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는 큰 올케와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나면 담배연기를 연신 뿜어대곤 했다. 답답했던 나는 큰 올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아가씨! 나는 이제는 어머니와 다시 같은 집에서 살면서 부딪히고 싶지 않아요. 따로 사는 것이 힘들면 요양원에 보내자고 했더니 오빠가 싫다고 고집부려요."
큰 올케의 사업이 실패한 이후로 우리집은 쑥대밭이 되어버렸고 형제간에도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상처를 안고 돌아섰는데 자기가 한 일은 생각하지 않고 예전의 엄마와의 관계때문에 상처입은 것을 생각하면 다시는 같이 살면서 부대끼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오빠가 내게 미국갈 때까지만 책임지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소리였다. 오빠의 처가도 남동생의 처가도 다 왠만큼 살아서 둘다 친정쪽의 도움을 받고 살고는 있었지만 나는 남동생도 오빠도 너무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친정이라고는 내게 전화걸어 단 돈 몇푼이라도 손벌리는 사람뿐인데 아들이 둘이나 있으면서 딸인 내가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남편과 시댁에서는 이해할수 있으리라고 그들은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전화를 끝고 난 나는 갑자기 이성을 잃었다.
"나한테 친정이 어딨어. 무슨 팔자가 시집식구도 안 썩이는 속을 친정식구가 이렇게 썩일 수가 있어. 8달동안 나혼자 거의 병원에 다녔어. 이제 내가 죽을 지경인데 어떻게 아들이라는 사람들이 뻔뻔할 수가 있어. 차라리 아들이라도 없으면 내가 이혼이라도 하고 어디 산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엄마 죽을 때까지 똥오줌받아내며 망가져버리는한이 있더라도. 나는 정은아빠가 니네들 욕하더라도 할 말이 없어. 니네가 굶어죽고 있는 것 아니쟎아. 숟가락 젓가락 하나 더 놓으면 엄마 모실 수 있쟎아. 돈 필요할 때면 손벌리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사람이야 도대체."
나는 소리를 질러대다가 쓰러질 지경이었다. 모든 것이 다 싫었다. 그저 어딘가로 숨어버릴 수 있다면 그러고 싶었다.
집안이 어수선하고 나는 누워있는데 정은아빠가 들어왔다. 오빠와 술을 마시러 밖에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오빠에게 들은 이야기는 그랬다.
"집사람도 할 만큼 했어요. 7개월동안 거의 혼자 병원 드나들면서 몸이 많이 지치고 밤이면 끙끙 앓는 소리해요. 마누라는 다시 얻으면 그만이지만 부모는 버릴 수 없는 게 인지상정인데 정말 너무들 하는 것 아니예요."
오빠는 할 말이 없었다고 했다. 처가집에서 하는 목장일을 도와주고 처가집돈으로 박사과정에 다니니까 그 쪽에도 명분이 없긴 했겠지만 어쨌든 한 집안을 무너뜨린 책임을 회피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시엄머니와 남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고 다들 빚더미에 올라앉은 건 아니니까 말이다. 결국 오빠는 올케와 법원에서 만나 도장을 찍고 헤어졌다. 얼마 안 남아 보이는 엄마를 요양원에는 보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오빠는 맏아들의 마지막 책임을 하기 위해 제주도에 조그마한 원룸이라도 얻으려고 먼저 내려갔다.
오빠가 원룸을 얻었다는 전화를 받고 나는 엄마와 나의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몸상태가 좋지 않은 엄마를 모시고 무사히 제주도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한 번은 치루어야 할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