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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님이 하신 김치를 친정에 나눠주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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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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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BY 아나스타샤 2001-09-26


그런일은 하지 않을것이다.
받은 명함은 찢어버리고, 그 사람에게는 가치없을지 모르는 돈은 미안하지만 받았다.
양심을 따지기 전에 내게는 큰 돈이었다.
그 사람보다는 내가 더 요긴할 것이라는 합리화를 억지로 가슴속에 밀어넣으며....
돈은 밀어넣을지 언정, 사람을 마음에 밀어넣지는 않을것이다.
앞으로도....

순영이 결혼을 한단다.....
상심한 나는 축복을 빌어주는 한켠으로 홀로 된다는 것이 더 무서운게 사실이었다.
내 한숨소리에도 순영은 말없이 등을 쓸어주었으며,
맛난거 먹을 기회가 있어도 내 생각으로 잘 안넘어 간다며 장난스레 웃어주는 내 피같은 친구였는데, 어떻게 그애 없이 지내나.... 무서웠다.
순영의 짐을 꾸리며 마음속으로 빌어주었다.
네가 지내며 설혹 올지 모르는 폭풍우 내가 다 받았으니까, 너는 행복하기만 하렴.
어릴적부터 네 어깨에 지워진 모든 짐들, 다 벗어버리고 남편의 사랑만 가슴에 안으렴.
우리는 평상에 나가앉아 마지막 날을 눈물로 번들거리는 서로의 얼굴만 보았다.....

집으로 들어가 일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였다.
거리가 워낙 멀어 언제 어떻게 연락을 받아야 할지 모르는 대기상태 였어야 하기 때문에 엄마랑 의논하여 작은 방을 한칸 얻었다.
계획의 반동안 차곡차곡 모은돈은 조금만 더 고생하면 엄마와 같이 그 지긋지긋한 시골과 영원히 안녕을 고할 수 있으리라는 다짐으로.

순영에게 전화가 왔다.
나 있는 곳과 차를타고 무려 대여섯 시간이나 가야만 하는 먼곳으로 시집을 갔기에 얼굴을 본다는 것은 일년중 하루도 쉽지 않았다.
세상이 참 좁다며, 순영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크게 울린다.
"현지야, 반가운 소식이 있어"
"잘 있는거지? 아직 아기 소식은 없는거야?"
"가만히 있어봐. 본론부터 이야기 할께"
"순영아 나 너 보고싶어"
"알았어, 알았어. 내가 먼저 이야기 하고..."
내 입을 막는 순영의 기분좋은 목소리가 덩달아 웃게 만든다.
"현지야, 내가 누구를 만났는지 알어?"
"네가 그곳에 아는 사람이 어디있냐?"
"현지야 있잖어, 나 진하누나를 만났어. 참 좁지? 언니도 이곳에서 산대 글쎄"
"......."
진하누나라면 학교 이년 선배였기에 여러번 얼굴을 익힌적이 있었다.
우리의 선두에서 당당하게 지휘하던 언니의 모습이 가물가물 하지만......
"진하를 물어보았어"
"순영아, 나 진하 이야기 들을 자신 없어"
수화기를 들고 있는 내 자신이 주체못할 만큼 눈물이 비오듯이 쏟아진다.
그애의 이름을 듣는 것 만으로도 내 모습은 초라해서 숨고 싶을 정도였다.
어릴적 훑고 지나간 사랑이라지만, 나는 이미 산머너 저편의 기억으로 던져버리고 매정스레 돌아섰던 장본인이 나 아닌가.
"현지야, 너 진하 만나볼래? 지금 그곳에 있대"
"....."
제발, 순영아.... 순영아..... 그러지마......
"너 듣고 있는거지? 너를 위해서야, 너를 위해서 진하를 만나야 해.
너희가 맺어질 수 없다면 그래서라도 한번은 꼭 만나야 해."
그래, 한번은....
그 한번은 만나고 싶었어. 그러나 이런 모습으로는 아니지.
이렇게 너덜거리고 찢기운 상처난 모습은 절대로 아니지.
욱욱거리며 터져나오는 울음소리에 순영이 당황을 한다.
"거봐, 너 진하에게 죄지은 것 같은 그런 감정 이제 떨치고 살아야 해. 그렇게 해 응?"
"싫어.... 안돼....."
난 그애 앞에 설 수가 없어.
이미 오년이 다 되어가...
잊을 수 있는 세월이 오년이어서가 아니고, 뒤틀어진 양피지의 버석거리는 먹물처럼 각인만이 되어있을뿐, 의미를 찾지 말아야 하는 오년이 흘러간 일이야.
순영아 그러지 마.....
내 가슴속에서는 아무리 하늘의 그 카시오페아가 반짝이는 모습을 잊은적이 없다해도...

