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 여객 터미널 2층.
건물안은 승선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금방 가득찼다.
우리가 타고온 차량뒤로 여러대의 관광버스가 연이어 들어온다.
어제부터 비가 왔는데도,이 정도 날씨쯤은 괘념치 않는지....
우리을 제외하곤 모두들 즐겁고,설레이는듯한 얼굴들.
빗줄기가 아까보다 조금 가늘어졌다.
비때문에 습기가 머문 유리창에 길게, 그의 이름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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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년이 다 되는 세월동안 오빠 라는 명칭으로 불리워졌던 사람.
우리의 첫만남 이후, 그의 이름이 늘 낯설던 기억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는데.............
오늘이 지나면 애써 타인이 되어야 할 그의 이름앞에....나는 또다시
눈물이 솟구친다.
유리창에 새겨진 그의 이름 석자.
물기를 너무 머금어 하얀 한지위에 서서히 퍼져나가는 먹물처럼,
아래로 ,아래로 떨어져 흐려지더니...이름 석자 써있던 자리엔 허연 손가락 자국만 남았다.
문득 뒤를 보니,유령처럼 그가 서있다.
언제부터 서있던 걸까...
언제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밤새 그림처럼 앉아있던 그를 말없이 혼자 남겨두고 나왔는데,
그는 언제나 처럼 조용히 내 뒤에 서있다.
나무처럼...산 처럼.
"차 에서 좀 자지 그랬어..."
아냐...괜찮아.너도 못 잤잖아. 이것좀 먹어."
"김밥이네.새벽부터 김밥 파는 데가 있나봐?"
"아냐.여행 인솔자가 나눠주던데...충무 김밥이래."
"이게 그 충무 김밥? 맛 없다.실망 이네..."
"아침 이라 입안이 껄끄러워 그럴거야.음료로 목좀 축이고."
"별로 안 먹고 싶다.오빠 먹어.이따 매점에서 빵 사먹지 뭐..."
"좀 있다 배 탈려면 뭘좀 먹어야지. 너 위장병 있잖아."
"멀미가 심해서...오히려 빈 속으로 타야해.
차에서 안해서 더 불안 하네..."
"일부러 참지 말고 힘들면 나 불러.화장실 같이 갈께.
너 줄려고 가그린 이랑 티슈도 준비해왔어.멀미 할때 쓰라고.
입맛 없더라도 김밥좀 먹어둬. 속이 든든해야 멀미약 먹지."
스피커를 통해 배에 승선하라는 멘트가 흘러나온다.
어느새 내 배낭까지 빼앗아 어깨에 걸쳐매고,
앞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
밤새 의자 시트에 눌려 가라앉은 그의 뒷머리가 슬프다.
축쳐진 어깨와 ,구겨진 물빛 셔츠가 슬프다.
애써 힘주어 밟는 그의 서늘한 발걸음이 슬프다.
아직 멈추지 않는 비에, 서둘러 팔 벌려 머리를 감싸주는
그의 따스한 가슴이 슬프다.
비에 흠뻑 젖은 자신의 머리보다 ,조금 젖은 내 머리를
손수건으로 세심하게 훔쳐주던 그의 하얀 손이 슬프다.
마침, 흘러나온 정 태춘의 노래에
바다를,하늘을 우러르다,미처 감추지 못한 ,
물기 머금은 그의 눈이 슬프다.
아무 말도 못하고,그저...그렇게 바라만 보고있는,
스물 여섯, 스물 아홉. 우리 사랑이 슬프다.
서럽게...서럽게 비가 내리는속에서 , 우리를 태운 배는
서서히 바다를 향해 미끄러져 흐러간다.
노래에 감염이라도 된듯...함께 탄 사람들 마저 말을 잃고,
세찬 비 속에 흐릿하게 펼쳐지는 거친 바다 의 풍경속에
정 태춘 그의 노래만이 바다위를 가득 채우고 있다.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 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 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헛된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아
가는 배여,가는 배여.
그곳이 어디 메뇨.
강남길로,해남 길로
홀로 떠나가는 배.
바람소리 파도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뿐....
너를 두고 간다는
굳은 다짐도 없이[?]
남기고,가져갈것 없는
저 무욕의 땅을 ?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
꾸밈없이 꾸밈없이
홀로 떠나가는 배
바람속으로,물결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