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은 촌내가 났다. 토담으로 쌓아올린 집채에서는 진한 향수가 풍겨 고향집같은 모습 그대로 숲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물레방아간 모양도 있고. 작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한시대의 수송 수단이던 우마차(구루마)며, 내가 져 보았던 지게와 지게 작대기, 맷돌이 놓여 있는가 하면 호롱불을 켰던 우리 조상들의 유품이 자연스레 놓여 있다. 민속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입로를 오르며 란같은 여자가 설명을 해 주었다. 이 별장의 주인 여자의 이름은 옥실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은 충남 대학교의 독일어 교수 였는데 어느날 술먹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다가 뺑소니 차에 치여 죽고 말았단다. 평소 그다지도 찬찬하던 교수가 왜 무단 횡단을 했으며 차에 치이게 됐는지 사건은 지금까지 미제로 남아 있다고 했다.
죽은 교수가 애지중지 가꾸던 이 별장을 늘 지키며 아직도 남편을 못잊어 애를 태운다는 열녀(?)는 어떻게 생겼을까...?
남자들은 여자의 외모에 관심이 많다. 외모가 섹시하거나 순수한 것에 대해 관심이 많다. 마음이 먼저라고 늘 말하지만 앞선 남자의 심리를 묘사한 것처럼 외모를 먼저 보는 습성이 있는게 사실이다. 미망인이고 돈 많고 별장까지 가진 귀하신 교수의 아내였다면 정말 란같은 여자를 능가하지 않을까..? 두여자 틈새에서 난 무얼 얻을 것인가..괜히 별장 여주인과 무언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막연한 기대심리가 속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건 어쩔 수 없는 남자의 본색이려니...
큰 집(아마도 주거처) 가까이 오니 소나무들이 솔방울 달고 집을 지키고 서 있고 솟을 대문이 보인다. 면적이 큰 별장이구나. 모르긴 해도 이런 정도라면 가치도 대단하겠네....
개 소리가 들리더니 인기척이 난다. 촌노가 대문을 열고 나선다.
"오세유~"
"네, 잘 계셨죠?"
"그럼유, 사모님도 평안하시구유~"
우리는 안으로 안내 된다.
돌쩌귀를 징검 징검 밟고 들어가니 안채인듯한 여성스러움이 깃든 집이 보인다.
누군가 대청마루에 서 있다. 그 여자인가보다...
"어서와라 봉순이!"
촌스러운 이름이네. 유미. 그래. 난 처음 란같은 여자의 본명이 봉순미라는 걸 알았다. 나는 킥하고 웃을뻔 했다. 봉순이라는 이름이 어쩐지 란같은 여자에 너무 어울리지 않기에..
"순미씨 네가 부럽다. 꼭 찾아와야 만나니. 나오면 좀 안돼. :"
"미안해, 어서와. 맘이 열리지 않아서.."
나는 어둠 속에서 밝아오는 그 여자를 살피며 대청마루로 올라 섰다.
"오늘은 좋은 분을 모시고 왔지. 우리 회사 이사님이신데. 아직 독신이시거든..."
"그래요. 어서 오세요. 정말 영광이네요 촌길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아닙니다. 이런 별천지가 있는줄 몰랐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나는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별장여자도 나를 훑으며 예절을 받는다.
"들어 가세요. 불을 지핀지 얼마 안돼서 좀 썰렁하거든요. 금방 더워질거예요."
"네, 사모님 먼저.."
란같은 여자(봉순이)가 먼저 들어가고, 별장 여자가 들어 가고, 뒤따라 들어가는 나의 관심은 그녀의 얼굴과 이미지 파악에 가 있다. 그러나 난 금새 영문 모를 한숨을 쉬고 있었다.
기대가 컷었는데.. 광대뼈가 유난히 튀어 나오고 머리 숱은 얼마 되지 않은데다 안경까지 낀 모습이 영 여자로서의 매력을 찾을 수 없지 않은가...
팔자가 좀 사납게 생겼다는 생각이 첫인상으로 각인 된다.
어쩌면 잘 된일인지도 몰랐다. 완벽한(?) 조건을 갖춘 여자가 미모까지 가졌다면 아마도 이런 별장에서 잘 지내도록 남자들의 방치(?)가 있었겠는가. 말하자면 자연이 아름답다 보면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고 결국 유원지가 되어 자연이 훼손됨은 물론, 회복하지 못할 더러움과 오염으로 자연이 보존 될 수 없는 것처럼...요즈음의 미인들은 다 유흥업소에 가 있다는 우스개 소리가 진리가 아닐까...못생긴 것을 감사하고, 비경이 눈에 띄지 않음을 감사하고 , 개발되지 않음을 감사하고, 정말 뭔가 까발려지지 않음을 감사해야 하는 세상 속에 우리가 서 있지 않은가.
