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문을 잠그고 불 꺼진 복도로 나서면 약간은 으스스하고 적막한 공기가 사방에 깔려 있었다. 창 밖으로는 구포다리의 가로등이 보이고 구포역과 그 주위에 낮게 모여앉은 낡은 슬라브 지붕들이 보였다. 그 지붕아래서 비쳐 나오는 불빛들에 의지하여 우리들은 복도와 사층에서 일층까지의 긴 계단을 내려 와 마침내 운동장을 밟았다. 유난히 나무들이 많이 심어진 운동장에는 사과꽃 향기가 진했다. 봄비에 눈처럼 날리던 살구꽃도, 필 때와 달리 질 때는 너무 처연하여 나이먹은 여자를 보는 것처럼 딱하기만 했던 목련도, 술집 작부처럼 제 붉은 속 다 드러내놓고 수선스러이 웃던 동백도 모두 이미 푸른 잎으로만 남아 있었다. 열매가 되어 보기도 전에 아이들에게 다 떼이는 사과나무 두 그루가 진한 향기를 발했다. 등나무는 연보랗 빛의 꽃들을 치렁치렁 늘어뜨린 채 누가 좀 채어가 주기를 바라듯 가볍게 흔들렸다.
선생님들이 흔히 구양이라고 불렀던 구정애 언니와 미현이 , 강희 , 나는 어두워진 운동장을 가로질러 낮에는 기어서 도망가던 정문을 당당히 통과하여 학교 밖으로 나섰다. 점심시간이면 우리들은 곧잘 미처 못 준비한 준비물을 사러 혹은 군것질 거리를 사러 밖으로 나가곤 했는데 일일이 외출증을 끊는 불편을 겪기 싫은 우리들은 정문 옆 경비실의 유리창 아래로 거의 기다시피 하여 밖으로 나갔다 오고는 했다. 바닥에서 유리창까지의 높이는 우리들이 낮게 허리를 구부리면 보이지 않을 정도 높이였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때의 경비 아저씨가 우리의 비행을 몰랐을 리가 없었으리라는 짐작이 된다. 우리들은 아저씨를 속여먹는 불순한 즐거움에 빠져있었지만 아저씨는 알면서도 속으면서 우리들의 행동을 지켜 보시는 그야말로 부처님 수준의 즐거움을 누리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학교 오른쪽 담벼락의 분식집과의 사이에 있는 한사람이 지나면 꼭 알맞은 골목길을 통과하여 그보다 세배쯤 넓어지는 길에서 잠시 멈춘다. 정애 언니의 집이 그 곳에 있었다. 형제 가운데 막내인 언니는 그 집에서 결혼한 언니와 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갸름하고 눈이 커서 서양인형 처럼 예쁘장한 언니는 입가에 볼우물을 만들면서 우리에게 작별을 하고 우리들은 그 길을 따라 5분쯤 더 걸어 내려온다. 철도 건널목이 있는 그 곳에는 ‘땡땡 문방구’가 있었다. 본래는 다른 이름이었다는 그 곳은 언제 누가 붙였는지 그 이름이 땡땡 이었다. 아마도 어느 학생의 재치가 빚어낸 이 이름은 이제 문방구의 정식 이름이 되어 간판도 바꾸었다. 주위에는 국민학교를 포함하여 자그마치 일곱 개나 되는 학교가 있었다. 땡땡 문방구와 건널목은 그 많은 학생들의 학교길이면서 만남의 장소이고 필요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있는 곳이었다. 그 시간쯤은 늦게까지 공부하는 남자고등학생들을 빼고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귀가한 뒤라 땡땡 문방구도 문닫을 채비를 한다. 우리는 꼭 그 맘 때 지나는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려 땡땡 소리내는 건널목을 지나 구포 역 앞으로 향한다. 역사에서 내려 와 건널목을 다시 건너야 우리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강희와는 여기서 헤어져야 한다. 강희네 엄마와 아버지는 구포역 앞에서 큰 과일 도매상을 했다. 도매상의 창고 뒤로 오래 된 슬라브 집이 강희네 집이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늘 아쉽다. 특히, 강희는 자기 혼자만 똑 떨어져 버리는 낙과 같은 서운함에 표정이 말 할 수 없이 그늘이 진다. 그러면서 꼭 이렇게 떼를 쓴다. “야아, 너거들 우리 집에서 놀다가라.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미현이는 무서운 할머니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그 보다 나는 선희 때문에 꼭 집으로 가야한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후로 아침에는 빨리 나오고 저녁에는 늦게 들어가게 되자 집안 일은 모두 선희 몫이 되었다. 원래 얌전하고 배시시 웃기만 하던 착해터진 선희는 그것을 한 마디 불평도 없이 당연한 듯 받아 들였다. 