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은 없고 바람은 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아줌마이야기는 나와는 몇번 스쳤을 뿐인 작은 인연이지만 우리아파트에서는 워낙 유명한 사람이기에 (소문이 무성한 여자)그저 들은 대로 이야기를 하고자한다.
공중전화에서 어떤 남자에게 아주 심하게 맞으면서도 아무런 저항을 하지 못 하는 여자를 발견했다.
국수를 삶아 먹으려 급히 지하 슈퍼에서 오이한개를 사들고 나오는 길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으악 !"
소리를 질렀다.
그도 그럴것이 때리는 남자의 당당함과 맞는자의 무저항이 주는 두려움이 스산하게 연출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때리던 여자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년아 집전화 추적되고 핸드폰 뺏으니까 이제는 공중전화로 지랄이야?응?"
"......."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여자는 좁은 공중전화에서 몸을 뺐다.
서둘러 따라 나오며 남자가 나를 의식한 듯 다시 소리를 질렀다.
"너!한번만 그새끼랑 통화하면 내가 너 죽여 버린다 그랬지?"
그러면서 맥없이 서 있던 여자등을 퍽 하고 쳤다.
여자는 몇발짝 억지로 걸었고 남자는 다시 몇 번 더 등을 쳤고 그럴 때마다 여자는 원치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도 자기네들 집으로 향하는 모양이었다.
너무나 순간적인 상황이라 나는 속물처럼 그들의 싸움을 구경했다.
남자는 아주 낯선 얼굴이었으나 여자는 아는 얼굴이다.
우리 옆동에 사는 딸아이와 같은반 서영이엄마 앞집 새댁이었다.
다행히 여자는 내 얼굴을 보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속절없이 그여자가 맞아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그 정도로 남자에게는 살의가 있었다.
집으로 들어와서 나는 국수물을 끓이고 있는 당나귀귀 동창2명에게 조금전의 상황을 얘기하며 우리는 그 새댁을 걱정했다.
국수를 넣기전에 서영엄마에게 점심 먹으러 오라고 전화를 했다.
그리고 서영엄마에게 앞집 새댁 얘기를 하자 서영엄마는 대뜸,
"그집 아마 못 살거야 이혼 해야지."
그런다.
그새댁은 이제 27살이었고 남편은 41살이라고 했다.
얼핏봐서인지 때리고 있을 때 남자의 모습은 그리 나이 들어 보이지 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댁이 21살이던 때 작은 회사 사무실에 취직을 했는데 아마도 그 때 새댁의 남편이 그녀를 점찍어 두었었나보다.
회식 때 남편은 술을 못 하는 그녀에게 맥주에 소주까지 타서 먹이고 강제로 추행을 했고 그녀는 거의 반강제로 결혼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어린 신부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남자친구를 잊지 못 했고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만나서 놀러도 다니고 나름대로 상처있는 마음을 위로 받곤 했다는거다.
그렇게 남자친구와 남편사이에서 오락가락하던 그녀는 이성을 잃기 시작 했는지 아파트앞 놀이터까지 남자친구를 불러서 그네도 타고 때로는 벤취에 앉아서 얘기도 하곤했다는거다.
너무나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붙어다녀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남자친구가 남편인 줄 알았다는거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치가 어디 보통이던가?
그리고 꼬리가 길면 결국 밟히지 않던가.
놀이터에서 만나 얘기 하다가 화장실이 급해진 남자친구가 잠시 집에 들렸는데(그녀의 주장이란다.)그날따라 몸이 안 좋아서 이른 퇴근을 한 남편에게 그대로 들키고 말았다는거다.
그런데 들킨 후 그녀는 아주 당당하게 이혼 하고 남자친구랑 살겠다고 했단다.
남편과는 사랑하는 마음없이 결혼을 했다면서......
얼마나 맞았는지 퉁퉁 부은 얼굴로 서영이네집에 피신 한 새댁은 철없이 남자친구를 더 걱정 하더랜다.
남편에게 맞고 쫓겨났는데 어떡하느냐면서.
그런데 어디 이혼이 그렇게 쉽게 되던가?
새댁의 부모님이 새댁을 설득도 하고 혼도 내면서 잠시 잠잠 한가 했는데 아마도 새댁은 그남자친구를 못 잊는 모양이었다.
우리는 참으로 이해 할 수 없다는 말들을 했다.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사랑하는 사람 따로 두고 결혼을 한단 말인가.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아래 남자친구를 어느선까지 자신의 영역에 발을 디디게 해야 하는지 바람의 기본도 지키지 못 하는 새댁이라며 우리 일행 중 한명이 바람의 법칙?을 내세운다.
모르겠다.
내가 직접 새댁과 얘기를 못 해 봐서인지 몰라도 그녀의 경솔함이 부른 사건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공중전화 사건이 나고 얼마후 나는 서영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베란다 좀 내다 봐."
아뿔싸!
새댁네집이 이사를 하고 있었다.
아니 갈라지고 있었다.
상호가 서로 다른 이삿짐센터 차들이, 대결하는 적군과아군처럼 냉랭하게 드르럭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