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말은 계속 되었다.
“하지만 늘 바쁜 부모님이 내 울음을 막기 위한 하나의 입막음이었어. 과자가 내 밥이었고... 그래서 그런지 어릴때부터 난 늘 이렇게 약했대.”
“오빠도 언니도 모두 있다면서...”
“제일 큰오빠하고 나하고는 12살이나 차이가 나. 사실, 그 오빠 때문에 우리집 다 망해 버렸다는거 아니니. 내가 중학교 다닐 때. 집달리가 오고...아무튼 그 때, 한번 무너져 버리더니 우리집 다시는 못 일어나더라. 바로 위에 언니는 대학도 포기하고...”
그래었구나. 그녀에게 그런 어두운 아픔이 있을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저 제 감정에 겨워서 쉽게 마음을 주는 헤픈 여자로만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나는 대학이라도 나왔지만 우리 언니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몰라.
우리 언니 말이야. 머리가 참 좋았어.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 언니 더러 크면 뭐가 되도 될 거라고들 했었대.
언니가 고등학교 이학년 때였는데 언니 수험료도 못 낼 정도여서 언니는 그 때 이미 대학을 간다는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않았어.
졸업을 하자 마자 언니는 대구 어느 작은 섬유공장에 생산직으로 취직을 했지.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온 언니가 할 줄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언니는 자기가 번 돈으로 내 용돈을 주고 물감을 사 주고 그랬어.
정말 바보 같았어. 내가 그림을 엄청이나 잘 그리는 줄 알았거든.
하지만 난 내가 언니의 희망이라는 게 너무 부담스러워서 오히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
중3때는 학교 대표로 무슨 대횐가를 나가서 입상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언니는 내가 무슨 화가라도 된 것처럼 자랑스러워 했었거든.
그런데 말이야, 나는 알고 있었어. 아무리 내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도 미대를 가는 것은 멍청한 짓이라는 걸 말이야.
미대! 거기 아무나 가는데 아니야.
적어도 나처럼 공장에 다녀서 번 돈으로 공부를 시킬만한 그런 데는 아니야.
언니는 꾸역구역 날 인문계 고등학교에 밀어 넣었고 나는 그런 언니를 어찌하지도 못하면서 엉뚱하게 빗나가기만 했지. 한 일년, 미술반에서 여전히 그림은 그렸지만 마음을 잡지 못하고 이상한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했었지.
그것 때문에 학교에 유기정학도 한번 먹었던 적도 있었어.
부모님 모시고 오라길래 오빠보고 대신 오라고 했지.
나는 우리집이 그렇게 된 것이 오빠 때문이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참에 오빠에게 그렇게라도 복수를 해 주고 싶었거든.
그런데 우리 오빠 학교 와서 어떻게 했는지 아니?
담임을 어떻게 구워 삶았는지 담임이 오히려 나 더러 우리 오빠 때문에 이정도로 넘어간다고 하더라.
우린 일주일 내 학교 상담실에서 반성문만 썼지만 그 정도는 꽤 봐 준 처사라고 하더라.
그래서 난 언니도 오빠도 모두 내 마음에서 지우기로 마음 먹었지.
언니에 대한 부담감이나 오빠에 대한 미움까지 모두 지우기로 말이야.
그리고는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어.
교회에서 부흥회라도 있으면 새벽기도까지 갈 정도로 열심이었어.
나는 그 당시의 내가 너무나 싫었거든.
분명 지금의 내 모습은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미스리의 입가로 쓸쓸한 미소 하나가 일고 있었다.
그녀가 그 긴 얘기를 하는 동안 나는 몇 차례 그녀의 눈에 맺힌 이슬을 보았다.
나 역시도 코끝이 시큰해져서 계속 코만 만지작 거려야만 했다.
“나 정말 너무너무 철이 없었나봐.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처음에는 우리 부모님, 장남 이라고 오빠 말이라면 꼼짝도 못하시더니 잘 되었다 싶을 만큼 미워 했었어.
그래서 난 교회를 다닌다고 할때에도 집에서 손에 물 하나 안대고 늘 그렇게 밖으로만 나돌았었지.”
그녀는 여전히 웃고 있다.
아직도 뭔가 불안해 보이는 것은 있었지만 그녀의 모습에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본 것 같아 그녀가 예전의 그 미스리인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나는 미스리가 도대체 어떤 남자와 결혼을 할까.
결혼이라는 그 굴레를 쓰고 살 수나 있을까.
그녀 생각하면 먼저 그러한 걱정부터 앞섰다.
하지만 그녀는 그로부터 꼭 2년 뒤 내가 서울로 다시 올라올 그 무렵에 배부터 먼저 불려서 자기보다 두 살이나 어린 남자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 남자를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는 말을 훗날 누군가 한테서 들은 적이 있다.
지금도 나는 그녀가 어딘가에서 잔뜩 몸을 움추리고 앉아서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눈 속엔 눈물이 가득한채 어느 낯선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는 그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내 사랑, 윤미는 나와 겨우 6개월을 살고는 그녀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게 전부였다.
그 뒤로 우리는 어떠한 연락도 주고 받지 못했다.
그녀가 떠나고 난 한참동안 그녀가 남긴 온기 때문에 힘들어 했지만
나한테도 또 다른 만남이 왔고 그리고 그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나하고 취미가 비슷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로부터 십수년이 지난 지금, 나는 윤미도 미스리도 보고 싶은 것은 매 한가지이다.
**** 후 기 ****
이런 지루한 소설을 끝까지 읽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송구스럽습니다.
저는 이 자리를 빌려 말씀드리지만 종결을 지은 소설이 그동안 단 한편도 없었습니다.
제가 이런 사이버 공간에 무턱대고 시작한 것도 다 저의 그런 결점 때문에 제게 책임감 같은 걸 줄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정신없이 내달리다 시피 하면서 소설을 썼나 봅니다.
내용이 전반 적으로 너무 밋밋해서 걱정을 했습니다.
제가 하고자 했던 어떤 메시지 같은 걸 느끼신 분이 있으신지...
그런 분이 있으시다면 전 그걸로 이번 소설에 대한 큰 결실로 생각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나름대로의 인생관이라는 게 있고 그것은 개인의 삶의 모양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누구를 심판 할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창녀를 두고 예수님이 대중에게 말합니다. 너희들 중에 죄 없는 이부터 나와서 이 여자를 돌로 쳐라.
하지만 아무도 그리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이중성, 그리고 철저하게 포장된 위선 같은 것들을 보여 주고 싶었는데 제가 너무 평이한 소재로 너무 큰 주제를 전달할러고 했던 것은 아닌가 싶어집니다.
다시 제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다 여러분들의 격려 때문이라 여기겠습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