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병어회를 뜨러 갔다. 수산시장에 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아 병어가 있는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엄마말대로 조그마한 병어가 은빛비늘을 반짝이며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회는 오래두고 먹을 수도 없고 엄마가 또 조금 먹다 말겠지 싶어 5마리만 회를 떴다. 나는 그 때까지 병어회가 껍질째 먹는 것인지 잘 몰랐다. 병어는 그냥 구워먹거나 무를 넣고 고추가루와 간장을 넣어 졸여 먹는 것으로만 알았다. 자두를 한 보따리 더 사고 시장을 나서는데 갑자기 빗방울이 조금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버스정류장까지 도착할 때까지 사정없이 빗방울이 계속 커져서 아예 쏟아붓고 있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도대체 엄마와 나는 맞는 게 없어. 하필이면 이럴 때 비가 이렇게 쏟아부을 건 뭐야. 입맛없다는 사람이 먹고 싶은 것은 참 다양하기도 하지. 전생에 분명 우리 시엄마였을거야. 나는 며느리고..."
병원에 드나들면서 내 주머니는 늘 가난했다. 가는 비에 지붕 새는지 모른다고 차비며 먹을 것 준비하는 돈 하며 병원에 하루 다녀오면 금방 돈 쓴 자리가 드러나곤 했다. 그런데도 엄마는 늘 먹을 것 타령이었다. 다행히도 이모와 번갈아가며 사골, 소꼬리, 등을 사서 고아 날랐지만 병원에 있는 사람이 병원식사는 한 끼도 제대러 하려고 하지 않으니 당할 재간이 없었다.
비를 홀딱 맞고 병실에 들어서서 병어회를 꺼내놓으며 나는 또 쏘아붙였다.
" 상하기 전에 빨리 먹어요. 하필이면 왜 병어회야?."
" 저 옆침대에 누운 할머니 시영딸이 어제 병어회를 떠 와서 몇점 얻어먹었는데 너무 맛있더라. 눈앞에 가물거려서 잠도 제대로 안오더라."
"그리고 얻어먹으니까 간병인들이 나 무시하는 것같아. '이 년들아 나도 딸있다' 하며 보라는 듯이 전화를 걸었지."
'이제 치매끼까지 있나 봐.'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긴 병원에 누워 있으니 사람이 단순해지기도 하려니와 바깥 날씨가 햇볕이 쨍쨍 내려쬐다 못해 살을 태울 것 같은 한더위인 줄 엄마가 알 수 없었겠지만 하여튼 나는 힘들고 속상했다. 간병아주머니에 대한 엄마의 자존심이 다른 전화는 생전 안 하면서 엊저녁에 내게 전화를 걸게 한 원인이었나 보다. 아니면 시영딸도 하는데 친딸년이 그것도 못하나 하는 생각도 있었을게다.
엄마는 늘 그랬다. 친정에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아들들의 입장은 너무 잘 헤아려서 항상 며느리들한테는 할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우리집에만 오면 엄마는 늘 당당했다. 오죽하면 남편은 "우리엄마가 친정엄마고 장모님은 시어머니야. 거꾸로 됐어."라며 중얼거리곤 했는데 따지기 좋아하는 나도 할 말이 없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고 누운 채 엄마는 병어회를 모두 다 먹어치웠다. 나는 사갖고 간 자두를 반으로 나누어 집에 가지고 가서 아이가 학교갔다 오면 주려고 가방에 넣었다.
"얘! 간병아줌마들 주고 가지?"
"엄마 집에 먹을 거 하나도 없어. 정은이 학교갔다 오면 과일이라도 주어야 하쟎아."
주고 올 수도 있었지만 괜스레 짜증이 나서 쏘아 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