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네프에 해가 지다
(2002년 3월 1일 파리에서 시작하다)
강 영이
제 1장 - 나의 가슴속으로 은어가 들어온다
8월의 여름
햇살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파리의 여름은 사치스러울 만큼 빛나는 햇빛으로 넘쳐흘렀다. 여름휴가 시즌으로 모두들 파리를 등질 때 나는 이곳에서 서둘러 온 11월의 푸른 바람을 맞고 나왔다.
딱딱한 정치나 외교 경제를 7년 동안 공부하고 온 나에게 아버지는 새로 시작한 영상 사업을 덥석 안겨 주셨다.
당신의 청춘 시절을 같이 해 온 영화에 대한 꿈을 끝내 버리시지 못하고서 30년이 흘러 되찾으시려 하는 까닭일는지.
훤칠하신 외모 탓에 6여년을 영화 배우를 지내신 아버지.
그러나, 서른 즈음에 나를 낳으시며 영화 쪽과는 인연을 끊으셨다
세인들의 입에 자식의 이름이 함부로 오르내리는 걸 원치 않으셨다
기업 합병 쪽 일을 하고 있을 무렵,
아버지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당신의 잃어버린 30년을 되찾아 주겠냐고......
그리고 어머니의 부음과 함께.
어머니는 조부의 -정치인으로서 활동하실 적의 비서였는데 비 오는 날 아버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를 보며 사랑에 빠져버렸다고 한다 그 후에 공식 행사 연회가 있는 날 어머니에게 첫눈에 반해 버린 아버지는 프로포즈를 하셨고 정치인이셨던 할아버지는 그 동안의 반항(?)이었던 영화일 을 접고 사업을 하라는 명령을 내리셨던 것이다
어머니의 싸늘하신 손을 마지막으로 잡아 드렸을 때 아버지는 흐느끼다 못해 오열을 터뜨리시고 말았다.
- 당신 탓이 아니었는데...정말 그건 아니었다고!
어머니의 유품 중에는 30년 전 아버지가 출연하신 영화 포스터, 기사 그리고 그 비 오는 날 보셨다는 영화 표.
또한 나를 놀라게 한 건 30년 동안 모아 두신 개찰 되지 못한 두 장씩 의 영화 표들이었다.
비가 오는 날만 되면 영화 표 두 장을 사 두셨다가 아버지와 보러 가시려고 한 것 같이 보였다
하지만 난 안다
영화 쪽 미련이 생길까 염려돼서 차마 얘기조차 꺼내지 못하셨던 당신의 안타까움을.
어릴 적에부터 영화를 친구들이랑 보고와도 입밖에도 꺼내지 말라던 어머니의 다짐을 기억하고 있으니.
- 왜 한번도 어머니와 영화를 보러 가시지 않으셨어요?
삼일장을 치르고서 말없이 상자를 내게 내미셨다
그 상자 안에는 분홍색 봉투가 가득 담겨 있었다.
봉투마다 영화 표 두 장과 짧은 메모와 아버지의 사인이 들어 이었다
어머니와 같은 날 사신 영화 표들이.
-언젠가 비 오는 날 극장 앞에서 표를 사는 너희 엄마를 봤다 분명히 두 장을 샀는걸 보았는데도 내게 아무 말을 안 하더라고 한때 영화일 을 한 내가 동행해서 보면 사람들 수군거리는 게 싫어서 친구들과 보러 가는구나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마지막 시간표를 사서 같이 가자고 하려 했는데 그 시간대엔 너희 할아버지를 어머니가 배웅 나가는 시간이었던 거야.....휴우
-근데 웬 사인들이에요?
-너네 어머니께 청혼을 했는데 영화 표 2장과 내 사인을 평생 줄 수 있다면 결혼한다고 네 엄마가 그랬거든
30년을 서로 살을 맞대고서 사시면서 이렇듯 서로의 마음을 모를 수 있었다는 사실에 그저 가슴이 답답했다
며칠 후에 아버지는 어머니의 오래된 핸드백에서 바래 버린 편지 한 통을 발견하시고서 20년 동안 끊으신 담배를 피우셨다고 편지엔 20년 전 신혼 살림을 시작하신 집주소로 수신이 되어 있고 우표까지 붙어 있었는데, 날짜가 30년 전 날 가지신 날이었다고 했다.
아버지의 소신대로 영화에 대한 열정과 사랑으로 앞으로 태어날 아기를 위해서라도 계속 영화인으로 남길 바라며 그 뜻을 할아버지께 꼭 말씀 드리란 당부의 편지였다
그리고 영상 사업을 시작하셨다영화 제작 및 해외 배급 업무를 나에게 맡기셨다
그런 내가 지금 왜 프랑스의 파리에 와서 영화를 보고 있는 건지,어머니의 마지막 영화 표 2장은 좀 거창하셨다
파리 행 비행기표 2장과 샹젤리제 거리의 극장 약도
그 즈음 프랑스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의 목록 중에 the sweet November라는 제목에 빨간 줄이 쳐져 있고 영화가 상영되는 날짜를 두 분의 결혼 기념일이었다 난 그 비행기표를 지니고 와서 어머니께서 예약하신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았다
샤를리오츠란 배우와 키아누 리브스와의 11월 한달 동안의 시한부적인 사랑.
아버지는 이 영화에 유난히 집착을 하셨다
이 영화의 국내 배급에까지 관심을 가지시고 파리에서의 반응을 살펴보란 당부까지 하셨다 젊은 여성들에서 나이든 연인들까지...여자들은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영화관을 나서야 했다
특별히 이제 할 일도 없고 해서 무작정 노천 카페에 앉았다
샹젤리제 거리는 절반 이상이 외국 여행객이라고 하였다
화란인 정체된 유럽이 지겹다고 하였다
분주하고 변화가 많은 뉴욕이 사랑스럽다고 부르짖었다송화란,.
나의 유학 시절에 나의 경쟁자로서 때로는 좋은 친구로서 내 것을 지켜 주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여유 있다 오래간 만에 느껴 본다
반대쪽 테이블에 앉아 있는 동양 여자가 푸른색 색안경을 끼고서 그들을 바라본다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낯이 익어서 생각해 보니 파리 행 비행기에서도 내 옆 자리에 앉았었고, 영화관에서도 바로 옆 자리에 앉아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덤덤하게 보고서 일어나던 그 여자. 분명히 한국인이다.인천 공항에서 한국 여권을 소지한 걸 언뜻 보다.
여행객이리라!
슬픈 미소와 눈빛을 지닌 여자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계속 옆 자리에 앉으신 걸 봤는데 차라도 함께 하실까요 하고 말이라도 걸어 보겠건만.
눈길을 주지 않는다 오가는 행인들에겐 시선을 풍요롭게 나눠주는데
괜히 심술이 난다
그냥 평범한 얼굴이라면 모를까
성숙하고 이지적인 분위기에 꽤 미인형인데.
이 한진욱에겐 한 찰나 한 순간의 눈길도 나눠주지 않는다
송화란이 알았다면 병신같이 라고 말하며 놀렸을 일일 텐데.
긴 한숨으로 모든 걸 버리러 온 사람처럼 한 곳 한곳에 오래 시간을 둔다
장난조차 걸어 보지 못하고 바라보기만 한다
마치 그건,,,,저 여자가 침범하지 마시오 관심은 사양합니다라며 보이지 않는 방벽 쳐 놓은 모양.
그런 쉽게 말해서 설정처럼.
커피 값을 지불하는가 싶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거리로 나선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확연히 눈에 띠는 동양 여자.
아주 큰 향수 화장품 매장으로 들어선다 진한 향수 냄새가 코끝을 코끝을 덮쳐 왔다
화란이를 위해 향수를 사기로 한다
그리고 저 여자에게 자문을 구하리라
애인에게 선물을 줄 향수를 골라 줄 수 있냐고.
자연스럽게 그 여자 옆으로 가서 섰다
-저, 저기요 한국 분이시죠? 애인 줄 향수를 살건대 뭘 사야 할지 몰라서 그러는데 좀 골라 주시면 안될까요?
이 여자는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고 뚫어지게 나를 쳐다보더니 한쪽으로 가서 구찌 러쉬2를 하나를 들고 와 건네 준다
그리고 자신이 산 물건들을 계산한다 -저 죄송한데 제가 불어를 몰라서요. 제대신....
그 여자는 내겐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점원에게 부탁을 한다
- Excuse moi, vous parlez englaise?
-oui.
- cet monsieur ne peut pas parlez francais. donc vous pourriez parler anglais pour lui?
- pas de problem. avec plasir. madame!
사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교양 불어를 했었기에 문제가 없었지만 한 마디라도 걸어 보려고 그런 것을...
물건값을 치르고서 열심히 리본을 고르는 점원은 내 마음을 알 리 없다
-excuse me?
다른 점원이 나에게 조금만 종이 상자를 내민다
C'est pour vous!
라고 적힌 것이었다
방금 그 동양 여자가 건네 주는 것이라며 빙긋 웃는 그 프랑스 점원은 무언가 눈치 챈 듯하다
안에는 ETERNITY라고 적힌 향수가 들어 있었다
어떤 의미인지 관심을 갖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기쁜 건 그도 나의 시선을 눈치 채고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인 점원을 졸라 그녀에게 맞는 로디세이 와 아나이스아나이스란 향수를 샀다
어디로 갔는지 알 순 없었지만 비행기 옆 자리에 또 앉는다면 그 여자에게 주고 프로포즈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호텔로 돌아와서 침대에 벌러 덩 누워 버렸다
콩 코드 라 파이에 호텔은 파리에서도 초 호화 고급 호텔이었다
어머니다운 선택이셨다
뭐든지 최고로 대접 받고 싶어하셨으니까
파리는 야경이 멋있다고 서비스맨이 그랬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다
혹시 옆방에 그녀가.......??
아닐 수도 있다 파리에는 몇 백 개의 호텔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호텔 콩코드는 하룻밤에 꽤 비싼 편이다
그래도 확인해 보고 싶었다 오늘 하루쯤은 운명이란 근사한 감정에 젖어 보고 싶다,
일단 나가기 전에 왼쪽 방을 두드릴 건지.오른쪽 두드릴 건지 선택해야 한다
항상 그녀는 나의 왼쪽에 있었다 그렇다면 왼쪽 방을 두드리기로 했다
그냥 두드릴 순 없다 속임수가 필요하다 옆방을 두드릴 수밖에 없는.
과일이 담긴 나무바구니에 쿠션을 깔았다. 쿠션 밑에는 미리 사 둔 향수를 넣어 두었다
고양이가 옆방으로 들어갔다고 해야지
속임수와 계획을 짜 놓고 샤워를 하고 머리도 감았다
방금 씻다가 나온 것처럼. 그래서 고양이를 찾으러 나온 것처럼 해야 한다
끝으로 그녀가 준 향수를 뿌렸다 이제 천천히 나가서 벨만 누르면 된다
-띠리릭
-띠리릭
두 번을 울릴 때까지 응답이 없다
세 번째 울리면 그래서 아무도 안나 오면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겠다
-띠리릭
여전히 응답이 없다.
