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장 신데렐라에겐 왕자가 필요하다.
민혁과 도착한 행사 장소는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만 같은 그런 장소였다.
우리 나라에도 이런 건물이 있었나 싶게 베르사이유 풍의 화려한 외관과 은은히 들려오는 음악 소리에 묻혀 들려오는 사람들 소리가 벌써 꽤 많은 사람들이 도착했음을 알려주었다.
민수는 차에서 내리기 전에 다시 한번 오빠에게 물었다.
“ 오빠, 정말 괜찮아? 괜히 엄마 말 들었나봐. 너무 어색하지?”
양여사는 민혁이 큰 행사 참석에 민수를 동반하겠다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것 저것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민수가 뭐라 반기를 들기도 전에 의상부터 소품까지 만반의 준비를 해 놓은 것이다.
이름하야 햅번 스타일이라나 뭐라나.
덕분에 민수는 그 옛날 영화 ‘티파니의 아침’에 나오는 오드리 언니처럼 부풀려 올린 머리에 단순한 디자인의 원피스를 입고 진주 귀걸이와 진주 손잡이 모양의 토드 백을 들고 있었다.
집을 나오기 직전에 정말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민호와 마주쳤다.
촬영 여행을 갔던 민호가 일정을 하루 앞당겨 집에 도착한 것이다.
덕분에 민호의 손에 이끌려 befor, after 이라는 주제로 강제 사진 촬영도 당했다.
“ 야, 꼭 신데렐라 같다. 어쩌면 이렇게 180도 사람이 바뀔수 있냐? 그런데 요즘 요정 할머니는 요술을 카드로 부리나 보지… 크크크…”
그렇지 않아도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던 민수의 기분은 정말 참담했다.
그런데 이에 그치지 않고 민호는 여전히 동생 놀리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 그런데 이 일을 어쩌냐…. 신데렐라를 기다려줄 왕자가 있어야지….”
옆에서 내 지켜보던 양여사가 민수에게 건네주려 들고 있던 토드백으로 민호의 뒤통수를 냅다 내리쳤다.
“ 민혁아, 니가 책임지고 왕자 소개시켜줘… 알았지?”
웃음을 참고 있던 민혁이 간신히 ‘네’ 라고 대답을 했고 그제서야 양여사는 마음이 놓인 다는듯이 환한 미소를 띄우며 남매를 배웅해 주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민호 오빠가 얼마나 얄미운지 모르겠다.
필름을 확 뺏었어야 했는데…..
잠시 민수가 생각에 잠긴 틈에 어느새 민혁이 주차를 마쳤다.
“ 걱정 하지마 이뻐…. 내 동생이래서가 아니고 정말 이뻐….”
여기 까지는 좋았다.
그리곤 삐실삐실 터저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던 민혁이 겨우 한다는 소리가
“ 내가 왕자 만들어 갔다 받칠 테니까 열심히 골라봐…”
후~~~ 정말 오빠들이라고 하나 같이 동생 놀리는 재미에서 세상 사는 낙을 찾나보다.
연회장 안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민혁으로부터 대충 들은 이 연회의 목적은 이러했다.
이번에 국산 기술로 전투비행기를 생산하려 하는데 지난 봄에 무사히 시범 비행을 맞췄다는 것이다.
말인즉 그때 시범 비행 편대장이 민혁이 오빠였고 – 부모님이 아셨으면 잠 못 주무셨을 꺼다 – 여러가지 기기 테스트를 마치고 보안해서 이번에 드디어 첫 전투기가 생산 된 기념 리셉션이라나 뭐라나.
그런데 이번 프로젝트의 주간 기업이 한성 그룹이란다.
그리고 미국의 칼슨사가 기술과 외자 유치에 편승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다.
그래서 인지 군복입인 사람들도 많고 – 나중에 들었는데 국방부 주간 행사였단다 – 외국인들도 꾀 많이 보였다.
정말 진심에서 인지 장난인지 오빠는 자신의 공사 후배부터 시작해서 현 시범 비행단 편대원까지 정말 많은 남자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리고선 무심하게도 사단장이 찾는 다는 전갈을 받고 바로 달려간 사람이 한참이 지나도 보이지를 않았다.
실내악단은 계속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도 정말 산처럼 쌓여있었지만 혼자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 있자니 여간 불편하고 어색한게 아니였다.
민수가 발코니로 나갈 땐 정말 혼자 만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였다.
공사 후배라는 무슨 대위는 계속해서 자신의 비행 기록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어했고 또 다른 후배는 – 그 사람은 계급도 뭔지 기억나지 않는다 – 새로운 모델의 전투 기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
이곳도 군부대라고 서울에서 조금 외곽으로 떨어진 곳 이라선지 하늘엔 이미 수많은 별들이 총총 떠 있었다.
살짝 살짝 피부를 스치는 바람도 8월 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시원한 기운이 느껴졌다.
아무런 생각 없이 한동안 하늘을 쳐다보던 민수는 순간 아차 싶은 마음이 들었다.
혹시나 오빠가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실내로 방향을 바꾸려던 민수의 눈에 또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상대방은 그 곳에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을 못했는지 나오자 마자 바로 자세를 바꾸어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사실 그냥 모르는 척 옆으로 지나가면 그만일 것을 민수는 자신도 모르게 다시 방향을 바꾸어 열려진 창과 창 사이에 놓여진 큰 화분 뒤로 몸을 숨겼다.
오~ 마이 갓~~~ 우리나라에서도 이젠 이런 분위기 연출이 아무것도 아닌가…
너무 정열적으로 서로의 키스에 빠져있는 커플을 바라며 민수가 이죽거렸다.
