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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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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yeebbne 2001-04-08

그저께는 게을러서
어제는 평상시에 엄마의 의무를 소홀히 한 딸에 대한 죄책감때문에
포기한 나의 유일한 낙인 산책을,
오늘은 나 자신을 너무나 소홀히 한다는 나 자신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그 좋아하는 주말드라마만 보고는 운동화를 신었다.

현관을 나서자 마자 코끝을 간지르는 봄의 밤 내음.
어느 누가 나의 이 기쁨을 알까?

우리집 베란다 앞 화단에는 하얀 목련꽃이 피었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고고하게 피어있는 하얀 백목련의 자태는 지금의 내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고 할까? 조금은 도도하기까지한 나의 모습과.....
그래서 나는 지금은 봄에 피는 하얀 목련꽃이 좋다.
작년까지만 하여도 빨간,노란,분홍색의 장미가 좋았지만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인생의 깊이만큼 좋아하는 꽃이 바뀌는 것인지.
지금은 이 봄에 우리집 베란다 앞에 피어있는 목련꽃이 좋다.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끝가지를 하나 잡고 그 크다란 꽃잎을 코끝에 대어보니 그 은은한 향은 이 감정이 무디어진 중년의 아줌마의 감성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여 게으름을 떨치고 밖으로 나온 나의 부지런함을 보상하고도 남았다. 그 때의 기쁨이라니...

그리고 한 바퀴를 돌아 아파트 뒤뜰로 가면 너무나 하얘서 속의 내용물이 훤히 다 보이는 가로등 불빛 아래서 아직은 춥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노란 개나리꽃들이 나의 친구가 되어 준다.
이렇게 계절을 알려주는 예쁜 꽃들을 벗삼아 나는 걷고 또 걷는다.
어쩌다 목련나무 밑을 지나다가 운이 좋게도 목련꽃향이 내 어깨를 스쳐가면 빙그레 웃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조금 지겨울 때면 이웃의 창너머로 들려오는 아기들의 울음소리, 낯익은 경비실 아저씨의 주름진 얼굴과 부딪치기도 하고 그리고는 도둑고양이가 발에 채여 놀라기도 한다.

이렇게 걷고 또 걸으면서 오늘 하루를 반성하고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서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