새로 방을 얻은 허름한 판자촌의 깊은 밤에 파도소리가 철썩인다.
부둣가의 억센 소란들에도 밤이 찾아와 잠시의 휴식에 들어가고,
남들 다 자는 그런 밤이면 이리저리 쏘다니며 바닷바람을 맞는다.
배들 사이의 철썩거리는 신음소리에 나는 기운잃은 갈매기처럼 후미진 부둣가 한끝에서 같은 신음소리를 뱉어낸다.
내 꼬인 인생을 앙다문 이 사이로 흘려보내며, 어디서.... 어떻게.....나를 다시 시작하여야 하는지 막막한채로.....

하루종일 필드에서 몸을 과하게 혹사시킨 날은 밥도 먹히지 않고, 잠도 오지 않는다.
발을 의무적으로 떼어 집으로 향했고,
아침이 오면 갈곳은 클럽밖에는 없었다.
다른 아무 생각도 안하고 살고 싶을 정도로 몸이 혹사되는 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내 눈은 거의 감기기 직전일 정도로 몸은 솜뭉치 같았다.
자취방의 색칠 벗겨진지 오래인 나무대문이 눈 앞에 보이자
가방을 어깨에서 벗어 손에 쥐었다.
저 대문을 열고 들어가 미닫이 문을 열고 내 방에 들어가면 가방을 던져놓고 개지 않은 이불위에 그대로 쓰러질 마음으로 신발도 꺽었다.
대문옆의 희미한 인기척을 스치며 지나가는 순간,
밤공기의 차가움을 뚫고 찰라의 섬광처럼 낯선 느낌에 몸을 흠칫 떨었다.
피곤은 이미 딛고 있는 땅아래로 쏜살같이 달음질쳐 버렸고, 팔갗에 돋은 전율의 소름에 내 눈은 희미함을 더듬더듬 짚었다.
낯설지 않은 형체는 대문 앞 내게로 한걸음씩 다가왔다.

석상이 된 듯한 내 앞에 서있는 진하....
밤의 어둠사이로 드러난 진하의 모습은 예전보다 많이 수척해졌고, 솜털 벗겨진 얼굴에는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때문인지 흰 얼굴빛은 찾을 수 없다.
머리는 길게 자라 한개로 묶은 큰 키의 진하가 내 앞에 서있다.
진하가 내 앞에 서있다....
진하가 내 앞에.....
온몸이 후들거렸다.
나는 그 애를 만나서는 안되었다. 그것은 내 자신과 약속이 틀리다.
지금도, 앞으로도 만나서는 안되었다.
가방을 움켜쥐고 나는 그대로 몸을 돌려 돌아온 길로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살기 싫다.....
이런 모습을 아끼는 마음속에 보이며 살기는 싫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뛰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뒤?아오는 진하에게 잡힌 팔에 무서운 손힘이 전해졌다.
나는....
고개를 들어 진하를 보지 못한다.
이것이 꿈이었으면.....
하느님 이렇게는 싫어요, 꿈이라도 싫어요.
싫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