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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담배회사가 국민건강보험공단에게 진료비를 배상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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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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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BY fragrance 2003-02-20

비행기표를 예약하기 전에 남편에게 환자를 비행기에 태울 때는 어떤 배려가 있는지 걱정이 되어서 혹시 아는게 있는지 물어보았다. " 전화걸어서 물어봐라." 신경쓰지 않고 싶다는 눈치였다. 그래도 남편이라고 물어본 내가 잘못이었다. 항공회사에 전화걸어 물어보니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휠체어를 빌려주고 직원 한 명이 밀어줄 수 있다고 했다. 두세번을 착오가 없어야 한다고 확인하고서야 전화를 끊었다.
결혼해서 살면서 느끼는 건 내가 제일 어렵고 힘든 순간에 남편에게는 털어놓을 수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많이 바랄수록 돌아오는 실망감과 공허함은 더 커져서 어느 날부터인가 점점 말과 마음을 닫아버렸다. 서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이루어보자고 시작한 결혼이었지만 자신의 생활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자신의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상대방의 아픔과 고통을 돌아보고 감싸안아줄 수있는 여유를 기대하는 것조차 마음의 사치였다.
내 주변의 남자들은 다 그랬다. 남편도 친정오빠도 남동생도 내가 어려운 순간에 나를 도와주지는 못하면서도 내가 가서 기댈 언덕이 되어주지 못하면서도 늘 나는 묵묵히 내 어깨에 지운 무거운 짐을 지기를 바랬다.
이모부가 공항까지 엄마와 나를 차로 데려다 주셨다. 겨울날씨치고는 그리 차지도 않고 하늘도 참 파랬다. 비나 눈이 안 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남동생이 짐을 먼저 보내는 동안 엄마는 비행기에 탑승할 때까지 공항의무실에 누워계셨다. 공항직원이 휠체어에 엄마를 태우고 비행기에 탑승하러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그 안에 있는 거울을 보던 엄마가 갑자기 말문을 열었다.
"영락없는 할머니네."
"할머니 아직 고우신데요 뭐."
공항직원은 엄마의 나이가 이제 겨우 시세말로 청춘이라는 63세라느 걸을 알까 싶었다.
승무원은 내리고 타기 편하기 위해 제일 앞에 자리를 잡아 주었다. 나는 엄마를 먼저 태우고 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 문제없이 탑승할 수 있었던 것이 고마웠다.
'이제 한 시간이면 제주도에 도착한다. 그럼 오빠가 마중나와 있을 테고.' 마음속으로 되뇌이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탄 지 15분쯤 지나면서부터 엄마는 계속 중얼대셨다.
"나 죽어. 나 죽어."
물이라도 마시면 괜?을까 싶어 물은 한 모금 마시시더니 그것조차 목에 걸렸다며 통증을 호소하셨다.
"엄마 조금만 참아. 여긴 하늘인데 나보고 어떡하라고."
정말이지 하늘에서 엄마와 같이 뛰어내리고 싶었다.그럴 수만 있다면 말이다. 비행기가 제주도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기도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엄마를 휠체어에 앉히고 출구로 나가니 오빠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짐을 찾아야 했고 엄마는 더 이상 그 곳에 있기 힘들어했기 때문에 오빠가 먼저 엄마를 태우고 가고 나는 오빠후배의 다른 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부피 큰 엄마의 걸음보조대 등의 짐을 찾아 오빠후배의 차를 기다리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오빠와 올케는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돌아서 버렸을까? 이런 엄마를 혼자 사는 오빠가 감당할 수 있을까? 차라리 올케말대로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나는 오빠에게 엄마를 맡기러 왔지만 마음이 더욱 더 무거워졌다. 내가 과연 홀가분한 마음으로 두달후에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엄마. 죽을거면 차라리 나 미국가기 전에 죽어. 오빠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쟎아.'
이 생각 저 생각 하고 있자니 주루룩 눈물이 흘렀다.그 때 오빠후배가 도착했다. 차를 타고 오빠의 원룸까지 가는데 차가 막히지 않아서 그렇지 꽤 먼 거리였다.
도착해보니 조그마한 원룸이지만 오빠가 엄마를 간호하기는 편한 구조였다. 방아래쪽에 누운 엄마는 거의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엄마가 계속 멀었니 멀었니 하고 물어서 얼마나 차를 밟아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오빠는 벌써 걱정이 되는 표정이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나는 병원 다니면서 엄마 퇴원시키면서 늘 정신이 없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