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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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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BY 마음 2002-01-01

나는 차마 엄마를 그냥 보기가 민망해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하얀 커텐만 보일 뿐 옆 자리에 누가 입원해 있는지 모르도록 만들어진 일인용 임시 베드는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달아날 것만 같이 불안하게 날 지탱하고 있었다.
엄마의 손이 어느 사이에 와서 내 손을 꼭 잡고 있다.
그리곤 아무말도 않고 그저 내 손등만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의 목젖이 떨려왔다.
힘겹게 내 이름을 부르고 있는 엄마한테서 차가운 밤공기 냄새가 왈칵 콧속으로 들어왔다.
“불쌍한 것...”
엄마는 기어이 날 불쌍한 아이로 만들었다.
“내가 뭐라고 했니? 그만 두라고 그만큼 얘기를 해도 고집만 피우더니...”
“괜찮아.”
“또! 뭐가 괜찮아! 이렇게 병원까지 실려와 누워서도 괜찮아?”
엄마의 손이 내 이마를 만졌다. 나와 다르게 따뜻한 손이다.
내가 다시 엄마의 손을 끌어다 쥐었다.
순간 준우 엄마 손에 끼어져 있던 다이아반지가 생각이 났다.
매끈하게 잘 빠진 손가락에 아주 자그마한 알이었지만 분명 그것이 다이아몬드라는 것은 나도 알 수 있었다.
디자인도 그다지 요란스럽지가 않아서 그래서 더더욱 품위를 느끼게 해준 그런 손이었다.
한데 내가 잡고 있는 이 손, 지금껏 반지라고는 끼워 본 적이 없는 손이다.
내가 해 주겠다고 공약을 내 건지도 이삼년도 넘었는데 그것 하나 못해 준 내가 미안하기만 했다.
“엄마! 내가 꼭 반지 해 줄께... ”
“애가? 뭔 뜬금없는 소리를... 이러고 누워서 그런 소리가 나오니?”
사실 내 손엔 준우가 해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그 때가 준우의 생일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내가 근사한 저녁 한끼 사주겠다며 레스토랑으로 데리고 가 겨우 돈까스 하나에 딸려 나온 와인 한잔으로도 얼마나 분위기를 내어 가며 행복해 했는지 모른다. 그 자리에 내가 아닌 그가 오히려 선물 케이스를 주머니에서 꺼집어 내더니 똑같은 14K 실반지를 내 손에 그리고 나머지 자기의 손에 각각 끼워 주는게 아닌가. 그때부터 였는지 모른다. 늘 하던 말이 있었다.
‘행복해 하는 널 보고 싶었어.’
그렇게 사랑의 증표처럼 내게 끼워준 그 실반지를 엄마는 처음엔 다그쳐 묻기도 하더니 이내 잊어 버리고 있는 눈치셨다.
‘친구들 끼리 하나씩 산 거야. 엄마는 나중에 좋은 걸로 해 줄께. 하다못해 루비 하나라도 박아야 안 되겠어...?’
내 모습이 밝아서 좋아보였는지 허허 웃고 그냥 넘기셨던 엄마였다.

“근데 아까 집으로 전화 해준 그 남자는 누구니?” 보호자용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내가 부탁했어. 집에 전화 좀 해 달라고... 그 사람이 나 여기까지 데려다 줬거든. 모르는 사람이지. 당연히...”
앞 뒤도 없이 늘어 놓은 내 대답이었다.
“그런 것 같더라. 니가 부탁해서 해주는 거라고만 하고 전화를 황급히 끊어 버리길래...”
“그랬어?”
“고맙다는 말도 못했네...아무튼 다행이다. 근데 어디서 쓰러졌니? 이 추운날 길거리에 혼자서 쓰러져 있다간 딱 동사하기 십상인데...”
“엄마! 나 이거 그만 맞고 집으로 가면 안돼?”
“글쎄다. 주사약이 아직 좀 남았는데...그런데 이거 영양제니? ”
“몰라, 노란거 보니까 비타민도 좀 들어간 것 같고...포도당이네...!”
그때서야 내가 맞고 있는 정맥 주사액을 유심히 올려다 보았다.
“이참에 너 영양제나 한 병 맞고 가자. 내가 돈 가져 왔어. 요사이 애들 보면 다들 너처럼 살지 않더구만...”
엄마의 입술이 못다한 말들을 힘들게 억누르고 있었다.
“됐어... 내가 누구야? 장차 병원에서 일할 사람 아냐? 영양제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포도당 하나만으로도 이제 거뜬해 졌잖아...집에 가서 라면 먹고 싶어.”
“그런데 너 걷기는 하겠니?”
“엄마도...! 내가 뭐 큰병이라도 걸린 사람 같네...”
“그래, 가자, 우리집으로 가자...”
엄마의 가슴 한 토막이 내쉬는 한숨과 함께 씻겨져 나가는 것만 같다.

