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는 데 이마가 가렵다. 꾹 참고 설거지를 해 보려 하니까 점점 더 가려운 것이 미칠 것만 같다. 팔뚝을 쳐 들어 팔꿈치로 슥슥 대충 긁어 보는데 별 효험이 없다. 가려움은 점점 더 심해져서 마침내 나도 모르게 고무장갑을 잡아 당겨서 벗고 손으로 벅벅 긁고 나니 속이 시원해진다. 비눗물이 묻은 고무장갑을 억지로 잡아 당겨서 벗은 탓에 비누 거품이 머리카락 여기저기에 튀어서 볼썽이 사납기는 하지만 하나도 속 상하지 않다.
미현이는 유난히 가려움증이 심한 친구였다. 늘 목이나 팔이나 다리를 심하게 긁어서 시커멓게 딱지가 앉아 있고는 했다. 얼굴이나 몸의 여기저기가 얼룩덜룩한 색을 띄고 있기 일쑤였는데 어려서부터 자꾸 긁어서 상처가 생겼다가 나았다가 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했다. 국밥집 할머니는 미현이가 긁어 대면 들고 있던 파리채나 효자손으로 등짝을 후려쳤다. 이 년, 또 글는다. 고만 모 하나, 으이~~o. 하시고는 금새 소금물을 만들어 씻어 주시고는 했다. 미현이는 소금물로 목욕을 하면 이뻐진다고 너들도 한 번 해 봐, 했지만 우리들은 엄마가 무서워서 실천을 해 보지는 못 했다.
미현이가 처음부터 국밥집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것은 아니다. 사상역 앞에서 돼지국밥 장사를 한 지가 오래되어 국밥집 할머니인 미현이네 할머니는 아직 미혼인 미현이의 고모와 함께 둘이서 살았다. 미현이 고모의 눈은 사시여서 나를 바라 보고 있을 때도 다른 한 쪽 눈은 또 다른 어느 먼 세상을 찾아 떠 도는 것 같아 보였다. 나는 현존하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을 함께 바라보는 듯한 미현이 고모의 눈을 보면서 눈이 천개나 있어 세상 만물과 모든 사람들을 다 살펴본다는 천수관음보살을 연상하고는 했다. 천수관음 보살이 자비와 사랑으로 모든 중생을 보살피기 위하여 그렇게 많은 눈이 필요했던 것을 몰랐던 것처럼 두 개의 세상을 보는 미현이 고모의 눈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미현이 고모에게는 거짓말도 통하지 않을 것만 같았고 내가 말 하지 않는 내 속도 훤히 들여다 볼 것만 같아서 나는 미현이 고모의 사시를 바로 바라 볼 수가 없었다.
미현이는 5학년 되던 봄, 먼 강원도 속초에서 전학을 왔다.미현이 아버지는 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배의 선장이었다. 미현이 고모는 키가 크고 덩치가 큰 데다 쌀가마니도 번쩍번쩍 들어 나를 만큼 힘도 장사였다. 미현이 할머니는 뱃살이 좀 쳐지기는 했으나 키도 작고 동글동글하니 가벼운 몸매를 가졌다. 미현이는 고모처럼 키도 크고 힘도 좋은 편이었다. 오자마자 열린 개교기념 체육대회에서 반대표 피구 선수로 나가서 우리 반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할머니 얘기로는 돌아가신 미현이의 할아버지가 단오 때 마다 씨름판의 황소를 휩쓴 장사였다고 했다. 기골이 장대하고 인물이 출중하여 동네 처녀들이 다 먼발치로 바라보는 총각이었는데 그 분이 작은 여자를 좋아하신 탓에 미현이 할머니에게 중매를 넣어 화혼에 이르렀다고 했다. 미현이 말에 따르면 자신은 아빠와 엄마의 잘 생긴 부분만 닮았다고 했다.
“우리 아빠는 키가 크고 얼굴이 검고 콧수염을 기른 아주 멋진 분이야. 우리 엄마는 처녀때 미스강원으로 뽑혔었대. 우리 엄마도 나처럼 상꺼풀이 깊게 있는 아주 큰 눈을 가졌었거든. 그리고 키가 아주 크고 굉장히 미인이야. 엄마는 얼굴이 눈처럼 하?R었는데 나는 아빠를 닮아서 얼굴이 검은 편이지. 그렇지만 엄마는 좀 검어 보이면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피부가 더 예쁜 거라고 했어.”
이런 일도 있었다.
