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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만족스런 분위기를 낸 침실을 둘러보며 그녀는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후회했다.
혜원의 말이 모두 옳았다.
감정을 억제 못하고 저지른 심술을 시현이 눈치못챌 사람이 아니었고 그녀가 깨달았을땐 결국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까지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이제야 마음을 비우고 그가 원하는 아늑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그녀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그가 알수 있을까?
침실을 나오면서 다시한번 몇번을 망설인 끝에 자신이 만들어 걸어 놓은 퀼트 벽걸이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아메리칸 퀼트' 란 영화를 보고선 '퀼트는 인생이다' 라고 말하며 자신들의 얘기를 풀어놓으며 인생의 조각들을 맞추는 여주인공들의 모습에 반해 배우게 된거였다.
조각을 이어 붙이며 자신의 인생도 이렇게 떼었다 붙일수 있는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을 나와 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 그동안 미루고 있었던 일을 해결하기 위해 핸드폰 번호를 눌렀다.
[ 많이 말랐어, 그동안 고생 많았지? ]
[ 사장님도 마찬가진데 뭘 그러세요. ... 박람회 준비는 잘 돼가는 거예요? ]
[ 글쎄, 그게 내 아이디어 뱅크가 옆에 없어서 엄청 힘들게 하고 있지... 근데 둘이 있을때만은 사장님이라고 안 부르면 안될까? ]
그의 부드러운 요청에 그녀가 무장하고 있던 결심이 흔들리는걸 느꼈다.
[ ...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저에게 실망할지도 몰라요... ]
[ 아니, 내가 먼저 얘기하면 안될까? ]
그가 조급하게 말을 끊는 바람에 약간 당황했지만 그녀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
[ 별로 긍정적인 대답은 아닌 것 같군... 요즘 당신이 많이 멀어져 갔다는 걸 느껴.
이번 일을 하는걸 보면서 많이 힘들어하는구나 생각했어. 그렇게 해보고 싶다던 일을 하면서 말이야... 그게 일때문은 아니었지? ... 김 시현... 그 사람을 사랑하는거야? ]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만들어진 사람일까.
부드러움 속에 감춰진 사람을 꿰뚫는 완벽함. 그러면서도 늘 상대방을 배려하는 여유로움은
그의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갑자기 자신의 억눌린 감정을 토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게까지 이기적인 여자가 되고 싶진 않았다.
[ ...대단 하시네요... 저는...어떻게 얘기하면 좋을지...]
[ 흐∼음...또 실연이군... 난 아무래도 안되나봐. 이런 식으로 가다간 결혼은 영 무리인거 같애.]
그녀가 심각하게 고민했던 일이 별거 아닌것처럼 돼 버리자 조금은 실망스런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을 눈치 챈건지 그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 내가 너무 쉽게 물러나서 기분 상하지 않아?.... 예전에 무척이나 사랑했던 여자가 있었어.
그녀는 나에게 전혀 마음이 없었지만... 나는 항상 곁에 두고 싶어했지만 그녀는 날아가려고만 했어. 둘 다 고통스러웠지. 그녀를 놓아주고 나니까 나만 생각한 자신이 후회스러웠어.
그녀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바보 같은 짓을 했나하고... 그래서 당신을 놓아 주는거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에... ]
[ ...미안해요 ]
왜 이런말 밖에 할수 없는 자신이 한심했다.
[ ... 내가 미안해... 많이 힘들게 한 것 같아서... 그 사람하고는 어떻게 돼 가는건지... 물어봐도 돼? ... 하기 싫다면 괜찮아. ]
그녀가 머뭇거리는 사이 핸드폰이 울렸고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긴건지 그가 곧 들어간다고 말하곤 전화를 끊었다.
[ 혹시 이번 일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 두겠다거나 하는 생각을 했다면 접어두길 바래 ]
그녀의 눈이 동그래지는걸 보고 그가 낮은소리로 웃었다.
[ 역시 그랬군... 당신 없으면 내가 힘들다는걸 알면서 그건 용납못해....하, 마음이 아프군... 이제 들어가봐야 할 것 같애. 내가 지시한 내용이 거래처에 잘못 입력 됐나봐 ]
[ 저도 같이 갈께요 ]
[ 아니야, 힘든 일 끝냈으니까 오늘은 그만 쉬어. 며칠 휴가라도 주고 싶지만 할 일이 너무 밀려서 내일부터 또 바빠질테니까.... 그럼 힘내라구 ]
일어나서 바쁘게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가 떠난 자리의 썰렁함을 느끼던 그녀는 그제서야 반지를 돌려주지 못한 실수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