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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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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크리스마스 이브


BY B&H1973 2002-07-02

" 멍 멍멍 멍 으르릉 멍 멍멍 !
도리야 .이 노무 개새끼 조용안할래 !
저...엄마. 도리가 왜 저러지?
마루 에 내가 나가보까?
추운데 뭐허러 ? 냅둬라 저라다 말것지.
아..아니...칫간 도 메렵고...도둑괭이 왔르면 쫓아불게...
엄마가 같이 가주까? 무서울틴디...
엄만..나 낼 모레면 중학생인디?
아이고..아가씨. 덩치만 중학생!
자면서 엄마 찌찌나 만지지 마셔.
산이어메 .이참에 저 가시나 요강도 치워불소"

요강 을 치운다는 아빠의 장난끼 어린 협박을 뒤로한체
방안을 나왔다.
사실 이 추운 겨울날,
요강을 치운다는 말만큼 내겐 아찔하고 ,서운한 말은 없다.
아니.더 솔직하게 말하면 추운건 두번째 문제고,
나는 우리집이 무섭고 ,우리 마당이 무섭다.
마당 한켠. 다 쓰러져가는 오막살이 변소도 무섭고,
어둠속에서 히뿌엿게 드러나는 뒷?의 제각이랑 ,무덤도 무섭다.


겨울밤 .
허연 엉덩이를 드러내고,마음만 조급해 용을 쓰고 있다보면,
드러낸 살갗위로 보이지 않는 손인양
서늘하게 지나가는 바람과
부-우엉,부-우엉 -뒷 뫼 에서 울려오는소리...

분명 건조장 비닐이 휘날린다는걸 알면서도,
마치 그것이 허연 소복 이 공중에서 떠도는것같아
애써 보지않으려 눈을 이리저리 돌리면,
갑자기 ,돌담위로 불쑥 솟아올라 쏘아보는 도둑괭이의 푸른눈.
이 모든것이 나는 무섭고 두렵다.

아뭏든 이 모든 무서움을 감내하고,
죄없는 개한테 소리도 지르고,
안 마려운 변소 핑계도 대면서
굳이 ,내가 마당으로 나온 이유는 한달전부터 세워놓은,
나의 철저한 계획 때문 이었다.
그렇다.오늘은 12월 24 일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옷도 이미 깨끗한걸로 미리 갈아입고 있었고,
내일. 아빠 한테 다리 몽뎅이 부러질 각오도 이미 하고 있었다.

내가 독실한 기독교인 이라 생각했다면 그건 오산 이다.
3,4 학년때 친구따라 내키지 않는 걸음을 몇번 했었고,
더 어릴땐 새로생긴 빨간 구두와,원피스를 자랑하려고...
그 보다 더 어리던 80년대 초엔,그 당시 시골에서 귀하던
눈깔사탕과 새우깡,초코파이 맛보기 위해...
일요일 이면 엉터리 꼬마 신도 역할을 몇번 했었을 뿐이다.


"막내야.막내야 !
이노무 자슥이 또 어디로 샛능갑네!
엇 저녁부터 군고구마 타령하길래,잿속에 파묻어 너났는디..
오늘이 저그 교회 잔치날이라 그럽디다.냅두쇼!
서양 하늘님 생일이라 허데요.아랫집 동선이 어메 말들어봉께."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살금살금 걷던 내게
부모님의 애기 소리가 들려온다.
체념이 묻어나는 반허락의 애기 이기에
다리 몽뎅이 부러질 일은 없어졌지만,
부모님은 모른다.
내가 한밤의 탈출을 꿈꾼건
사탕이나.과자 때문이 아니고,
친구 때문도 아니며,
어떤 즐거움이나 흥미 때문이 아니란걸.
그저 어느날 문득,
일상에서 일탈하고 싶었고,
막내라고 오냐오냐 하시면서도 ,
저녁 7 시 이후엔 외출을 금했던
부모님에게 반항하고 싶었다.
그즈음 다가온 크리스마스 이브는
내가 정당하게 밖에서 밤을 샐 핑계거리가 되었다.
부모님은 모르실것이다.
그로부터 15 년 이라는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10분이면 오갈 지척에 있는 교회를 30 분이 넘게 걸리며,
87 년 어느 겨울에 내가 들은 교회의 종소리와,
늦은밤 어디를 다녀오는지 모를 ...털털털털 경운기 소리.
제 어린 주인이 나가는걸 아는냥,
몸을 낯추고 조용히 배웅하던 강아지 도리의 하이얀 꼬리와
후레쉬 불빛 앞으로 길게 드리워지던 꼬부랑 사잇길.
시집온지 얼마 되지않아 지아비를 여윈,
길가 여염집 아낙의 서글픈 실루엣과
모퉁이를 다 돌도록 들려오던 휘모리로 감아돌던 다듬이질 소리.


그것만큼 아름다운 그림과 은율을
나는 아직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가끔,
비가 오는 날이면
대청마루 가득 이불호청를 벌려놓고
아리랑 곡조를 흥얼 거리던
내 어머니의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