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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BY 이슬비 2001-07-19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무슨일이 생긴걸까?

연락이 되지 않는 그녀와의 저녁식사는..무리겠지..

"네..예약 취소를 하려고합니다..김 휘문입니다..네.."

그녀를 위해 준비 했던 저녁인데..

의미를 잃어버린 상패가 탁자위에 놓여 있다.

그저 호기심에 시작한 일이 그녀가 나타남으로써 그녀가 내게 손내밀면서 나를 즐겁게 해 줬었는데..

그 시간동안의 작은 행복으로 잊혀졌던 피로감이 몰려 오는듯 하다..




"정말..보고싶었어.."

보고싶었다는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하나..고민되었다.

"내모습이..엉망이겠군,,잠시만 기다려주겠어?"

결국 난 아무런 대답없이 거실로 나왔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하는데 하지 못해서인지 목이 타는듯한 갈증이 느껴져 주방으로 가보니..흐트러진 그보다 더 엉망이였다.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기도 하는구나..휴..

대충 치우고 보니..그가 밥은 먹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땅히..냉장고를 뒤져봐도..먹을게 마땅하지 않았다.

아줌마가 온다고 하더니..

"이런..미안..내가 치우면 될텐데.."

"일해주시는 아줌마가 요즘은..안오세요?"

"응..집에 일이 있어서..며칠 안왔는데..됐어..그만 하고 이리와.."

거실로 나왔지만..어디에 앉아야 하나..핸드백이 놓여진 자리에 앉았다.

그가 내옆에 앉았다. 막 샤워를 마친 그의 비누향에 복잡한 내머리속이 상쾌해지는것 같다.

"어머니는..어떠시지?"

"..별로..에요..이미 늦었대요..그래서..그냥...아버지랑..남은 시간을.."

"많이..힘들었지? 얼굴이..야윈것 같아.."

그의 손의 따스한 온기가 내얼굴을 감싸 주고 있다.

"아뇨..전..괜찮아요..이런건..아픈 고통에 비하면..아무것도 아니잔아요..아무것도.."

"당신이 모든걸 해결할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당신이 어쩔수 없는 일은..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아..

하지만..이런말을 하는 나도 정작 그렇게 살수가 없더군..당신맘 아픈만큼..당신이 행복해 졌으면 해..난.."

"고마워요..그런데..식사는 어떻게..하셨어요?"

"..아니..당신을 보니..행복해서 배고픈것도 모르겠는걸?"

그가 웃는다.

그의 웃음이 가슴의 슬픔을 일렁이게 한다..

누구나 가지고 가야할 슬픔의 크기가 있다지만...그의 웃음으로 인해 내 슬픔의 무게는 잊혀지는것 같다.

"당신은..저녁 먹었어?"

"아직.."

"그럼..나가지..당신..뭘 좋아해?"





"낭자..무슨 근심이라도 있는거요?"

"아니옵니다.."

"오늘은..그만두고 물러가리다.."

"..제가 나으리의 청을 받아들이겠다면..나으리 또한 제 청을 들어주실런지요?"

"낭자의 청은 무엇이요?"

"앞으로의 정사에 제 소견을 믿고 따라 주시겠는지요?"

"허허..나야 늘 그렇게 지내어 왔지 않았소?"

"이번 이대감의 일은.."

"차후 나의 적이 될자를 미리 꺽는것에 왜 그리..걱정이신거요?"

"강한것은 상대를 누를수 있는 힘이 아니옵고 따르게 하는 힘이 옵니다.부디.."

"낭자가 이대감의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는것이..혹여...아니오..내 생각해보리다."

"..."

"그만 쉬시구려..최서방...가세.."

"네..대감마님.."

이제..집주변을 살피라 명하시겠군..휴...

얽히고 얽혀져있는 인연의 실타래..어디서 엮일지 어디서 끊어질지도 모르는...

바람이 시원하다..

머리카락 사이를 누비는 바람에 가녀린 한숨이 뭍혀 나부낀다.

누군가 나를 지켜 보는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나으리.."





헉!!꿈..이군. 같은 꿈을 반복해서 꾸다니..

버드나무사이에 비쳐진 그녀..슬퍼보이는 하빈이였는데..

그녀..지금 어디서 무얼할까?

전화기에 손을 뻗다가..난 다시 손을 내렸다.

이런 나를..그녀는 어떻게 받아들여줄지..

"하빈이니?" 답이 없는 질문을 회피한 손은 이미 전화를 걸었다.

"응..아까는 미안.."

"아니..뭘..어디니?"

"저녁 먹고있는데..참 넌 저녁 먹었어?"

"그럼 시간이 몇신데..맛있게 먹고 잘 들어가.."

"응..고마워.."

전화를 끊으면서..왠지 어색한건..왜일까?

그의 얘기도중에 울린 핸드폰..

조용한 클래식이 흐르는 장소에 휘문이의 목소리가 세어 나온건..내가 아는데...

그가..누구냐고 물어보는 눈치인것 같다..

"친구에요..아까.."

"난..아무것도 물은적 없는데..그리고 남녀사이도 친구가 되나?"

"친구에 성별이 뭐가 중요하죠?"

"미안..내 생각에 남녀사이에 친구가 어렵다고 봐져서..당신이 화낼것 까진 없는데..맛은 어때?"

"네..좋아요.."

"많이 먹어.."

배가 고팠는데..왠지 지금은 부드러웠던 고기덩이가 돌덩이 마냥..목이 탁탁 걸리는듯 하다.

내가 이렇게까지 미안하거나 주눅들 필요가 없는데..

"나..이제껏 살아오면서 내가 본것만 믿어..그거 하나 알아줬으면 해.."

"..."

"예전에 내가 했던말..당신과 결혼이란걸 해보고싶다고 했던말..기억나?"

"전..그때.."

"나..당신이 힘들어 하는걸...서있기 조차 위태해보이는 당신..내가 지켜주고 싶어"

순간이 영원하다고 했던가?

나는 그 짧은 순간 한편의 영화같은 영상이 스쳐지나가는걸 느꼈다.

처음 만남이후의 일들과 그와의 핑크빛 미래를 깨는 전화벨..

"여보세요..전데요..어디시죠? 네??"

"..무슨일이야? 왜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