"앉으세요."
붉은 색 촛불이 켜져 있었다. 초가 얼마나 큰지 전기불 보다도 더 밝았다. 촛농 냄새가 가슴속의 매연을 청소하는 듯한 기분이다. 이내 차가 나왔다.
"이건, 남자분들에게 좋다는 칡차예요. 이 산에서 우리 아저씨가 캔 것인데 환으로 만들어서 보관도 하고 또 차로 끓여 먹기도 하거든요. 한번 드셔 보세요"
"남자들에게 좋다면.."
나는 능청스럽게 묻기로 했다. 별장여자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렇게 좀 유치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은 것은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랬다.
"네, 남자분들 술 많이 드시고 나서 마시면 금방 깬대요."
"아, 네...좋은 약이네요"
나는 별장 여자에게 호감을 사고 싶기는 했다. 그러나 접근하기는 무리라는 판단이었고 그저 순경를 대하는 것처럼 가깝게 하기는 부담스럽고 너무 멀리는 두고 싶지 않은 그런 여자정도로...
"야, 차말고 별미좀 차려와봐. 산토끼나 노루, 아니면 호랑이 고기도 좋고 ^^"
"알았어. 좀만 기다려라 얘, 금방 올거야.."
우린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그러면서 우린 각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나야 아무 생각 없이 ?아 왔으니, 주는 떡이 있으면 먹을 뿐이지만 이 두 여자는 나에게 어떤 모양으로 다가올 것인가.
"우리 심심한데 밥 올때가지 할거 없나? 이사님하고 왔더니 할 얘기도 별로 없고..."
"그래, 그럼 친목을 다지는 의미에서 어때, 항아리에 화살 넣기 한번 하지.."
그랬다. 명절때 텔레비젼에서 본 그런 놀이인데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더라..생각이 나지 않았다. 우린 대청 마루를 지나 너른 실내로 들어 갔다. 마루방이 깔려 있고 벽에는 그림들이 촘촘히 걸려 있는데 모든 작품들이 예사롭지 않다. 누구의 작품일까...?
"이사님, 보세요. 그림들 보세요..이게 다 이 여자 작품이거든요.."
란같은 여자가 별장 여자를 가리키며 벽에 걸린 작품들과 그럴듯하게 놓인 작품들을 가리킨다.
와! 내 입에서 탄성이 궐기하고 나왔다. 저 여자가 예술가구나. 대단한 여자네..잠시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오도방정을 떤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네>
게임보다는 작품을 살펴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좀더 그녀를 알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걸까.
"역시, 이사님도 많이 놀라시는군요.."
"네..?"
"이 친구가 대단한 작가거든요. 곧 개인전을 열도록 우리 회사가 주선을 해야겠어요.
특별이벤트로 이사님이 마련해 주세요..어때요?"
특별이벤트..
나보고 작품 전시회를 마련해주라..
이 제의가 사실이라면 난 혼쾌히 응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직 그렇게 단정 짓기는 어렵지 않은가. 또 문제라면 내가 무슨 예술적 조예가 있어야지.
"걱정 마세요. 제가 사람 다 부쳐 줄께요. 그냥 생색만 내시면 돼요 ^^"
"아, 네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ㅎㅎ"
세사람은 유쾌히 웃으며 작품을 따라 돌다가 화살이 꽂힌 항아리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서로 낮을 익혀야 겠다는 생각으로 게임을 하기로 하면서 가위바위보를 하고 있엇다.
참으로 가위바위보는 우리를 쉽게 친하게 만들 것 같은 느낌이 왔다. 별장여자 순미가 활짝웃고 있고 난 같은 여자도 동심으로 돌아 간듯 참으로 소녀처럼 수줍게 웃고 있는데 나는 왠지 자꾸 무엇인가 계산을 하고 있어서인지 가식적인 모습을 버릴 수 없었다. 나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에 내 뒤통수를 내 손으로 툭툭 치고 있었는데, 그들은 그게 우수워 깔깔거린다. 순수를 모르며 살아온 나의 인생이 이젠 정말 제자리르 찾고 남의 호의를 그냥 그대로 받아 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일어서고 있는데, 보름달이 곧 숲에 잠든 토끼를 만나려고 산 위로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