셋 셀 때까지 안나 오면 감성 따윈 던져 버릴 테다.
하나
두 울
두 울 반
두 울 반의 반
덜컥!
아직 셋도 세지 않았는데 그랬는데 문이 열렸고 바로 그녀가 나왔다 그런데 그녀가 울고 있었다
그녀를 뒤따라 나온 조금만 하얀 강아지도.
눈물이 넘쳐흘러 나를 적셔 버릴 것처럼 그냥 무작정 흘러내리는데도 그녀는 그 자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바보가 문 앞에 서 있다
세상에서 제일 당당한 남자였던 한진욱이 아무 말도 못하고 문 앞에 서 있다
그녀가 문을 연 순간 그녀의 맑은 눈동자에서 흘러내리는 눈물 앞에 너의 어처구니없는 속임수는 무너지고 말았다
난 그녀에게 바구니를 내밀고 먼저 뒤 돌아 섰다
조용히 문이 닫혔다.
그리고 구슬프게 우는 그녀의 소리가 들렸다
방에 돌아와서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를 두 잔을 마셨다. 연거푸
이게 아니었잖아.
할 일 없는 파리에서 하룻밤 상대로서....
무언가가 날 그녀의 방문 앞으로 이끄는 것 같았다
여전히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난 그녀의 문 앞에 주저앉았다
아마도 문의 느낌이 차지 않는 걸로 봐서 조금 따스한 기운이 전해 오는 걸로 봐서 그녀도 문에 기대어 앉아 있는 것 같다
조그만 샹들리에만 켜져 있는 아무도 없는 복도에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녀와 내가 앉아 있다
-향수 ...고마워요
점점 그녀의 소리가 희미해 질 무렵
난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리고 일어섰다.
여기까지만 이다. 한진욱!
더 이상 어두운 남의 삶 속으로 뛰어들지 말자
내 생각과 반대로 문을 쾅쾅 두드리고 있는 날 보았다다시금 그녀가 문을 열고 날 쳐다보자마자 난 그녀를 안았다
약간은 가냘프게 느껴지는 그녀.
그녀는 마치 설움을 쏟아 버리는 듯 펑펑 소리 내어 울었다
무엇이 그녀를 서럽게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지금 그녀는 내 품안에서 울고 있다
-여기 위에 괜찮은 스카이라운지가 있어요
거기에 앉아 내다보면 아름다운 꿈을 꾸는 파리가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무언가를 다 쏟아버릴만큼 울었을 때 그녀는 고개도 들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로 나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싫어도 말예요 같이 가서 앉아 있으면 안될까요?
그녀는 카드 키를 꽂고 안으로 들어갔다
yes인지 no인지 대답도 않은 채
조금의 틈을 두고 하얀색 강아지가 장미꽃 한 송이를 물고 나왔다
장미꽃에는 조그만 메모지가 있었다
이수아
-이...은...영.
나올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가 가리켜 준 스카이 라운지로 갔다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수아가 오른쪽 구석 창가에 앉아서 가만히 바깥을 쳐다보고 있었다. 노래가 흘러나온다
- the prayer <a.bocelli&c.dion>
수아의 말대로 파리의 저녁 풍경은 아름다웠다
-사람은 나약해질 때 기도를 하게 되죠 멜로디가 예쁘네요
수아씨는 마지막으로 무슨 기도를 하나요? -...소망의 기도. 감사의 기도!
그녀에게서 은은한 향이 느껴진다 운명이든 아니든 간에 난 그녀에게 끌린다
마치 그녀가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는 도움의 기도라도 하길 바라며.
MOJICHO라고 하는 프랑스 인들이 여름에 마시는 박하 잎을 띄운 보드카인지 럼인지 하는 것과 얼음을 띄운 칵테일을 마시기에 따라 마셨는데 입안이 화해지며 시원하긴 해도 꽤 센 편이다.
-파리에 대해 잘 아나 봐요, 난 문외한인데... 8년전에 배낭 여행 한 번 온 적은 있는데 별로 기억에 남 지 않았어요
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도. 영화관에서도, 호텔에서도 지금도 수아씨는 항상 제 왼쪽에 있었어요 결혼식때 신부가 왼쪽인데!
-전 결혼했어요. 그리고 이혼수속중이구요
더 이상의 꿈도 더 이상의 낭만도 파리는 꾸지 않는다
방벽 수아는 거기까지만 출입을 허용한 채 통제하였다
그녀의 오른쪽 옆에 앉아 파리의 전경을 내다보았다
그녀가 내다보는 곳을 따라 시선을 둔 건....그곳은 묘지였다
몽마르트 언덕 아래의...
<The Sweet November>의 영화도 어머니의 늦어 버린 외출에 대한 대리 역할도 끝이 났다
돌아가야만 한다
운명에 대한 감성의 유희도 끝을 내어야 한다
난 이미 화란에게 프로포즈를 하였고 곧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식을 올려야 한다,
어젯밤 그녀는 줄곧 파리의 야경을 바라보다가 너무나 정숙하게도 양해를 구하고 먼저 일어서 돌아갔다.그것으로 끝이었다
난 그녀와 나 사이의 공동 허용 구역인 스카이 라운지에서 끝까지 남아 있는 者가 되어야 했다
노크를 했다
아침부터라 그렇긴 해도 마지막 조찬을 함께 하고 싶었다
벨을 울려도 십 분이 지나도 아무런 기척이 없다
혹시나 해서 건방지게 문을 열었다
방은 정리된 상태이고 강아지만이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끝까지 돌볼 수 없는 사정이 생겼습니다 지오가 좋아하더군요>
백신 증명서와 건강 진단서, 보건 증명서 등이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약간은 허무하였고 서운했다
이거로서 인연이 다한 건지. 비행기에 탔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왼쪽 자리를 바라보았지만 나의 옆자리는 비워둔채로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서른 살에 대머리의 동양 여자가 센느 강변 귀퉁이에서 슬프게 춤을 추는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 한에게 말했었지;.
여기서 내 이름은 라라 . 모두들 날 라라라고 부른다원우는 내가 어쩌다가 파리까지 흘러 들게 되었는가에 관해 물의 역행이라 불렀다.
바다로 가야 할 물이 센느 강변의 고독으로 머무른 거라고
세상을 거슬러 올라온 한 라라의 은어는 가장 원초적인 회귀 본능 앞에서 춤을 춘다.
기억이나 추억같이 버거운 감정의 올가미는 벗어버리고서,
퐁네프에 또다시 해가 진다
내가 라라를 처음 본 건 퐁뇌프에서였다.
퐁뇌프...GARE DE LYON에서 내려서부터 라라를 줄곧 보아 왔다
무척이나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던 그때.
물론 파리는 비도 잦기로서니 와 슬픈 얼굴을 가진 사람들은 많다
그녀는 퐁뇌프에서 비를 맞고 서 있었다.
-아직은 비가 찰 때인데.
- 속에서 끓어오르는 열을 시키기엔 비가 따뜻하네요.
그녀는 울고 있었다
파리에서 비를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허나 동양 여자가 자신의 울음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비를 맞고 서 있다는 건 흔한 일은 아니었다.
- 언제까지 비를 맞을 작정이야?
- 비가 그칠 때까지.
난 그녀 옆에서 서서 비가 그치기를 간절히 기도했었다
두시간이 지나도 비가 그치지 않았고 흔들거리는 그녀를 데리고서 Jean-Cloud의 배로 데려갔다.
-Pourquoi elle a fait ca?
-je ne connais pas du tout.삼일 동안 비가 내렸고 그녀는 삼일 동안 심한 열병을 앓았다
그 후 그녀가 깨어났을 땐 예전처럼 퐁뇌프에 해가 뜨고 있었다.
-Qui etes vous?
Jean이 그녀에게 누구냐고 물어도 그녀는 불어를 이해 못하는 것과 같이 자기 자신의 기억을 끄집어내지 못했다.
물끄러미 해가 지는 모습을 쳐다보는 그녀에게 jean이 그녀를 라라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가 자신의 배를 라라에게 무상으로 빌려 주었다,
쉬크한 프랑스인 치곤 후한 대접이지만 잃어버린 자신의 입양 딸이 되돌아 온 것 같다는 뒷말을 남기곤 LYON으로 떠났다.
며칠을 배 안에서 맴돌던 라라는 수동식 카메라를 발견하고 정신 없이 퐁뇌프로 달려가서 해지는 광경을 찍기 시작했다.그리고 그녀는 웃었다
내가 처음으로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본 게 그때였다,
그 후부터 라라는 퐁뇌프의 일몰을 지키는 Ange Gardianne였다.
라라는 불어든 파리에서의 생활이든 빨리 적응해 나갔다.
그녀가 누구였는지,무얼하다 프랑스로까지 오게 되었는지 물어 보지 않았고 로라도 애써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라라를 다그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쩜 그녀가 원래 그곳에 있었던 것 마냥.
-내가 기억하지 못한 거. 기억할 필요가 없어서라고 생각해요. -밍, 저기야. 내가 살던 곳이...
텔레비전에서 한국의 모습이 나왔을 때 갑자기 그녀는 소리쳤다.
그리고 다시 차를 끓이기 시작했다. 아무 말!
그일 때문에 난 그녀가 한국인임을 알았었다.
...한국.
나에게 낯선 곳은 아니었다.
나의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한국인이었다. 정확히는 중국으로 건너 온 조선족의 후예였다.
중국인 아버지는 한족이었다. 무뚝뚝하고 근엄한 분이셨다.
중국 골동품들을 수집하시고 서예나 서화등을 모으시는 일이라 조용조용 집을 다녀야 했다.
-넌 딸이 아니다. 우리집의 아들이다.
아들을 낳지 못한 죄!
주위에선 양자를 들이라는 권유도 있었지만 아버지 당신께선 받아들이시지 못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할머니는 씨받이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버지를 낳고 조그만 곁방에서 지내시는 할머니를 보며 성장하신 아버진 아들을 낳지 못하는 건 죄가 아니라고 어머니에게 늘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날 아들처럼 키우시려 하셨다.
나의 긴 머리를 손수 자르시고 상고머리를 유지케 하셨다.내가 감성에 젖을 때마다 아버진 감성은 사치와 허영이라고 꾸짖으셨다.
교수 자리를 따냈을 때 당신께서는 남자들 중에서 1등을 한 것에 흡족해 하셨다.
어머니가 결혼 후의 삶은 죽음과 같다는 아버지의 말씀 때문에 결혼 정년에 찬 딸을 보며 한숨만 쉬시는 것 또한 나로 하여금 슬프게 했다.
미국에 교환 교수 자리로 갈 즈음에 당신은 병환 중이셨다.
-밍, 기죽지 말아라. 우리 조상은 백인을 누르고서 전 세계를 정복한 대륙인 이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당신은 내 손을 잡으시며 당부하셨다.
그렇게 당신은 눈을 감으셨다.
어머닌 아버지의 유언대로 한 딸이 아버지의 병환 때문에 그의 군대 징집 장을 들고 전쟁에 나간 무용담을 그린 병풍을 보내 주셨다.