“아, 득중이구나. 나는 지금 학교 앞 문방구에 가, 같이 갈래? 응, 그래, 호호호,,”
미현이는 눈을 그윽히 감은 채로 정말 득중이를 만나는 꿈이라도 꾸는 듯 입가에 미소를 흘리면서 잠꼬대까지 했다. 희순이와 나는 미현이의 하는 양을 멍하니 곁에서 바라보고만 앉았다. 바로 전 까지 우리는 학교의 남자 아이들에 대한 얘기들을 했었고, 미현이는 우리 동네에 사는 득중이에 대하여 호감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내 놓고 우리들에게 하였다. 득중이는 우리 반이었고 우리 동네에 살았다. 미현이 말처럼 피부가 검은 편에 키도 컸다. 운동을 잘 하여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나는 말이야, 우리 아빠 같은 사람이 좋아. 우리 아빠처럼 검고 키가 크고 남자답게 생긴 그런 남자가 좋거든. 득중이는 검은 피부랑 특히, 검고 숱이 많은 눈썹이 정말 맘에 들어.” 우리들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미현이의 얘기를 들었다. 요즈음의 아이들 보다 많이 순진했던 우리는 남자 아이들에게 호감같은 감정을 갖는다고 하여도 그렇게 구체적인 표현이 가능 할 만큼 깊게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미현이는 성구네에 하숙하는 현자 언니나 숙희 언니들처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아 갑자기 졸리네, 얘들아 나 낮잠 좀 잘게. 하더니 서로 눈치를 보면서 고개만 끄덕이는 사이에 그야말로 순식간에 잠이 들더니 꿈까지 꾸기 시작한 것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우스운 상황이었지만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미현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잠시 후 미현이는 내가 깜빡 졸았지? 하고 기지개를 켜면서 일어났고, 너희들 표정이 왜 그러니, 내가 자면서 뭐 실수라도 했니?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우리들을 둘러보기까지 했다. 우리는 너, 잠꼬대 했다, 꿈에서 득중이 만났나? 하고 장단을 맞추었다. 미현이는 얼굴을 마구 붉힌다. 어쩌면 좋아? 잠꼬대 까지 하고. 너희들 오늘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해 줘. 득중이 귀에 들어가면 내가 부끄러우니까. 하고 다짐을 받았다. 제발 소문 좀 퍼뜨려 달라는 얘기 같았지만 우리는 그냥 그러마고 대답을 했다.
미현이는 가끔 북한말 같은 묘한 억양의 말투를 섞어서 말을 하기도 해서 우리를 웃겼는데 그것이 바로 강원도식 어투였다. 미현이는 되도록이면 그러한 어투를 사용하지 않고 서울말에 가까운 표준어를 구사하려고 많이 노력을 했다.
“나는 나중에 탤런트가 될 거야. 유지인이나 정윤희처럼. 탤런트는 사투리 따위 사용하면 안 돼. 정확한 표준어를 사용해야 하는 거야. 생각 해 보렴. 텔레비전에서 탤런트가 사투리를 쓰면 얼마나 꼴이 우습겠니?”
“그래도 사투리 쓰는 사람도 많이 나온다.”
“바보들, 그런 사람들은 모두가 가정부나 운전기사나 뭐, 그런 배역이잖아. 주인공은 사투리 안 써. 나는 주인공 아니면 안 해. 그러니까 지금부터 표준말이 익숙해 지도록 연습을 해야 한단 말이야.”
분꽃이 화장실 옆 빈터를 가득 매운 늦은 여름, 파란색의 포도무늬가 화려하게 수 놓인 원피스를 입고 검정색의 선글라스까지 낀 여인이 일곱 가구가 사는 대문을 밀고 들어섰다. 여인은 미현이네를 기웃거렸고 마침 마당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던 우리의 눈은 온통 여인에게로 쏠렸다. 여인이 문득 우리들에게로 다가서기 시작했고 눈이 둥그레서 여인을 바라보고 선 우리들 뒤로 미현이가 물러서서 숨었다. 미현아, 여인이 미현이를 불렀다. 미현이는 우리들 뒤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인 채 말이 없다. 여인이 가까이 오자 우리는 엉거주춤 옆으로 비켜섰다. 여인이 미현이의 손을 잡자 미현이는 손을 빼어 버린다. 여인은 들고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찍어내는 데 미현이는 갑자기 어깨를 비틀고 몸을 비비꼬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이제 아주 멀찌감치 물러서서 성구네 부엌 입구 담벼락에 붙어 서서 두 사람의 하는 양을 바라보고만 섰다. 미현이는 아이, 아이, 하고 짜증을 내면서 점점 더 심하게 몸을 비틀더니 마침내 손톱으로 목을 마구 긁어댔다. 손을 뒤로 뻗어서 등도 마구 긁어 대더니 갑자기 제자리에서 팔딱팔딱 뛰기 시작했다. 우리는 영문을 모른 채 멍하니 미현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여인은 미현아아, 하면서 눈물을 뚝뚝 떨군다.
“가아, 가아, 가 버려!!”
미현이가 여인을 힘 있게 밀었다. 여인은 미현이에게 밀려 엉덩방아를 찧으면서 시멘트를 바른 마당에 쿵, 하고 넘어졌다. 푸른색의 포도 무늬가 일렁였고, 원피스가 뒤집어 지면서 하얀 레이스의 속치마와 팬티가 슬쩍 비쳤다. 끼고 있던 검은 선글라스가 반쯤 벗겨져서 코밑에 걸렸다. 여인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한 편으로 선글라스를 바로 잡으면서 비척대면서 일어나더니 치마를 털어 모양을 바로 잡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현이는 여전히 팔딱팔딱 뛰면서 여인을 향해 소리소리를 질러댄다. 우리가 웃음을 참으면서 그 꼴을 바라보고 있을 때 미현이의 할머니가 오셨다.
“누가 왔다꼬? 니가 자식까지 내 삐리고 나매(남자) 좋아서 간 녀이 여거 말라꼬 왔노? 니가 머신 어마이 자격이 된다꼬 여게를 왔노 말이다.”
“어머님,”
“가라, 퍼뜩 가뿌리라, 전 녀너 가시나 미치가 나가 자빠지는 꼴 안 볼라카믄 어서 가라이.”
미현이 엄마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 하고 돌아서서 고개를 숙인 채 마당을 나갔고 할머니는 이제 팔딱팔딱 뛰다 못 하여 담벼락에 대고 등을 마구 비비대는 미현이를 잡아 끌었다. 갔다, 너거 어매 갔으이까내 이제 고마해라. 그 순간, 미현이가 바닥에 두 다리를 뻗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