그나마 엄마가 시장에서 돌아오기 전에 가서 동생들의 잠자리라도 봐주고 무슨 일이 없었는지 살펴 주어야 언니 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다음에 놀자. 토요일에, 도서관 일찍 문 닫는 날. ”그러면서 미현이가 먼저 발길을 돌린다. 나도 덩달아 그러자, 고 하면서 손을 흔든다. “그래, 너희들끼리 재미있어봐라.”하고 혀를 내 밀지만 진심은 아니다. 키는 우리 셋 가운데 가장 작지만 당차고 똑똑하고 마음도 넓었던 강희는 이내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제 집을 향해 달려 가 버린다. 미현이와 나는 길을 건너 버스에 뛰어 오른다. 늦은 퇴근을 하는 사람들로 여전히 북새통인 버스를 타면 그 때서야 우리는 한숨을 쉰다. 하루의 일과가 정리되었다는 생각에. 우리의 수다는 그 때 부터다. 같은 중학교를 들어가기는 했지만 두해동안 한 번도 같은 반을 못 한 우리는 정말 할 말이 많다. 각자의 담임 선생님이야기와 시간마다 바뀌는 수업에 들어오시는 다른 선생님들에 관한 이야기, 친구들 이야기, 숙제와 시험에 관한 이야기. 어른들이 들으면 뭐 그렇게 할 얘기가 많아서 날마다 해도 할 얘기가 있나 하는 그러한 얘기들을 우리는 버스를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시장 통과 낡아진 나무 대문을 지날 때 까지 그치지 않았다.
집에 오면 저희들끼리 밥을 챙겨 먹은 아이들은 각자 엎드려 숙제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아직은 어린 선희와 진희가 눈을 반짝이면서 반가워하고 6학년인 창건이는 좀 덤덤히 엎드려 산수 문제를 풀고 있다. 벌써 졸음이 가득한 진희가 눈을 반쯤 감은 채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안타까워 나는 이부자리를 깔아준다. 진희는 베개에 머리를 댄 지 채 오분도 못 되어 잠이 든다. 나는 텔레비전 옆, 미닫이 창문 책상에 앉아 숙제를 한다. 그 때에 내가 치중한 것은 사실 숙제보다도 일기쓰기 였다. 매일의 일상에 대하여 때로는 대학노트 다섯페이지 쯤의 일기를 하루저녁에 쓰기도 했다. 지금의 나를 보면 어쩌면 그렇게도 순수하게 집중하여 매일의 일상을 정리해 나갈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엄마가 오시고 아버지가 오시고 모두가 잠자리에 들 때 나는 자주 마당에 나가 쭈그리고 앉아 멍 하니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본채 댓돌 위 그 자리는 사실 주인 할머니의 군대 간 막내 아들이 그렇게 잘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거나 하모니카를 불던 곳 었다. 그는 잘 있을까. 할머니의 자식들은 우리가 사는 집을 팔지 않았고 본채는 비어있는 채로 가끔 큰 딸이 와서 청소를 하고 갔다. 한 번 휴가를 나와 딱 하루 밤을 자고 갔다는데 그 뒤로는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휴가를 나오기가 어렵거나 나오더라도 집에 잘 들러지 않거나 둘 중 어느 하나였을 것이다.
그런 밤에 미현이가 슬그머니 나와 내 곁에 앉는 일도 종종 있었다. 아니, 거의 늘 그랬다. 우리는 어른들이 무어라고 하실 때 까지 속살거리면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기도 하면서 그렇게 얘기를 하였다. 미현이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잘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그렇잖아도큰 미현이의 키는 훌쩍 커 버려서 이학년 가운데서도 서너번째로 컸다. 흰 피부는 아니었지만 어려서의 알레르기에서 벗어난 초콜렛색에 가까운 피부는 윤기가 흘렀고 숱많은 검은 머리카락과 전체적으로 크고 두렷한 이목구비는 미술책에서 본 ‘타히티의 여인’을 떠 올리게 했다. 그렇게 아름다운 미현이가 낮으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로 들려주는 얘기들은 하나같이 다 재미있었다. 배우가 꿈인만큼 미현이는 드라마를 특히 열심히 보았는데 그 드라마에 대하여, 그리고 배우 개개인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분석하기를 좋아했다. 국민학교 때에는 마냥 허황된 꿈만 꾸는 아이로 보였던 미현이는 이미 큰 언니처럼 세상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생각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