그러나, 마지막 부분의 화폭은 도려진 채 보내져 왔다. 군대의 상관과 사랑을 하여 시집을 간다는 부분이었다.
마지막까지 나의 삶속에 여자라는 性을 도려내시고 싶으셨던 것일까?
그 화폭의 휑한 공백은 나의 올가미가 되어 족쇄가 되어 평생을 괴롭히는 것이 되었다.그런 나에게 라라의 등장은 도려진 나의 화폭을 채우듯 모성애를 자극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봄 아지랑이가 되어.
날씨가 화창한 오전.
밍은 라라를 찾아왔다. 라라는 카메라를 만지고 있었다.
-라라, 오늘은 무얼 할 생각이지
-오늘은 원우의 픽업 손님들과 같이 베르사이유를 동행할 거야.
그치만 그전에 피에를 아저씨 손자 생일 파티를 찍어 주기로 했어.밍!
-난 너의 머리를 만져 줄 때마다 행복하다.
라라는 말없이 웃기만 한다.
-한이랑 원우가 저녁에 올거에요. 아마도...
다시금 카메라의 렌즈를 열심히 닦는 라라의 손놀림이 빠르다.
-한의 연극을 네가 도와주기로 했다던데.
-광고장이가 광고나 하지. 영화 찍네 연극하네 하며 폼만 잡는 거지. 뭐
-그래, 너에게 좋은 일일 거야. 라라는 돌아서서 밍의 모습을 바라본다
-난 밍을 찍고 싶어.
밍은 웃기만 한다. 셔터를 연신 눌러 대는 라라는 자유롭다
저 라라의 자유를 지켜 주리라!
-나중에 이 조그만 조각들의 사진들로 전시회를 열거야. 행복했던 순간들을 보면 그들도 행복에 전염이 될 거니까
밍은 빗들을 정리하면서 조그맣게 되뇐다
-행복한 모습들을 보면서 행복해 할 수 있는 건 마음이 열려 있지 않으면 그건 그저 잠시 스쳐 가는 카메라의 잔상에 불과한 거야.
라라는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세상엔 말이에요. 행복이란 걸 느끼지도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아니 행복하다고 말하면 그게 깨질까 봐 가슴 두근거리면서 사는 바보들도 있어.난 그렇겐 안 살아. 행복한 순간에는 행복해 죽겠더라고 막 소리치며 호들갑 떨면서 살거라구.
밍은 라라가 어떻게 살아왔는진 모르지만 굉장히 억눌려지고 숨막히는 순간들 속에 살았을 거라 느꼈다.
한국에 돌아 온지 반 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우울해 하시던 아버지도 많이 기운을 되찾으셨다.
아버지는 영화 일에 전념을 쏟으셨다.
마치 어머니의 영화 표들을 보시며 못 다한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 드리려는 듯.
그리고 영화 제작 쪽 일을 시작하셨다.시나리오를 모으고 스텝들을 구하고 신이 나시는지 밤새도록 영화쪽 사람들과 술자리로 식사니 하며 이야기꽃을 피우셨다.
하루는 어머니의 정신과 주치의를 만나시고 오셔서 내내 책상에 앉아 어머니의 사진을 들여다보셨다.
그리고 조용히 나를 부르셨다.
-진욱아, 너 프랑스엘 다녀와야겠다.
-네?
-가서 밍교수를 만나서 이걸 전해 주거라.
아버지는 하얀 편지 한 통을 진욱에게 건네 주었다.
봉합된 편지 봉투에는 부탁합니다 라고만 적혀 있었다. -프랑스에 계셨던가요?
-그래, 이걸 주면 다 알아서 해주실 거다.
-가는 건 가는 거지만 여기 일은 마무리짓고 가야겠죠?
-시간을 다투는 일이야.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만...
마지막 말은 한숨 섞인 애절한 말투였다.
이 말은 진욱에게 무겁고 어둡게 다가와 진욱을 서서히 누르고 있었다. -가서 일이 끝날 때까지 여기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내일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내미셨다.
그러나, 돌아오는 비행기 티켓은 두 장이었다.
하나는 나의 것이었고 하나는 이름이 찍혀 있지 않은 오픈 티켓이었다,
날짜도 찍혀 있지 않은 것이어서 아버지도 확실하게 모르시는 결과를 두고 주시는 것 같았다,
-진욱아,한 가지만 알고 있어. 이번 이 일은 너의 엄마를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고 널 진정 사랑하는 어머니의 뜻이란 걸.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는 말씀만 하셨다.
그렇지만 아버지의 눈은 젖어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시며 내 어깨를 힘주어 꼭 잡아 주셨을 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무너졌다.
반년만에 프랑스를 또 가는 것이다.
반 년전에 영화 때문에 갔었지. 그때 좌석에 놓인 항공사 잡지를 들었다.
읽을거리를 찾아 주섬주섬 넘기다가 <ETERNITY>향수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반 년전에는 동행자가 있었지. 바로 왼쪽 내 옆자리에 앉아서 책을 보던...
...이..수아.이혼수속이라던 그녀는 지금 새로운 사람을 만나 결혼을 했을지도 모른다.
나 한진욱을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운명이란 걸 믿게 했던 여자.
그 다음 장에 <GUCCI RUSH2>향수 광고가 있었다.
송화란!
야망이 큰 여자.
-미안해. 내게 생각이 좀 필요해, 아니 생각할 시간이 말야.
한국에 돌아가서 조그만 갤러리에 앉아 얼굴 마담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리고 한참 승진의 가속도를 달리던 진욱씨가 갑자기 한국에 돌아와 어울리지도 않는 영화일 을하고 있는 것도 맘에 안 들어. 그때 화란에게 물었다.
-정말 이런 유치한 말 하긴 싫지만 너 나 사랑하니?
-사랑해. 하지만 내가 사랑한 단 이유 하나로 내게 희생을 강요하지마.
다른 여자들이 연애에 대한 신데렐라 꿈을 꾸고 있을 때 난 도서관으로 전시회장으로 뛰어다녔어. 난 너의 꿈처럼 마리아 칼라스의 열정은 지녔다고 확신 할 순 있지만 육영수 여사의 지덕과 내조를 소중히 할 만큼은 되지 않는 것 같아. 난 그레이스 송으로 인정받고 싶어. Mrs.HANN이 아니라, 내 뜻 알겠어? 서로에게 구속하지 않는 애인 사이 정도도 괜찮지 않을까? 당장 정리하기 힘들다면. 그리고 화란이는 미국으로 떠났다.
좋은 친구로 남고 싶다는 한마디를 남기고서,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스럽게 자란 부유한 성공한 한국인 3세.
그런 그녀에게는 나의 모든 조건들이 그녀에게 스트레스로 다가갈 수도 있겠지.
가끔씩 거는 전화통화로 그녀의 안부를 전해 주었다.
국제 미숙 박람회 담당자로, 예술 자문 위원으로서 화란의 모습들을 묘사켸할 이야기들을.
때때로 그녀가 그리웠다.
그건 남성으로서 성적인 상대를 그리워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을까?
반 년 동안 여자들을 만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냥 쉽게 만나는 그런 일들.
너무 쉽거나 너무 플라스틱 같은 무미건조함.
아니면 너무 착하디 착한 솜같은 여자들에 나는 지쳐 갔다.
분출되는 성적 욕구의 해갈 뒤에는 허탈감만 더해 갈 뿐이었다.
베르사이유궁은 언제나 관광객들로 붐벼 댄다.
마리 앙투와네트 여왕의 사치의 절정이었던 곳.
그녀가 연인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사랑의 정자에서 한과 원우는 잠시 쉬면서 일정을 점검하고 있었다.
담배를 피던 라라는 원우를 쳐다보았다.
안경을 낀 원우는 참 지적인 매력이 있다. 그의 별명은 삼총사의 아라미스다.
둘 다 상처를 지닌 남자이다.
원우는 jean에게 4살 때 입양된 입양아이다.
한국 부모가 교통 사고로 숨진 뒤에 이곳 프랑스로 입양되어졌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맏형 EUGENE과 여동생 LETITIA를 사랑했다.
그런데, 큰 형 EUGENE은 여동생 LETITIA를 틈만 나면 자신의 방으로 끌고 가서 성강간을 일삼았다. JEAN의 유일한 혈육이기에 레티시아도 원우도 버려지는 게 두려워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언젠가 내가 열여덟이 되면 널 데리고 가서 이 집에서 나아갈 거야.
-정말이지? 내게 약속해 줘.
원우는 열 여덟이 되어 이 집을 나가면 레티시아에게 아름다운 꿈을 꾸게 해주리라 맘먹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할 거라고.
원우는 열 여덟 살이 되던 날을 하루 앞두고 그 날 밤에 잠결에 이상한 기척에 눈을 떴다.
분명히 레티시아의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제발 날 놔줘.<LAISSE-MOI!>
-넌 절대 날 떠날 수 없어. 난 널 사랑해.<TU NE M'A JAMAIS QUIITTEE! JE T AIME!>
원우가 레티시아의 문을 벌컥 열었을 때 그때 그는 알지 못했다.
갈기갈기 찢겨진 레티시아의 옷조각들이 널려 있고 앞가슴이 풀어 헤친 채 유진의 밑에서 레티시아는 몸부림치고 있었다.
원우와 눈이 마주친 레티시아는 유진을 있는 힘껏 밀어냈고 그와 동시에 그의 젖은 남근을 보았다. 욕지기가 올라오는 걸 느꼈다.
-안 돼, 보지마!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그녀는 갑자기 창문으로 뛰어내렸고 그녀를 말리던 유진도 함께 떨어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레티시아는 죽어도 유진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JEAN은 유진과 레티시아를 합장하여 화장했다.
원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자신의 혈육에게 기우는 정으로.
며칠 뒤에 원우는 소변을 보던 중에 자신의 남근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걸 느꼈다.
레티시아를 괴롭게 만들던 저주스런 흉물.
옆에 있던 면도칼로!
엄청나게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고통과 쓰라림보다 더한 레티시아의 절규가 귀를 감도는 걸 들으며.
한참만에 깨어났을 때 쟝이 그의 손을 꼭 잡고 울고 있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계속 이 말만 연거푸 되뇌면서.
원우는 신부가 되겠단 생각으로 신학대학을 진학했고 신부가 되기 위한 수업을 듣던 중에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서 앞가슴을 풀어 헤친 채 절규하던 레티시아가 떠올라서 그 수도원의 성모 마리아 상에 하얀 천을 씌웠다가 퇴출당했다.그후 미국으로 보내어진 그는 경영학을 계속 공부했다.
거기서 예술 경영을 전공하던 한과 만나게 된 것이다.
한은 의대를 졸업하고 전문의가 되었지만 영화와 미술 등을 사랑하는 자신의 열정을 주체할 수는 없었다.
그는 파리에서 거리 음악제가 열리던 그의 콘서트를 보며 웃고 계셨다고 한다.
