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죠? 죽 좀 사왔는데 먹을래요?"
"무슨 일 있어? 옷이 왜 이래?"
"급히 오다가 좀 찢어졌어. 지하철에 사람이 많더라구."
"다친데는 없구? 잠깐만."
정운이 식탁 위를 셋팅 하는 동안 세준은 흰t셔츠 하나를 가지고 나왔다.
"갈아입어. 이럴 때 대비해서 하나 준비해 뒀어"
"고마워요"
"생일 축하해요!"
"태어나 줘서 고맙다 이런 의미로 받아도 되는 거지?"
"그럼요"
"10년이고 20년이고 항상 내 곁에 있어줘"
정운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눈치 빠른 세준이 모를 일 없었다.
정운이 요즘 위험한 기사를 쓰고 있다는 것을 수정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고, 정운의 옛애인이 귀국 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옛애인과 함께 있다 오는 것이 분명했지만 거기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일 비번이죠? 푹 쉬어요"
"그래. 연락 할께"
밤8시쯤 정운은 세준의 아파트에서 나왔다.
주차장으로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도중 정운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에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태원이었다.
꽤 술을 많이 한 것으로 보아 뒷조사를 했거나, 따라 왔음이 틀림없다.
"102동 602호가 애인 집인가? 의사 선생?"
"... 그 사람에게 까지 피해 끼치면 가만 두지 않겠어요"
"..."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비켜요. 경비 부르기 전에"
"대학병원 내과 전문의에 대학 총장 아들. 이름이 박세준. 맞지? "
"이렇게 더럽게 나오지 좀 말아요!"
"... 나 또한 이러고 싶지 않아.
너를 깨끗하게 보내줄 생각이 굴뚝 같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된다구!
네 눈빛에 서려진 그 남자가 느껴져. 그런데 나를 보는 눈빛과 목소리는 모두 독기를 품었는데 그에게 대하는 네 태도와 목소리는 눈물 겹도록 따스했어.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는건가?"
"나 원참. 기가 막혀서. 이딴 또라이를 한순간이라도 사랑했다는게 너무 한심스럽군. 이제 나한테 이럴 필요도 없잖아?
더럽게 내 몸에 매달렸으면 되지. 더 어쩌자구?
너 결혼하구 내가 첩노릇이라도 해주길 바래? 아님 씨받이?
원하는거 있음 말해봐. 정태원 당신은 행복찾아 결혼하면서 네 첫사랑이 잘난 남자 만나니깐 싫어? 가지기는 싫지만 남주기도 아깝다 이 심보야? 뭐야? "
"나도 나를 모르겠어. 미국에 있을때는 네가 좋은 가정 꾸리고 살길 바랬는데 그게 안돼!"
"당신 여기서 신혼집 차린댔지?
그럼 내가 세준씨랑 미국으로 떠나줄께. 됐어?
그럼 이제 내 행복 빌어 줄수 있겠네. 이딴 식으로 말구!
...이게 정태원 너의 사랑법이니? 이렇게 더럽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게? 이제 지쳤어. 내 자신이 모욕스럽고, 치욕스러워"
정운은 홀로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태원은 그렇게 오랜시간 서있었다.
딩동! 딩동! 초인종이 쉼없이 울어댔다.
"누구세요?"
"..."
"누구시냐구요?"
"정태원입니다."
정태원? 그건 며칠전 수진에게 들은 정운의 첫사랑 이름이었다.
"박세준씨. 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세준은 문을 열어 주었다.
깡패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준수한 외모를 가졌으나 몸에서 술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들어오세요."
"감사합니다."
"무슨 일로 이런 시간에?"
"하하, 제가 인사를 드리고 싶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 왔습니다."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
"술을 많이 하신것 같은데 괜찮으신지?"
"괜찮습니다. 사실 오랜만에 정운이를 만나니 감격과 슬픔에 함께 몰아쳐서 이성을 잃었습니다."
"네"
"정운이 정말 좋은 여잡니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계시다구요? 제가 이렇게 박선생님 앞에서 소란을 피우고 가야 정운이가 다시 저를 찾아 줄 것 같아서요. "
"결혼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 네 물론 결혼 합니다."
"그럼 정운이를 그만 괴롭히세요.
그쪽이 정운이를 많이 사랑하시는 것 같에 말씀 드립니다만 정운이 제가 더 행복하게 해줄껍니다.
사랑이니 젊음의 감정보다 아이 낳고 살다 보면 정도 들잖습니까?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제게 정운이는 그쪽의 감정과 다를바 없으니깐요"
"... 하하 자신 하시는 군요"
"자식 낳고도, 정운이가 원하는 공부 할수 있도록 제가 열심히 도와 줄껍니다. 때가 된다면 함께 유학도 생각 중이구요"
"..."
"저를 포기 시키로 오신거라면 돌아가세요"
세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