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에...세 친구중 사랑과 거리가 가장 멀어 보일 것 같은 제가
교생을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진거죠. 거기다 영어를 담당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멋있게 보였겠어요?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선전포고를 하고 소위, 요즘 애들의 말로 작업에 들어갔어요.
물론 두 친구는 저를 무조건적으로 도와주기로 했구요.
다른 반 애들이 교생을 그냥 두고 볼리는 없었겠죠? 그만큼
그에게는 알수없는 매력 같은 게 있었어요. 저 혼자만의 생각
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다른 애들이 하는 방법으로 접근해봤자 별 소독이
없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교생에게 캠퍼스
구경시켜 달라는 것이었죠.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우리 셋은 교생이 나오자 학생이란걸
눈치채지 못하게 친구인척 하며 접근해 교생을 다른 선생님이랑
떨어뜨려 놓는 데 성공했어요.
[경인씨가요?]
[아니요, 왈가닥 친구가요. 연기는 걔 전문이거든요]
교생은 기꺼이 우리를 학교로 안내 했고 도중에 두 친구는
언근슬쩍 자리를 피해줬구요. 교생이 그러더군요. 사복을
입으니 모르겠다고...
엷게 화장까지 했거든요. 교생은 예쁘다고 했어요.
그 말에 힘입어 전 교생의 팔짱을 끼며 연인처럼 행동하며
캠퍼스 구석구석을 구경했죠. 그는 싫어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애인이 없다는 것을 알곤...기뻤어요.
우린 저녁까지 먹었고 저를 집까지 바래다 주는 교생에게
그 답례로 전 볼에 키스를 했어요.
일종의 영역 표시죠.
그 후 교생과 전 학교에서 마주칠때마다 아무도 모르는 미소를
교환하곤 했어요. 그 다음부턴 일사천리였죠.
제가 몰래 교생의 책속에 편지를 보내면 교생은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답장을 주었고 수업이 끝나는 저녁엔 교생이 몰래
학교 근처에 와서 차를 태워 바래다 줬지요.
교생 실습기간이 끝나자 우리의 만남은 더 자연스러워 졌고
공개적이었어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결혼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는
대학은 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야 우리 부모님한테
떳떳하다나요. 그래서 전 대학에 가려고 했어요.
그 때즘 공부를 아주 잘 하는 모범적인 친구가 끼어들었죠.
[그 친구는 이름이 뭡니까?]
[이름은...진희... 진희에요. 왈가닥 친구는 선애구요. 저한테는 둘도 없는 친구들이죠]
진희가 그를 만나지 말라고 하더군요. 알아봤더니 소문이
좋지 않더라는 게 이유죠. 여자가 있다고...
전 직설적이에요. 그래서 그에게 물었죠. 사귀는 여자가
있었지만 저를 만나기 전에 정리가 되었다구요. 그는 자신을
믿어라고 했고 전 믿었어요. 그 땐 우정보다 사랑이 먼저였
으니깐요.
진흰...자신들과 그 사람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면서 저를 괴롭혔어요. 둘다 소중했기에 진희를
설득했지만 그 앤...무조건 그를 만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선애가 밤늦은 시각에 저를 불렀죠.
진희 성적이 자꾸 떨어진다면서...그게 나랑 상관있냐는
식으로 얘기를 하니까 선애가 그러대요...
진희가 저를...사랑한다고...그냥 친구로써 좋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보고 있다는 거죠.
[충...격 이었겠군요?]
충격요? 그건 소름이었어요. 선애는 벌써부터 눈치를 챘지만
여학교에서 흔히 생길 수 있는 일이라 넘겼대요.
선애는 진희를 이해하라고 했어요. 정을 그리워하다보니 제일
가까이 있는 친구에게 연정을 품게 된거라고...
참고로 진희는 외동이고 병원원장인 엄마와 둘이 살아요.
그렇다해도 전 이해할 수 없었어요. 진희를 만났죠.
확인을 했어요. 아무 소리않는 진희를 전 소리지르며 다그쳤어요.
