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준은 마치 일에 미친 사람같이 밤, 낮 일만 했다. 현재 자기에게 닥친 위기와 시련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만 했다. 과연 이것이 나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나를 저 바닥으로 떨어뜨리기 위한 것일까? 석준이 승희와 헤어질 즈음 퇴근 후 갖은 술자리에서 노 부장 으로부터 별안간의 얘기를 들었다.
-야. 이석준이.
-네. 부장님.
-내가 하는 얘기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라. 너 잘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거야.
-네. 말씀하세요.
-너 당분간 부여 대리점 일에서 손 떼라.
-네? 무슨 말씀이신지...
-너 서천 대리점 오픈 할 때까지 서천에만 신경 쏟고 부여대리점은 양돈은 내가, 낙농은
백현준 과장이 맡아서 하자고. 그리고 너는 서류 작업 이라던지 본사에서 요청한 자료들
있지. 그런 것 하고. 어떠냐?
-네..허허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그 상황에선 웃음 밖에 나오질 않았다. 노 부장의 그런 제안이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물량 증진을 위해 대리점을 축종별로 관리하는 방법이 현 중부본부 내에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대상이 석준이 관리하는 부여대리점이 될
줄이야...
현재 회사 내에서 석준의 위치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노 부장의 이런 제안은 석준으로 하여금 그 자신을 저 밑바닥으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석준은 노 부장에게 생각해보겠다며 대답을 회피하였으나 그 자자신은 자신의 무능함에 자책과 후회 만 할 따름이었다.
‘내가 이렇게 하려고 재수까지 해서 이 회사를 들어온건가?’
‘동기 녀석들 다들 잘 나가는 데 난 이게 뭐지? 겉보기 좋은 한국사료 다닌다고 하지만 정작 난 이
안에서 어떤 사람인지...‘
오랜 시간을 고민했다. 자신의 무능함을 책망만 할 뿐 그 어떠한 답도 나오질 않았다. 갈수록 줄어드는 사료 판매량과 부여 대리점 소장의 불만만 높아갈 뿐. 석준이 할 수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는 듯 했다. 답답했다. 왜 자신에게만 이런 일들이 생기는 건지... 굳이 영업하지 않아도 알아서 대리점에서 알아서 물량을 늘리고 있는 백현준 과장과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누구는 사료 1톤이라도 팔아서 1000톤 넘으려고 해도 대리점서 안 도와주는데 누구는 지역 잘 만나서
가만히 앉아있어도 알아서 1000톤이 넘어가니.’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더 이상 사료 팔 곳도 방법도 없는데...그래도 이대로 부여대리점을 넘길 순 없어. 그래
조금만 더 해보자. 조금만 더 해보면 어떻게 되겠지. 설마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일이 더
나빠지진 않겠지. 하기사 지금보다 좋으면 좋았지 더 나빠질 상황은 없겠구나.’
석준이 나름대로의 이런 결정을 내린 뒤 승희와의 연락이 자연스레 뜸해질 수밖에 없었다. 승희에겐 차마 자신이 처한 이런 상황을 자세히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 같이 무능한 사람 만나느니 차라리 더 잘나고 몸도 건강한 사람 만나는 것이 승희를 위해서 훨씬 나으리라 판단했다. 하지만 이런 생각 역시 승희에게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승희가 찾아왔던 날, 차마 승희 얼굴을 보지 못한 것은 승희를 잡을까 봐서 였다. 승희가 우는 걸 보면서 자신은 그저 휴지만 건네 줄 수밖에 없었다. 우는 승희를 달래고도 싶었고 안아 주고도 싶었지만 그것 역시 할 수 없었다.
그 순간이야 위로 해주고 괜찮을지 몰라도 그렇게 한다면 승희를 다시 품에 안고 싶을 테고 그러면 영원히 승희와 헤어질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말. 말도 안 되는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이 진정 사랑하기에 그래서 자신과의 사랑이 상대방에게 슬픔과 아픔만을 안겨주는 것이기에 이별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과 반대로 자신이 그 사랑이 시들어 그것에 지쳐 이별을 하는 지 아무도 모른다.
석준 자신의 현재 위치에서 더 이상 승희를 옆에 둘 수가 없었다. 자신의 삶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런 상황에서 승희의 존재 아니 자신의 옆에 자신에게 기대는 다른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승희의 존재가 힘이 되기 보다는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걸 알 턱이 없는 승희였다.
