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밥상에 비하면 임금님 수랏상 같은 이장네 밥상을 앞에 놓고도 도무지 입맛이 나질 않는다.
반찬 욕심에 억지로 떠 넣으려고 해보지만 밥알이 모래알 같다. 옆에 놓인 숭늉만 한 대접 들이키니 이장이 걱정스런 얼굴로 본다.
"입맛이 없어도 억지로라도 좀 드셔야지 그래 드셔서 어쩌실려구 그래요."
"아침에는 어째 수저질도 힘드네. 새참이나 일찍 먹지 그래. 해뜨겁기 전에 얼른 일어나세."
"그래 드시고 어떻게 이 뜨거운날...형님 그럼 여기 안에서 담배나 끼실래요? 내 민숙엄마 데리고 쉬엄쉬엄 뜯을께요" 진심어린 걱정으로 이장이 말한다.
"이사람아, 아무래도 아녀자보다야 내가 낫지. 벌써 그래되면 다 살은것 아닌가? 그리고 나보고 저 여편네하고 같이 있으라고? 으이구, 차라리 내 죽지...허허허."
헛 웃음 해보며 말은 그렇게 하지만 사실 밭에 나가기가 겁이 난다.
두 사람이 방문을 나서는 기척에 민숙이 방에 있던 아이들 두 놈이 알아서 밖으로 나온다. 요즘애들은 어른알기를 우습게 알고 힘든일을 안한다는데 이 애들은 참 신통하다고 생각한다.
마당에서 담배를 뽑고있던 이장 처와 주천댁이 사람들 기척에 하던 얘기를 뚝 그친다.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건조된 담배 한다발을 들고 일어서는 이장처와 시침을 뚝떼는 표정의 주천댁을 보니, 복수아버지는 필시 자신의 예기를 하던중이라고 생각이 든다.
못본척하고 마당으로 내려가 빼어 놓은 담뱃단을 광으로 옮긴다.
"그건 가벼운 건데 그냥 놔두고 아까 첨에 뜯어 논 담배나 짓무르지않게 숨좀 빼줘요."
주천댁이 저런 부탁이나마 하는 것은 뭔가 켕기기 때문이란걸 잘안다.
마당 한켠에 검은색 그물로 된 장막을 쳐 놨는데도 여름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는건 막을 도리가 없다. 일부러 그늘을 골라 애써 쟁여놓은 담뱃단을 들춰보니, 맨위 서너장이 그새 더위에 풀이 죽어있다.
골고루 뒤적여서 숨을 빼준다음 햇빛이 안들도록 멍석을 돌려 놓는다. 해가 뜨거워 지니 뜯어놓은 담뱃잎은 그늘에서도 풀이 죽고, 아침이슬에 조금이나마 눅눅해졌던 건조된 것들은 다시 바짝마르고 해서 여간 걱정이 아니다.
이눔의 여편네가 빨리 와서 좀 거들어 주면 주천댁 눈치도 덜 보이고 조금이나마 일손도 덜텐데 대문밖을 내다 봐도 보이질 않는다.
이장이 경운기 시동을 켜며 밭으로 나갈 준비를 하자 신나라 하며 두 녀석이 마음껏 빈 경운기에 올라탄다.
새참은 닭죽 좀 쑤어서 내오라고 이르는 이장이 고맙다. 아침도 제대로 못먹은 자신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리라. 그렇잖아도 형님이, 아저씨 얼굴이 많이 못쓰게 됐다고 하잖아요, 하며 이장처를 거든다.
대문밖으로 막 나오는데 뒤에대고 해자 엄마좀 빨리 보내라고 주천댁이 소리친다.
보나마나 가뜩 주눅들은 애엄마한테 옆에서 하루종일 잔소리를 해댈것이고 자신은 그옆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불편할 것이다.
그런 심정을 알만한 이장이 주천댁을 부른건 조막손이라도 빌릴만큼 바쁜철이기 때문이다.
저쪽 모퉁이에서 해자 엄마가 해자를 데리고 만삭인 소마냥 천천히 걸어오고 있다.
"빨리빨리 좀 걸어. 왜 이제서야 오는거여. 애들은 교회 보냈나?" 주천댁한테 상한 마음을 보상이라도 받듯 애들 엄마한테 소리를 지른다.
"형님도 참, 웬 소리는 그렇게 질러요. 애떨어지겠네."하며 해자 엄마한테 빨리 가라는 눈짓을 하며 다시 경운기 기어를 높인다. 자신은 죽이니 살리니 해싸도 주천댁한테 싫은소리 들을 마누라를 보니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