나를 보면...가슴이 저며온다는 게 진희의 고백이었죠.
언제부터인지는 자신도 모른대요. 그저 저를 보면 설레이고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미칠 것 같고...
그러면 안된다고...미친 짓이라고 자신을 타이르고 노력도
했지만 그럴수록 저한테 더 애정이 가더라는군요.
교생과 제가 사귀자 잘된 일이라고, 처음에는 잘된 일이라고
자신을 위로하고 포기시켰는데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 들더라는
거에요. 교생에게 온통 마음이 가 있는 제가 밉더래요.
[이런 말...해도 될런지 모르지만...동성의 사랑이 이성의 사랑보다 강하고 끈끈하고 또 의리가 있다더군요]
하면서 재민은 소리내어 웃었다. 경인에게서 웃음을 유도하고자 한 제스춰였으나 경인은 여러 감정이 섞인 표정으로 어두운 바깥에 눈길을 주었다.
무서운 소리 하지 말라고,
못 들은 걸로 하겠다고,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했다간 친구고 뭐고 없다고 협박과
위협을 하자 진희는 통곡을 했어요. 그건 진짜 울음이었어요.
자신의 감정을 어쩌지 못하는데서 오는 아픈 울음...
돌아서는 제게 진희가 그러더군요.
포기가 안된다고,
그 남자보다 자신이 먼저 사랑을 했고 혼자 아파했고
혼자서 포기도 했고 자살도 생각해봤고 정신과 치료도
받아봤지만 실패했다고...
저만이 자신을 치료할 수 있다고...
거절했어요. 처절하게 우는 진희를 혼자 두고 돌아섰죠.
그 날 이후 학교에서 봐도 우린 서로를 외면했어요.
선애가 중간에서 힘들었지만 전 그게 서로를 위한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런 얘길 그에게는 하지 않았어요.
일이 터진 건 한 달이나 지난 후였어요.
진희가 저를 커피숍으로 불렀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는
말에 전 사심없이 나갔어요.
진희는 소개시켜 줄 사람이 있다고 했고 남자라고 했어요.
그 때 전 안심을 했고 기뻤죠.
하지만 그 자리에 나타난 사람은,
매력적으로 웃으며 나타난 그 사람은,
이 태준!
그였어요.
절 발견한 그는 몹시 놀란 표정으로 그 자리에서 뻣뻣하게
굳어 버리더군요. 저 역시도 충격이었고 어떻게 된 일이냐는
표정으로 진희를 건너다봤어요.
진희는 환하게 웃으며 그를 끌어다 옆에 앉혔죠. 그는 저와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그것이 그들 관계를 인정하는 거와
다를바가 없다는 걸...
배신은 둘째치고 진희에 대한 분노가 저를 돌게 만들더군요.
고의적인 짓이란 걸 전 알 수 있었지만 그가 그다지도 쉽게
넘어갈 수 있다는 데 대해 자존심이 상했어요.
꼴에 충격받은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 우아하게...
태연하게 말없이 돌아섰죠. 미쳐 날뛰는 모습을 진희는
바랬겠죠.
이를 악물고 나오는데 그가 따라 나왔어요. 변명을 하더군요.
아니라고...한 순간의 실수로 만났지만 저를...사랑한다고...
다 얘기한다고...
더 충격적인 건 뒤따라 나온 진희가 한 말이에요.
그와 하룻밤을 같이 잔 사이라고...
병원원장의 무남독녀라는 말에 혹에 넘어왔다고...
그의 얼굴이 벌겋게 변하더군요. 그가 그런 속물일거라곤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죠. 손이 저절로 그의 뺨을 향해
날아갔어요.
[둘 다 지옥에나 떨어지라고...진희는 기꺼이 그러겠다는 얼굴을 하고 저를 보더군요. 전...돌아섰어요. 그런데......]
경인은 두 손으로 얼굴을 받쳤다. 그녀의 몸이 희미하게 떨고 있음을 재민을 눈치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