승희와 헤어지고 난 후 석준은 부여, 서천, 홍성을 누비면서 열심히 일을 했다. 자신의 이런 행동에 설마 더 이상 나쁜 일이 있을까?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설마... 하는 마음으로 처음 승희를 만날 때 열심히 했던 것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오후 늦게 들어가고 여기저기 사양가들을 만나면서 어떻게든지 물량을 늘리기 위해 비지땀을 흘렸다. 그래도 순간 순간 승희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긴 했다. 지난 날 자신에게 보냈었던 승희의 애교 섞인 메일들과 글들을 읽어보면서 석준은 힘들었다.
‘왜 내가 승희한테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그러지 말 껄...’
‘좋은 사람 만나야 할텐데...나 같은 놈 말고’
승희 생각을 하면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보고 싶었다. 정말 보고 싶었다.
‘그때 그렇게 보내는 것이 아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냉정하게 보내지 말껄...
시간 지나면 승희도 알겠지. 내마음...그래 알꺼야.
내가 왜 그랬는지도 알꺼고 지금 이렇게 내가 그리워 한다는 것도 알꺼야.‘
그런 생각에 더욱 악착같이 일에 매달렸다. 하고 싶었던 차 안의 내부도 우드 그레인으로 바꾸고 핸드폰도 최신형으로 바꿨다. 뭔가 변화를 주고 싶었다. 승희와 있을 때 승희가 괜한 곳에 돈 낭비하지 말라며 차 내부며, 핸드폰 바꾸는 것 조차 싫어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말을 해줄 승희가 곁에 없었다.
석준도 그걸 안다. 더 이상 승희가 없다. 지난 기억 속에 묻혀있을 뿐...
-경선아..나 이상해.
-뭐가? 너 아직도 그래? 난 네가 요즘 괜찮아 진 줄 알았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럼 뭐야. 무슨 일 있어?
-어...나 생리 안한다...
-뭐? 무슨 얘기야 갑자기?
-지금 할 때 쯤인데...아직도 소식이 없어서...
-그냥 좀 늦어지는 것 아냐?
-나도 그렇게 좀 편하게 생각 할려고 하는데...저기...
-응. 얘기해. 그런데 만약에 그런 거라도 해도 벌써 시간은 한참이나 지났잖아. 너 저번 달에
했지.
-그런데...사실...나 그 때 오빤 마지막으로 만났던 날...
-뭐? 너 그날도 그 사람하고 했다고?
-응... 난 안하려고 했는데...싫다고 울었는데... 그 사람이 억지로 해서...
-야! 너 제정신이야? 아니 뭐 그딴 인간이 다 있어? 헤어지는 것도 지 맘대로 그런 식으로
하고 너 가서 그런 얘기하는데 거기다가 데고 너한테 무슨 짓 한거야? 그 인간? 그래서 너
가만히 있었어?
-싫다고 했는데... 갑자기 그 사람이 그렇게...해서 그런데 이상해.
-아휴... 그 사람 정말 의외다. 어쩜 사람 이렇게 실망 시키냐? 나 그 사람 절대 그렇게 안
봤는데 정말 그 사람 저질이다. 너한테 하는 짓하며 네가 말한대로 너 만나면서 여자
소개시켜 달라고 한 것도 그렇고 어쩜 사람이 그럴 수가 있냐? 그리고 헤어지는 순간에
그렇게 하는 건 뭐야? 네가 무슨 자기 성 욕구 풀어주는 사람이야? 뭐 그 딴 인간이 다
있어.
-아냐... 내가 잘못한거야.
-뭘 네가 잘못해! 솔직히 여자가 아무리 힘헤도 남자 힘 당하기 힘든건데... 휴.. 테스트는
해 봤어?
-아니 아직... 좀 늦어지는 거겠지 하면서 지금 좀 기다리는 중이야.
-야. 그러지 말고 약국 가서 사서 빨리 해봐. 걱정되잖아.
-만약에 나 만약에 그거라고 양성 반응 나오면 어떻게 하지?
-떻게 하긴... 그 사람한테 같이 가. 내가 같이 가 줄께. 가서 내가 다 얘기해 줄께. 너 또 가면
얘기 제대로 못 할꺼고. 그리고 만약 그거라고 나오면 그 사람보고 책임지라고 해. 이게
무슨 짓이야 도대체. 나 이런 경우 첨 본다. 정말 아무리 사생활 지저분 사람들 여럿 봤어도
이런 사람 처음 봐. 정말 웃긴다. 그 사람.