그래서 행복했던 한은 있는 힘을 다해 연주에 열정을 쏟았었다.
그러나 연주가 끝나고 그의 아버지는 5쌍팀을 던지며 천한 피는 어쩔 수 없군 이라고 말했다.
클럽 가수였던 그의 어머니.
아버지는 창녀란 호칭으로 어머니를 경멸했지만 소싯적에 어머니의 노래하는 모습에 반한 그는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해서 한을 낳았지만 노래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었던 그의 어머니는 끝내 집을 뛰쳐나가 클럽을 차렸고 결국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셨다.한 번, 그 클럽을 찾아간 아버지는 그녀가 자신을 바라보는 뭇 남성들의 시선을 향해 입맞춤을 보내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환멸을 가지고는 돌아섰다. 끝끝내 그 입맞춤이 그 자신에게 보내는 마지막인지도 모른 채!
한은 자신이란 존재를 하찮게 만든 근원인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어느 날,jean의 바에서 한 창녀를 이유 없이 패는 걸 본 라라는 한의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너의 증오를. 미움을 저 여자가 대신할 이윤 없어.
네가 세상에서 하찮게 느낀다면 그건 너의 자격지심에서 깨어나진 못한 것 뿐이야 네가 네자신을 기쁨과 행복의 결정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게 지금 상황에선 더 필요할 것 같아.
그렇게 해서 한과 라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한의 본명은 민선준이라고 했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성공한 미국의 대부호 한인회에서도 지명도가 높지만 그는 대수롭게 생각할 뿐.
아버지의 프랑스 지사장으로 와 있지만 그다지 신경을 쓰진 않는다.
jean의 부탁으로 원우는 그의 바를 맡게 되었고 원우는 라라가 레티시아의 죽은 날에 그들에게 온 것을 보고 레티시아의 환생이라 믿고 싶어했다.
-마리 앙투와네트의 외도를 루이왕이 알았을까?
-알았겠지.
한은 건성으로 대답한다.
-그럼 두사람을 모른 척해 주었을까? 아님 마리를 원망하고 질책했을까?
-둘 다일 수도 있지.
원우는 시계를 보았다. 돌아갈 시간이다.
-그렇겠지. 인간이니까.
서서히 사람들을 찾으러 가는 안토니오를 뒤따라 라라도 일어선다
-비가 올 것 같아.
라라의 긴 한숨에 원우는 해선 안 될 말을 한 것처럼 입안이 쓰다.
-서두르자, 빗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파리에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아.
원우의 어깨를 툭 치며 한이 앞서 발걸음을 재촉한다,
비가 오면 밍은 또다시 마음이 어두워진다.
슬픔의 파도가 일어 묻혀 있던 상처의 기억들이 그 뾰족한 침을 세워 라라의 가슴 이곳 저곳을 마구 할퀴어 대는 까닭에.
오늘따라 라라의 귀가가 늦다.
벽난로의 화덕을 뎁히고 따뜻한 수프를 끓이는 밍의 손이 떨린다.
제발, 비가 그치기를......
창문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들이 밍의 가슴을 조롱하듯 마구 북을 친다.
북치듯이 내리친다.
아니나 다를까...
차에 탄 순간부터 거센 빗줄기가 내려친다.
-별로 몸이 안 좋아.
-조금만 참아. 곧 도착 할거야.
라라가 가늘게 떠는 모습이 원우의 마음을 애처롭게 한다.
-무서워. 기분이 좋질 않어.
-라라, 내가 재밌는 얘기 해줄게.
라라는 동그랗고 젖은 머리칼을 헤치며 그를 쳐다본다.
-옛날에 이 세상에 더러운거 슬픈거 흉악한게 없던 맑고 고운 날들로 계속 되던 때에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지키던 엘프가 있었어.
그가 지나가면 꽃들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숨죽이며 끌어 안고 몰소리는 청아하게 울리고 싶어서 더 높이 물방울을 튕기곤 했지.
그 앨프가 어느날은 투명하고 빛나는 무언가를 보고 다가가니 그건 물방울 요정의 날개였어. 아름다웠지 날개의 무늬엔 에메랄드빛 선이 잔잔히 흐르듯 새겨져 있었어.
가지고 싶었던거야, 그 날개가!
그래서 해선 안되는 욕구를 떠올린거야.
...소유!
그 엘프가 그 물방울 요저의 날개에 손을 대는 순간에 하늘에서부터 먹구름이 몰려와 이 세상의 천연적인 빛들이 씻겨져 버리기 시작한거야. 세상이 퇴색된 회색빛이 되고 세상의 아름다움이 씻겨져 흘러갔지.모든 꽃들과 새들과 아름다운 소리들이 엘프에게 도와 달라고 소리쳤지.두려워진 엘프는 자신의 잘못을 신에게 빌었어.신은 엘프에게 무엇을 하겠느냐고 물었지.이미 더러워진 세상을 위해 무얼 할 수 있겠느냐고...엘프는 가만히 생각했지.점점 투명해져서 울고 있는 물방울 요정에게 자신안의 심장을 주겠노라고.
사랑과 순수와 따뜻함과 맑고 아름다움이 들어 있는 마음의 보석함을 줄테니 그 요정의 날개를 돌려 주라고 신에게 부탁했어. 신은 천둥번개로 엘프의 몸을 아주 천천히 녹여주기로 결정했지.금기를 어긴 댓가로 몇 천만년이 프르도록 고통을 느끼라고.
그후로 점점 가슴의 보석함에 틈을 내어 조금씩 세상의 맑고 아름다움이 번져 나가게 했어.
생살을 비집고 플러나오는 고통과 번개로 녹아가는 육체의 아픔을 찾아가며 엘프는 물의 요정에게 미안해라고만 했어. 물방울 요정들은 엘프의 뜨거움을 식혀 줄라구 비가 되어 내렸어. 그리고 맑고 투명하게 사라졌지.그래서 비가 온 뒤엔 밝고 투명하게 되는거래.그 엘프의 가슴속에 퍼져 나오는 것들이 무지개가 되어 이세상을 물들이는 거야.
라라는 원우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비가 오는 것을 두려워 하지마!제발
라라야,넌 아마도 그 물방울 요정의 날개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이란 엘프가 너를 탐내어 가지려다 네가 이렇게 괴로워하는 거겠지.
내가 그 엘프의 가슴이 되어주고 싶지만 난 더러워진 세상의 먼지일 뿐야.
파리에 도착했을 무렵엔 라라의 머리에서 열이 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니?
-일단 라라부터 침대에 눕혀야 해요.
원우는 라라를 안고 들어와서 침대에 눕히고 밍은 젖은 라라의 옷을 갈아 입혔다.
한은 음악을 틀고서 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한.라라의 체온이 39도야,
원우는 한을 부른다.
-해열제를 주사해야돼.내 차에 진료가방이 있을거야.
주사를 놓고 났을때 밍은 수프를 다시 뎁히고 있었다.
-약을 주사했으니 열이 내릴거야.
-와서 이것 좀 들어라.식탁에 앉았을때 그들은 아무말도 없이 수프를 먹었다.
-언제쯤 라라의 고통이 사라질까?
-세상의 빗줄기가 마르면...
-엘프 가슴의 보석함이 완전히 열려 물방울 요정의 날개가 날개짓하면.
침대에 누워 있던 라라가 일어난다.
-들었구나. 남의 얘기를 엿드는 건 나쁜 버릇인데?
한이 라라의 옆에 비스듬히 가서 누웠다.
원우는 서서 라라를 바라보며 장난을 쳤다.
-라라,우리 사막에 가서 살까?
-어린 왕자처럼?
-그래.가서 여우나 꼬셔서 여우 목도리나 팔면서 살자. 까짓거 !
대신에 여우 꼬시는 건 한 네가 해.벗겨놓은 건 내가 팔게.
-야,이 나쁜 자식아, 좋은 건 너혼자 다하려구?
이렇게 장난치고 있었지만 그들은 갸냘픈 라라의 숨소리가 가빠지는 걸 듣고 있었다.
그들 마음속에도 창문밖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밍은 공항으로 공항으로 갔다.
진욱이 온다는 전갈을 받았기 때문에.
가슴이 세세히 설레임으로 퍼져나간다. 반가운 애인이 오는 양. -진욱아, 여기야!
진욱은 갈수록 아버지의 모습을 닮아 간다.
-안녕하셨어요? 파리에 계신 줄 알았더라면 전에 왔을 때 찾아뵐 걸 그랬어요.
-파리에 온 적이 있니?
-반 년 전에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부탁하신 일이 있어서.
-어머니가 돌아가시다니? 그게 정말이야?
진욱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그랬었구나. 모르고 있었어. 밍은 기 한숨을 내쉬었다. 희비가 교차하는 감정으로 뒤섞여!
-아버지께선 안녕하시니?
-예 안부 전해 드리래요 그리고 이걸...
안주머니에선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조용히 쳐다보던 밍의 얼굴에는 화색이 번지다가 순간 놀라고 당황한 듯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진욱의 얼굴을 뻔히 쳐다보았다
편지에서 조그만 사진이 떨어졌는데 어머니와 젊은 여자가 함께 웃으며 찍은 사진이었다
놀란 밍은 얼른 사진을 주워 가방에 넣었다
순간적으로 본 그 젊은 여자는 낯이 익은 듯 했다
- 왜 그러세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아니야, 아무것도!
웬일인지 밍교수가 저렇게 처럼 당황 한 건 처음 보았다.
-근데 어떡하지? 내가 영국에 세미나가 있어서 오늘 떠나는데 일주일쯤 자리를 비울지도 몰라. 숙소는 안 정했지?
여기 주소와 내 집 열쇠와 차열쇠야. 그리고 세세한 것들은 네방에 메모해 두었다
-제 걱정말고 다녀 오세요.휴가 받고 온 거니까요.
-그래. 다녀와서 천천히 얘기를 나누자꾸나
밍교수를 배웅하고 돌아서면서 뭔가 석연치 않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생각일지도 몰라
파리의 반은 이방인이라고 했다
퐁네프에는 그저 추억을 심기 위한 관광객들과 산책으로 지친 발을 쉬어가려는 파리지엔들의 간이 카페테리아이다
나의 모든 걸 잃어버린 곳에서 나의 모든 걸 마치리라
이곳 퐁네프에서
라라는 카메라를 들고 있다가 한 켠에서 신문을 읽고 있는 동양 남자를 보았다
에너지가 넘쳐 흐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가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가 쳐다보았다
-ㅣ don't wanna take a picture. but for you! - I m not commercial...ok sorry!
굳이 모르는 사람에게 나의 의도를 구차하게 설명하고 싶지가 않다
그가 건네는 십불짜리 달러를 보았기 때문이다
? 돌아 뛰어가는 그녀를 보며 진욱은 멋쩍게 돈을 주머니에 넣으려다 엽서를 두장 샀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엔 아쉬움이 남고 책이라도 읽으며 커피를 마시려는 생각으로 뒷주머니에 손을 댄 순간 지갑이 없어졌다는걸 알게 되었다
관광도시는 관광도시군
속이고 훔치고 ...파리가 낭만의 도시라고?
