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이노래 가사 죽이네. 근데 어째 노래가 좀 슬프다. 난 이런노래는 왠지 싫어. 눈물이 날라고 하네. 우씨."
"이봐요 경희씨 말은 제대로해야지. 술 때문에 눈물이 난다고 말이오, 대체 술을 어디서 배운거요. 여자가 술만 마시면 울고 말야. 그러니까 처음 배울 때 잘 배워야해. 안그럼 그 버릇이 평생간다구."
"정말이지 듣자듣자하니까...봐줄수가 없네요. 내가 술먹는데 뭐 보태준거 있어요 그런거 아니면 조용히 하세요!"
건우와 경희. 두사람의 옥신각신 다투는 말을 귓가로 흘리면서 상우는 직원들을 향해서 말을 이었다.
"여러분 오늘은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늦은시간까지 회식에 참여해주신거. 정말 너무 감사드립니다. 약속이 있음에도 취소하고 참석해주신분들께도 감사드려요. 이제 오늘 회식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
상우의 말이 끝나자 아쉬워하는 목소리와 뒤섞여 잘먹었습니다 라는 기분좋은 소리들이
들려왔다. 그는 일어서서 뚜벅뚜벅 카운터로 가서 계산을 마치곤 직원들이 그를 기다리는 곳으로 향해 갔다.
"팀장님 음주운전 못하실텐데 어떻게해요?"
"아, 대리운전 부르세요. 아주 편리해요. 괜히 억지부리고 사고나느니...그냥 돈주고 시켜서 가는게 제일입니다. 아, 참 그렇지...팀장님은 오신지 얼마 안되셔서 아직 잘 모르시겠군요. 제가 아는 단골이 있는데 전화번호 알려드릴까요?"
"고맙습니다. 그럼 신세좀 질까요?"
그가 막 명함을 받으려는 데 어디선가 빵빵하는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누가 대체 이밤에 저렇게 클랙슨을 울려댄담.. 상우는 인상을 찌푸리며 직원이 건네준 명함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이내, 그는 거기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려 핸드폰을 꺼냈다.
"와, 미인인데..."
"그러게나 말이야. 정말 멋쟁이인걸"
사람들이 말하는 그 멋쟁이가 누굴까싶어 상우는 그쪽을 바라보았다. 대체 누굴 보고 저러는 것일까 혹시 탤런트라도 나타났나? 그러다 그는 자신이 아는 얼굴이 점점 다가오는 모습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아니. 이런. 어떻게 알고.... 보라가 차에서 내리더니 웃으며 그를 발견하곤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한쪽 팔을 들어 막 흔들기 시작했다.
"상우씨!"
"상우씨라구? 어디서 많이 듣던 이름인데 ...가만...어 팀장님 그거 팀장님 이름이쟎아요? 뭐야,뭐... 혹시 잘 아시는분 이에요?"
"아..네 좀 압니다."
상우는 머쩍은 듯이 질문을 한 사람을 향해 웃어주었다.
"너무너무 축하해요.! 자 받으세요-."
보라가 한아름 가득 붉은장미꽃을 이쁘게 싼 꽃다발을 상우에게 내밀고 있었다. 상우는 그녀가 건네주는 꽃다발을 받아들었다. 꽃다발에서 싱싱하면서도 향긋한 장미향이 풍겨져나와 그의 코를 자극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장미향이 정말 좋다.
"와. 이런 꽃다발을 내게 주다니. 너무 뜻밖인걸 ...고마워 보라씨"
"호호 상우씨도 참. 당연한거 아닌가요?"
직원들의 강한 호기심어린 눈을 바라보며 상우는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지금 그녀는 모든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시선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당당하게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 서 보라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보라씨..저 이런거 질문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궁금하니까 눈딱감고 물어볼게요. 두분 무슨사입니까? 혹시 결혼할 사이입니까?"
"호호호 그게 궁금하세요? 맞습니다. 저희 곧 결혼할거에요 전 상우씨 약혼자랍니다."
"우와. 정말이세요? 축하드려요. 그런데, 팀장님 비법이 무엇입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을 얻다니...팀장님 정말 능력도 좋으십니다. 하핫 이참에 제게도 그 비법좀 전수해주시죠. 암튼 부럽습니다. 정말 부러워요 팀장님!"
건들건들 웃고있는 건우를 향해서 보라가 고맙다며 활짝 웃고 있었다. 아마도 보라는 그의 치켜세워주는 말에 몹시 기분이 좋아진 것이 틀림없었다.
"상우씨 가요. 안그래도 술을 마셨을거 같아서 내가 차로 바래다 줄려고 왔어요
저 너무너무 잘했죠?"
"음..그래, 고마워. 안그래도 마침 지금...대리운전을 부를까 생각하던 중이었거든. 덕분에 그러지 않아도 되겠네."
"아, 팀장님 뭐하십니까 빨리 안가고? 저같으면 얼른가고 싶어서 걍 엉덩이가 들썩거릴텐데"
그가 건네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돌리려다가 상우는 어둠 한구석에서 말없이 바라보고있는 목련을 보게 되었다. 그러고보니 그녀역시 혼자 돌아가야할텐데...
망설이다가 상우는 조심스레 그녀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목련씨. 함께 가요. 가는길에 내려드리고 갈께요. 타세요."
그제야 보라의 시선이 어둠 한쪽 구석에 서있는 목련에게 향했다. 그녀의 눈가에 무척이나 놀라는 기색이 스쳐갔다. 상우는 목련이가 어떻게 할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어쩔줄 모른체 서 있었다.
"네..저..저는..."
"목련아! 세상에...정말 너 맞니? 정말 맞구나, 나 보라야. 서보라!"