-만약에 나 양성 나오면 그 사람한테 못가. 아니 안 갈꺼야. 그냥 집 나와서 혼자 도망가서
살꺼야.
-네가 무슨 죄인이니? 너 혼자 그런 것도 아니고 네가 왜 도망을 가... 그런 생각하지 말고
어서 약국에 가봐. 그리고 결과야 어떻든 간에 연락 해줘... 기다릴께..
-응...알았어.
-다행이다. 경선아. 그거 아니야.
-그러게 다행이네. 너 그런데 좀 조심해라. 왜 그랬어?
-정말 그때 오빠가 그런 얘길 먼저 하긴 했는데. 내가 웃었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그런
생각이 들 수 가 있냐고 막 뭐라고 했지...
-그래서
-그런데 자꾸 내 손을 막 잡으려고 하는 거야. 뿌리치다가 내가 일어서 있다가 잠시 앉았는데
그 찰나에 그렇게 돼버린 거지.
-너도 참 불쌍하다. 너 빨리 그런 사람 생각하지도 말아라. 어떻게 그렇게 사람을 대하냐.
너한테 그렇게 하면 널 어떻게 봤다는 거야? 네가 무슨 그 사람 sex 파트너도 아니고 참...
애초에 너하고 그런 관계였다면 모르겠다. 사랑한다면서 사랑한다고 말했다면 어쩜 자기가
사랑하는 여자를 그렇게 함부로 대해?
그 사람 정말이지... 내가 가서 한대 패주고 오고 싶다.
-아냐 괜찮아. 그거 아니라잖아.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야. 넌 그렇게 생각 안 해? 그 사람이 마지막까지 너한테 그렇게 한거
화 안나?
-그래도 어떻게 해. 일은 이미 벌어진 상황이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넌 그때 갔을 때도 그 사람한테 미련이 남아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도 그런 감정이 남아있어서 지금 이런 게 그냥 넘겨지나 본데. 어떻게...참..
말이 안 나온다. 내가 말이 다 안 나와. 몸 조심해...네 몸 네가 책임지는 거야.
-알아.
-보니까 너 왜 자꾸 그 사람한테 매달리고 하는 지 이제 알 것 같다. 너 그런 것 때문에
그렇지?
-응. 조금은 그런 거 있어.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그런 거에 매달려. 네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라 그런 건.
그리고 설사 다른 사람이 안 다고 해도 요즘 그게 흠 잡히거나 할꺼가 아니잖아. 여자가
그러면 남자는 모야... 똑같은 거지.
-다들 그렇게 말을 하고 하는데... 그래도 사람마다 다르잖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잖아. 난 아직 좀 그래. 그런 것에 좀 그렇다. 그래서
매달리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는 거고.
-어렵게 생각 하지마. 어렵게 생각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거 하나 없어. 그리고 세상 사람들
대부분 너 처럼 어렵게 안 살아.
-나도 그러고 싶어. 좀 단순하게 살고 싶다. 헤어지면 ‘아 헤어졌구나’이렇게 생각하고
아니 면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 좀 했으면 좋겠는데... 무슨 성격이 이런지... 계속 생각만
하고...미치겠어. 될 일도 안 되는 것 같아.
-그게 문제야. 나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고 정리해. 그게 가끔은 편하더라. 사는데도 그렇고.
-그래...
-아까 한말 잊지마. 그런 거에 너무 신경 쓰지마. 그리고 그 사람하고 헤어진 것 정말 잘한
일 같다.
-나도 앞으로 그렇게 생각해야지.
-칫! 그 사람 밤에 그거 하고 싶을 때나 네 생각 나겠다. 미친놈.
-야. 욕은 하지마..그래도 그 사람 남의 집 귀한 자식인데.
-남 걱정 할 때니? 네가? 참...병원은 연락 없니? 출근 얘기 없어?
-어 아직 연락 없네... 나도 기다리기 싫다. 눈치 보여서...
-다른 일자리 알아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데...
-아니... 난 병원 놓치고 싶지 않아. 거기만 들어가면 왠지 일이 술술 풀릴 것 같아.
-그래..그럼 기다려보던가. 그런데 너희 아버지가 뭐라고 하실까봐 그렇지.
