 하지. 금방 오실텐데."

"뭐하러, 금방인데. 엄마 들어가. 내가 전화할께."

수아는 택시올 때까지 나와 있겠다는 엄마를 굳이 말린 후 집을 나섰다.

내려갈 일이 꿈만 같다.

택시에, 버스에, 기차에, 또 지하철.....

수아가 트렁크를 끌며 택시 타는 곳으로 향하는데 낯익은 뒷모습이 보인다.

멈춰선 수아.

트렁크를 끄는 소리에 뒤돌아 본 진영.

두 사람 모두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전화기까지 꺼놓고...이렇게 사람을 놀래키는게 취밉니까?"

마음과 다르게 말이 나온다.

미안하다고 빌어도 시원찮을 순간에...진영은 자신에게 화가 치민다.

"......"

"......"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고 말하기는 싫다. 더 무책임한 말같다.


수아가 먼저 무슨 말이라도 꺼내주길 바랬다. 대답은 해줄 수 있는데...

"후회하는 마음...있어요?"

겨우 한마디를 꺼내는 진영.

"......"

"뭐라고 말 좀 해줘요. 당신한테 미안하다고 하고 싶지 않아요. 난 후회...하지 않으니까...물론 당신한테는 기다리겠다고 말하고 당신이 마음을 결정하기도 전에...그것때문에 화가 난 거라면 그 부분은 정말 사과해요. 충동적이긴 했지만..."

"......"

"당신이 처음이었다는 걸 알았다면...아니...모르겠군...그걸 알았다 했어도...사랑하는 여자가 그렇게 가까이 있는데...휴...다 변명같군. 차라리 화가 풀릴 때 까지 날 때려요...그러는 편이 낫겠어."

"...잘 모르겠어요. 화가 나기도 하는데...그게 이사님한테인지 저 한테인지 그것도 잘 모르겠고...제가 그 날 거부하지 않았던 이유도 모르겠고...이사님만 생각하면 그냥 너무 갑작스러운 일 투성이라..."

"미안해요, 내가 너무 일방적이었나 보군요. 그동안 참아왔던 말들이 한꺼번에 나와서 나도 주체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내 진심은 이수아, 당신을 사랑한다는 겁니다. 그것까지 모른다 하는 건 아니지요?"

"......"

수아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인다.

 

두 사람은 김포공항으로 가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대기석이었기 때문에 좌석이 떨어져 있었다.

정희에게까지 물어서 용유도 집까지 온 진영.

수아는 놀랍기도 했지만...고마웠다.

자신을 저렇게 걱정하는 사람...그냥 깊게 생각하지 않고 받아주고 싶다.


저런 남자를 또 만날 수는 없겠지...

냉혈한같던 진영이 처음 자신에게 마음을 열었을 땐...지금 자신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고민했겠지...

엄마 말이 백 번 옳은 지도 모른다.

많은 선배언니들이 결혼할 남자의 조건으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꼽았으니까...

편하긴 하지만 어려운 남자...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흘러가게 해줬다면, 아마도 지금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았을까...


새로운 사랑을 받아들이자고 '그'에 대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성호에게 고백까지 했던 자신이었다.

 

진영은 오피스텔 근처 건물의 스카이 라운지로 수아를 데려갔다.

"매일 사먹다가 어머니 해주시는 밥 먹고 오니 좋아요?"

진영의 말에 수아가 처음으로 피식 웃는다.

"나참...겨우 웃겼네. 나는 매일 수아씨 보고 웃는데, 수아씨는 나 때문에 웃은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네요."

진영은 스테이크와 와인을 주문했다.

"이젠 나 안 쳐다보기로 작정했어요?"

정말로 쳐다볼 수가 없다.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어떻게 해야 화가 풀리겠어요? 여기서 무릎 꿇을까요?"

진영이 진짜로 일어서는 시늉을 한다.

놀란 수아가 진영을 바라보자 다시 앉는 진영.

"...저 화난 거 아니라고 했잖아요."

"근데 도대체 얼굴도 안쳐다보고 말도 안하고 꼭 화난 사람 같잖아요."

"...모르겠어요. 이사님 못 쳐다보겠다구요."