보라가 달려가서 목련의 손을 덥썩 잡았다.
"어..어..그래, 보라야. 반갑다"
"기집애,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어두워서 너 있는지도 몰랐쟎아. 얘길하지. 하마터면 모르고 그냥 갈뻔했다 얘. 가자, 내가 집까지 바래다 줄게. 어서! 상우씨도 기다리쟎아"
상우는 어쩔수없이 끌려와 뒷좌석에 몸을 싣는 목련을 백밀러로 흘끗 보았다. 잠시후 보라가 운전석에 올랐고 직원들과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차는 목련이네 집이 있는 동네를 향해서 출발하기 시작했다.
"세상에...상우씨 왜 말해주지 않았어요. 목련이가 여기 다닌다는 것을. 나는 까맣게 몰랐네. 하마터면 그런지도 모를뻔했어요. 어떻게 지냈니? 못보던사이...너 정말 이뻐졌다. 이젠 정말 예전의 한목련이 모습이 보이지 않는걸. 사회물이 좋긴 좋은가보다. 니가 이렇게 다 변하고...암튼 보기좋다."
"고마워. 보라야. 너도 많이 이뻐졌는걸 워낙에 이뻤지만"
"호호호 원애두...그나저나 네겐 너무 미안해. 급히 오느라고 연락도 못했어. 한다한다하면서도 왜그렇게 못했는지...암튼 미안해. 용서해줄거지?"
"음. 그럴수도 있지뭐. 난 사실 니가 들어온지 몰르고 있었는걸. 이렇게라도 만나서 반가워."
"음. 나두...근데, 상우씨. 목련이네 집으로 먼저 갈까요?"
"음. 그러지. 그게 좋을거 같아."
보라가 목련의 집을 향해서 핸들을 꺽고 있었다. 조금 창문을 열어서인지 차가운 공기가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고있었다. 덕분에 어느새 길어진 목련의 머리를 바람이 흩날리고 있었다. 백밀러를 통해서 상우는 그녀가 그 머릿결을 자꾸만 쓸어올리는 것을 흘끗 보았다.
한참후, 차는 목련의 집앞에 세워졌다. 상우는 잠시 차에서 내렸다.
"안그래도 되는데요. 팀장님. 이제 됐어요 집까지 바래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폐를 너무 끼쳤어요. 그리고, 보라야 너두...잘가. 바래다주어서 고마웠어! 니덕분에 정말 편하게 왔다."
"잘들어가요. 목련씨. 가서 푹 쉬어요. 첫날이라 몹시 피곤했을텐데...늦게까지 회식에 참석하고..."
"아...아니에요. 즐거웠습니다"
"그랬다면 다행이구요. 내일 지각하지 말구요"
"네. 팀장님두요"
목련이가 자신의 대문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많이 보았던 모습이던가. 감회가 어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우는 곁에서 자신을 보는 보라를 의식했다. 상우는 잠시 그모습을 보고는 옆의 자신의 부모님의 집을 바라보았다.
부모님댁도 들려야한다. 하지만 지금 이 망가진 모습으로는 어쩐지 부모님을 대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틀림없이 걱정하시리라. 그는 잠시 한숨을 내쉬곤 보라의 옆 좌석에 앉았다. 피곤이 갑자기 한꺼번에 몰려들고 있었다.
아무말없이 보라가 차에 올랐다. 그녀는 다시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상우씨. 왜 말 않했어요? 목련이가 상우씨 회사에 다닌다는걸 그리고 같은부서에 있다는 것. 혹시... 내가 알면 안되는 거였나요?"
"아니. 그렇지 않아.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오늘 알았어. 아침에 출근하니까 거기에 목련씨가 있더라구. 솔직히 놀랐어. 나도 그녀가 거기 있으리라고는 정말이지 몰랐으니까 상상조차 해본일이 없었어."
"네에...그랬겠군요. 정말 많이 놀랐겠네요. 어떻게 이런일이 있는지 참...알수가 없을정도에요. 참 기이한 인연이에요 두사람. 이렇게 다시 만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텐데."
"그렇지? 안그래도 나도 그런생각을 했었어. 하지만...그뿐이야. 뭘 걱정하는거지 보라씬?"
"호호 걱정이요? 저 그런거 몰라요. 내가 왜 그런 걱정을 하겠어요? 그냥 단지...궁금했을 뿐이에요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그렇군. 그래 걱정하지 않아도 돼! 혹시 내마음을 걱정하는 거라면..."
"상우씨 그만요, 저 상우씨 믿어요 그래요 그러니까 더 이상 아무말 말아요. 믿을게요!"
상우는 말은 그렇게했지만 솔직히 머릿속이 복잡해져오고 있었다. 돌아보니 안그래야지 하면서도 그는 사실 목련이를 많이 의식했던거 같다. 그는 다시 아까전에 노래를 부르던 그녀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많이 아펐겠지. 용하선배랑 헤어지면서. 또 그 울보는 혼자서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
문득 목련이와 헤어지던때 기억이 났다. 좋아하는데 그래서 그녀와 많은걸 함께하고픈데...그런데 그녀는 내가 아닌 다른사람을 원했지. 도저히 내가 줄수 없는 그런것을...결국 내가 그녀에게 해줄수 있는 것은 떠나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나마 그녀를 덜 힘들고 아프게 하는 걸거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 생각으로 인해 잊혀졌던 그때의 아픔이 생생하게 되살아나 가슴을 스치고 지나 갔다.
'그래, 나도 아펐었어. 너무너무...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을만큼. 생각하고 싶지 않을만큼. 그만큼 아펐었더랬어. 그러니까 그녀도 지금 아플거야 아주아주 많이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