집으로 돌아오니 동생은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다.
가스레인지에 라면 물을 올리고 잠깐 엄마의 방으로 들어 갔다.
엄마가 내 손을 끌고 들어간 것이다.
이부자리가 깔려 있긴 했는데 잔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엄마! 내 걱정 많이 했구나.”
“말이라고 하니? 12시가 넘었는데 어디다 전화를 해 볼 수도 없고... 큰길까지 나가서 기다려도 봤다가 피를 말리더라. 근데, 현화는 우째 저리 태평스러운지... 타고난 성격이야.”
“아버지 닮았어?”
“글쎄, 너희 아버지도 저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저 정도는 아니더래도 세상 사람들 기준으로 그 사람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구석이 많았던 사람이야.”
“엄마, 자! 너무 늦었어. ”
시간이 벌써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내가 너희 사무실에다 전화 해 줄테니까 내일 하루는 어떤 일이 있어도 집에서 쉬어. 알았지...?”
“알았어... 지금도 뭐 특강이어서 그렇지 방학은 했잖아. 곧 끝날 거야.”
막 방을 나오려는데 갑자기 생각이 난 듯 말한다.“참! 덕산에 현주 결혼한다고 하던데 들었니?”
큰댁의 막내딸이다. 나보다 한살이 더 많았던 고종사촌이었지만 그 언니와 만나서 허물없이 얘기를 나누어 본 적은 별로 기억에도 없다.
공부를 잘했던 것 같은데 대학을 그저 그런 대학을 나와 속셈학원을 조금 다니다 그것 마져도 마음에 안 들었던지 그만 두고 다시 공부를 하니 마니 하더니 시집을 간다고?
“누가 그런 소리를 해? 큰엄마가?”
“응, 낮에 집으로 전화 한번 왔었어. 신랑이 탐이 나서 그냥 보내 버리겠다는구나.”
“연애했대? ”
“그런 모양이야. 시아버지될 사람이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 퇴직을 하신 분이라나...”
“신랑이 탐나는게 아니라 집안이 탐이 나는 모양이네 뭐...”
괜히 내속에 또 못된 구렁이 한 마리가 숨어 있다는 생각이 부스스 든다.
“집안 그거 무시 못 하는 거다. 뭐가 달라도 다른 구석이 있게 마련이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엄마는 그런 말 하면 안 되잖아.
결국 내 ?b지도 못하는 말을 입속에 넣고는 휭하니 엄마방을 나와 버린다.
“현희야. 라면 꼭 먹어야 겠니? 배고프면 내가 죽이라도 끓여 주까? 몸도 안 좋다는 아이가 무슨 라면을 먹겠다고...”
“아니! 라면 먹고 싶어. 내가 끓여 먹을 께.”
무슨 고집인지 모르겠다. 아니, 고집이라기 보단 그저 속이 허해서 그냥 잘 수가 없을 것 같다. 따끈한 라면 국물이 갑자기 생각이 났을 뿐이다..
“아서라. 정 먹겠다면 내가 끓여줄께. 다른 사람들이 보면 누가 엄만지 모르겠다. 애는?”
엄마가 끓여 주는 라면은 언제나 맛있었다.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엄마의 음식솜씨를 조금도 닮지 못했는지 늘 내가 만든 음식은 내가 먹어 봐도 마음에 안들었다.
소리를 내어 가며 그것을 먹고 있는데 내 머릿속엔 식탁에서 떠나질 못하고 코앞에 앉아서쳐다보고만 있는 엄마에게도 아니고 고종사촌인 현주 언니의 결혼 얘기에 온 신경이 가 있었다. 큰댁 정도의 집안이라면 어디 내어놔도 전혀 손색이 없지 않은가.
한때는 할아버지가 젊은 나이로 작고하시는 바람에 조금은 기우는 듯했지만 큰아버지, 할머니의 억척스러움에 그나마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고, 집안의 내력을 얘기해 보자면 꼭 아버지의 존재가 빠지질 않는다.
큰아버지 보다도 더 영특했다는 아버지는 대학을 들어간 뒤 사람이 좀 이상해져 버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