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그예 중국으로 떠났다. 가족여행은 1박2일로
가서도 빗발치는 전화때문에 당일로 돌아오곤했는데
일주일이나 걸린다는 중국행은 아무런 주저없이 떠나버렸다.
애들이 해외여행,해외여행 노래를 불러도 "엄마랑 다녀와."
라며 자기는 쏙 빠지더니, 아무리 학교에서 지원이
있다고는 하나 섭섭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처음 가면
안돼냐고 물었을때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빴지만 알아서
하라고 한 것이 잘못이었다. 남편은 이면을 볼 줄 모
르는 사람이다. 말로 표현되는 것이 다 진실이라고 여긴다.
날 좀 사랑해 달라는 뜻으로 "자기가 너무 좋아"라고
말하면 내 머리속엔 온통 자기 생각밖에 없는 줄 안다.
생활비 좀 달라는 뜻으로 "못살아 못살아" 외쳐도
저 여자 또 시작이구만 그러고 만다.
남편은 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결혼초까진 전문대학은
나온 줄 알았다. 신랑감이 전문대 출신이라는 말에
외삼촌은 펄쩍펄쩍 뛰었다. 외숙모가 중매를 섰기
때문이다. 서울엔 되지도 않은 전문대도 많다며
최소한 어떤학교인지 꼭 확인하라는 말까지 하셨었다.
외숙모는 남편측 중매쟁이에게 확인을 부탁했고
그 쪽에선 전문대라도 나오지 않았으면 회사에서
그 정도 지위는 얻지 못했을 거라 장담했다.
그때 남편은 대리였다. 공부가 세상에서 제일 쉽다고
여기며 살아온 나에게서 공부가 안되서 대학을
못갔다는 것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 말을
믿었다.결혼후 방송통신대학에 원서를 넣겠다는
남편의 말에 편입하는게 낫지 않냐고 되물었더니
자기는 전문대도 다니다 말았다고 했다. 순간 머리가
아득해지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나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남편이 거짓말 한 것도
아니고 그말을 하지 못해 얼마나 가슴이 답답했을까
안스럽기까지 했었다. 결국은 내 선택이었기에 길이
얼어 미끄러웠음에도 신림동에서 인천까지 지하철에
버스를 타가며 남편은 성적증명서와 졸업증명서를
떼러 갔었다.
성적이 좋지않아 떨어졌고 우리는 서로 더이상
대학에 대해 얘기하지않았다. 살아가는데는 학력이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고 남편은 다행히도
학력컴플렉스를 갖지않았다. 농담으로 내가 자기는
복많은 줄 알라고 하면 남편은 정말 진심인듯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남의 장점을 장점으로
인정해 줄줄 아는 드문 사람이었다. 지금도 남편의
그런 점을 나는 높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