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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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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jeff007 2002-10-07

들어가기..

한참전에 내 고향 경북영천을 다녀온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무녀 한분.. 그분과 따스한 볕아래서 한참을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 그녀가 들려준 신비로운 부적에 관한 이야기를 토대로 소설

"적"을 시작할까 한다..



하늘은 무지 파랬다. 그는 방금 시외버스에서 내린 터라 약간의 멀미를 느꼈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넋을 놓고 있을때가 아니였다.

어서 그곳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에 멀미도 참은채 발길을 재촉했다.

강혁. 그의 이름이다. 그의 나이 올해 27살. 그의 어머니는 무당이었다.

그가 아주 어렸을때 신을 내려받았다. 그 때문일까? 혁은 어머니를 닮아

조금의 신기가 있는듯 했다. 이런 그를 알아본 추경스님은 그에게 적(부적)을 다루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조차 그 어미의 길을 따라가야 했기에...


지금 그가 가고있는 곳은 강원도 평창의 한 마을이다.

그에게 친구로 부터 연락이 온건 어제 늦은 밤이었다.

" 나 너에게 중요한 일을 부탁하려고 한다. 들어줄수 있겠니? "

" 말....해봐...."

" 내 고향에서 지금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데."

" 무슨일인데?"

" 어.... 우리 고향집 옆에 조그만 흉가가 있는데 그곳을 지나가기만 하면

사람이 정신이 이상해 진다는거야. 벌써 몇사람째 그랬데"

" 그래? 그럼. 다른사람들에겐 말하지 말구 넌 그냥 조용히 있어 "

" 알았어..그 대신 너도 몸조심해 "

" 그래......"

길을 가는 도중에도 친구의 말이 자꾸만 걸렸다. "과연 무엇때문일까?"

혁의 혼자말에 지나가는 개가 힐끔 돌아본다.

" 음.. 저긴가보군.." 혁의 눈에 비친 그곳은 허름한 초가집이었다.

그냥 무심코 보기엔 평범한 초가집이지만 혁은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수 있었다.

우선 마당 한가운데 놓인 커다란 사과나무가 특이했다.

과실수를 마당 한가운데 심다니..... 그리고 집 주위에 뽕나무가 심어져있었다.

뽕나무는 절대 집안에 심으면 안돼는 금기식물중에 하나였다.

이집 주인은 자기 멋대로 금기를 깬것 같았다.

혁은 부서진 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혁의 몸을 강하게 밀어내는 무언가가 있었다. 혁은 몸을 돌려 베낭안의 적주머니를

꺼냈다. 하적봉사지(귀신을 땅에 붙게 만드는 부적) 를 허공에 뿌리자 검은 기운이

혁의 주위에 몰려들기 시작했다. 뒷걸음으로 문밖으로 나간 혁은 다시 주문을 외우며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야로거타초려냐.. 야로거타초려냐.....

혁의 몸 주위를 감싸던 검은 기운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금새 초가집 안으로 빨려들어간다.

이마에 담이 송글송글 맺힌 혁은 우선 그 집에서 나오기로 했다.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니 식당이 나왔다. 식당안으로 들어가니 그곳에는 몇몇의

촌로들이 뚝배기에 해장국을 먹는듯했다. 동그란 얼굴에 가만 피부의 주인인듯한 여자가

호들갑을 떨며 혁을 반긴다.

" 저 건너편에 있는 집 있잖아요? 거긴 누가 살던 데예요? "

순간 해장국에 소주를 들이키고 있던 한 촌로가 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 댁은 뉘신데 그집에 대해 묻소? "

" 그냥 궁굼해서요"

" 예끼 여보슈.... 그집에 대해선 절대 물어선 안돼. 여기 그 집에 대해서 아는사람도 없고..."

말꼬리를 흐리는 폼이 마치 무언가를 아는듯했다. 하지만 급하면 일을 그르칠수가 있는법.

혁은 주인여자가 가지고 온 해장국을 먹기 시작했다.

촌로들은 자기들끼리 쑥덕 거리더니 금방 식당을 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주인 여자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혁에게 물어온다.

