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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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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 쉽게 피지않는 꽃 2-4


BY 푸른배경 2003-10-22

  '정말 나 혼자만 이상한 걸까? 따라가 볼걸 그랬나? 그 곳은 어떤 곳일까?.....'
  생각에 생각이 맴돌았지만 결국 잠을 청하기로 하고는 스텐드를 끄고는 커텐마저 스르륵 창을 가려버렸다.
  이튿날 강의실에 들어서니 몇몇 학생들만 보였고, 정환과 상규는 책상에 머리를 묻고는 어제 일을 속삭이고 있었다.
  "야. 넌 어제 그 아가씨 이쁘더라."
  "너가 더 이뻣는 데."
  "크크크. 그런가. 아무튼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어."
  둘의 속삼임에 채원이 끼어들었다.
  "얌마 잘 들어갔냐?"
  그렇지만 채원의 소리에 몸을 일으킨 둘의 옷차림은 조금 꾀죄죄한 어제 그 모습 그대로였다.
  "들어가기는 이 옷을 봐라. 핑크색 남방 그대로지. 물빠진 청바지 그대로지. 상규는 어떻고. 이 놈도 똑같잖아! 그냥 학교앞 장미여관에서 잠을 잤지. 뭐! 오늘 집에 들어가서 뭐라고 해야하나 걱정이다. 참, 채원아 너히 집에서 잤다고 하면 안될까?"
  "야 임마! 너희의 외박에 나는 끼어들이지 마라. 그러다 나도 너희 부모님 눈밖에 나겠다. 그러면 서로 바꿔말하면 되잖아?"
  상규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거짓말이네 하고 밝히는 거나 마찬가지야. 정환이랑 너무 많이 써먹었거든. 그래서 저번주에 서로 확인전화를 하는 바람에 들통이 나서 그 것은 써먹지도 못해."
  "맞아. 얼마나 혼난지 아냐? 용돈도 주시지 않겠다고 벼르는 걸 싹싹 빌어서 겨우 받았거든. 사실 그 돈으로 어제 M·T를 간 것이기는 하지만. 크크크."
  "그래 나도 그랬어. 정환이 핑계를 한번만 더 하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으신다고 윽박까지 하던걸! 대학교에 들어간지 세 달밖에 안된 것이 거짓말만 늘었다고 말이야."
  둘다 얼굴을 마주보고는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그래도 어제일은 재미있다고 늘어놓았다. 그리고는 서로 손벽을 치다가 정환이 고개를 돌렸다.
  "채원아. 그 부탁 들어주지 않을 거면 우리 해장국이나 먹으러가자. 물론 계산은 너가 해주고."
  "그럼 나도 고맙지."
  상규가 덩달아 신이난 듯 속이 쓰리다며 배를 손바닥으로 문지르고는 웃었다.
  "그래. 까짓거 그거 하나 못사주겠냐? 나가자."
  "흐흐흐. 점점 미안해지네. 괜히 강의까지 빠지자고 하는 것 같아서."
  셋은 어깨동무를 하고는 교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 등뒤에서는 같은 과 학생들이 강의시작하는 데 어디가냐고 물었지만, 셋 모두 대답은 하지않고 머리위로 팔을 들어 손을 흔들며 걸어나갔다.
  교문을 향하는 동안 하늘에서는 햇살이 따가울 만큼 봄의 기운이 내려왔고, 그 기운에 목련의 가지에는 하얀꽃잎이 아름드리 피워있었다.
  이 셋이 교문을 빠져나가는 동안 소영은 현판에 기댄채 서있었다. 하얀색 난방에 분홍색 스웨터를 걸치고, 치마는 무릎이 보일정도의 옷을 입었다. 머리카락이 길어서 인지 청순한 이미지 그대로였다.
  길 건너에서 은테 안경을 꾸욱 눌러쓴 진희가 손을 흔들었다. 땅만 쳐다보던 소영이는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는 발을 움직여 땅에 무슨 글을 쓰듯 요리조리 흔들었고, 참다못한 진희는 소리를 쳤다.
  "야. 야 소영아!"
  그때서야 고개를 들었고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자 빠른 걸음으로 소영 앞에 섰다.
  "소영아 미안해. 첫 강의가 공강이라고 미숙이에게서 전화가 왔었거든. 그래서 조금 늦장을 부렸서."
  "그래. 난 기다려야하나? 아님 강의 들어가야 하나 고민했는 데. 대리출석이라도 해주려고."
  "호호호. 그 마음만이라도 고맙다. 난 너가 무지 화났을 줄 알았거든."
  "뭐가 미안해. 햇살도 따듯해서 기분만 좋던걸."
  "기집애. 지가 무슨 해바라기라고. 아무튼 너가 천사표라는 것에 감사하고, 이런 녀석을 친구로 준 하늘에 감사하다. 내가 미안한 마음에 커피한잔  쏠게."
  "그래. 지금 목이 마르기는 했거든."
  "거봐. 내가 니 마음 몰라주면 누가 알아주냐? 참 미숙이가 먼저 가있겠다. 빨리가자. 오늘은 두 사람에게 지각하네."
  소영에게 팔짱을 끼고는 급하다는 듯 끌다시피하며 교문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커피숖 구석 자리에 앉아 미숙은 열심히 잡지책을 넘기고 있었고, 잠시 두리번 거리던 진희가 먼저 발견하고는 그 자리에 가 앉았다.
  "무슨 잡지야?"
