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를 처음 봤는데 친 아빠가 찾아 오셨나 생각했어요.
유라는 손바닥 보다도 작은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사진안엔 내가 남편을 처음봤을 때 보다도 더 어려보이는 학생같은 남자가 유라를 안고 있었다. 남편하고 닮은데를 찾느라 한참을 들여다 보았다. 어디가 닮았을까? 아무리 봐도 닮은데라고는 없어 보였다.
혹시 엄마가 일부러 아빠 돌아가셨다고 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차를 탔어요.
그 애가 남편을 따라 우리집에 온 이유는 그게 전부였다.
그 애의 손가락 사이에 간신히 매달려 있는 담배가 꺼진지는 한참이 되었다. 손을 옆으로 움직이자 기다한 재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유라의 까칠한 입술에 물이라도 축여 주고 싶다.
왜 그렇게 세상을 일찍 알았니? 니네 아빠가 아닌란 걸 알았으면 빨리 가.
아까부터 이 말이 자꾸만 목에서 걸린다.
유라는 못보던 옷을 입고 이곳으로 나를 찾아왔다. 남편하고 셋이 있는 것 보단 그래도 이렇게 둘이 있는 게 낫다.
"집에 나만 있으니까 오빤 잘 들어오지도 않아요. 그리고 엄마를 만났어요. 집에 들어가려고 해요."
유라가 집에 간다고 하는데 왜 아무 느낌이 없을까. 혹시라도 내얼굴이 유라의 눈에 반가움으로 비춰질까 봐 고개를 숙였다.
탁자 끝부분 덧 댄게 떨어져서 덜렁거린다. 이 탁자는 마모성이 떨어진다. 테두리 부분이 잔 크랙 현상이 보이다. 광택을 좋게 하기 위해서 경화를 높였나 보다. 싱크대나 탁자, 가구를 보면 그냥 지나쳐지지 않는다. 지겹게 회사를 다닌 것 같은데 이것도 직업의식인가?
유라가 있고부터 남편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찍 집에 들어왔었다. 출장도 너무 오래 가는건 피하는 눈치였다. 집에 손님이 있어서...
그들에게 하는 남편의 변명이었다.
손님? 언젠가는 떠나는 손님.
고모들이 놀러오시면 엄만 아버지를 졸랐다.
언제 갈 건지 물어봐요.
아버지가 아무말도 안하는 눈치면 엄만 가실 때 꼭 가지고 가라고 옥수수며 깻잎 호박등을 서둘러 싸 주곤 햇다.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말라 비틀어지거나 뭉개질 채소들. 그러면 고모들은 그 보따리를 들고 이튿날이면 가셨다.
유라에게 내가 싸줄 짐은 올 때 벗어 놓은 원피스와 동네 편의점에서 사온 속옷이 전부였다. 그 작은 보퉁이를 주며 나가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누구 만나고 온거야?"
전화를 바꿔줄때부터 궁굼한 눈치 더니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경희는 닦달하듯 물었다.
"그냥 아는 사람. 하늘인?"
며칠 사이에 정이 들었나 보았다. 밖에 잇는 동안 나도 아기가 보고 싶었다. 아기가 나를 보고 눈을 맞춘다. 눈망울이 너무 까맣다. 한참동안 들여다 보고 있으면 나도 닮을 것 같아 눈을 떼지 않았다.
나도 누군가에게 속엣말을 하고 싶다. 경희는 나한테 뭔가 말하라고 기다리는 눈치지만 경희한테 말할 수는 없다. 그 앤 의외로 여린면이 있어서 나를 불쌍하고 답답하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형부 바람피웠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렇게 말하는 경희를 나무랄수는 없다. 여자가 찾아 왔다면 나부터도 가장 먼저 그 생각이 들 테니까.
"아니야, 그렇게 간단한 문제면 좋게?"
사실 남편이 며칠 동안 집을 비울때도 그런쪽으로는 생각한적이 없다. 믿기 때문일까? 무관심 해졌기 때문일까?
아기가 나를 보고 웃는다. 너는 이모 맘 안다구?
쌀을 가지러 밖으로 나오니 수돗가에서 엄마가 무엇을 열심히 다듬는다. 새벽같이 밭으로 나가시더니 열무를 솎아 오셨나 보았다.
이따가 갈 때 가지고 가거라. 열무는 이렇게 연할 때 먹어야 제 맛인 기라.
옆에 앉아서 거들자 엄마는 고개도 들지 않고 말씀하셨다. 엄마는 내가 오늘 갔으면 하나보다.
집을 나올때완 달리 집은 두 개나 더 늘어 있었다. 고춧가루며 콩국수 해먹으라고 콩 갈아놓은거, 사위 주라고 쌓아놓은 6년근 홍삼하며 보따리가 가득 이었다.
이제 긴 방황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다. 앞으로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새로 시작할 아이템에 대한 계획이 급하게 지나간다. 테두리는 진한 체리로 2센티미터 정도로 돌려야겠구, 가운데 나뭇잎 문양은 연황색 매플이 좋을까?
생각보다 휴가는 길지 않았다. 빨리 일을 하고 싶다.
이제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이유에 남편은 포함되지 않는다. 오직 나를 위해서다.
돌아가면 내 집은 아스팔트에서 나오는 지열과 옥상에서 내리 꽂히는 콘크리트 열기로 숨이 막힐 것이다.
집으로 들어서면 창문을 활짝 열어 젖혀서 마음에 들지 않는 냄새를 모두 내보내야지.
방안공기가 마음에 들 때까지 창문을 닫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