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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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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BY 빨간머리앤 2003-04-24

방으로 들어서는 창준을 바라보는 영주로서는 대뜸 큰소리부터 치고싶었지만 이미 밖에서 한소리를 들은 창준을 생각하니 그러기도 쉽진 않았다.
'지금이 몇시야?'
'아...미안..'
'어떻게 나 혼자 이렇게 내평겨놓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영주씨..그래도 장가갔다고 일찍보내준게 지금이다'
토라진 듯 말하는 영주에게 창준은 정말 미안했다.
회식내내 아니 회사에 근무하는 내내 혹 집에서 어른들과 무슨 마찰이라도 있는 건 아닌지 몇번이나 전화기에 손이 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되려 그런 모습이 어른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건 또 아닌가 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한마디로 그에게 오늘은 영주 못지않게 버거운 하루였던 것이다.
'오늘 뭐했는데..?'
'응 ..그냥 동네 한바퀴 둘러보고 뭐 크게 한 일도 없어'
'어른들하곤 뭐 괜찮았어?'
'응...뭐 안 괜찮을 건 또 뭐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창준의 말이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는 영주를 보자
오히려 창준은 자기가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싶어 마음이 놓이면서 빨리 영주를 안고 싶어졌다.
'영주씨 여기와봐'
'에이 이러지 말고 빨랑 씻어라'
영주를 끌어안으려는 창준을 살짝 밀치며 말하는 영주또한 늦게 온 창준에 대한 원망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다음날 영주는 아침 일찍 일어나 쌀을 씻고 있는 시어머니에게 다가가 얼른 양재기를 낚아채며 아양을 떨었다.
'어머니 재가 할께요'
'그---래 일어났나!'
'어머닌 반찬 만들어 주세요.아직 전 자신이 없어서요'
'그---래'
시어머니는 영주의 이런 행동이 웬지 마음에 들었다.
솔직하게 못한다 그러고 할 수있는 일을(뭐 별것도 아니지만)하겠다고 나서는 폼이 여간 맘에 드는게 아니었다.
다만 그런 영주에게 맘껏 애정표현을 하기에 그녀는 너무나 굳어있었다.
식사를 다 끝내갈 무렵에 영주가 말했다.
'어머니, 저랑 나중에 시내에 가서 장보고 와요'
'내가 그럴 시간이 어디있노'
'에,,'
'할머니 점심도 챙겨야 되고 안된다'
'.....'
'내랑 가자'
'아버님 가시게요?'
가자는 시어머니는 못간다하고 엉뚱하게 시아버지가 나서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시아버지랑 시내 마실을 가게 되었다.
바깥마당에는 영주가 결혼전 타고다니던 흰색 프라이드가 그동안 주인을 원망이나 하는 듯 그새 먼지가 뽀얗게 쌓여 한 귀퉁이에 세워져 있었다.
영주는 결혼하면서 차를 팔고가라는 친정엄마의 말에 제동을 걸었던 걸 지금도 잘한 것 같다며 생각했다.
얼마 자주 타지는 못하더라도 언제라도 잠시 휙하고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자체만으로도 그녀의 차는 큰몫을 하고 있었다.
'아버님 시내 자주 나가시죠?'
'뭐..제사 장을 내가 보니깐 느그 엄마보다는 내가 자주 가지'
'장 보고나서 저 점심 사주실 거죠?'
'허허..뭐 먹고싶은 거 있나?'
'네 돼지갈비 먹고싶어요'
'알았다.우선 가보자'
그렇게 해서 영주랑 시아버지의 첫데이트가 시작되었다.
달리는 차 안에서 시아버지는 참으로 많은 말을 했다.
특별하게 꼭 꼬집어 뭐라할 수 없는 이런저런 말들과 가정주부로서 지켜야 할 도리등등 끝이 없으신 모습을 옆눈으로 보고 들으면서 시아버지와 시할머니가 참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안동시내에서 이것저것 장을 다 본 영주랑 시아버지는 근처 고기집에 가서 돼지갈비 3인분을 시켰다.
'음..니가 이제 살림을 사니깐 하는 말인데..'
'에...'
'여자는 알뜰하게 살아야 한데이'
'에..그럼요'
'집에서 이것저것 애껴서 살아야지 헛으로 돈을 써서는 안된데이'
'에...'
영주는 시아버지가 하는 말이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싶어서 네!네!하고 대답을 했지만 자꾸만 상기시키는 시아버지 말이 조금은 꺼름직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꼭 오늘 장보는 일을 가지고 영주가 무슨 큰돈이라도 쓴것마냥 말하는 것 같아 웬지 또 모를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
(당신 아들 돈 번거 내가 팡팡 쓰고 다니는 것 처럼 말씀하시네..)
식사를 마치고 나서 시아버지는 영주에게 차한잔 하고 가자며 식사중의 서먹함을 달래려는 듯 영주에게 말했다.
'차요?..'
'그래 커피 한잔 하자'
'그럼 차는 제가 살께요(아차 싶었다)'
'아이다. 내 아는 데 있으이 그리 가자'
'아버님 그럼 분위기 있는데 가서 사 주세요'
'분위기?..그런덴 젊은애들 많아서 못가'
'그럼 혹 다방에 가시는 거에요'
'다방이 뭐 어때서'
'에...이버님 제가 살께요(뭐라고 한들 내가 산다)'
'가마이 있어. 내 사줄테이'
영주와 시아버지가 들어간 곳은 시골예식장에 딸려있는 그야말로 노인네들이나 올까 싶은 그런 다방이었다.
다방에 들어서자 마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다방마담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이구..영감님 오세요?'
'자리 좋은데 어디 없나?'
'여그로 오이소'
마담의 안내로 창밖이 보이는 자리에 앉자 시아버지에게 마담이 또 말을 건냈다.
'요즘 안 보이시던데 어디 다녀오셨어예'
'아니고 일이 좀 있었어'
말하는 폼새로 봐서는 그동안 안면식은 있는 듯 했다.
'내 며느리야'
하며 마담에게 은근히 영주를 자랑하는 듯 말하는 시아버지에게서 영주는 큰 칭찬을 받은 것 마냥 조금은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 같았다.
'아이구 며느님이 대개 젊은가 봐예'
'허허허..좀 어려보이지. 이래뵈도 스물일곱이데이'
'네에..근데..차는 커피로 할까예'
'그래 커리 두잔!'
집안에서 시아버지는 항상 권위 그 자체였다.
그렇게 싱거운 소리도 안했으며 주위 사람들에게 당신은 교과서처럼 행동하신 분이었다.
그런 시아버지의 또다른 면을 보는 게 영주로서는 웬지 재미있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