  "응. 왔어. 넌 기집애가 매일 늦냐?"
  "너무 그러지 마라. 너보다 더 기다린 소영이도 가만히 있는 데, 그러니깐 이 누나가 쏘겠다는 거 아냐? 그치 소영아?"
  "그으....래."
  "뭐 마실까? 기집애 좀 기다리고 있지 벌써 시켰냐?"
  종업원이 다가오자 소영은 물은 먼저 달라고 하였고, 진희는 시원한 콜라 한잔 달라며 씨익 웃었다. 잠시 후 콜라가 나오자 소영은 레몬티를 주문했다.
  콜라를 홀짝홀짝 마시던 진희가 입을 열었다.
  "언제 소개 시켜줄꺼야?"
  "누구?"
  "그 남자. 가시나무새에 빠져 세상에 있지도 않은 사랑을 찾고 있는 듯하다는 사람 말야."
  "으....응. 나도 아직 그 사람과는 말 한번 나눠보지 못한 걸."
  "그런게 어딨어. 너 보여주기 싫어서 그렇지?"
  "그건 아냐. 그런건 아니구 그냥 글로써 알게된 사람은 그 글 속에 묻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뭐가 그래. 너무 시시하잖아."
  "왜 나 남자친구 있잖아."
  "아 정환이라는 녀석? 그래 그럼 그 녀석은 언제 소개시켜 줄래? 우리학교 다닌다며?"
  "으응. 그런데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됐데."
  "무슨 마음에 준비?"
  "응. 낯선 사람들과는 잘 섞이지 못하는 성격이거든."
  "야. 남자가 그 모양이야. 그거 몰라? 여자는 우∼. 섹쉬로 사는 거고, 남자는 갑빠아냐. 갑빠."
  "그게 뭔데?'
  피식 웃으며 미숙이가 진희에게 질문을 던졌다.
  "너도 몰라? 얘네들 세상 헛 살았네! 순둥이들 같으니라고, 세상을 알아야 사기도 당하지 않는 거야. 부록으로 행복도 따라오는 거고."
  "그래. 지지배야 너 잘났다! 잘났어!"
  미숙은 말을 끝내고는 다시 잡지책을 넘기기 시작했다.
  "니들이나 수다떨어라! 나는 마음에 양식이나 먹어야 겠다."
  진희는 악의 없는 눈빛으로 째려보고는 소영을 향해 얼굴을 돌렸다.
  "너가 이해해라. 미숙이는 마음의 양식이 잡지란다. 그것도 패션잡지. 호호호. 적어도 섹스피어나 헤르만헤세 정도는 되어야 마음의 양식이지. 안그래?"
  "사람 취향인걸 뭐. 미숙이 관심사는 패션이잖아. 누가알어? 나중에 유명한 디자이너가 될지."
  "고맙다. 소영아. 너밖에 없다니깐. 이 지지배는 남 염장지르는 게 지 삶의 목표인가봐!"
  "제가 유명한 디자이너가 되면 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겠다. 호호호."
  "너무 그러지 마. 친구끼리."
  "그래. 우리 착한 순둥이 소영이 말이니깐 내가 듣는다. 참 한참 엉뚱한 곳으로 가있었네. 그럼 언제 정환이 보여줄건데?"
  "곧 볼 수 있겠지. 함 자리를 만들어 볼게."
  "그럼 한 명은 처리됐고, 그 친구는?"
  "또 누구?"
  "가시나무새 말야."
  "그 사람은 그냥 아무것도 아냐!"
  "뭐가 아냐? 그럼 그 친구하고는 감정이 없단 말야. 참 그렇기는 그렇겠다. 우리 순둥이가 양다리를 걸칠리는 만무고, 미숙이 저 지지배라면 몰라도."
  "왜 가만히 있는 나를 건들여. 그냥 니들끼리 수다떨어. 나 집어넣지 말고."
  "알았다. 알았어. 그럼 그냥 펜팔로 나누는 사이란 말이지?"
  "으응. 아무것도 없어. 저번에 말한대로 가시나무새 소설을 읽으면서 자기 생각을 낙서해 놓잖아. 차라리 대여를 해가지고 다 읽으면 모르겠는 데, 도서관에서만 몇장씩 읽으며 그러는 게 처음에는 미웠거든. 그런데 점점 재미있어지더라구. 그 낙서에 답을 해주는 게."
  "그래. 소영이 말이 아니면 누구 말을 믿겠어. 아무튼 좋은 글로 많이 왕래해라."
  "으응."
  "사이가 발전하게되면 이 누나에게 먼저 말해주고."
  "그런 사이 아니라니깐. 그럴 일도 없고."
  "그러면 그렇지. 일편단심 민들레라는 데, 누가 말리겠어. 그럼 가시나무새 나한테 넘기던지? 그럴래?"
  "너 마음대로 해. 난 상관없어."
  "아니다. 아냐. 니 삶의 재미를 내가 뺏을 수는 없지. 아무튼 가시나무새도 한번 봤으면 좋겠다. 나중에 서로 말을 트게되면 소개시켜줘. 혹시 내 인연의 그림자가 그 사람한테 기울어 있을지 알어?"
  "그래 그럴께. 하지만 지금은 그 사람과 말을 나눌 생각은 없어."
  "알았다. 알았어. 소영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어. 믿을게."
  이렇게 셋은 아니 둘은 수다를 떨었고, 한명은 연신 책장을 넘기며 패션변화에 관심을 두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