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소효! 너 요즘 대체 왜이래? 정신을 대체 어디다 내버려 두고 다니는 거야? 더군다나 응급실은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대체... 잠도 하나 못이겨서 의사 생활 할수나 있겠어?"
"..."
어제 저녁 무렵이었을까. 지현이 태워 주는 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 한뒤 소효는 기숙사에 짐을 풀었다.
재수없게도 응급실을 세달 가까이 회진 하게 되었으니 공부 할 시간만 해도 빠듯한데 어찌 집에 갈수 있게나만은 그래도 아쉬움이 더욱 컸다. 조금 한가한 과를 선택하게 되었다면 충분히 신혼의 재미를 느낄수 있는 법. 하지만 신혼 여행에서의 피로가 모두 몰려 왔다.
공부하는 책을 베게 삼아 잠시 업드려 있는 다는 것이 바로 깊은 잠이 들었다. 가운 속의 삐삐는 도통 울어 대지만 끝내 소효는 일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같은 과를 선택하게 된 건우가 대신 일을 처리해줬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음 끝이었을 것이다.
하여간 잠이 문제였다. 과장에게 도통 혼나고 나온 나에게 건우는 내 눈치를 살피기 바빴다.
"괜찮아? 점심 안했지? 오늘 반찬 괜찮던데... 같이 가까?"
"아냐. 나 괜찮아."
"과장 왜 그러냐? 좀 심하다. 하여간 오버 하는건 정말 대단하다니깐"
"오버는 무슨... 그나저나 치프 나 때문에 괜한 소리 들었을 텐데 뭐라고 해야 되나 몰라! 머리 깨지겠다. "
"정말 괜찮은 거지?"
소효는 건우에게 괜찮다는 듯이 크게 웃어 보였다.
"너도 피곤할텐데 나 때문에 미안하다"
"친구 좋다는게 뭐냐?"
나는 건우와 둘도 없는 동기이자 친구다.
고등학교 시절 내가 전교 회장 선거에 나간다고 했을때 건우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나를 회장이 되도록 밀어줬으며, 의대에 들어갈때도 함께 지원했다. 또, 외부병원에 지원도 함께 했다.
근데 결혼식 전날이었을까. 우리둘은 늦게까지 회진하는 도중 뜬금없이 네가 나의 여자가 되주길 바랬다고 얘기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당시에는 너무 우습고 당황해 그저 건우의 넓은 등을 쳐주며 넌 좋은 놈이잖아 하며 대충 넘겼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가 내게 해준 모든 일은 친구 이상의 감정이 들어 있었다는 것을 요즘에서야 새삼 느낀다. 건우도 점심 식사를 하러 나가고, 나는 꿀꿀한 기분에 기숙사로 돌아와 전화를 건다.
신호음 몇번이 울리더니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남자 최지현이 전화를 받는게 아닌가. 다시 세상 날아 갈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랑이란걸 하고 결혼이란걸 하나 보다.
서로의 피로함과 상처를 덮어주고 함께 웃어 줄수 있는 평생의 동반자.
"지현씨 뭐해?"
"오! 우리 마누라네. 나? 지금 점심 먹지. 점심 먹었어?"
"아니. 별로 생각 없네"
"야, 그 힘든 인턴 생활 한약도 못해주는데 밥이라도 많이 먹어"
"그래! 그럴께. 누구랑 먹는데?"
"누구? 여자랑... 아주 섹시하고 아주 도발적인"
"어머, 나 없다고 바람 피우는 거야? 너무 했다"
"하하 질투 하는 건가? 재광이 만나고 있어.
재광이가 너한테 무척 미안하대. 근데 자기 한테 밥사래.
자기 때문에 결혼한거 아니냐구?"
"재광씨 너무 했다. 나 재광씨 때문에 얼마나 열올랐는데?"
"녀석 미안한거 아는건지 눈치 빠른건지 자리 피해주네."
"... 그래?"
"왜 이렇게 목소리에 힘이 없어?"
"... 나 오늘 완전 꽝이네"
"뭐 잘못 했어?"
"응, 나 과장한테 불려가서 혼났어.
치프도 나 땜에 엄청 깨졌거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사실 어제 잠때문에 회진 못했거든. 것도 응급실인데...
머리 깨지겠어. 어, 삐삐온다. 나 나가봐야 되거든.
이놈의 삐삐 누가 만들었는지 사람 돌게 만드네. 자기야 사랑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은쪽은 소효.
지현은 스산하게 웃어본다. 신혼여행을 가는 길에 아내인 소효가 한 말이 기억났다.
소효는 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다.
약대 교수인 아버지와 화가인 엄마.
미국에서 치과를 하는 큰오빠와 경영학을 공부하는 작은 오빠 사이에서 그녀는 엘리트가 되야 한다는 간접적인 압박을 받고 있었다고 얘기를 했다. 어쩌면 그녀의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막노동 보다 힘든 인턴 생활을 해보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잠이라고 말하며 언제 한번 시간이 된다면 일주일 동안 한번도 깨지않고 잠을 자보고 싶다고 했다.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도와 주지 못해 항상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지현은 요즘 자신의 어머니와 친할머니에게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맏이인 자신에게 결혼도 한 녀석이 아내와 별거 아닌 별거를 한다며 손주도 빨리 안아 보고 싶다고 얘기 할때마다 그냥 사람 좋은 웃음으로 넘어 간다지만 것도 하루 이틀이다.
하늘을 봐야 별을 딴다고.
이때까지 신혼여행에서의 짧고 짧은 부부관계가 끝이거늘.
생각도 못 할 일이다. 얼굴이라도 보기만을 간절히 원한다.
그래도 주말에 시간이 난다면 집에 온다는 말 하나를 요즘 낙으로 삼고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