"하...진짜 돌겠군...왜그러지? 혹시...부끄러워서 그런 거에요?"

"......"

"수아씨, 이수아씨, 좀 봐요. 나 어제 하루종일 수아씨 못봐서 미치는 줄 알았으니까 제발 얼굴 좀 봅시다. 네? 그래서 내일부터 어떻게 나랑 일할 거에요?"

그제서야 수아가 진영의 눈을 바라본다.

"이사님이...저를...좋아하신다는게...자꾸 믿기지 않아요. 혹시 너무 저한테 익숙해져서 착각하신건 아닌지...그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진영이 수아의 눈을 사랑스럽다는 듯 바라본다.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처음 수아씨 봤을 때...그냥 좀 화가 났어요. 보호해 주고 싶다는 느낌을 받은 여자는 처음이었으니까...오랫동안 혼자 서있던 고목에 새 한 마리가 날아온 느낌이라면 맞나? 보호해야 할 새가 생겼다는 것이 처음에는 귀찮다가 점점 그 종알거림에, 노래소리에...익숙해 지는 거. 그러다가 언젠간 너도 다른 새처럼 날아가 버릴거라는 기우에 정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죠. 그렇게 한 계절 한 계절 함께 보내면서 이 새를 절대 보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었나 보네요. 자신이 완전히 죽어버릴 것 같은 불안함...더 잎파리가 풍성한 나무로 날려보내고 싶었지만...그 새가 둥지를 틀고 싶어하는 나무가...자신보다 더 형편없다는 걸 알고는 꽉 잡았어요."


"전 이사님이 생각하는 것 처럼...그렇게 약한 여자 아니에요."

"난 어때요? 수아씨 보기에 난 강해 보이나요?"

"이사님이요? 이사님은...글쎄요...가끔 외로워 보이시고, 그래서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아프곤 할 때가 있긴 하지만 강한 분이시죠."

"그것 봐요. 난 절대 내가 약한 놈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보면 다 그렇게 약한 모습도 보이는 거에요."

"제가...이사님을...사랑했다구요?"

"하하...아님 말구요. 사랑은...내 생각에 측은지심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가 싶어요."

"전 그런 생각은 한번도 해보지 못했어요. 그냥...운명적으로 첫 눈에 들어온 사람에게 너무 오랜 시간 빠져 있었나봐요."

"측은지심이 모든 사랑의 시작은 아니겠지만 끝까지 지킬 수 있는 조건은 될 거에요.

분명히..."

"측은지심이라고 하니까...괜히 늙은 부모님이나 불우이웃 들만 생각나는 걸요?"

"하하..맹자님이 들으시면 정직하게도 알고있다 하시겠네요. 물론 그런 측은지심이야 말로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본성이겠죠. 내가 본 수아씨...타인때문에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자였어요."

하기사 측은지심만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 쉽게 헤어지는 일들은 없겠지...수아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 봐도 자신이 진영에게 왜 그렇게 약한 여자로 보여졌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약한 여자...성호에게 강한 여자란 말을 들었을 때도 자신은 이해가 안갔고, 진영에게 약한 여자라는 소리를 듣는 지금도 이해가 안갔다.

하지만 인간은 어떤 순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진다.


- 여자 만의 특권은 아니지.

사람은 누구나 그래. 앞에 있는 이 남자도, 또 우리 아버지도 그러셨겠지.

인생이라는 망망대해를 혼자서는 떠 다닐 수 없어.

얼마나 길지도 모르는 여행을...

이 남자를 사랑해도 좋을거야.

스스로를 고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 이 사람도 너무 오랜 시간을 혼자 항해를 했던 것 뿐이야.

바다가, 하염없는 바다가 마치 움직이지 않는 투명한 땅처럼 느껴졌겠지.

우리는 그런 하염없는 바다 한 가운데서 만난 외로운 항해자였던 거야.

 

수아는 진영을 바라본다.

진영의 눈 속에 자신이 어린다.

 


진영이 수아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당신을 허락할께요.

수아의 눈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당신을 허락할께요

고마운 사람

우리 항해가 끝나는 그 날

후회없이 당신을 사랑했노라 말하겠어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내 편


이제 당신을 허락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