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네 아제 !
산이네 아제 !
큰일 났써라아
순남이 아제네 아짐이 디져 부렀써라아!
동네 아짐들이 얼릉 모시고 오라헙디다."
이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 이냐.
이모가 죽어 ? 왜 ?
그 순간 엄마,아빠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사물이 멈춰버렸고,
움직이는것이라곤
낯선 손님에 놀라 ,두엄뒤로 숨어드는
수선스러운 오리 몇 마리뿐이었다.
"쌍노무 새끼.
장난 칠게 없어서...너 오늘 나헌티 디져볼래?
돼지 우리를 침범한 수탉을 내쫓느라 내가 들고있던 막대.
막대 끝에 돼지똥이 묻어있는것도 아랑곳 하지않고,
머스마 에게 냅다 휘두르며 난 소리쳤고,
대낮에 남의 밭 참외 서리를 하다 내게 들켜,
그 후로 내 눈치만 보던 그 아이는...
바들바들 떨며 악다구니 쳐대는 나에게
찍소리도 못하며,마당으로, 뒷곁으로 도망만 다녔다.
내게서 막대기를 빼앗아간건 ,
어느새 정신을 차린 엄마 였다.
남의 집 3대 독자를 돼지 똥 묻은 막대기로
이리저리 후려치는 막내딸이 못내 미안하셨는지...
말린 누룽지 몇개를 그 애 손에 이미 쥐어보낸후였다
차가운 우물 물 을 먹여 나를 진정시킨 다음에야,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큰 돈 을 잃은지 얼마되지 않아,
문 단속 이 철저 하셨던 부모님이
그렇게 아무 단속도 없이 집을 나선것을보면,
그 당시,그 분들도 많이 놀라기는 했었던 같다.
마을 회관 앞에 사람들이 모여
웅성웅성 거리는게 보이고,
죽음...이라는것을 아직 실감하지 못하는
코흘리게들이 제 엄마의 치맛단 을 붙잡고,
이모 집 앞을 기웃 거리고 있었다.
넓지 않은 방 두칸 에 작은 마루.
작지만 예쁜 꽃밭이 있는 이모 집에서
토끼 처럼 두 눈이 빨개져 울고 있던 언니는,
나 와 함께 들어서는 엄마를 보자마자
이..모..오...하며 품안으로 달려들었고,
장 에서 돌아온 이숙이 미처 묶지못한 염소가
조약돌로 여기저기 예쁘게 꾸며놓은 꽃밭 안으로 들어가
아직 여물지 못한 봉숭아 와, 채송화 꽃잎을
다 밟으며 혀를 낼름거리고 있었다.
"이 사람아 이것이 뭔 짓인가?
자네 묵으라고, 좋다는 염생이도 사왔는디......
피 같은 우리 새끼들 어뜩허라고,
자네 혼자 그 먼 길을 어찌 먼저 갔능가?
어..이, 어..이 . 말좀 해보란 말이시....."
이미 싸늘해진 시체를 부여안고,
목이 터져라...통곡 하고 있는 이숙을
동네 아낙들은 이도저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다.
"어째 세상을 떴다요?
글게 말이시. 천 길 사람 속을 그 누가 알것능가...
근디, 언제 눈을 감아 쓰까요?새참나절 에 물 길러 나오든디...
즈그 막내 딸레미가 놀다 들온께, 저리 되어 있더라 허대..
아..따....독허기도 독허요. 그 얌전 헌 사람이......
본디 여그 사람도 아닌디...시집 와서 고생만 허다 갔구만.
시집 올 때 부터 몸이 시원치 않았다 헙디요...
심지 깊은 사람이라, 서방이랑, 자식새끼 고생 안시킬라고 갔는갑네.
아따.성님도...고깥 병수발이 큰 거다요?
목숨 줄 붙이고 살면 그게 덕이지.안 그렇소? 성님?
죽은 사람 두고 가타부타 허는것 아니네.
아따,쇠주 에다 뭔 약을 탔응께... 저렇게 되았겄지요.
말 좀 조심허소 이 사람아. 자네가 순산가? 순산가 말이여?
자네가 그리 촐삭 대고 ,입방정 떤게 미움 받는 것이여.
쌍둥이 어메 . 지발지발... 고 놈의 주둥이좀 주심허소.으응!
아이고메..내가 뭐라 했다고, 나를 갖고 그러씨요?참말 억울 허네잉.
"허긴..자다가도 급 상사 허는것도 요즘 시상엔 많다고 허데요
제작년 에는 저-그 대성린가,어딘가 사는....그 뭐시냐...
서른 여덟 묵은 사람도 죽었답디다.평소에는 건강했다 안합디요."
말 많은 쌍둥이네 아짐에게 그만 하라 손을내저으며,
마치 언니보고 들으랏듯, 엄마가 큰 소리로 애기한다.
...장 에서 사온 염생이가 튼실 해 보인다" 느니,
...푹 고아서 우리 쌍둥이 아베 먹이면 딱 좋것다"느니,
쉬지 않고 입을 나불대던 속없는 쌍둥이 아짐은
내가 째려보는것도 모자라,언니 에게까지 눈흘김을 당했고,
결국, 동네 아짐들에게 쫓겨나갔다.
"우리 산이 머리 보드란것좀 보소.꼭 참지름 바른것맹키 보드랍네."
무릎에 앉히고,
발 곱고,촘촘한 참빗으로 얼기설기 빗어주던,
이모 의 가늘고 긴 손은
어미를 잃은 언니의 가슴 안에 꼭 끌어안아져,
한없이... 한없이... 젖었고,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백반가루 와 ,봉숭아 꽃잎을 스뎅그릇 가득히 넣어놓고,
다섯 손가락에 봉숭아 물도 들여주고,
마당가 무화과 나무위에 올라가 무화과도 던져주던......
그런...이모를 잃은 난,
애꿋은 손톱만 연신 물어뜯으며,
서쪽 하늘 에 길게 드리워진
너무나 처연하고 슬픈 노을을
한없이 ,한없이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한없이.............한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