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금 창준 앞에서 씩씩대고 있는 영주를 보자 일이 어쩌면 크게 번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창준은 영주에게 실없이 웃음을 던지고 있었다.
'에이 영주씨 그냥 콱 져주라이잉'
'왜그래?'
'야 노인네가 그게 소원인듯 한데 그냥 넘어가면 안될까?'
'싫어! 왜 내가 그래야 되는데'
'야 아버지도 만만치 않을거다'
'난 뭐 꿔다논 보릿자룬가'
'에이 영주씨이 그러지말고 기분좋게 넘어가자..내 부탁할께'
'자꾸 이러지마..지금 생각중이란 말이야'
창준은 영주의 한발 물러난 듯한 말에 일단 안심하기로 했다.
다음날 창준이 출근할때 까지 그 누구도 영주의 손을 유심히 살피지 않았었다.
창준 또한 그 전날 약간의 근심은 안고 잠이 들었지만 막상 아침이 되어서는 출근하는데 급급해 영주의 메니큐어 사건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달랐다.
며늘애의 반응이 궁금했다.
틈틈히 며늘애의 손을 흘낏흘낏 봤지만 도저희 손톱까지 잘 보지를 못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친후 시아버진 일부러 늑장을 부렸다.
'새사람. 여그 과일좀 내 온나'
'에..'
사각사각 사과를 깍는 영주의 손을 무심히 바라다보는 시어머니의 눈에 새하얀 손톱이 보였었다.
(에구 지가 그러면 그렇지..시아버지가 어떤 사람인데..쯧쯧)
시어머니는 영주의 손톱을 보자 측은한 마음이 조금 들었다.
'자 아버님 드세요'
'응..그래..나둬라. 내 먹을께'
순간 시아버지의 눈앞에서 휙 사라지는 영주의 손톱에 어제의 그 메니큐어가 자리하고 있었다.
(으응? 뭐야? 내말을 도대체 ...응?)
영주의 손톱에서 메니큐얼 발견하고 뭔가 치밀어오르려는 그 순간 또다른 손톱이 보였다.
그랬다.
약지와 새끼손가락에는 메니큐어가 칠해져 있었고 나머지 여섯손가락은 깨끗히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풋..'
(이래도 뭐라하면 나 분가할거다!)
하며 아무렇지 않은 듯 표정의 변화없이 사과를 먹고 있었지만 시아버지의 풋하는 억지로 웃음을 막는 소리에 일순간 영주 또한 웃음이 베어져 나왔다.
시아버지는 더 이상 아무말 않고 밖으로 나가셨고 그런 시아버지와 영주를 바라보는 시어머니도 아무일 없다는 듯이 나가셨다.
(도저히 다 지울순 없었어...)
(그럴려니깐 시아버지께 나 죽었소 하는 통첩같았거든..)
(내 자존심도 살리고 노인네 기도 살리고...)
(잘했다.최영주!)
영주는 스스로 만족하며 시할머니와 따스한 햇살을 받아마시고 있었다.
시골에서는 식사외에도 지겹도록 많은 걸 먹는다.
식사하고 돌아서면 참이니 뭐니 하면서 간식거리를 요구하는데 그게 말이 간식이지 또 다른 하나의 식사준비였었다.
아직 영주는 이런 참에 익숙하지가 않았다(사실 요리 아니지 간단한 음식조차 제대로 하는게 없기 때문에..)
참을 준비할 때마다 시어머닌 부리타케 집으로 달려와 간단하게(?)국수를 삶아서 내가곤 했었다.
그날은 논에 약을 친다며 품앗이로 이웃집 아지매까지 한 두명 더 있었다.
참까지 시어머니 당신이 준비하기엔 너무 버거워 보여서 시어머니한테
'어머니 오늘 참 제가 할께요'
'니가? 뭐 할건데?'
'으응....'
'그래 내 준비했다 하면 가지러 오면 되재'
'에...'
시어머니가 나간후 시할머니는 영주에게 눈을 둥그렇게 뜨고 되물었다.
'니 모한데이'
'할머니 한끼 그냥 나가면 되는거죠?'