-뭐라고 하시던 말던지.
-잘났다. 큰 딸이라는 것이 하는 말은...
-솔직히 병원 들어가기 쉬운 것도 아니고 더군다나 정규직이잖아. 그러니까 그렇지. 놓치기
아깝지.
-그거야 네가 알아서 하는 거니까. 하여간 집에서만 있지 말고 사람도 만날 겸 알바 구해봐.
-알아봐야지... 조금 있다가.
다행히도 승희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 무슨 일이 생겼다면 승희는 어떻게 했을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승희는 아마도 그때가 되면 다른 누군가에게 그 해결 방법을 찾아달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승희는 석준을 잊기 위해서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이런 저런 사람들을 소개 받기 시작했다. 동생이 소개시켜 준 회사 동료 직원과도 만나고 친구가 소개시켜 준 남자 한명을 만나게 되었다.
그 상황에서 승희는 오로지 석준을 잊기 위한 해결책은 새로운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의 빈 자리는 또 다른 사람으로 채워놔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준이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승희야...나 찬미.
-어. 그래. 찬미야. 잘 지냈어?
-그럭저럭. 넌?
-나 흠. 나도 잘 지냈지.
-그때 말했던 사귄다는 사람도 잘 있니?
-어. 그게 헤어졌어.
-왜? 좀 복잡해. 그래서 그냥 나 매일 집에 있어. 심심해 놀러 와라.
-그래...내가 나중엔 갈께...그럼 승희야. 너 혹시 소개팅 같은 거 한번 해볼래?
-소개팅? 누군데?
-어. 내 남자친구의 친구들인데. 소개팅 한번 시켜달라고 난리야. 그래서. 너 혹시 괜찮으면
한 번 만나볼 생각 있나 해서.
-그래. 흠... 그냥 깊이 사귀는 거 아니고 친구처럼 가볍게 만나도 되는 거지?
-어 그래 그렇게 해.
-그런 거라면 괜찮지.
-그래? 그럼 내가 이따가 그 남자애하고 물어보고 전화 할께.
-야~! 안찬미! 뭐야 지지배야? 전화하고서 소개팅 해준다고 하더니 바로 끊어?
-어...미안 미안
-아냐. 알았어. 전화하고 그럼 알려줘.
-그래. 바로 전화해줄께...
-승희야~! 나...
-어. 물어봤어?
-응. 너 지금 나올 수 있니?
-지금? 나 시간 좀 걸리는데...
-얼마나?
-1시간 반 정도? 나 지금 씻지도 않았거든.
-그래. 그러면 씻고 나와라. 나 여기 터미널 앞에 로마의 휴일 알지 거기거든? 도착 하면
연락 줘. 내가 나가서 기다릴께.
-찬미야! 나 여기 로마의 휴일 앞이거든? 내려올래?
-그래! 알았어 바로 갈께. 야...한승희 너 많이 이뻐졌다. 살도 많이 빠지고
-이뻐지긴 지금 살 붙고 있는 땐데 무슨 살이 빠져. 너도 많이 이뻐졌네. 우리 몇 년만에 보는
거지?
-거의 2년 만 일껄? 아마?
-그래?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게 우리 모임 때 만나고 한번도 못 만났으니까...
하여간 반갑다. 남자친구는?
-어 2층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런데 너 왜 이렇게 이쁘게 입고 나왔어?
-이쁘긴 그냥 막 입고 온 거야. (그러고 보니 오빠 만나면서도 한번도 이렇게 입고 만난
적이 없네.) 그런데 찬미야. 네가 소개시켜주는 사람 그냥 사귀는게 아니라 부담 없이
얘기하고 친구처럼 하는 거지?
-그래. 괜찮아. 너 편할 데로 해.
-아니 난 소개팅이라는 자리가 솔직히 그렇잖아. 잘 되면 둘이 사귄다는 전제하에 나가는
건데 나 지금 만나는 것 괜히 이것도 저것도 안 될까봐서.
-에휴. 그런 부담 갖지마. 나야 성태 친구들이 하도 소개팅 해달라고 해서 그런거고. 네가
상대방 마음에 안 들면 그만인 거지 뭐. 부담 갖지마. 참 그 남자애 이름은 상혁이야.
이 상혁...
-어 그래. 알았어.
-어 성태야. 여긴 내 친구 한승희. 그리고 이쪽은 이상혁..아까 말했지.
