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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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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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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BY 안개 2001-09-25

오빠, 유라가 남편을 그렇게 불렀을 때 난 우리 옆에 누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집안을 둘러보았다. 어디를 가도 아저씨라 불리우는 남편도 멋쩍은지 나를 보고 웃었다.
아저씨란 객관적인 호칭을 두고 왜 그렇게 특별하게 불렀을까.
난 두 살 많은 남편을 지금까지 그렇게 불러 본적이 없다.
다정한 말. 아주 친밀하고 특별한 호칭.
"형부한테 전화하는거야?"
경희가 아기를 안고 나온다. 추울까봐 일어나서 마루문을 닫았다. 어제 일 때문인지 아직 정면으로 경희의 얼굴을 보기가 어색해서 아기의 손을 만지작 거렸다.
마을 앞에 새로 생긴 주유소가 동네 사람과의 마찰을 피해 인근 사람중에 한명을 고용한다고 했다.
시골에 젊은 사람도 없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보수도 별로 없는 주유소에 있을 사람은 없겠고, 그래서 생각한 사람이 그래도 영어 단어 몇 개와 한문을 알고 계시는 아버지라고 주유소 사장이 찾아왔었다. 벌써 며칠전에 나온 얘기라는데 지금껏 직장 생활한번 해본적이 없는 아버진 새로운 곳에 나간는걸 겁나 했는지 거절을 했었다고 했다.
"아버지, 다음달부터 학원 나가면 저도 시댁에 하늘이 맡겨놓고 다달이 생활비 드려야 하잖아요. 정수 등록금까지 신경쓰기 부담되요. 제대할 때까지 조금이라도 저금해 놓으면 정수대학은 아버지가 졸업시킬 수 있잖아요."
주유소에 가는걸 영 내켜하지 않아 하는 아버지한테 경희가 말하자 아버지는 그럼 내일 당장 나가지, 하셨다. 어쩌면 그것은 엄마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넌 아버지 일하시는게 그렇게 좋니?" 그렇게 쉽게 아버지를 대하는 경희가 미웠고 억지로 떠밀려서 나가시는 아버지를 보는게 안타까웠다.
어쩌면 아버지가 꼭 내 모습같아 보였는지도 모른다.
"언니, 언닌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거 아냐? 언닌 아버지만 안 됐구 엄만 고생한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지? 엄마가 여관에서 근본도 모르는 사람들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 치우고 술 마시고 노름하는 사람들 심부름 하면서 고생할 때 아버진 뭐하셨는데. 사람들이 아버지 참 좋은 분이라고 그러지? 난 그렇게 생각안해. 남한테 아무리 잘하면 뭘 해.
마누라는 환갑이 다 되어 가도록 여관 청소나 시키면서. 그리고 요즘은 집에서 쉬라는 말보다 일자리를 알아봐 주는게 더 효도야. 알았어?."
경희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말했다. 바닥에 대고 있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무리 그래도 지가 나한테...덩달아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경희와 나의 차이는 저런건가 보다.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
경희의 말은 옳았다. 난 아버지를 내몰지 않음으로 해서 나까지 덤으로 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얼마전 남편은 출장 갔다 오는 길에 유라를 데리고 왔다.
경찰과 합동 단속으로 벌인 가출 청소년 집으로 돌려보내기 운동을 하고 나서 였다.
그애가 남편의 점퍼를 벙거지 같이 쓰고 있어서 혹시나 아무것도 안입은 채로 단속에 걸린줄 알고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누군가를 집으로 데리고 온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 작전을 나갈땐 부모 중 한명과 같이 나가기 때문에 곧바로 집으로 돌려 보내지거나 끝까지 버틸 땐 경찰서로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 애는 마치 심부름을 온 옆집 애처럼 거실 바닥에 앉아서 내가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았다.
"나도 저애가 우리 차에 타고 있을거라는건 생각도 안했어. 나를 못따라 오게 하면 다시 그쪽으로 가겠다는데 어떡해." 어리둥절하고 있는 내게 남편이 늘어놓은 설명이었다.
"그래도 집으로 연락은 해야지요."
"나도 알지. 조금만 있어봐. 잘 설득해 봐야지. 당신도 나 없으면 심심할테니까 잘 지내봐."
출장 가방을 던져주며 더 이상은 말하기 귀찮다는 듯이 남편은 방에서 나갔다.
그 애가 입고 잇는 끈으로만 연결된 짧고 하늘하늘한 원피스가 움직일때마다 벗겨질까 불안했다.
이튿날 남편은 새벽같이 나갔다.
오늘은 일찍 올거야. 증인만 돼주면 되니까.
남편은 작은 방을 힐끗 보더니 집을 나섰다.
"언니 아직도 화났어?"
경희가 어수선한 내 안색을 살핀다. 경희한테 아직까지 감정이 있는건 아니다.
"아니야, 딴 것 때문에..." 아기가 내 손가락을 잡는 힘이 생각보다 세다.
"나 한테 말해봐. 언니, 형부랑 무슨 문제있어? 언닌 옛날부터 그랬어. 우리가 보기엔 분명 문제가 있는데 아니라구, 혼자 그렇게 묻어 두는 것도 좋은건 아냐."저럴때의 경희는 마치 내 언니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