걸어서 집에 들어가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는다
tv뉴스나 보며 시간을 보내야 겠군.
* *
원우의 바에는 오늘도 스티븐과 앨런, 미쉘이 자리를 잡고 있다
-Bonjour, mon ange 라라!
남자들로 가득한 바에는 오늘 유일하게 여자손님인 라라.
그러나 모두들 그녀를 좋아한다
-별다른 일 있니?
재털이를 갖다주며 커피를 건네는 원우의 눈은 따뜻하다
친구로서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라라를 편하게 해주는 그가 좋다
-배가 많이 고파 죽겠어.
버터와 잼을 갖다주는 원우보다 더 먼저 앨런의 빵을 가져다가 뜯어먹는 그녀에게 원우가 경고한다. - 내 손님들의 식사엔 제발 손대지마.
- 내 친구들인데,뭘
-스티븐 볼에 입맞출 때 얼굴이 화끈거려. 야성적이긴 해도 면도는 해줘,
주방에 있던 산드라가 뒤늦게 그녀를 발견한 모양이다.
-bon soir rara!
남자의 변심이 짜증난다는 산다라에겐 그의 개와 라라가 유일한 친구이다
-오늘 한 이탈리아인을 만났어, 그와 그 손녀를 찍어줬지
손녀가 얼마나 그를 잘 보살피는지...기분이 좋아.
그리고 paul이 또 지갑을 훔쳤어.30초만애..지갑을 돌려주긴 해야 되는에 좀 건바져서 생각중이야,
원우는 새처럼 지저귀는 라라를 본다
달콤한 사탕같은 매력이 있다.
-내일부터는 한의 연극일을 도와줄거야.
- 그 녀석이 하는거라면 뻔해.퇴페적이며 건조하다는 것으로 일축해버린 그는 다른 손님의 맥주잔을 치운다.
오랜 친구지만 너무나 다른 그들.
-한은 버드와이저를 좋아하고 미국식 커피를 마셔.
하지만 솔직히 난 와인을 좋아하고 에스프레소가 입에 맞아.
-하지만 솔직히 맥주는 버드와이저가 맛있는걸.
문을 열며 들어서는 한은 걸레세례부터 받아야 했다.
-저것봐!
-hi,my heart!
-hi,honey!
원우는 그래도 늘 한에게 버드와이저를 건넨다
-한이 늘 맡겨둔거야
늘 그렇게 얼버무리지만 최고의 친구를 위해 항상 원우가 사다놓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오늘은 한 통도 제대로 안찍혔군.
라라의 카메라를 유심히 살피던 그는 라라에게 대본을 건넨다.
-백지쟎아?
-그냥 배우가 하고 싶은대로 하는거야.
춤을 추든,담배를 피든,섹스를 하든 외국어로 지껼여도 상관없어 -정말 한다운 연극 대본이야. 하지만 정말 심한데?
-배우가 라라가 될거니까.라라를 인형이나 마네킴으로 만들고 싶진않아
- 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 구애인가!라라의 입맞춤은 한이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그의 입술에 닿았다
-한.내 입술을 함부로 훔치지는 말아줬음 해. 이 바람꾼
대꾸도 하지 않은 채 딴청을 떠는 그에게 기댄다.
-굉장한 대본이야. 하지만 출연료 봐서 결정하지
라라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한을 바라본다. -내일 날샐 때까지 뜨겁게 사랑해 줄게.배가 전복될만큼
-한은 해낼 수 있을거야 근데 어떡하지? 난 그날인데...
원우는 결국 한에게 한 반을 먹인 라라를 꼭 뒤에서 껴안으며 웃어댄다 -멋졌어. 나의 보물
다시 야구캡 모자를 쓰고 라라는 바를 나선다
집 현관문이 열려 있는 것에 진욱은 긴장을 했다.
잠시 담배를 사러 나간 사이에 집도둑이라니...소매치기에 좀도둑이라!
무엇이라도 집어들어야겠는데 마땅한 게 없엇다
부엌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릴 듣고 갔더니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고 있는게 아닌가!
-Hey, you?
-what are you doing here?
깜짝 놀라서 돌아보는 도둑은 모자를 눌러쓴 아까 그 카메라를 가진 그녀였다
-여기서 뭐하시는 거에요?
-나원참, 도둑이 주인에게 뭐하냐라니?
당황하니 원초적으로 한국말이 나온다
-당신은 이집 주인이 아니에요1
분명한 한국말이었다.
야구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어던진 그녀는 동양인,아니 한국여자였다
약간은 이지적으로 생겼지만 ...그보다 낯이 익다
어디선가...꼭 본 듯한!
-이...은...영씨?
-아뇨,전 라라예요
너무나도 태연하게 부정하기에 조금 주춤했다
-나 기억안나요? 왜 향수를 내게 선물하고 호텔 스카이 라운지에서 나란히 앉아서 파리야경을 보았쟎아요
-누구시죠? 기억이 전혀 안나는데요
-반년 전에 같은 비행기, 같은 영화관 옆에 앉아서 본 한진욱이란 남자 기억 안나요? 그럼 지오라는 하얀색 화이트 테리어 강아지는요?
-사람을 잘 못 보신 것 같네.그리고 그쪽이 한국말을 하지 않았다면 내 펀치를 맞고 쓰러졌을거야. 여긴 내 보호자집이니까.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딸은 아니고,무남독녀라 조카가 있을 린 없고 그사이에 양녀라도 두신 걸가?
그러고 보니 아까 그 사진 속의 요자는 이수아이었다
어머니는 어떻게 이 수아이란 여자를 아셨던 걸까?
좀 머리가 복잡해졌다
-난 밍교수님의 제자이자 우리 아버지와 친구분이신 밍교수님이 나의 대모세요,
쇼파에 털석 주저 앉으며 맥주를 마시는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OH,MR. NOBLESS Jr?
- 내 이름은 한진욱이에요
- 난 라라예요. 나와 닮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 보죠/
- 이수아이라고 이혼수속중이라고 했죠.
이수아.
라라는 가만히 되뇌였다낯설지 않은 이름처럼 느껴졌다. 잃어버린 기억의 한 조각일까/
-먹을 거 좀 가지러 왔을 뿐이니까 부담갖지 말아요
- 내 지갑은 돌려 주지 그래요?
오만스럽게 맥수 뒤끝의 트림까지 하는 거침이 없고 내숭없는 그녀가 진욱에겐 낯설다
-소매치기 당한 줄도 모르면서 넋놓고 책읽는 사람에겐 당연한 결과죠
다행히 내가 아느 소매치기여서 찾은 거에요
지갑을 꺼내 진욱에게 던진다
-그런 식으로 매사에 변명하나요?
-후회되네요 고맙다는 말을 못 배운 남자에게 애써 찾아준게
우연히 사진을 찍다 본 것뿐이에요 그리고 그 지갑 찾느라 500frf썼어요
지갑에서 100달러를 꺼내 라라에게 건넨다
-쉽네요 노블레스 주니어에겐 .난 500프랑을 벌기 위해 열 시간을 일해요
그러니까 진욱씬 나에게 열시간을 갚아야 해요
내일 아침 열시에 오겠어요.
모자를 쓰고 카메라를 챙겨 나가버리는 그녀에게 미처 거절도 못했다
-이수아씨일 리 없어 저런 망아진 아니었으니까
침대에 털썩 누웠다 눈이 스르륵 감겼다 그녀의 엷은 미소가 날 감싼다
-이수아?
-응 반년쯤이면 내가 프랑스에 온 때와 비슷하쟎아
-그럼 그게 너의 진짜 이름이야?
-게다가 이혼 수속 중이었대.왠지 더 불안해져. 그냥 잊어버리고 싶어.
라라는 가늘게 떨면서 까짓거...담배에 불을 붙인다
-그래,잊어버려. 라라는 라라일 뿐야.
라라가 이수아이라면 그리고 그이름을 잊어버리고 싶어했다면 그건 라라이고 싶어서였을거야.나비가 되기 위해서 번데기 과정을 견뎌야 하듯이. 이수아는 번데기 관정이었을거야.원우는 그렇게 라라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해 주지 않았다 그럴 필요까진 없을 거 같아
그는 한진욱의 등장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그것으로 인해 라라는 필연적으로 돌아보지도 않아도 될 번데기였을 과정을 재통과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느낌 때문에.
그보다 라라가 더 이상 라라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어서,
-우리 춤출까?
그보다 더 한 위로는 라라에게 있을 수 없다
한쪽에서 책을 읽고 있던 한은 원우의 눈빛을 읽었다
음악을 틀고 진료 가방에서 신경 안정제와 수면제 주사를 준비한다
신나는 음악들 사이<i will suvive&barbie girl&ㅑ can't take off your eyes>를 틀곤 한다
음악이 흐르는 사이 라라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라라.
힘없이 한과 원우를 쳐다보는 라라의 눈은 젖어 든다
-아이,짜식...무리하게 감성을 자극하니 피가 폭발하지 자,말괄량이 아가씨 나한테 좀 기대어.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아니 챵백해져서 축 늘어져버린 라라를 안았다
침대에 눕히고는 원우가 그녀에게 신경안정제를 주사했다
-원우,노래해줘.
-아유,다 큰 아가씨가 아직도 잠들 때 자장가가 필요해요?
라라는 커다란 곰돌이 인형을 안고 눈을 감았다
한은 섬마을 아기를 불러준다.
자신이 어릴 적 엄마가 불러주던 노래.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고 라라의 긴장된 몸이 풀리기 시작한다 -잠들었어.
원우는 쇼파에 털썩 누워버린 한에게 속삭인다
-너 알고 있었지? 라라의 진짜 이름이 이수아인거?
-그게 뭐가 중요해?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어 안토니오에게 던진다 -너의 이름이 원우인 것처럼 나의 이름이 한인 것처럼 라라의 이름이 이수아인거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거야
-원우야,난 가끔씩 라라가 농담으로 자기가 천상에서 내려온 여자라고 할때마다 난 그 말을 믿고 싶어져 아님 정말 그 물방울 요정이든가.
원우는 라라의 버릇처럼 맥주에 붙어 있는 라벨을 손톱끝으로 벗겨 낸다
-오랜만이야,네가 원우라고 불러 준거. 너도 라라한테 전염됐니?
혼자 술 마시다가 내자신을 쳐다보면 네가 하는 것처럼 그렇게 맥주 라벨을 벗기고 있는거야. 우습지 않냐?
-라라가 우릴 길들이는 거야.
-그럼 우리가 여우야? 하긴 보리술 좋아하는 거 보면. 근데 넌 꼬리 어디다 두고 다니냐?
-너 맥주값 되느라고 애초에 팔아 먹었다 임마 넌?
-너 콘돔값 되느라고 한 털 한 털 뽑다보니 대개 알몸뚱이가 되어서 소세지 가게에 팔아 먹었다 왜? -그거 나한테 팔지. 여자들이 좋아할텐데.
