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창준이 형제들을 생각하는 마음은 정말 끔찍했다.
바로 밑에 남동생 ..그러니깐 창우만 해도 대학졸업후 주욱 창준이 용돈을 줬다.
아버지가 준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상상이야 했겠지만..
그 깐깐한 시골영감이 자식들에게 이르는 말인즉
'대학교까지 보내줬으면 그 다음부턴 느그들끼리 알아서 해!'
그랬다.
물론 그의 형제들 또한 아버지의 말에 전혀 거부감을 느낄 수 없었고
으례히 집안의 장남이며 종손인 큰형이 자기들을 책임져 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영주가 그걸 알았을 땐 정말 말도 아니었다.
'자기 우리 언제까지 도련님 용돈 주는거야?'
참고로 말이 용돈이었지 창우의 한달 생활비였다.
'뭐 독립할때 까지 줘야 안되겠나'
'응'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래..주면 되지 뭐!
결혼 초 창준이 월급봉투를 건네주면서 영주에게 물었었다.
'나 사실 창우 용돈을 주고 있는데...'
'응..그래서?'
'결혼했다고 딱 끊기 그렇다'
'그럼!..큰형수가 그거 하나 못주냐?'
'용돈 계속 줘도 되지?'
'그러라니깐..근데 얼마씩 주는거야?'
'으응 40만원!'
'40만원? 그게 용돈이야?'
'집에서 하나도 안 주는데 나라도 줘야지'
'에이..그래!'
창우는 벌써 1차에서 두번이나 떨어졌다.
거기에 대해서 시댁식구들이 하나같이 언젠가 되겠지 하는 기대감을 보여줄때 영주는 숨이 턱 막히는 줄 알았다.
'자기야 도련님한테 이거 말고도 다른 길이 있다고 말 한번 하면 안되?'
'무슨 쓸데없는 소릴'
'그게 왜 쓸데없는 소리야?'(왜 화는 내고 그래)
'지가 해보는 데 까지 해보고 안된다 그럼 그러려니 해야지'
'형이 그런말 할 수 있잖아'
'말도 안되는 소리 그만하세요'
'왜? 뭐가? 자기가 그냥 형이야?'
'그건 또 무슨?'
'형이 한번쯤 그런 의향을 비출 수도 있잖아'
'야 아버지 안계셨으면 내가 다 책임져야 되는거다'
'아버님 계시잖아'
'안 계시면 말야'
'그러니깐 계신데 왜 모든걸 짊어질려고 그래?'
'아 여기서 그만하자...'
'....(우씨 나도 말하기 싫다!)'
창우는 고시 공부를 한다고 형에게 용돈을 받아갔으며, 직장생활을 하는 여동생에게도 자연스럽게 전화걸어
'내 옷좀 하나 사도'
'오빠?'
'야 옷들이 다 낡아서 그렇다'
'응 알았어. 내가 하나 사서 보내줄께'
이 모든것을 집안 어른들이 빠삭하게 알고 있지만 전혀 상관없는 듯 모른척 했다.
창우 몸보신을 해준다며 불고기집에서 만났다.
'도련님 공부하기 힘들죠?'
'형수 살 빠진 것 같아요'
'그렇죠!'
'형수가 살이 빠지긴 왜 빠져'
'오래간만에 봐서 그런지 형수 살 빠져보이는 데 뭘'
'형님이 말을 안들어서요'
'하하하...형 형수한테 잘해라'
'.....'
'더워서 공부하기 어떻노?'
'뭐 그렇지'
'힘들어서 어떡해요'
'괜찮아요..뭐 다들 그러는데요'
'많이 무라'(많이 먹어라)
'할매하고 엄마 아버진 잘 계시재?'
'그래 그런 걱정하지 마라'
영주는 말이 나올려고 했다.
(도련님 계속 고시공부 할 건가요?....1차에서 두번이나 떨어지고 그럼 빨리 포기하고 다른 걸 찾는 것도 대단한 용긴데요)
하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창준이 그런 영주가 아슬아슬한지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뭐해..자기도 먹어'
'..? 응'
'형수 고기 잘 먹었어요'
'뭘요...건강 조심하세요'
'용돈은 있나?'
'왜 줄려고?'
'없다. 임마'
'하하...그럼 조심해서 시골 내려가라. 형수도 건강하이소'
'에..'
멀어져가는 창우를 바라보는 창준의 표정이 측은지심 그 자체였다.
영주는 그런 창준이 더 측은했다.
'그렇게 안되보여?'
'야 더운데 고생아이가'
'난 자기가 더 고생같다!'
'영주씨 난 괜찮다'
'..몰라(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파!)'
창준이 동생들한테 하는 행동을 보면 영주는 그녀의 오빠를 떠올리게 된다.
하나밖에 없는 오빠지만 창준처럼 이렇게 동생들한테 애틋함까지는 몰라도 일말의 다정함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녀와 네살터울의 오빠는 완존히 그녀의 상전이었다.
어릴때 부터 주욱 오빠랑 쌈박질 하고 지낸 기억외에는 떠오르는 추억도 없는 것 같다.
그런 오빠가 결혼을 하고 올케를 맞게 되면서 좀 어른스럽게 변한 것 같기도 했었지만 여전했다.
그런 오빠를 보다가 창준이 동생들한테 대하는 걸 보면 동생들 입장에선 얼마나 든든한 형이고 오빠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엄마..우리 도련님 여전하더라'
'에유 이번에도 안되서 어떡하니'
'그래도 씩씩하던데 뭐'
'어른들 많이 속상하겠다 얘'
'우리 어머닌 절에서 좀 알아보니깐 이번에 뭐 좋은 운수래'
'그래?'
'근데 아무것도 아니잖아...난 또 그걸 믿고 있었다'
'어쩌겠니..그래도 이서방이니깐 동생들 챙긴다'
'난 그런게 맘 아파'
'뭐가? 너 그런 못된 맘 먹음 안된다'
'저 한사람이 짊어진 짐이 너무 무거워 보여서 그래'
'그게 이나라 종손들이래...친구들 말이'
'오빤 언제와? 왜 아직 소식도 없냐?'
'오전에 전화왔었어'
'그래? 뭐래?'
'어디 좀 들렀다 온다고 여섯시 지나면 도착한대더라'
'엄마 올케는 자주 연락해?'
'내가 자주 하지 말랬다'
'잘했다. 엄마'
'저번주에 같이 쇼핑했어'
'좋겠네...고부가 다정히 쇼핑도 하구'
영주도 그러고 싶었다.
결혼 전만 해도 그렇게 시어머니와 다정하게 친구처럼 지낼려고 했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바빴고 또 나가서 외식하는 걸 쓸데없는 데 돈을
쓴다고 오히려 면박을 줬기에 한두번 시도하다가 때려치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