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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세 미만 아동의 SNS 계정 보유 금지 법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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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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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leaf 2002-10-29

사람들은 아내와 내가 이혼을 한 상태로 어떻게 한 집에서 살 수 있냐고 묻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와 옛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급하게 섹스가 하고 싶을 땐 해결방법이 필요하잖니, 라고. 섹스가 나빠 이혼한 거 아니야. 성격차이 때문이지. 우린 서로 너무 달라. 그때 사람들은 얼토당토않은 변명이라며 기막혀 했다. 이 세상 부부 중에 성격차이 없는 부부 어딨으며, 늘 같은 생각하는 부부 몇이겠냐며, 한바탕 연설을 해대는 사람들. 누군가 우리말을 듣고 그랬다. 화장실에서 뒤를 닦을 때 오른손 왼손 따지며 서 있는 아내와 십 년을 넘게 살아오고 있다고. 여튼 나와 아내는 지독한 성격차이로 이혼했다.
아내와 이혼을 하고 일주일 뒤, 연예신문에 기사가 났다. 신문 끄트머리에 아내의 고개 숙인 얼굴 사진을 박아놓고 성격차이 극복 못해 급기야 이혼, 아픔을 딛고 은막으로 다시 돌아오다, 라는 우스꽝스런 기사. 아내는 그 기사를 보고 좋아했다. 그리곤 기자회견을 할 걸, 하며 혼잣말을 하기도 했다. 이 신문에서 처음으로 다소곳한 옛아내의 모습을 봤다.
아내와 내가 결혼발표를 하고 난 뒤, 그래도 비중 있게 다룬 기사가 문득 생각난다. 그와 나는 너무 똑 같아요. 음식을 좋아하는 것도, 좋아하는 색깔도, 심지어 잠버릇까지 똑 같아요, 우린 전생에도 부부였을 거에요, 라며 아내의 인터뷰가 실린 기사였다. 요염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 앞 가슴이 반은 보일 듯 찍은 전신 사진을 옆에 동반하고서, 어디서 구했는지 나도 모르는 내 증명사진이 타원형 안에 박혀있었다.
아내는 이혼하는 날, 비가 오지 말았으면 했다. 그래서 우린, 아내가 혼수품으로 사온 빨간색 가죽 소파에 나란히 앉아 일기예보를 함께 보고, 아내가 원하던 빨래지수 90퍼센트가 되던 날, 함께 선글라스를 끼고 오랫동안 산책을 한 뒤 법원으로 갔다.
아내는 이혼을 하고나서 다시 에로배우로 활동한다. 나는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법원에서 나온 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작업실이다. 옛아내는 함께 저녁식사를 했으면 했지만, 그냥 걷고 싶었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가을 낮이 짜증스럽기까지 했다. 화려한 스카프와 버버리 코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의 차림새가, 내 시야에 꼼꼼히 스쳐갔다. 시원하게 뚫리는 서울 시내의 교통이 생소하게 보였다.
삼 년간 굳게 닫아두었던 작업실 철제문을 따고 들어서는 순간, 희뿌연 먼지 냄새와 오래된 물감냄새가 코를 간지럽혔다. 색이 바랜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볕에. 나뒹굴고 있는 캔버스와 덕지덕지 발려있는 유채를 본 순간 갑자기 구토가 일었다. 캔버스 위에 그려져 있는, 가지를 넓게 뻗은 나무며, 끝없이 펼쳐져 하늘거리는 갈대밭이며, 높고 아득하기만 한 하늘을 배경으로 그린 그림들을 보고, 울컥 했다. 영혼을 뒤흔들고 마음을 압도하는 것이 풍경화라 누가 그랬던가.
아내는 법원에서 곧바로 백화점으로 가 쇼핑을 했다고 한다.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죄다 샀다고. 쇼핑을 끝내고, 갈비 오인 분을 시켜 혼자 뚝딱 해치웠다고 했다. 갑자기 허기가 져 참을 수 없었다고.
대학 때 동창들은 강남에 있는 오피스텔을 작업실로 이용하는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때 아버지와 나는 할아버지가 물려준 유산들을 서로 다른 방법으로 탕진하고 있는 중이었다. 사채놀이를 해 돈이 많았던 할아버지 덕분에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도 있었고, 집이란 곳이 아니어도 잘 곳을 만들 수 있었다.
필요에 따라 친구도 살 수 있는 게 돈이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모조리 사 버렸다. 아버지와 나는 누가 먼저 돈을 바닥 내 버릴 것인지 내기라도 하는 양 쓰고 다녔다. 부모의 얼굴을 마주하고 밥을 먹어 본 기억도 없다. 그래서 부모와 닮은 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단 아버지와 내가 닮은 점이 있다면 심한 낭비벽일 것이다. 아니, 집이란 곳에 쳐 박혀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도 닮은 점이라면 점이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내게 유일한 즐길거리였다. 집을 떠나 있어도 마땅한 변명꺼리가 되는 부분이기도 했다. 여튼, 목적 없이 떠난 동남아 여행에서 아내를 만나긴 했지만.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내가 풍경화에 빠져 있었던 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