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장 그와 그녀위 첫 데이트?
일요일 아침.
오랜만에 도장에 나가서 개인 운동을 하고 돌아온 민수는 온 몸이 가벼워 지는 것 같았다.
도장은 살림집이 같이 붙어있다 보니 거의 365일 개방 되있었다.
민수 자신이 하는 일이 체력소모도 물론 이거니와 정신적인 소모가 워낙 큰 일이다 보니 아무리 바빠도, 하물며 유학을 가서도 운동은 빼 먹지 않았는데 이번 일은 기한이 정해진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운동을 게을리 했던 것이다.
엄마 전화 받아…. 엄마 전화 받아….
집에 도착하자마자 민수의 핸드폰 소리가 들렸다.
“ 여보세요….”
“ 나야….”
“ 나? 어???? 진이니? 너 목소리가 왜 그래? 감기 걸렸어?”
녀석 혼자 바다에 놀러 가서 신나게 놀더니만 감기에 걸렸나 보다.
“ 여보세요… 너 왜 대답 안해? 진이야 감기 심하게 걸렸니? 거봐… 나 혼자 서울 지키게 하고 어린 후배들하고 놀러 가니까 벌 받은 거야 임마…..”
흠흠….
전화기에서 헛기침 소리가 났다.
지이녀석 오늘 따라 왜 이렇게 무게 잡고 날리야….
혼자 놀러가서 미안해서 그런가?
“ 나 이현준인데….. 진이가 누구야?”
어라….. 이 사람이 어떻게 내 전화번호 알지?
“ 김민수….여보세요... 전화 받는 사람 죽었냐????”
" 죽기는 누가 죽어요.... 그런데 전화 어떻게 거셨어요?"
“ 내 핸드폰으로 내 손가락으로 눌러서 걸었는데…”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현준의 목소리에 장난이 가득 베어 있었다.
“ 아니….. 질문이 그게 아니잖아요…. 번호는 어떻게 알았으며 또 왜 전화 하셨냐구요?”
궁금한 것 못 참는 건 이 여자나 현준 자신이나 마찬가지 인 것 같다.
그런데 전화 목소리를 들으니 민수가 더 어려 보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현준 자신의 나이가 너무 많은 건 아닌지 말이다.
아니… 아니….. 지금은 문제가 그게 아니지…
“ 전화 번호는 인사 카드에서 봤고…… 애인이 휴일에 전화 하는 것 일상적인 일 아닌가?”
뭐 애인?????
그럼 이 남자 지난번에 한 말을 진심으로 받아 들였다는 거야?
“ 김민수…. 네가 궁금한 것 내가 대답했으니 너도 대답을 해야 할 것 이니야?
도대체 진이가 누구야? 남자야 ? 여자야 ?”
뭐야….. 이 남자가 왜 내 친구를 궁금해 하는 거지?
오늘 무슨 일인지 모르겠구만….
“ 제 친구 이름인데…..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 하신 거에요? 혹 급한 일이라도 회사에 생긴 건가요?”
“ 아니….. 정말 남자 친구로써 전화 했다니까…. 그리고 우리 형네 집이 이 아파트거든.”
“ 뭐라구요???”
“ 그래서 얼굴이나 보고 가려고…..만나서 상의할 일도 좀 있고?”
“ 저기….. 낼 말 하면 안되요?”
이 아저씨야… 나 운동 갔다 와서 아직 씻지도 못 했단 말야….
“ 너희 집이 103동 이지? 103동 앞 마당 주차장에서 기다릴께…. 빨리 와…”
툭….
아니…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는 사람이 어딨어?
그런데 왜 만나자고 하는 거지???
궁금 하기도 하고….. 몰라…몰라….암튼 빨리 씻어야겠다…
바삐 욕실로 들어가는 동생을 지켜 보면서 민호는 마구 흥분하기 시작했다.
통화 내용으로 짐작건데 이건 분명 남자다….
그렇다고 벌써 십 수년을 알아온 그 느끼 빠다 성진이 놈은 분명 아니고…..