-뭐, 임마? 어휴 저런 저질이 내 친구라니!잠이나 자
원우는 한에게 쿠션을 던지며 서로 밀어내듯 잠을 청했다
인기척에 놀라서 눈을 떴을 때 너무 놀라 넘어 가는 줄 알았다.
라라가 침대 시트를 들추며 날 쳐다보고 있는게 아닌가!
-와우,건강한 남자네.주인보다 먼저 일어나 반길 줄 알고.
팬티만 달랑 입고 있는 나의 자연적인 아침의 발기 현상에 감탄하고 있는 라라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무슨 여자가 부끄럼도 없이.
-커피 ?차? 아니면 맥주?
-커피.
-아침 10시에 오겠다는 말 잊고 있었어요? 그리고 빨리 커피 끓여요
빚 갚아야죠
커피를 마시면서 라라를 찬찬히 쳐다 본다
-밍교수님과 어떻게 되는 사이예요?
-저의 보호자,날 사육하고 있는 조련사,차 끓여주는 맛에 날 데리고 있는 차 중독자,나의 미용사,나의 소꿉놀이 할 대 엄마역 하는 거 좋아하는 친구,남자 기피증있는 거 티 안 낼려고 나랑 친 한 척 해서 레즈비언인 척 하는 내숭쟁이...더해 드려요?
-하하하,아뇨 충분해요.아니 밍교수님이 어떻게 라라같은 말괄량이와 사는지 궁금하네요
길게 구슬구슬한 컬된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여자.
진욱이 알고 지내는 여자와는 틀렸다
-열시간동안 어떻게 해주면 빚을 갚는거죠?
-나의 동반자가 되어주면 돼요.
-동반자? 어떤 의미의?
같이 다녀주면 되죠.국어사전 필요한 나인 아니쟎아요. 딱 열시간동안이면 되요.스웨터에 청색 아구모자 레깅스에 운동화. 스포틱하고 다이나믹한 분위기.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대요.그거 알아요? 맑고 화창한 파리를 본다는 건 행운이란거.
커피를 마시면서 가메라의 렌즈를 닦는다
거침이 없다 담배를 입에 물고 설거지 거리를 챙기는 라라와 수아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진짜 이름이 라라예요?
-밥값 해야죠?
수세미와 고무장갑을 내민다
-날 설거지를 하라구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본다
우거적거리며 사과를 먹는 그녀.
-몇살이냐고 물어보면 실렌가?
-설겆이 다했어요? 그럼 나가죠? 아.잠깐만
라라는 탁자위에 있는 핸드크림을 짜서 손등에 묻힌다
그러더니 진욱의 손을 덥석 잡아서 크림을 발라준다
-남자치곤 손이 부드럽네. 내가 설겁이 하는 사람을 위해서 세제에 손보호제가 든 걸 사놔서 그런가? 하여튼 이건 서비스에요
하얗고 가느다란 손엔 은색 펄이 유난히 은은하게 빛나는 매니큐어가 발라져 곱게 손질된 손톱은 감싼다. 보드라운,,,,그녀의 손촉감이 싫지 않다 -이렇게 재미없고 딱딱한 책은 질색이야
-어떤 면에서?
-일단 겊표지가 말예요 각이 지고 날카로워 손이 베일 것 같쟎아요
그런데다가 혼자서만 나불나불 말하는게 맘에 안들어.
-이야아,날씨 좋다 그죠?
고개를 끄덕이는 진욱의 얼굴을 바라본다,
깎아놓은 조각상같은 미남형. 자신만만해 하는 표정.
-첫번째 갚아야 할 빚은?
센느강변으로 먼저 뛰어간다.
-제가 잘 아는 화가인데 요즈음 벌이가 신통치 않아요. 가서 모델이 되어줘요 백프랑이면 되니까.
한쪽켠에서 화구를 챙기는 이십대 중반의 프랑스인에게 다가가서 양볼에 입맞춤인사를 하고 진욱을 소개한다
-Bonjour. vous allez bien?
알렉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화가에게 귓속말을 뭐라고 나누더니 그는 아에게 책을 보고 있음 된다고 했다
-꼭 이걸 해야 되요?
어린애처럼 그러지 말아요. 어차피 좋은 일인데. 이따 봐요.
-어디 가는데요?
-나도 내 밥값을 해야죠.
라라는 퐁네프 다리에서 다정한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준다
알렉스의 말에 의하면 10유로를 받고 헌상해서 집까지 보내준다고 한다.
-She is sweet. isn't she?
알렉스는 슬쩍 나에게 말했다.
책을 삼분의 이정도 읽고 있었을 때 그는 그림을 끝낸다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이었다
좀 어색했다 내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게.
이십 유로를 건냈을 때 알렉스는 비가 오지 않는 것에 감사하라고 했다
왜냐고 물었을 때 그녀가 눈부실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둘둘 말려진 또 하나의 그림을 라라에게 건넸다
-그건 뭐에요? -오늘 빚을 갚으면 돌려드리죠.
시계를 보던 그녀는 내 손을 잡더니 마구 뛰었다
그곳은 소르본 대학의 한 강의실이었다
한참 <삶에 대한 재조명한 영화의 삶>이라는 것에 토론이 열띠게 일고 있는 강의실이었다
한 교수가 학생들에게 삶이 무어냐고 물었다
-우연히 길을 걷다가 열려진 창문 사이로 한 노파가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보았어요
풀어헤친 빛바랜 브라우스 사이로 늙어 주름져서 쳐진 젖가슴을 가끔 훑으며 엷게 웃는 모습 그러다가 긴 한숨을 내쉬며 돌아누운 그 노인의 헝클어진 머리 끝에 앉은 잠자리. 난 아마도 그때 하나의 단편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했어요
새벽의 어스름한 여명 사이로 일을 나가기 위해 해가 지는 광경을 쳐다보며 잠든 노파. 비틀어진 빠과 엉겨붙은 싸구려 와인 한 병으로 행복한 꿈에 이를 수 있는 현실. 그게 영화속의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라의 한 마디는 그 학생들에게 더 진원우 논쟁의 제지를 던졌다.
열심히 그 FORUM에 동참하는 모습이 진지했다
-이제 나가야 해요
나지막한 목소리로 살그머니 날 잡아끌어 강의실 밖으로 인도한다-재밌지 않아요?도강하는거.
휘파람 소리를 내며 교정을 걸어나가는 그녀를 알 수가 없다
모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진욱씨.뛰어야 해요 저 버스를 잡아야 하니까
뛰고 ,또 뛰고 라라는 하루종일 무언가를 쫓는다
우리가 내린 곳은 파리 13구의 중국인 거리였다
-PHO라고 하는 베트남 국수 먹어봤어요?
-한국에도 있어요
-한국보다 더 맛있대요.여기가....
pho14라는 간판이 걸려진 음식점에 들어가 그 종업원과 인사를 나눈다그 종업원은 이미 라라가 무얼 원하는 지 알고 있었다
-숙주랑 여기 향풀이랑 레몬이랑 고추랑 피망 소스를 넣으면 ebldy.
라라는 매운 듯 호호 불어가면서....
-어때요. 든든하죠?
그뒤에 팥과 코코넛이 들어간 쥬스를 먹으며 행복해 한다
-제가 어릴 때 단팥을 너무 좋아해서 별명이 팥쥐엿어요
아,...단팥이 든 팥빙수 먹고 싶다.
라라의 눈은 젖어들고 있었다.
향수 . 자라온 곳에 대한.
-우리 영화 보러 가요. 제가 아는 조그만 영화관에서 철 지난 영화를 1유로에 볼수 있거든요.얼른요그녀는 퐁피두 센터 지항의 영화관으로 나를 데려간다.
<THE SWEET NOVEMBER>
-우리가 볼 영화입니다.짜짠!
우리가 이미 본 것이라고 말한 뻔 했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다시금 라라라는 여자 옆에서 나란히 보고 싶어져서.
?콘을 한아름 사서 먹으면서 영화 속 주인공이 웃을 때 웃고 울 때 우는 모습이 천진난만했다. 이수아는 무덤덤히 보았는데....
눈이 빨개진 채 극장을 나선 그녀는 모자를 푹 눌러쓴다.
-자 이젠 뭐하죠?
-진욱씨 배멀미 안하죠?
-배멀미 안하는데.알았어요 바토 무슈 탈려구요?
라라는 파리 외곽의 어느 bar에서 날 데려간다
Sunset's new Bridge
-hi mon coeur tu m a manques.
반기며 인사하면서 포옹을 한다
동양인과 외국인 사이의 이국적인 모습의 주인인 듯 했다
-라라 애인이군요. 백 열두번째.
-네? 아니요 그저 우린...
-아니야 그는 나의 AUJOURD'HUI일 뿐야.
바 안의 모든 남자들은 라라와 포옹을 하고 볼에 입맞춤을 나누며 안부를 묻는다
-Hey,guy...you know ? rara is rose.our angel!and our love. don't touch her!
라라는 만인의 애정이 담긴 눈빛을 받으며 피어나고 있었다
-한진욱씨죠? 이원우라고 합니다
-네 원우씨!
-라라가 쳐놓은 덫에 걸려 버린 셈이네요
원우가 건네주는 맥주 한 잔을 벌컥이며 바삐 오가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라라를 보며 무엇인가 마음속에 묘한 질투감 같은 게 일었다
그건 아마도 오늘 하루 그녀와 함께 하면서 남자라면 느끼는 소유의식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끔씩 원우를 쳐다보며 환한 미소를 건네주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단 한 번의 시선도 허락하지 않았다
아마도 나에게 무언가의 구애를 하라고 은근히 나를 조종하는 것 같아 애가 타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였다.
-원우 오늘 나를 위해 선장이 되어 주면 너무나 좋겠어.
-기꺼이.
그런 원우를 보며 마치 내가 들러리가 된 것 같아 더욱더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했던 건 오히려 나였다.
누군가 문을 열고 한줄기 바람을 몰고 들어왔다.
라라는 더욱더 환해지면서 그에게 안기며 볼에 무한한 기쁨의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
-라라,또 하나 엮었군.
귀공자의 티가 흐르는 그는 나에게 악수를 건네며 자신은 한이며 라라의 물질적 정신적 지주라고 말하였다.
-그건 아니지.요즘 내가 자립해야겠다고 생각을 많이 해. 가끔 나 몰래 가방에 얼마간의 돈을 넣어주는 밍이나 무엇이든 내몫까지 계산하는 한이나 원우를 보며 나의 사진이 먹고 살기 위한 밥벌이로 전향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단 말이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해야지.밥을 위한 예술은 의미가 없어.
우린 단지 투자라고 생각해. 안그래? 원우야.
한은 껄걸 웃으며 라라의 허리를 꽉 껴안는다.
도대체 저들에게 있어서 라라는 무어란 말인가.
어떤 관계에 있는 여자인지.
내 눈앞에 보이는 라라는 옛날에 보았던 서부의 바에서 웃음을 파는 여자처럼 보였다.
흘깃흘깃 나를 보면서도 한에게 기대어 웃음을 흘리는 라라는 이미 이런 나의 생각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하다
-징그럽게 격식은...맥주나 줘.