'그래..'
'걱정마세요'
'국수 간단해 뵈도 안그렇데이.....'
시할머니는 영주의 태평한 얼굴에서 뭔가 자가 비밀이 있나보다 하고
궁금해 했다.
하지만 참을 할려면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해야하는데 영주는 꼼짝도 않고 제방에서 나오지를 않고 있었다.
'보래..'
'에...'
'니 참 준비안하나'
'아 그거요..걱정마세요. 할머니'
'뭐 걱정을 말어..벌써 해도 모지라는데 아무것도 안해놓고'
시할머니는 이제 영주의 태평에 화를 내고 있었다.
이웃사람까지 나와서 일을 하는데 넉넉하게 내보내진 못해도 정성은 들어가 있어야지 싶은 생각에 슬슬 걱정까지 되었다.
'할머니..지금쯤 어머니랑 벌써 참 드셨을걸요'
'뭐어? 언제 내갔나? 아니구 뭐 한게 없잖나?'
'자장면 시켰는데요'
'뭐라?......'
'힘들게 국수 삶아 나가는 것보다 자장면이 더 간편하고 거기에다 맛도 좋잖아요'
'아이구...호호호호'
시할머니는 정말 배꼽이 빠지도록 웃음이 나왔다.
한참을 웃고나서 눈물을 찔끔거리며 영주에게 말했다.
'나중에 느그 시어매 들와도 내는 모른데이...ㅋㅋㅋ'
그날 점심때 들어온 시어머니는 아무말이 없었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너무나 뜨악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렸는데 난데없이 자장면 오토바이가 와서 자장면 그릇 세그릇을 두고 가는걸 볼때까지도 뭔 일인가 했었다.
'아이구 형님덕에 오늘은 자장면 먹네예'
하며 동네 아낙들이 웃으며 자장면을 비빌때 알았다.
(가가 자장면을 시켰구나)
'아이구 이거 대접이 소홀해서 우야노?'
'와예..자장면 좋은데예'
'그래도..우째 미안타'
'뭐할라고 힘들게 국수 삶고..에이 그럴 필요 없어예'
'....'
'새사람이 시켰는갑지예'
'지가 한다 캐갖고 뭔가 싶었더만..'
'개안심더..맛있는데예'
아무렇지 않은 듯 오히려 재미난다는 듯이 먹는 걸 지켜보구서도 시어머니는 기가 막혔다.
집에선 영주가 점심준비를 미리 끝낸후 시어머니가 들어오기 무섭게
'어머니..자장면 괜찮았어요?'
'와?...'
'꼭 집에서 만들어 나가야 되는가 해서요'
'그건 아이지만 그래도 일하는 사람한테 안 미안나'
'....'
'달랑 자장면 시켜주고..'
'그럼 집에서 하면 안 미안고 밖에서 시키면 미안한 거에요?'
시어머니는 그녀와 달리 아무일 아닌 듯 말하는 영주의 얼굴을 보자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갖고 내가 이러는가 싶기까지 했다.
'어머니 앞으로 참은 간단하게 하면 안되요..어머니 참 준비하실 때마다 반죽하시고 방망이로 밀고 거기에다가 얇게 칼로 썰어서 국수 준비하실때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뭐 늘 하는건데'
'그러니깐요..이제 편안히 하시라구요'
영주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시어머니는 그 옛날 시아버지가 시키시는 데로 하던 걸 주욱 시아버지가 안계시는 지금까지 그냥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래도 좀 안 그렇나'
하고 시할머니가 중간에 말을 거들었다.
'그럼 할머니가 국수 한번 밀고 썰어보세요'
'난 모한다'
'하는 사람은 어머닌데 이젠 편하게 하세요'
'뭐 말들은 없더나..'
'예..'
'그라믄 니 편한데로 해라'
시할머니의 말에 시어머니는 비로소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됩니꺼..'
하지만 그 물음은 시할머니의 답을 듣고자 해서 던진 말이 아니고 그렇게라도 한마디 해야만 노인네 보기 덜 미안한 것 같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