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가 움직이기 시작하나 보다.
무슨 화면이 나올까...
카운트 다운에 들어가고 드디어 제로...!
영어로 뭐라고 갈겨 놓았지만 서설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겠지.
드디어 그림이 나온다. 그것도 소리까지..
선명하지는 않지만 볼만한 수준에다 소리도 그런대로 들어 줄만하다
우린 담배를 물었다.
술잔을 들었다.
눈으로 화면을 보면서 입에다는 소주를 부었다.
드디어 한 사람이 화면을 걸어 간다.
란 같은 여자...그 여자다. 내가 얼마전에 레이져 총을 쏘았던 여자. 그 여자가 화면에서 걸어간다. 두시간 반짜리라고 했는데....편집을 했다지...이제부터 란 같은 여자의 일상생활을 엿보는 것이다. 진정 넌픽션의 영화를 보는 것이다. 제작자도 없고 연기자도 없는 진정한 한 여자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니..가슴이 울렁 거렸다. 누군가 잡으러 올 것 같았다. 큰 일을 저지르는 초범의 심정이 이럴까..
++++++++++++++++++++++++++화면++++++++++++++++++++++++++++++++++++++++
아침에 출근하는 그녀의 모습이 향그럽다. 늘 지켜보던 그대로다. 비서가 나와서 안내를 하고 집무실로 들어 간다. 그리고 그의 남편 성박사와의 대화 장면이 나온다. 무언가 심각한 모습으로 서류를 검토하고 보고를 받기도 하고
"여보, 어때요? 기분이.."
"음, 오늘은 너무 기분이 좋아.."
"그래요. 늘 그렇게 해 드릴께요.."
"알았소. 당신이 없다면 난 어찌 되었겠소.."
"또 그런 말씀 하시네.. 우린 어짜피 정해진 사람들이잖아요.."
둘이 아마도 대충 이런 말을 주고 받는 모습이 나온다. 모닝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손을 잡아 준다거나 등뒤로 가서 남편 성박사의 등을 주물러 주는 란같은 여자의 모습이 참으로 진지하다.
천사야! 저렇게 불구인 남편의 몸을 보실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점심 식사를 하는 모습과 잠시 눈을 부치는 모습까지 보인다. 화장을 고치는 모습도 보이고 사람이 하는 모든 것들이 비춰진다. 화장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여지자 좀 당황이 되었다. 아이고 실망스런 장면이 나오면 어쩌나....
그러나 이내 화면이 바뀐다. 편집을 한 모양인가. 하기야 인간의 가장 원초적 먹고 마심과
나를 위해 죽어간 食물을 버리는 장면이 어찌 치사하고 창피한 장면이랴만 사람들은 늘 그걸 더럽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러나 정말 더러운 것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화면은 구른다. 분주한 그녀의 사무실 속의 시간이 끝나 간다. 성박사의 휠체어를 밀고 회사의 문을 나서는 그녀가 행복하게 웃는다. 성박사의 얼굴도 감사가 넘쳐 난다. 흐믓한 두사람이 손을 잡고 나서 차에 오른다. 차가 굴러 간다. 차안에서 손을 꼬옥 잡고 앉은 두사람이 외모로는 너무 기울지만 행복점수는 만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윽고 자택인가 보았다. 별로 좋지 않은 집이다. 아파트 문이 열린다. 일하는 아줌마인듯 한 여자가 나오고 강아지 한마리가 쫄래 거린다. 아이들은 없나보지......아마도 학교에 갔거나..같이 안살던지....
란 같은 여자의 움직임을 따라 주변의 모습이 다 보여지는 영상으로 보아 상당한 수준의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기술만 가지면 사람의 모든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얘기잖은가. 갑자기 머리가 띵 했다.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누군가 다 보고 있다면...
소름이 기쳤다. 오싹해진다. 윤식이는 담배를 연달고 있다.
"자. 한잔 해 잠깐 중지 시키고"
화면이 정지 되었다. 우린 서로를 쳐다보며 부슨 의미인지 모를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세상 이 올 때까지 왔네라는 그런 의미의 의미심장한 표현인지. 아니면 뭔가 기대 된다는 건지...
획기적인 전과라는 건지..술 맛이 한층 불심지를 돋우고 우린 다음 장면에 대해 궁금한 마음이었지만 좀더 신중히 보고 싶다는 생각인지 긴장한 탓인지 화장실로 함께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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