라라는 오디오 볼륨을 높여 <Barbie Girl>에 맞춰 춤을 춘다.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방지축이죠. 우린 오누이와 같아요. 생일이 똑같거든요.
-저도 제 어머니와 생일이 똑같아요. 지금은 세상에 안계시지만.
약간 불그스레해진 얼굴로 라라는 원우에게 기대어 나를 바라본다.
-진욱씨 참 매력적이야. 그렇지?
-많이 듣던 이야기인데.이거?
라라는 그런 진욱을 보며 살포시 웃는다.
한의 어깨에 기대어 노래에 맞추어 살짝 몸을 흔든다.
-웃는 게 매력 있어.껴안아 주고 싶을 만큼 한…나 오늘 배 타고 싶다.
이사람 생일이 우리랑 똑 같은 거 있지.
-진짜?
-라라씨 어떻게 내 생일을…
-지갑 검사 좀 했죠. 애인 얼굴이 이쁘대요.
가게문을 닫고 한과 라라는 보도블럭을 번갈아 가며 깡충깡충 뛴다,
-여기에요.
길다란 붉은 색 페인트칠이 된 배였다,
-배에서 살아요?
-네 그래서 편지 같은 건 못 받아요
대리석과 안정감있는 고급스러움.
모던하고 단아한 인테리어.
라라는 향을 피운다.
향을 피우는 여자…무언가 신비감이 감돈다.
어떤 간절한 것을 기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 단아하다.
라라는 한이 대접할 것들을 찾는 것을 보고 밖으로 나간다.
배 난간에 서서 강가를 바라보며 담배를 입에 문다.
-무슨 생각하니?
-그냥 이런저런 생각. 내가 또 흔들리면 어떡하나 해서.
-에릭하고의 일처럼.
라라는 피식 웃으며 연기를 내뿜는다.
-라라, 마음이 가는 대로 해. 뭐가 어려워?
어차피 진욱은 떠날 텐데.
-영화에서처럼?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주인공처럼 살고 싶어하쟎아.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야. 자유로울 순 없지만 자유롭길 바라는 것처럼.
-그래,네마음은 네가 제일 잘 아니까.
문이 열리는 소리에 둘은 쳐다 본다.
-이야, 라라는 틈만 주면 바람을 피우는 거야?
-난 만인의 연인이니까. 당연한 거 아냐?
원우는 샴페인을 한 잔씩 부어준다.
-자, 건배하자. 새로운 동시 출생자를 위해.
밤의 젖은 바람에 촉촉히 물기가 앉은 라라의 머리칼이 간지럽힌다.
-진욱씨가 태어났을 때 어땠어요?
-그냥 어머니 아버지가 간절히 기도하셨다고 들었어요.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When a man loves a women>이 흘러나온다.
-자, 오늘 하루만 내 파트너를 양보할게요.
난 가만히 라라에게 다가간다.
-고마워요. 오늘 나의 사랑스러운 파트너가 되어 주신 거 이제 진욱씬 자유에요.
-나도 즐거웠어요. 오랜만에 느껴보는 한가로운 휴가였어요.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팁이에요. 이만하면 나도 괜찮은 남자죠?
음악의 소리가 줄어들즈음 모두 선상에 앉아 센느강 변의 야경을 본다.
-진욱씨 그거 알아요? 파리에는 32개의 다리가 있었대요.
퐁네프는 그중 9번째 다리라는 말도 있고 새로운 다리라는 말도 있어요.
실제로는 젤 오랜된 다리지만…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에겐 늘 새로운 다리일 거 아네요?옛날에는 여기 다리마다 조그만 집들이 있었대요.파리의 다리마다 해뜨고 지는 모습들이 다 제작기 틀리거든요.
그들은 매일 해뜨고 지는 걸 다리에서 보았겠죠.
하지만 그중에서도 퐁네프 다리가 제일 멋있어요. 일몰 말이에요.
-그래서 아까 해질 무렵 홍네프에 가자고 한 거였어요?
난 우연인 줄 알았는데. 정말 인상깊었어요. 물결 치는 강물에 태양이 한나절의 더러움을 씻고 모든 것들을 지우면서 세상의 장막을 걷어가는 게 꽤 한동안 해가 뜨고 지는 모습들을 본 적이 없었죠.그럴 여유가 허락안된거라면 핑계?瑁嗤? 어쨌든 고마워요. 라라!
-진욱씨에겐 추억이 될 곳이겠지만 나에겐 일상의 삶터인걸요.
-유유히 흘러가는 배를 타고 유람하며 사는게 사람들의 바람이라던데.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겠지만 매초마다의 변화를 더듬을 때도 필요한 것 같네요.
-바로 그거에요. 사람을 즐기며 살아가는 거.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는 순간 모든것들이 가능해 지는 거니깐요.
-라라씬 늘 살아 있다고 느끼는 사람 같군요. 해가 뜰 때처럼.
-해가 뜨면 지게 마련인걸요.
라라는 나의 팔짱을 끼고 살짝 머리를 기댄다.
심장이 뛰는 걸 느끼면서 하나하나 지나쳐 가는 우리보다 더 오래된 다리들을 세기 시작했다. 마치 그 오래전 누군가 했을 일을. -안녕히. 그리고 이거 집에 가는 길이 외롭지 않을 거에요.
아까 말아서 리본을 맨 도화지였다.
돌아오는 길에 펴 보았다.
라라를 지켜 보며 웃는 나와 그녀의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난 때때로 샬리오츠 테론처럼 영화속 주인공처럼 살아 숨쉬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그리ㅜ었다.
그 그리움을 라라가 이해한 건지.
도화지 위로 여명이 비쳐온다.
여명 사이로 해가 뜨고 라라의 부서질 것 같은 웃음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33년 만에 그에게 받은 편지가 고작 아들을 위해 쓴 편지라니.
그것도 자신의 아내를 위한 마지막 소원을 들어 주기 휘한 일이니 이해해 달라는…
라라를 위해선 그럴 순 없다.
피붙이 하나 없이 혼자 살아온 세월에 라라가 찾아왔다.
나에게 여자 라는 마지막 부분이 모성애를 자극하며 안겨드는 다 큰 여자아이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한상진 올시다.
-…장유밍이에요.
-장유밍? 오랜만이군.
-편지 잘 받았어요.
-그래.내가 염치 없이 이제 와서 그런 부탁을 해서 미안합니다.
-그런데 말이에요. 그 부탁을 들어 드릴 수 없게 됐군요.
-찾기가 어려운거요? 아님 벌써?
-제게 뒤늦게 양녀로 들인 딸이 있어요
-그런가 …몰랐군.
-근데 그 딸이 한 사장님이 찾으시는 사람이에요.
-……
없었던 일로 하겠어요. 그 아이에게도 진욱이에게도 옳은 일은 아닌거 같아요.
-유밍, 아내의 마지막 유언이요. 날 이해해 주면 안될까?
-33년전에도 그러셨죠. 당신을 이해해 달라고. 네 그때는 이해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도 그러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도 그 아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제뜻은 충분히 전한 거라 생각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로 상진씨와 부딪히는 일은 없길 바랄게요. 그럼 건강하세요.
-잠깐만 유밍, 날 위해 다시 한번만 생각 할 순 없는 건가?
내 평생에 가장 아프고 후회되는 부분이요. 유밍에게서 해선 안될 짓을 한 거 알고 있어.
그러니까 날 위해서가 아니라 진욱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나 같은 사람이 아니라 그 아이에겐 따스한 가슴을 심어주고 싶소.
-그때의 일은 잊었고 내 인생에 없는 부분이에요.
-제발 유밍.
-내게 라라마저 빼앗아 가려고 하는 군요. 민정도 너무 하네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군요. 어떻게 자식을 위한 답시고 그런 엄청난 일을 꾸미려 했을지가 치가 떨리네요.
-민정이 그때 일을 알고 떠났소.
-끝까지 민정만을 위하는 건가요? 나는요? 내 마지막 희망까지 가져가버리면 난 어떻게 살란 말인가요? -진욱이가 있지 않소. 우리의 희망.
-내게 그때의 진욱은 죽었어요.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냉정한 사람.
가슴이 아직도 떨린다.
33년 동안 매일밤 몸부림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라라까지 그 슬픔을 안고 살도록 하게 하려 하다니.
이제 진욱도 알아야 한다. 한 사람의 깊은 슬픔의 무게를.전화가 끊어지고 상진은 멀리 했던 담배에 손이 갔다.
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이것으로 33년 동안 끊었던 인연의 고리를 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3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가게 되었다.
-우리의 하나뿐인 5대 독자를 살리는 일이다.
아버지는 강경하게 나왔다.
진욱이가, 한살 배기 진욱이가 몹시도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소아 백혈병이라고 했다. 민정도, 나도 골수 검사가 일치 하지 못했다.
형제도 없는 진욱에겐 더없이 가망성은 힘들었다.
-한번만 더 장유미을 찾아 가거라.
아기를 더 이상 갖질 못하는 민정에게 기대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어디 있는 지조차 모릅니다. 그리고 그건 안됩니다. 또다시 그런일을 해선 안된다구요.
아버지는 주소를 들이밀었다.
-네가 갈테냐? 내가 갈까?
1년,1년 가까이 되어 장유밍을 찾아 갔다.
지방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그녀앞에 섰을 때 난 무기력 해질 수 밖에 없었다.
-미쳤군요. 상진씨.
-날 이해해줘. 아들이 죽어 가고 있어. 그 아일 죽게 만들 순 없쟎아.
장유밍 앞에서 너무 미안해서 내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무릎을 꿇고 울고 말았다.
l *
그때 내게 사랑이 무엇이었을까?
사랑했던 눈물 앞에서 처음으로 가슴에 묻은 이름의 주인 앞에서 나는 무너지고 말았다.
가끔씩 과일을 사다 주며 내 배를 만지던 상진을 보며 행복했다.
진통이 시작 되고 분만실로 들어갔을 때 내 손을 꼭 잡아 주던 상진.
-산모냐 아기냐를 택하셔야 겠어요.
하혈이 심하다던 말에 나간 의사는 내 배에서 나온 아기를 위해 정성을 쏟앗다.
나중에 알았다.
상진은 자신의 자식을 위해 아기를 선택했고 나는 버렸다는 걸.
그 일로 인하여 나는 여성의 상징인 자궁을 잃어야 했다.
진욱이를 살리고 같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살자던 그의 말도 사라졌다.
또한 마지막으로 그가 나의 용서를 구하며 이해해달란 말과 함께 알려준 진실은 나로 하여금 여자라는 성자체를 저주스럽도록 했다.
밍은 마지막으로 병문안을 온 상진에게 말했었다.
-장유밍은 죽었어요. 당신의 선택처럼.
그래. 33년전에 이미 장유밍은 죽은 거야.
밍은 또다시 울어야만 했다.
밍이 돌아왔다.
돌아오고 나서부터 밍은 라라의 배에 들르는 횟수가 잦아지기 시작했다.
이 강아지는 또 어디서 데려온거야.
