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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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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회]


BY 마음 2002-01-14

사무실에서 나와 시내버스로 겨우 다섯정류장 쯤 지나자 지하철 공사가 한창인 큰 로터리가 나오고 그 다음 정류장에서 두리번거리며 내렸다.
한 이년쯤 된 것 같다.
그 때에는 고만 고만한 집들이 즐비하니 도로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던 곳이었는데 그런 집들이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이쯤이라는 확신을 준 것은 도로 맞은편의 담배. 버스토큰을 팔던 자그마한 구멍가게가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분명 내 기억으론 그 구멍가게와 정면을 두고 마을로 들어서는, 제법 큰 길이 뚫여 있었는데 길은 그대로인데 주변 환경이 옛날처럼 그렇지가 않았다.
‘어디로 가버린거지 ’
그렇게 먼 곳도 아니고 골목으로 들어서서 네 번째집, 하지만 그 네 번째집은 각종 전열기구 수리, 도 소매, 라고 적혀 있었고 실제로 진열대로 보이는 앞유리쪽으로 다리미부터 전열기구들이 즐비하니 놓여 있었다.
골격은 그대로 두고 바깥 출입문 부근만 재공사를 해서인지 뭔가 어색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나즈막한 집에 출입문만 요란하게 큰 것이 기억을 더듬어 옛날 그 자리에 있던 그 봉화식당을 떠올려냈다.
분명 그집이다.
갑자기 난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전화를 하고 올 걸, 다시 또 동네 안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보았다가 다시 나와서 그 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그 큰 출입문을 밀고 나왔다. 그 사이에 가게안을 훔쳐 보았다.
중년의 평범한 남자 하나가 전기 밥솥을 수리하고 있는 듯 했다.
가게에서 나온 그 사람도 안의 남자와 비슷한 연배인 것처럼 보인다.
그 앞에서 머뭇거리던 날 보더니 뭔가 물을 듯 하더니 그냥 가버렸다.
그 남자의 등 뒤에서 매우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 말씀 좀 여쭐께요. 이 동네에 사세요?“
그 남자가 다시 되돌아서면서 슬며시 웃는다.
“예. 그런데......혹시 누구 찾고 있어요?”
“네. 여기 있었던 봉화 식당......”
“내 짐작이 맞을지 모르겠는데 여기 이 자리에서 장사를 하던 그 아줌마 딸인 것 같은데.....”
“네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없어져 버렸네요.”
오히려 반가왔다.
“그 가게야 없어진지 오래 되었는데.....”
“혹시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어요.?”
“.......”
잠깐 망설이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이내 바빠서 가봐야 겠다며 종종 걸음을 치며 동네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눈은 그칠줄을 모르고 차들 조자도 이젠 거북이 걸음으로 쩔쩔매고 있었다.
집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잠시 졸았다. 온몸이 노곤해지는 것이 다뜻한 아랫목에 드러누워서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급한 마음에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내 방 침대 보다는 엄마 방으로 들어가 깔아 놓은 얇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웅크리고 누워서 이내 깊은 잠속으로 빠져 들어 갔다.
잠결에 아버지의 모습을 언뜻 본 듯 했다.
사진으로 본 아버지의 모습이었지만 아버지는 내가 한번도 본 기억이 없는 젊고 잘 생긴 건장한 남자로 보였다.
나는 분명 처음에는 아버지였는데 그가 어느새 준우의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눈을 겨우 뜨고는 아직 불도 켜지 않은 방안을 둘려 보았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불을 켜야 하는데 하면서도 그 어둑해지고 있는 방안에 온 몸을 웅크리고 누워서는 도무지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사람의 죽음이라는 것이 혹시 이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가 싶더니 무섬증이 순간적으로 들었다.
텔레비전 위에 놓여 있는 아버지의 사진이 날 내려다 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
내가 아버지를 불려 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으론 없다.
그 낯선 아버지라는 단어가 어둠속에 있는 작은 불빛처럼 힘이 될 줄이야.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렇게 마음 놓고 울어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만큼 꺼이꺼이 내 속의 것을 전부 다 게워 내 듯이 울었다.
엄마도 이렇게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방안 가득 들어찬 어둠속에서 나는 다시 더 크게 눈을 떴다.