-아...네 안녕하세요...
-찬미 친구면 동갑인데 무슨 존대말이냐? 그냥 말 놔
-그래? 그래도 초면인데 어떻게...
-그냥 말 놓고 편하게 하는게 낫지. 안 그러냐 상혁아?
-어 그래...
-찬미한테 얘기 들었지. 여긴 내 고등학교 친구 상혁이...
-네..어. 들었어. 난 찬미랑 중, 고등학교 동창이지...
-지금 무슨 일해?
-어 어떻게 말을 해야하나? 백수이긴 한데... 개원할 병원에 출근할 예정이거든. 그래서
지금 그 출근일 기다리면서 집에서 쉬고 있지. 잠정적인 백수라고 해야 하나?
-그래? 그럼 간호원?
-아니 회계팀 에서 일할 예정이야.
-그래...그럼 그 동안 뭐했는데?
-혹시 한국사료라고 알아? 거기서 영업팀에 근무했었는데 홍성에 잠깐 있었다가 천안에
오면서 그만뒀지
-왜 그만 뒀는데?
-응. 그냥 나랑 좀 안 맞더라구.
-그래... 상혁아 네가 좀 얘기해라. 내가 소개팅 하러 나왔냐?
-그래. 얘기해. 혹시 음악 좋아해?
-어. 좋아해.
-그래? 어떤 음악들?
-그냥 아무거나 다 들어. 특별히 좋아하는 것은 없고.
-어. 그래.
-상혁이 얘가 원래 말도 잘하는데 오늘은 좀 쑥스럽나보다. 말도 별로 없네. 상혁아!
평소대로 해. 승희랑 성태만 얘기하잖아.
-하하.. 그래 남자가 무슨 내숭이냐? 그냥 편하게 생각하고 말 하면 되지.
-내숭은 원래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말을 잘 못해. 그리고 너 뭐 시켜. 더운데 시원하거
시키던지.
-그래. 이거 레몬 티지... 레몬 티 시키지 뭐.
-승희야! 잠깐만 나랑 화장실 좀 갔다 오자. 나 옷 산거 좀 입어 볼께 봐 줄래?
-그래!
-성태야! 나 승희랑 갔다 올께. 상혁이랑 얘기하고 있어.
-승희야 상혁이 어떤 것 같아?
-글쎄? 잘은 모르겠고 말하는 것 봐서는 착한 것 같은데? 그런데 인상이 좀 무섭다.
-나도 처음에 상혁이 봤을 때 좀 그랬는데 지금 성태 만날 때 상혁이도 같이 만나거든 그럴 때
마다 보면 참 착한 것 같더라. 나한테 그러더라고 자기는 여자친구 생기면 정말 잘
해줄꺼라고. 둘이 잘 해봐.
-글쎄. 모르지 상혁이가 나한테 관심 있는지도 모르고 나 아직 오빠 생각 가끔 하거든.
그래서 좀 그래. 빨리 다른 사람 만나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들면서도 막상 만나니깐 가슴에
뭔가 묵직한 것이 있네. 그게 자꾸 걸린다.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음.... 네가 널 다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나도 원래 성태 만나기 전에 사귀는 사람 있었거든.
물론 나야 좋게 헤어진 건 아니었지만 헤어지고 나도 그 사람 차랑 비슷한 것 보면 괜히
기분 우울해지고 하더라. 꼭 너도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냥 지금은 무척 힘들게
느껴질꺼 라고.
-고맙다. 나도 그래. 그 사람 차가 싼타페 였거든. 싼타페만 보면 괜히 화도 나고 괜히
눈물나더라.
-으이고. 그냥 다들 그러는 거니까 너 너무 신경 쓰지마. 나봐 그 사람하고 헤어지고 성태
만났잖아. 그리고 지금 성태한테 만족해. 나한테 잘 해주거든. 다른 사람들 말이 여자는
자기 좋아해주는 남자랑 결혼 해야 한다고 하더라. 나도 이젠 그렇게 생각하고.
-너 성태 씨랑 결혼 하려고?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어떻게 될지 모르니깐.
-그래. 이왕 좋아서 사귀고 하는 건데 정말 잘 되서 결혼까지 가면 얼마나 좋으냐. 휴. 나도
한때 오빠랑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이젠 아니네.
-괜찮아질꺼야. 걱정마. 우리 그만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