그렇다면 과연 누구란 말인가.
아~~~ 궁금해 죽겠다…. 궁금해……
막 샤워를 마친 듯 아직 촉촉해 보이는 머리카락을 목덜미에 슬쩍 고정 시키고 빛 바랜 청바지에 짱구 캐릭터가 크게 그려진 흰 티를 입은 민수의 모습은 정말 생기 발랄한 대학 새내기 같았다.
과연 누가 그녀를 감히 교수라 생각이나 할 수 있을까….
“ 안녕하세요….. 급히 서두르기는 했는데……”
급하게 뛰어 나왔는지 아직 숨이 몰아 쉬는 그녀가 더 없이 예뻐 보인다.
“ 숨이나 쉬면서 말 하지 그래….”
“ 괜찮아요….그런데 무슨 일이세요????”
혹이심 가득한 민수의 눈동자가 현준의 얼굴을 이리 저리 살피기 시작했다.
현준은 평소 즐겨 입는 짙은 색 정장 대신에 밝은 베이지색 면바지에 하늘색 폴로티를 받쳐 입은 모습이 거짓 말 조금 보태서 10년은 젊어 보인다고 민수는 생각했다.
여자의 변신이 무죄라 하지만 남자의 변신 역시 무죄로구나…..
사실 민수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써 한참이나 현준의 모습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무안할 정도로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민수의 표정은 정말 흥미로웠다.
피식 하는 현준의 낮은 웃음 소리에 정신이 든 민수가 다시 현준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기 시작 했다.
“ 정말이야…. 형네 집에 왔다가 네 생각이 나서 말야….. 그러고 보니 같은 103동 이네..”
“ 정말 103동에 형이 살아요?”
여전히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지 않는 민수 때문에 오히려 남자인 현준의 볼이 달아 오르는 것 같았다.
“ 103동 903호에 살아….. 조카 녀석이 어제 생일 이였는데 선물을 못 전해 줬더니 새벽부터 전화 해서 빨리 가져 오라고 얼마나 들들 볶던지….”
사실 정우 녀석 보다 오히려 형수가 난리였다.
새벽부터 전화 걸어서 빨리 오라고….. 와서 아침 같이 먹자고….
평소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타입은 아닌데 오늘 유난하다 싶어 더 자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고 형네 집에 도착 했었다.
그리고 아침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내놓는 여자 사진을 보여주며 무조건 한번 만나 보라는 형수의 반 강압적인 협박도 쇼킹 했지만 사실 너무 맘에 드는 아가씨라며 꼭 도련님 소개시켜 드리고 싶다고 하면서 보여준 민수의 사진에 현준은 마시던 물에 사래까지 걸렸었다.
“ 부모님 모두 교육자시고 위로 오빠가 셋인데 막내로 딸을 낳았으니 사랑은 물론 듬뿍 받았구요…. 지금 대학 다닌다고 하는데 나이로 보면 대학원이 아닐까 싶어요. 그것도 경성 대학이니 머리도 좋다는 소리고 또 미모도 이정도면 빠지지 않을 거고… 더구나 얼마나 마음이 착하고 예쁜지 우리 까다롭기로 유명한 정우가 그 누나만 보면 착 붙어서 떨어지려고 하질 않는다구요…. 주위에서도 얼마나 욕심들 많이 내는데요…”
한참을 늘어 놓는 형수의 소개에 오히려 형이 무안해 했다.
“ 당신 정우 시켜서 현준이 오라는게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구만…. 거참…”
너털 거리며 웃는 형 역시 마음에 든다는 표정이다.
아무래도 형 역시 꼭 한번 만나 보라는 은근한 눈짓까지 해가며 말이다.
이렇게 가족들이 열심히인데 인심 한번 쓰는 셈 치고 만나 봐야겠지…
“ 지금은 아르바이트 때문에 시간을 못 낸다고 하니 다음달 쯤에 한번 시간을 잡을께요..”
현준의 마음이 OK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자 순영은 바로 시간 까지 못을 박으려 했다.
이럴땐 정말 변호사 같단 말야..
