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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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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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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회]


BY 빨간머리앤 2003-04-07

큰언니가 차라리 그 남잘 사랑한다느니 왜 이제서야 만나서 날 이렇게 힘들게 하느니 하면서 식구들앞에서 나 좀 살게 해달라고..나 좀 어떻게 해달라고 한스럽다 못해 원통하게라도 울었으면 우리들 또한 큰언닐 부여잡고 '언니 니 팔자가 와 이리 사납노'하면서 같이 가슴을 치면서 울어줬으리라.
하지만 큰언닌 전혀 그런 기색이 아니었었다.
그 남자가 없으면 당장에 어떻게 될 것같지도 않았었고 유부남을 만나서 어쩔 수 없이 여기까지 온데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랑때문이라는 그 흔한 이유조차 큰언니 한테서는 찾기가 어려웠었다.

그러니 식구들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엄마는 그런 큰언닐 보면서 자주 입술을 옴짝달싹 했었었다.
무슨 말인가 하고 있었지만 속시원하게 내뱉는 말이 아니었던지라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이었었다.
차마 큰소리로 말하지 못하는 엄마는 큰언니에게서 누군갈 떠올리고 있었던 것이었었다.

그 옛날......
시골에서 그런데로 잘 살았던 엄마는 어느날 외할머니의 주선으로 어떤 남자와 맞선을 보게 되는데 그날 본 그 맞선남이 훗날 우리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었었다.
엄마는 첫눈에 아버지에게서 가슴 두근거림을 느꼈었고 그렇게 해서 그 먼곳에서부터 아버지가 사시는 대구까지 시집을 오게 되었었다.
외할머니는 그 당시에 보기드문 여장부 스타일이셨다.
결혼이 오갈때 쯤 친척들이 엄마와 아버지의 사주가 물과 흙같다며
별로 좋지 않아 걱정된다는 친척들의 걱정을 한순간에 별거 아닌걸 가지고 입에 달고 다닌다며 호통까지 치시고 아버지와 엄마의 결혼을 강하게 밀어붙인 분이셨다. 뭘보고 아버지에게 외할머닌 높은 점수를 주셨는지 아버진 그렇게 전폭적인 지지속에서 보무도 당당하게 엄마를
거둬(?) 들인 것이었었다.

아버진 돈도 잘 벌었으며 엄마를 소중하게 잘 아껴주셨었다.
다만 아버지 주위엔 항상 여자들이 가까이 있다는 게 늘 엄말 속상하게 하셨었다. 그것도 엄마에게 힘을 실어줘야 할 시누이들은 그런 엄마에게 '우리 오래비가 잘 생겨서 그런걸 언니니가 우야겠노. 뭐 그게 싫다믄 언니니가 가라'하면서 엄말 시골뜨기 취급을 하셨었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없었었다.
아버지가 엄마외에도 깊은 감정없이 여자들을 몇몇 만났던 일이며,
고모의 소개로 어떤 여자는 집에도 찾아와서 엄마가 밖에 뻔히 있는데도 안방에서 히히닥 거리고 있었다는 걸 우리들은 생각도 할 수가 없었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음은 물론이거니와 그런 일로 하여금 엄만 자식들을 더 끔찍히 의지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견디다 못해 발을 빼려고 할때쯤이면 그때서야 아버진 엄말 또 끔찍하게 위했었으며 훗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 몇년전부터는 아예 엄마만을 바라보시고 사셨으니 우리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아버진 멋진 분이셨고 우리들에게 자상한 분이셨으니깐....

그런 아버지에게서 미움을 받았던 큰언니는 어느새 아버지랑 너무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었다.
외모에서 부터 행동하나하나까지....
엄마는 결심을 아니할 수가 없었었다.
이렇게 된 큰딸을 어떻게 해서든지 제자리로 있게 해야 된단 생각에
엄만 돌아가신 아버질 원망하고 있었었다.
기어코 우리들에게 큰언닐 잡아다 '굿'이라도 해야겠다고 말을 하는것이었다.

'굿'......
오싹하고 섬뜩했었지만 우리들은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거라도 해서 큰언니가 보통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살수만 있다면 그래 못 할것도 없었다. 큰언니가 싫다면 엄마 말처럼 잡아서라도 해야겠단 생각으로 마치 우리들이 뭐에 씌인 사람처럼 '굿'하나면 모든게 해결되는 양 온 신경이 집중되었었다.
그래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