그리고 괜실히 달아오른 그녀의 볼을 양손으로 감쌌다.
치…. 들키면 정말 왕 쪽팔림인데…..
그때였다.
누군가 그녀의 어깨 위로 손을 올렸다.
너무 놀라서 저절로 비명 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 나오려 할 때 상대가 그녀의 입을 막았다.
“ 뭘 그렇게 놀래? 나야 이현준…. 그리고 지금 소리 지르면 우리가 몰래 저 두사람 보고 있던거 들킨단 말야.”
소근 소근 민수에게 말을 건네고 선 자신의 다른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르치며 조용히 하라는 표시를 했다.
너무 놀란 나머지 민수는 자신의 입을 두 손으로 틀어 막고 현준을 향해 열심히 알았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지나서 열정적이던 커플이 사라지자 민수는 다짜고짜 현준을 향해 따지기 시작했다.
“ 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
아직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커다랗게 눈을 부릅 뜨고 덤비는 민수의 모습은 흡사 놀란 강아지처럼 보이기에 충분했다.
너무 이쁘고 귀엽다는 생각으로 현준은 민수의 볼을 감싸쥐었다.
“ 한가지씩 물어보라고 이 아가씨야.”
여전히 웃고 있는 현준을 바라보던 민수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달빛에 비치는 현준의 모습에서 민수는 눈을 땔수가 없었다.
뭐야…. 이 남자 왜 갑자기 마구 멋있어 보이는 거야……
그리고 목소리는 또 왜 이렇게 섹시 한거야………
갑자기 고개를 가로 젓는 민수를 보고 현준이 궁금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 오빠와 약속 있다더니 같이 여기 온거야?”
당황함에 목소리가 들어가 버린 민수가 고개를 끄덕이자 현준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돌았다.
“ 사실 나도 너하고 여기 같이 오고 싶어서 토요일에 시간 있냐고 물어 봤던거야.”
여전히 민수는 여전히 자신의 볼을 감싸 쥐고 있는 현준의 손 때문에 자꾸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얼굴에선 불이 나는 것 같고 무심한 심장은 막 100M 달리기를 마친 사람마냥 정신 없이 펌프 질을 해대고 있었다.
그만 손을 때 달라고 말하려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늦었다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까 장난스럽던 현준의 표정은 어디로 없어지고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진진한 얼굴로 또 그 어떤 말과 행동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강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현준의 얼굴을 그저 바라 볼 수 없어서 살며시 눈을 감아버린 민수의 얼굴 위로 잠시 머뭇 거리는 낯선 숨결을 참을 수가 없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현준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겹쳤다.
아주 천천히 아주 부드럽게.
부드러운 혀가 그녀의 입술 위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어 벌어진 입술 사이로 어느 새 들어온 침입자의 유혹은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부드럽고 달콤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고개를 들며 웃음을 짖고 있는 현준을 본 순간 민수의 몸은 부끄러움으로 확 달아 올랐다.
그 순간에도 현준의 입술만을 바라 보던 민수의 고개가 들어 올려졌다.
웃음기 가득한 그의 눈빛에 갑자기 화가 치밀었다.
뭐라 말을 해야 겠는데 도저히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당황해 하는 민수를 현준은 가만히 끌어 당겨 그녀의 얼굴을 자신의 가슴에 묻게 했다.
“ 잠깐만 이렇게 있어줘….아주 잠깐만…..”
조용히 부탁하는 어조의 말과는 달리 그는 부드럽게 민수의 등을 쓸어 내렸다.
그녀가 지금 얼마나 당황해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흥분하고 또 부끄러워 하는지 다 안다는 듯한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 엄마 전화 받아… 엄마 전화 받아…’
가방 속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진동으로 바꿔 둔다는게 깜박 했나보다.
“ 어디있는거야? 한참 찾았잖아…”
없어진 동생 때문에 당황한 오빠의 목소리가 핸드폰 밖에서도 똑똑히 들였다.
“ 알았어. 지금 가.”
그렇지 않아도 어색한 이 상황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했던 민수는 황급히 몸을 빼내고 뛰어가려 했다.
그리나 평소 신지 않던 하이힐 때문에 얼마 못가 넘어진 민수는 정말 어찌 해야 할지를 모르고 그저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
푸후후후…
현준의 웃음 참는 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민수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런데 어느 새 곁에 다가온 현준의 손을 내밀고 민수를 잡아 일으켰다.
흐트러진 옷을 잡아주고 먼지도 털어주더니 벗겨져 혼자 나딩굴던 구두도 가져와 손수 민수의 발에 신겨 주었다.
“ 고 고 마 워요.”
다급하게 말을 남겨두고 민수는 벌써 저 만치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 버렸다.
이번에 항공 산업에 뛰어든 한성 그룹의 자축 파티나 마찬가지인 이번 행사에 사실 민수와 같이 오고 싶었다.
그런데 오빠와 약속이 있다던 그녀와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바로 곁으로 가고 싶었지만 그때 만다 말을 건네는 사람들 때문에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 민수는 어디론지 없어져 버렸고 현준 역시 계속 해서 다시 사람들 속에 섞여 있어야 했다.
잠시 상쾌한 공기나 마시고자 나온 발코니에서 그녀를 만난 건 생각지 못한 우연이였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자신 혼자 남겨 놓고 가버린 민수를 보며 현준은 흥분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그래 지금 심정이 꼭 신데렐라를 놓쳐 버린 왕자와 같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결론은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