내 동공이 열리더니 사물이 어느 정도는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불을 켜기전에 이 곳은 여전히 무덤 속만 같다.
아버지, 엄마, 나, 그리고 현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산 사람들이 사는 곳 같지가 않다.
아버지를 기다리는 엄마, 밤마다 목욕을 하고 아버지를 만나고 있는 엄마를 어떻게 산사람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입안에서는 아까전 부터 계속 똑같은 말을 되씹고 있었다.
‘이건 아니냐. 이건 아니야.’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간혹 골목에서 들리는 작은 소음들 조차도 들리지 않고 세상이 그대로 멈춘 듯 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현기증이 날 만큼 환해지더니 동생 현화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언니 미쳤어? 왜 이래. 정말 죽을려고 했었어?”
“으응? 뭐가..?”
“뭐가 라니? 이게 뭐야? ”
현화가 내 몸에서 한참동안 길다란 뭔가를 빼내고 있었다.
그건 실로 짠 내 머풀러였다.
준우가 사 준 것이라서 특별히 마음이 가던 자주색 머풀러를 내 목에서 걷어내며 현화는 파랗게 질려 있었다.
갑자기 현화까지 울어버린다.
이 아이가 왜 이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 그래?”
내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왜 그러는냐고? 지금 뭐하고 있는거야?"
"..........."그때서야 내가 지금까지 뭘했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덤속에서 걸어 나오는 듯한 기분, 하지만 반가움이 아니라 천근만근으로 내 몸이 다시 가라 앉는 것만 같았다.
“언니! 무슨 일 있지? 왜 그 오빠하고 잘 안돼?”
울먹거리며 말하는 동생은 영락없는 아이였다.
“무슨 소리 하는거야?”
“나 다 알고 있어. ”
“어떻게 니가 그걸 알어?”“지난번에 언니 핸드폰 내가 받은적이 있었어. 나를 언니인 줄 알고....”
“언제?”
“얼마 안 되었는데..... 그리고 우리 학교에도 한번 찾아왔었어. 나는 기억이 전혀 안 나는데그 오빠는 우리가 덕산에 살 때 내 기억난다면서......?”
“그랬니?”
“그런 얘기 안 해? ”
“응....”
“오빠 언니 많이 좋아하나 보더라. 언니가 요사이 좀 이상해 졌다고......”
“.........” 내 입가에서 쓸쓸한 미소가 흘려내리는 걸 느꼈다.
“그런데 오늘 언니보니까 분명 뭔가가 있어. 그렇지?”
“........”
그 아이를 앞에 두고 나는 내가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하나를 잠시 망설였다.
아무리 다 큰 성인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동생인데..... 그것도 아직 내 눈에는 철딱서니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이는 어린 동생한테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내 마음을 접어 버린다.
“현화야! 널 무시해서가 아니라 준우 얘기도.... 내 얘기도 달리 너한테 얘기 할만한 것이 없어. 그러니까 넌 너무 신경 쓰지마.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사실 엄마한테는 절대적으로 비밀로 해주고.....”
“알았어. 하지만 바보처럼 혼자서 꿍꿍거리며 그러지 좀 말어. 제발.....”
“그래, 누가 언닌지 모르겠다.”
“언니도 가만 보면 소녀 같은데가 아직도 있어서.....”
“.......”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현화 보다도 더 어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현화야. 엄마 요사이 나가는 식당, 지난번 그 로터리 부근에 있던 그 식당 아니니?”
“그런 말 안했는데.... 그런데, 왜?”
“아니. 그냥......”
“그런데 요사이 엄마 좀 달라진 것 같지 않아?”
“글쎄.......”
“옛날하고 많이 달라진 것 같애. 느낌상..... 옷 입고 다니는 것도 좀 점잖해 진 것 같고......”
그러고 보니까 현화 말이 맞는 것 같다.
먼저 옷 차림새부터 바뀌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에 없다.
그 다음으론 그렇게 유별스럽게 해 오던 목욕도 요사이 들어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엄마가 변해 가고 있는 걸까, 아님, 나이 탓일까,
토요일 밤인데도 여전히 엄마는 늦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