" 정말 뉘슈? 여기 사람은 아닌것 같은데.. 일자리 구하러 왔수? "

" 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예요 "

" 근데 왜 그 집에 대해 묻소? "

" 아까 그 집앞을 지나왔거든요 "

" 아니???? 정말 그 집앞을 지나왔단 말예요? 근데 아무일도 없었나요? "

" 네.. 근데 조금은 이상해서요 "

" 이런..이런...정말 큰일날뻔 했네.... 거긴 말유 절대로 지나가선 안돼는 집이쥬

이 동네 사람 벌써 여럿 세상 떳슈 "

" 그런데 그 집이 왜 그러는데요? 무슨 귀신이라도 나오나 보죠? "

" 아니 이 총각이 뭘 몰라도 진짜 모르네... 아 그집. "

그때였다.. 좀전에 나갔던 촌로중의 한사람이 식당문을 열고 " 이 여편네가... 장사 그만

하고 싶어??? " 소리를 쳤다. " 에그머니...내 정신좀 봐... 총각..많이 들어요"

혁은 순간 이 동네에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다는걸 느꼈다.

아마 아까 그집의 검은 기운 때문이리라.. 날이 어두워지면 다시 가기로 하고

식당 한켠을 빌어 잠을 청했다.

혁은 자리에 누워 그날을 회상했다.

그때도 이렇게 하늘이 파랬다. 내가 신의 뜻을 거역한채 그 집을 도망칠때.....

몇번인가를 넘어지며 오직 이곳만 빠져나갈수 있다면......

하늘을 보면서 뛰었다. 파란 하늘이 혁을 보고 손짓하는것 같았다.

혁은 어느새 눈물이 흐르는걸 느꼈다. 하늘.... 파란 하늘...그리고 눈물.......

무엇이 이토록 혁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가.....

혁은 추경스님을 생각했다. 스님이 그에게 해준 말이 생각났다.

" 번뇌를 벗어야 모든것을 잊을수가 있다. 너에겐 수천 겹의 번뇌가 쌓여있다.

그 겹겹히 덮힌 번뇌는 결국 네 자신이 풀어야 할 업보니라 ...아미타불....."

그랬다...그 번뇌가 지금의 혁이 있게 했고 그 업보를 풀어야 하기에 지금 이곳에도

그가있는것 이리라.. 벗어버리리라...반드시 나에게 덮혀져 있는 이 모든 업보를

벗고야 말리라...


어느새 날이 어두워 졌다.

혁은 가방안에 적주머니를 꺼냈다. 적주머니를 열자 노란부적들이 차곡차곡 접혀있었다.

이 부적들은 모두 추경스님이 손수 써주신것들이다. 지금까지 이 부적들로 수많은 사람들을

구했고 많은 영들을 저승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오늘 그 초가집의 영(귀신이라고도 함)은 다른 영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우선 검은 기운이 심상치 않아보였다.

서둘러 식당을 나온 혁은 길가의 상점에서 대나무 젓가락을 여러개 샀다.

그리곤 젓가락에 부적을 감기 시작했다. 우선 영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향미루 부적을

감았다. 부적에서 독특한 향이 나는 이 부적은 지리산에서만 자라나는 철향나무 즙을 내어

만든것이다. 나머지 부적들은 오른쪽 주머니에 넣고 젓가락에 감은 향미루 부적은

왼손에 들었다. 발걸음을 재촉한 덕에 어느새 초가집 근처 까지 왔다.

초가집에선 푸른 빛이 돌았다. 구태여 영을 볼수있는 면경령부적을 쓰지않아도 될듯 싶었다.

초가집으로 가까이 다가간 혁은 젓가락에 감긴 향미루 부적을 던졌다.

대문 어귀에 세개가 꽂혔고 나머지 향미루 부적은 마당 한가운데 꽂혔다.

달빛에 을시년스럽게 아른거리던 푸른기운은 금새 검은 기운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검은기운은 담장을 넘어 혁에게로 다가왔다.
" 드디어 시작이군.." 혁은 적주머니에서 또 다른 적을 꺼냈다. 경천비속.

하늘의 기운을 담은 부적이다. 어느새 검은 기운은 혁의 발밑에 까지 와있었다.

하지만 경천비속 부적에서 빨간 불꽃이 일더니 검은기운과 어우러진다.

빨간기운은 검은기운을 제압할려는 듯 검은기운을 감싸고 돌았다. 검은 기운은

흠짓 머뭇거리다 이내 집안으로 들어갔다. 일단은 기선을 제압한 셈이다.

혁은 집안으로 들어갔다. 검은 기운은 이미 초가집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혁은 마루로 올라서서 방문을 열었다. 달빛이 비친 방안에는 히미하게나마

가부좌를 틀고 있는 영이 보였다. 혁은 적주머니에서 면경령을 꺼내 자신의 눈에

비볐다. 이윽고 어두웠던 방안이 환해지면서 영의 모습이 또렸하게 보였다.

