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동화책 읽어주세요.
영은이 종일 일하느라 피곤함에 지쳐 겨우 몸을 씻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였다. 네 살짜리 딸 은지가 졸라대고 있었다.
-잘 밤에 책은 무슨 책이야. 난중에 읽어줄께.
엄마 피곤하니까, 오늘은 그냥 자.
-싫어. 옆집에 사는 수영이네는 이모가 매일 잠들기전에 책 읽어준댔어. 우리는 동화책을 많이 읽어야 한댔어.
-수영이 이모가 그랬는데, 그래야 꿈과 희망이 생긴다고........그러니까 엄마도 읽어줘.
-수영이 이모는 맨날 노니까 그렇지. 엄마는 일해서 너무 피곤해서 안돼.
-싫어. 그래도 읽어줘. 나도 꿈과 희망 가질래.
엄만 수영이는 꿈과 희망 많이 갖고 나는 안 가졌으면 좋겠어.
내가 잠들때까지만 읽어 주면 돼잖아.
-아니 얘가 귀찮게 왜. 이런데.......그래 알았어.
영은은 마지 못해, 언젠가 진경이가 아이한테 필요할 거라면서 두고간 동화책 세트 중 한권을 집어 들었다.
-제목이 뭐야! 엄마!
-응, “엄지공주”.
옛날, 어느곳에 자식이 없는 쓸쓸한 여자가 살았습니다.
........여자는 꽃씨를 화분에 심고 정성스럽게 가꾸었습니다. 마침내 꽃이 피었고 꽃속에서 엄지손가락만한 귀여운 여자아이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보니 엄마도 엄지공주 같아. 다른 엄마보다 작잖아.
-어그러니? 엄마가 공주라고.......엄마, 기분 좋은걸.
자 또 읽을게. 잘 들어.
............제비와 헤어진 후 엄지공주는 더욱 슬픈 나날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결혼식 날이되었습니다. 엄지공주는 두더지님에게 말했습니다
“두더지님, 저는 오늘 결혼하면 다시는 햇빛을 못 보게 될 거에요. 마지막으로 밖에 나갔다 올게요. ”두더지의 허락을 받고 밖으로 나온 엄지공주는 제비를 만났습니다.
제비는 엄지 공주를 등에 태우고 남쪽 나라로 날아가면서 말했습니다.
“결혼이란 행복해지기기 위해 하는 거야. 슬퍼할 결혼을 해선 안되지.”
“제비야, 고맙다. 싫으면서 억지로 결혼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엄마! 엄마는 행복해. 아빠랑 결혼했잖아. 그래서 지금 행복해.
-음, 그럼.......
다시 영은은 책장을 넘기며 읽다가 멈추었다.
이미 잠든 딸의 고른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때문이었다.
영은은 책을 덮은후 잠든 딸을 지그시 바라보며 이불을 덮어 주었다.
딸이 다시 되묻는 것 같았다.
엄마는 지금 행복하냐고.
이 어린 아이가 행복이 무엇인지 알기나 할까?
-은지야! 엄마는 이렇게 이쁜 너가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얼마후, 마을회관에 모임이 있어 갔던 혁필이 들어 왔다.
-안 자고 뭐해.
혁필은 윗도리를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뭐하긴요. 우리 이쁜 딸 보고 있죠.
-허! 참......... 매일 보는 딸 뭐가 그리 이쁘다고.......
-당신은 나랑 결혼해서 행복해요.
불이 꺼지고, 은지옆으로 혁필이 눕자, 영은이 대뜸 물었다.
-갑자기 무슨 뚱단지 같은 소리야. 싱겁긴.......얼른 잠이나 자.
영은은 가만히 누워 남편의 무뚝한 대답에 픽 웃었다.
갑자기 지금껏 살아온 지난 세월들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또 그 세월속의 자신의 옛모습들 떠올랐다.
캄캄한 어둠 너머로 어디선가 냇가의 물 흐르는 소리,자신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