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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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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BY ggummani 2002-04-27

미현이는 열흘을 꼬박 아팠다. 온 몸에 발진이 돋고 열이 펄펄 나서 꼼짝도 못 하고 방에 누워 열흘을 보냈다. 수두에 걸렸다고 했다. 미현이 고모가 가게 일을 젖혀두고 미현이를 돌보았다. 희순이와 내가 걱정이 되어 들여다보고 싶어 했지만 엄마가 병이 옮는다며 그럴 수 없게 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나는 성구네 부엌 옆 장독대에 쪼그리고 앉아서 해바라기를 하는 미현이를 보았다. 미현이는 파란색 줄무늬가 있는 티에 몸뻬처럼 생긴 검정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바지 아래 고무신 속에 들어있는 맨발이 추워 보였다. 햇살이 눈에 부신 듯 눈을 살짝 감은 미현이의 얼굴이 하얘보여서 나는 좀 놀랐다. 내가 다가가자 미현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희미하게 웃었다.

“이제 괴않나?”
미현이는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미현이 곁에 나란히 앉았다. 선희랑 진희가 뛰어 나왔다. 언니야, 이제 오나, 오빠야 아직 안 왔다, 하는 데 창건이가 들어섰다. 나는 세 녀석에게 아침에 엄마에게서 받은 용돈의 일부를 나누어 주고 가겟집을 다녀오게 했다. 녀석들이 창건이를 필두로 사라 진 뒤에도 나는 아무 말도 않고 발 끝만 내려다 봤다. 궁금한 것도 많고 할 얘기도 많다고 여겼는데 입이 떨어지지를 않았다. 미희야, 학교 어땠어? 으응, 그렇지. 아, 학교에 가고 싶다. 가겟집에 갔던 세 녀석이 라면땅과 건빵 같은 것들을 들고 들어 와서 아래채와 본채가 마주보는 골목으로 사라졌다. 아래채의 가장 안집이 우리 집이었다.

“나 엄마 참 많이 보고 싶었는데, 참 이상해. 왜 엄마를 만나니까 온 몸이 가렵고 소름이 쭉쭉 끼쳤는지 알 수가 없어. 벌레가 내 온 몸을 마구 기어 다니는 것처럼 그렇게 마구 가렵고 끔찍했어. ... ...그 날도 그랬어.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대문이 열려 있는 거야. 나는 엄마가 낮에 웬 일인가하고 엄마를 부르면서 집 안으로 들어갔어. 우리 엄마 화장품 대리점에 다녔었거든. 그런데... ... 못 보던 검정색 구두 한 켤레가 있는 거야. 나는 그것이 아빠 것인 줄로만 알았어. 아빠가 돌아 오셨나 보다 하고 나는 마냥 좋아서 방문을 열었는데 우리 엄마가 ... ... 어떤 아저씨랑 둘이서 ... ... 나는 너무 놀라서 내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궜지. 좀 있으니까 엄마가 내 방문을 막 두드려. 그런데 나 대답 안 했다. 대답을 할 수가 없었어. 온 몸이 마구 가렵기 시작했어. 엄마는 밖에서 문을 열라고 하는데 나는 온 몸이 가려워서 미칠 것 같았어. 손톱으로 긁다가 가방에서 플라스틱 자를 꺼내어 긁다가 책상이랑 침대랑 벽에 마구 몸을 부비는 데도 가려운 것이 없어지지를 않는 거야. 나는 너무 괴로워서 팔딱팔딱 뛰었다. 아마 이러다가 내가 죽어 버리나보다고 생각을 했지. 그러다가 정신을 차려보니까 내가 병원에 있더라. 그런데 내 곁에 엄마가 앉아 있더라구. 나는 또 온 몸이 가렵기 시작했어. 정말 미칠 것 같이 그렇게 가려웠어. 나는 엄마더러 내 눈 앞에서 사라지라고 소리를 질렀지. 엄마가 밉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어. 전설의 고향 같은 데서 본 천년 묵은 지네처럼 보이는 거야. 그리고는 나는 아빠가 돌아오실 때 까지 한 달 반 동안 병원에서 지냈어.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은 데 의사 선생님은 내가 많이 아픈 것 같다고 하면서 병원에 있는 것이 좋겠다고 했지. 나도 그게 더 좋았어. 그리고 나는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으니까 엄마는 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지. 이상하게도 엄마만 보면 온 몸이 가려워서 견딜 수가 없는 거야. 아빠가 돌아 오셔서 나를 보러 오셨지. 아빠는 화가 많이 나셨어. 나는 나에게 화가 나신 것인지 궁금했어. 그래서 아빠에게 혹시 내게 화나신 일이 있으신지 물었지. 그런데 아니라고 하시면서 나를 끌어안고 막 우시더라. 아빠가 오셔서 나는 병원에서 나왔지. 그리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없어. 나는 아빠에게 왜 엄마가 집에 없는 지 묻고 싶었는데 참았지. 아빠는 한 달 후에 다시 배를 타고 외국으로 가야 하셨지만 취소하고 육개월간 집에 계셨어. 나랑 같이 육개월을 지내신거야. 두 번째 약속은 아빠도 거절 할 수가 없었나 봐. 아빠는 나 더러 아빠가 돌아 올 때까지 할머니하고 지냈으면 좋겠다고 그러셨지. 나는 그러겠다고 했어. 그런 얘기를 할 때 아빠 얼굴이 너무 슬퍼 보였지.”

나는 아무 말도 꺼내지 못 하고 미현이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그러면서 나의 심장이 무슨 망치질 하듯 그렇게 쿵쿵 뛰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자꾸만 가슴이 아팠다. 송곳 같은 것으로 찌르는 것처럼 그렇게 아팠다.

“미희야, 나 지금도 엄마 많이 보고 싶어. 엄마가 나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어디를 갔는지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너무 궁금해. 그런데 엄마를 만나면 또 그렇게 가려운 병이 생길까봐 너무 무서워. ... ... 나 아픈 동안에 하느님한테 기도했다. 이 병이 낫고 나면 가려운 일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나중에는 엄마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순이와 병국이, 병학이가 왔고 우리의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었다. 다행이라고 나는 생각을 했다. 이야기가 더 길어진다면 내 심장에 구멍이라도 뚫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현이는 전에 없이 말이 적고 아이들이 장난을 걸어도 소리없이 웃기만 했다. 힘세고 말이 많던 미현이를 보다가 그런 미현이를 보니까 참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모습이 수경이 언니를 볼 때처럼 그렇게 예뻐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