“ 저기요… 그런데 하실 말씀이 뭐에요??”
잠시 아침에 있었던 일을 생각하던 현준이 미소를 지으며 민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김민수…. 너 모르고 있지?
우리 형네 가족 셋이서 만장일치로 찍은 사람이 바로 너 라는 것 말야…
“ 지금 네 남자 친구 자격으로 만나자고 한거야… 명색이 남자를 사귄다는 사람이 휴일에 그냥 들어 앉아 있으면 말이 안되지…. 안그래?”
싱글싱글 웃으며 이제 당연한 일로 받아 들이라 말하는 남자의 얼굴에선 진지함 마저 느껴진다.
이 남자 농담이 아니었나 보다.
“ 저기요…. 그냥 그날은 농담이었어요….그러니까 부담 갖지 마세요..네?”
“ 넌 농담이었는지 몰라도 난 아니야… 난 내가 한 말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 지는 사람이거 든… 그리니 너도 진심으로 받아들이라고….”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민수의 한 쪽 팔목을 붙잡고 바로 자신의 차로 향하기 시작하더니 망설이는 그녀를 자신의 차 조수석에 앉히고 안전벨트 까지 손수 해준 후에야 현준 자신도 차에 올라 탔다.
한동안 말 없이 차를 타고 가던 민수가 아직도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 어디 가시는 거에요? 저 집에 아무말 안하고 나왔단 말이에요…”
“ 걱정마…. 안잡아 먹을 테니까…. 그래도 명색이 첫 데이트 인데 점심은 같이 먹어야지..”
헉…. 말도 안돼….
이게 첫 데이트란 말야… 이 몰골로……
순간 왜 다른 것도 아닌 외모에 대해 신경이 쓰였는지 민수는 몰랐다.
단지 누구는 깔끔하게 차려 입었는데 누구는 낡은 청바지에 짱구 티가 너무 차이나 보인다는게 속상했을 뿐이다.
“ 걱정마 괜찮으니까…. 그리고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갈거야..”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알았는지 현준이 하는 말에 민수는 기가 콱 막히는 것 같았다.
“ 어떻게 알았냐구?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
물론 모를거라 확신하지만
“ 넌 머리 속에 생각하는게 얼굴에 다 보여….”
너무 놀라서 멍해 있는 민수의 표정이 얼마나 귀여웠는지 현준은 운전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볼에 입이라도 맞춰주고 싶었다.
물론 그 아쉬움은 민수의 볼을 꼬집는 것으로 대신하였지만.
도착한 곳은 장흥이었다.
시골집 분위기 나는 레스토랑에서 산채 비빔밥을 시켜먹고, 통나무집 같은 카페에서 차도 마셨다.
그리 먼 곳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서울을 벗어났다는 사실 만으로도 민수는 기분이 붕 뜨는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 의심했던 생각들은 거의 접어가는 중이었다.
애인이 필요하긴 한데 그렇다면 이현준이라는 남자도 괜찮을 것 같다.
다른 건 다 둘째치고 일단 민수 자신에게 부담을 주진 않을 것 같으니까…
“ 이런 저런 생각 다 정리하고 그냥 OK라고 해. 결국은 너나 나나 모두에게 이익아니야?”
허~~~~ 저 남자 정말 독심술이라도 하는 것 아니야?
기분 좋은 얼굴로 편안하게 공원 벤치에 기대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 현준이 아무일 없다는 듯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모르겠다.
정말 사람 상대하는 일은 너무 힘들어….
그래도 한동안은 엄마에게 내세울 사람이 생겼다.
뭐, 남자 친구가 아니 애인이 별거 있나?
이렇게 만나서 밥 먹고 드라이브 하면 그만이지 뭐……
사실 현준은 옆에 앉아서 계속 발을 흔들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겨있는 민수의 얼굴을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아니 얼굴 뿐만이 아니고 그녀의 생각까지 말이다.
김민수….. 이리 저리 따지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시작이라는 것 잊지마……
현준 역시 오랜만에 도심을 빠져나와 편안한 오후를 만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