60대 후반쯤 보이는 노인은 하얀 한복을 입고 있었다. 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그대는 누구길래 나를 방해 하는가? "

" 저는 지리산에서 온 혁이라고 합니다. 어르신은 뉘신지요?"

" 난 이집에서 오래 살았던 이집 주인일세.."

" 그런데 왜 마을 사람들이 이집을 무서워 하는지요..? "

" 난 이곳을 떠나질 못하네. 그러니 자네도 나를 방해하지 말고 떠나게..."

" 그럴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정을 말씀해주시면 제 판단하에 행동하겠습니다 "

" 어~허.. 할수 없군."

영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랬다.

지금부터 약 40여년전 노인은 농사를 지으며 슬하에 자식을 5명 둔 평범한 농사꾼이었다.

그런데 큰아이가 산에서 나무를 해오다 다리를 다쳤는데 그 상처가 너무 깊어 사경을 헤메

다 세상을 뜨고 말았다. 상심한 어미는 눈물로 세월을 보내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홀로된 노인은 나머지 자식들을 모두 일가 친척들에게 맏기고 홀로 유랑을 떠났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후에 다시 이 집에 와보니 흉가가 되어있었고 그래도 살아보려고

집도 고치고 남의 땅도 부치고 해서 그럭저럭 아이들을 이제는 데리고 와도 되겠구나 싶어

친척집을 찾아 갔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단다.

아이를 맏긴 친척집에는 또래의 아이가 한명 있었는데 그 아이가 그만 몸쓸병에 걸려

백약이 무효하다하여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가 물어보니 살아있는 아이의 간을 날것으로

먹으면 낫는다 하여 노인의 아이를 산체로 배를 갈라 그 간을 꺼내 먹였다는 것이다.

분노한 노인은 길길이 뛰다 친척집의 하인들에게 몰래를 맞고 이 집으로 왔는데

하인중 하나가 따라와 이 집 앞마당에서 자신을 죽이고 묻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증거를 없에기 위해 자신이 묻혀있는 곳에 커다란 사과나무를 심었다.

노인은 사과나무가 자신의 몸을 누르기 때문에 죽어서도 고통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노인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지박령(죽은 그 자리에서 떠도는 영)이 되어

이 집에 오는 모든 사람들을 죽이기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죽은 그자식을 그리워한
노인은 아이들이 사과나무의 사과를 따먹으로 오면 그렇게 이뻤단다. 그래서 아이들이 오면

노인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하는데 아이들은 노인을 보고 놀라서 모두 죽었단다.


"그런데 이 집 근처만 가도 모두 정신이 이상해진다는데.. 그것도 어르신이 하신 일입니까?"

" 아닐세... 여기 이집에는 나 말고도 다른 영이 같이 있네.. 그 영은 그냥 재미로 그러는건

건데 사람들이 귀신을 보았다며 스스로 정신이 이상해지는걸세"

" 정말입니까?" " 그렇다네..."

혁은 몸이 싸늘해 지는 것을 느꼈다. 열어놓은 문으로 젊은 여자 영이 들어왔다.

" 어르신.. 이도령은 뉘신지요? "

" 범상치 않은 기운이 있는걸 보면 필시 도를 아는 도령같구려 "

" 그런데 아까 보니 적을 사용하던데 어디서 배웠나요? " 여자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 지리산에서 추경스님께 배웠습니다. "

" 음... 추경이라......"

" 자..이제 그만 속세의 한을 풀고 저승으로 가시지요 " 혁은 노인의 영이 측은했다.

어느새 혁의 눈가에도 눈물이 비쳤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의 영은 말했다.

"보아하니 지나가던 사람 같은데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그만 갈길을 가는 것이 어떻소?"

" 그럼 어르신도 이제 사람들 괴롭히는건 그만하시죠. 그럼 저두 제 갈길을 가겠습니다 "

옆에 있던 여자 영이 말을 꺼냈다.



" 당신은 상관 하지마. 우린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아직 저 영감은 물론 내 한도 풀지 못했

으니까... 당신이 뭘 알어? 니 까짓게 한을 알기나 해? 저 영감이 그만둬도 난 못해~"

여자 영은 매우 화가 난 듯 소리치며 밖으로 나갔다. 혁은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적주머니를 꺼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려는 듯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 보았던 검은 기운이 방안으로 스믈스믈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곤 혁의 몸을 감쌓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