밍이 돌아오고서 꼬리를 흔드는 하얀색 강아지에 놀라서는 대뜸 물었다.
-GEO라고 진욱씨가 데리고 온 거래요. 그런데 이 녀석이 처음 날 보더니 오래전 잃어버린 주인은 만난 것 마냥 펄쩍펄쩍 뛰쟎아요.반년전에 진욱씨가 파리에 왔을 때 만난 여자가 두고 간 거래요.근데 그 여자가 나랑 꼭 닮았다나요? 이름이 이…수아이라고.
-밥은 줬니?
-아뇨, 대신 밥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었어요.밥을 잘 주는 사람두요.
라라는 지오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질 않았다.
귀염둥이로만 컸던 지오에게 자신의 먹이를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건 크나큰 부담이었다.
-그렇게 쳐다 보지 않아도 안다구요.
-책임 지지 못할 지오를 왜 데리고 있는 거니?
-그렇다고 가기 싫어하는 놈을 억지로 내밀 순 없쟎아요. 이녀석을 아무리 내쫓아도 금방 되돌아 오면 이 놈도 뭔가 생각하고 결심한 바가 있나 보죠.나를 선택하고 나서의 대가를 치룰 각오가 되어 있던가…
해가 지고 있었다.
-곧 해가 질 거에요. 나가야겠어요.
-서둘지 말아라.아직도 뜨거운 햇살이 숨을 막히게 하쟎니.
-하지만 해가 지고 있단 말에요.
-해는 오늘도 지고 내일도 진다. 하지만 오늘 저 숨막히는 뜨거운 햇살 아래서 기다리다 병이라도 나면 넌 영영 해가 지고 뜨는 모습을 보지 못한다.
대신 오늘 차를 끓여라.
밍의 무표정한 모습에서 라라는 못마땅하듯이 카메라를 내려 놓는다.
-밍 날 딸처럼 대하지 말아요.
차주전자를 올려 놓으며 라라는 나지막이 말했다.
-차가 그다지 진하게 우러나지 않았구나
차를 들고 창가로 가는 밍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해가 지는 구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카메라가 탁자를 할퀴고 지나가는 소리와 문 닫히는 소리를 들었다.
-네가 뭐라든 넌 나의 일부다.
라라는 카메라를 들고 계속 퐁뇌프를 서성거리다가 돌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오늘 따라 사진을 찍어 주고 싶은 사람들의 표정을 찾지 못한다.
-라라,저녁 늦게 비가 내릴 것 같아.
퐁네프의 집시가 걱정스레 그녀에게 그의 타로점 결과를 말해 준다.
-고마워. 집엘 가야겠어. 피곤해져서.
길을 따라 걷다가 진욱이 머무는 밍의 집을 우연히 쳐다 보았다.
밍이 오고나선 한동안 진욱을 보지 못했다.
밍이 논문 정리하는 일을 맡겼다고 했고 그는 오래간만에 자신의 전공을 찾아서 열심히라고만 전해줄 뿐.
-그러니 내 집에는 얼씬도 하지 말어. 만약 그 약혼녀라도 아는 날에는 난 오랜 내 두제자를 잃게 될 것이니.밍의 단호한 엄포 때문에 열쇠조차 빼앗기고 말았다.
그래도 라라는 무슨 물건이든 잘 잃어버리는 자신의 버릇을 알기에 스페어 키를 따로 준비해 두었다.
밍은 지금 라라의 배에서 떠나 쟝을 만나러 리용으로 갔을 것이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얼굴이나 보러 가야지.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갔다.
쇼파에 누워 있는 그가 보인다.어질러진 서류들…자료들…
그는 지쳐 있었던 것 같다.
항상 무언가를 쟁취하고 해내어야 하는 욕망 위해 달리는 엘리트-노블레스.
자는 모습이 평온하고 천진난만해 보였다.
그의 약간 헝클어진 머리칼에 손이 간다.
부드럽다.
얼굴을 갖다 대어 향기를 맡는다.
좋은 냄새.
그의 이마에 가만히 입을 대려는 순간 그가 눈을 떴다.
-Bonjour,라라 몇시에요?
-8시 30분이에요.
-구름이 꼈나 보죠? 해가 떠서 어둡지 않을 텐데.
-저녁 8시 30분이라고요
한진은 벌떡 일어난다
자다 일어난 부시시한 모습이 귀여웠다.
화장실로 달려가서 양치질을 하고 샤워를 하고 나온다.
하얀 남방이 잘 어울린다.
-그만 가봐야겠어요. 어떻게 지내나 보러 온 거에요. 끼니 거르지 말아요.
밍은 내일 모레쯤 올 거에요.
진욱의 두손이 그녈 번쩍 안아서 쇼파에 눕힌다.
그리고 그녀 위에서 가볍게 웃더니 바로 옆에 누워 그녀를 쳐다 본다.
-내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 줄 알아요?
그녀의 보드랍고 하얀 얼굴과 갸냘프지만 곡선미가 예쁜 어깨.
그리고 크지는 않지만 작지고 않은 봉긋한 가슴.
-이러지 말아요. 밍이 알면 난 그날로 배에 갇히는 신세라구요.
일어나려는 그녀를 꼭 껴안는다.
-잠깐만 이러고 있어요.라라씨를 안고 잠깐만 있을게요.
나 보고 싶었죠? 그래서 밍교수님이 가자마자 온 거쟎아요. 궁금해서.
라라는 두근두근 뛰는 가슴을 억지로 자제하려 했다.
-진욱씨 우리 이러지 않기로 했죠? 우리 좋은 친구 아니던가요?
-거짓말. 내 이마에 입맞추려 해놓고. 이렇게 가슴이 뛰는데.좋은 친구 사이에선 그렇지 않다는 거 알아요. 나 바보 아니에요
라라가 이수아씨든 아니든 간에 참 보고 싶었어요 나로 하여금 보고 싶게 만든 사람은 없었다구요. 있쟎아요 나 밍교수님을 원망했어요. 자기만의 보물을 보듯 혼자서만 라라의 배에 다녀올때면 서운하고 화가 나기도 했단 말예요.그런데 라라씨가 와줘서 너무나 기뻐요.
진욱의 맑고 커다란 눈을 보면 제지할 수 없는 갈망을 느낀다.
어느새 내 마음에 한가닥 한가닥의 가지를 물어다 둥지를 틀어놓곤 새 한마리가 날아들었어요. 꾸미지도 않고 겉멋은 없어도 너무나 아름다운 새.
지저귀듯 살아 있는 웃음소리를 남겨 놓고서.
그게 라라에요. 외롭지 않고 살았는데 라라씨가 나를 외롭게 하고 기다리게 만들어요.
그런 라라씨가 찾아 오기 만을 기다리는 텅 빈 둥지가 되어야겠어요?
라라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말을 하지 않는 건 말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에요.
진욱은 라라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감싸고 키스를 한다.
살며시 그러다가 열정적으로…숨이 멎을 것 같았다.
-진욱씨 여기까지만요.
진욱은 몸을 일으켜서 라라를 품에 안았다.
-미안해요 당황했죠?
-세상은 그렇게 감성적으로 사는게 아니에요 선택하고 누군가를 마음에 둔다면 그에 따르는 책임을 져야 하니까.
나는 진욱씨를 나의 한달 짜리 사랑으로 선택하지 않았어요
좋은 친구로 함께 하고 싶어요.만났을 때 헤어짐이 두렵지 않는다면 그때 진욱씨를 받아 들이겠어요.
라라는 그렇게 나가버렸다.
라라가 나가고 한참 후에 밍이 돌아왔다. -라라가 왔었구나.
-네
-무슨 일이 있었니?
-라라에게 좋아한다고 말했어요.
-라라가 뭐라고 하든?
-만났을 때 헤어짐이 두렵지 않은 순간에 진정 절 받아 들이겠다고요.
-넌 네가 무슨 일 때문에 온 지 아느냐?
-모릅니다 그렇다 해도 라라와 관련된 일이라는 건 알고 있어요.
밍은 서재로 가서 올 때 가지고 왔던 편지 한 통과 조그만 열쇠가 담긴 보석함을 가지고 왔다.
-너의 아버지가 나에게 부탁한 것이다.읽어 보려무나.
진욱은 봉투에서 편지를 꺼내어 읽어 보았다.
-어머니와 라라군요.
떨어진 사진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래. 어떻게 생각하니?
-사실인가요? 라라가 수아이란 걸. 그리고 여기에 적힌 내용이 모두!
-그래.
진욱은 열쇠를 가지고서 나갔다.
한참을 걸으며 퐁네프를 바라보던 진욱은 원우의 바로 갔다
-웬일이에요?
-저 술 한잔 얻어 먹으려구요.왜냐하면 이것 때문이에요.
바의 탁자 위에 열쇠를 놓았다.
원우는 가만히 진욱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할려구요?
-진탕 술이나 마실려구요.아무런 생각 없이 스트레이트 잔을 연거푸 마셔대며 열쇠를 만지작 거렸다.
-라라씨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자죠?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죠?
원우는 가만히 웃기만 했다.
밤늦게 돌아온 진욱은 상기된 얼굴로 밍을 꼭 안았다.
-나 교수님의 그 마음 안잊을게요.
밤이 새도록 진욱은 배를 향해 서 있었다.
-밍, 라라의 배로 이사를 가야겠어요. 도와 주실래요?
아침에 진욱은 말끔히 씻고 밍을 바라보며 웃었다.
옆에는 짐가지를 싼 가방이 놓여 있었다.
밍은 조용히 식탁에 앉았다.
-아침 먹고 가거라.
진욱은 웃으며 식탁에 앉았다.
아침부터 한은 라라를 찾아갔다.
-라라 이 늦잠꾸러기 일어나!
라라는 이불을 끝까지 덮어 쓰고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장난은 별로 유쾌하지 않아. 하나 둘 셋만에 일어나시죠?
살며시 이불을 내린 라라는 눈이 빨개진 채 퉁퉁 부어 있었다.
-이러고 있을 줄 알앗어.말괄량이 아가씨 어서 일어나요
씻고 나와서 밥을 먹어야 일하러 갈 거 아냐?
-오늘은 휴업할래.
-내가 씻겨줄게. 일어나!
-싫어 그러지마.그냥 누워있고 싶어.
-이거 서운한데. 내 시나리오가 채택되어 축하하려고 했는데.
라라는 말꼼히 한을 바라보았다
-정말이야? 드디어 데뷔하는 거야? 축하한단 얘기로는 안되겠는데 좋아 오늘은 그대와의 아침을 허락하도록 하지.
벌덕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는 라라를 보며 한은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mr.doudou.이젠 넌 필요 없을 거 같다.
우리가 잘하는 일인지 모르겠어. 그냥 라라를 내버려 둘 순 없는건가?
물기가 젖은 채 수건을 머리로 감싼 채 커피를 마셨다.
-싱겁지? 난 진한 커피가 싫던데 그리고 라라?
-알아. 무슨 얘길하고 싶은 건지.진욱이와의 일.
라라는 한을 쳐다보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