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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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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부는 동안


BY hl1lth 2001-03-30


밤늦은 시간, 자동차 한 대가 병원 집 앞에 멈춰 섰고, 내일 온다던 병원 집 사모님과 한 남자가 차에서 내려섰다. 잠복 근무를 하던 철우는 그들의 앞에 다가섰고 자신의 명함을 그들앞에 내 밀었다. 철우의 명함을 받아 든 여자는 담담한 얼굴로 철우 에게 말했다.
"오셨군요. 잠깐만 이 곳에서 기다려 주세요. 아이들하고 잠깐 이야기 좀 하고 나올 께요."
여자의 말과 행동에서 이미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있음을 느꼈기에 철우는 막아섰던 여자의
앞을 비켜섰다.

함께 나타난 남자 역시 도망가려는 기색없이 담담하게 담배 한 대를 꺼내 문 채 여자가 나
올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잠시 후 초췌한 얼굴로 문을 나서는 여자를 부축한 채
대기하고 있던 경찰 차의 뒷 자석으로 함께 올라탔다. 여자의 집 이층에선 아이들이 멀어져
가는 엄마를 바라보며 울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경찰 취조실에서 철우는 두 사람과 마주 앉아 우선 그들에게 커피 한 잔씩을 권했다. 남자
는 커피 대신 담배 한 대를 철우로부터 얻어 물었고, 여자는 눈앞의 커피를 바라만 볼 뿐
그저 담담하게 앉아 있을 뿐이었다. 여자의 모습은 듣던 바와는 다르게 모질게 보이는 구석
도 없었고 오히려 품위 있어 보이고 조신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도저히 이 사건과는 아무
연관이 없을 듯 보이는 여자 앞에서 철우는 질문을 던지지 시작했다.

선선히 질문에 답하고 자신들이 범행을 저질렀음을 인정하는 그들의 진술이 진행되고 있는
내내, 묘하게도 철우는 범인이라는 사실로 그들을 질책하는 마음이 들었다기 보다는 마치
억울한 피해자를 보는 듯해서 마음 한 구석이 무거웠다. 어쨌든 사건은 마무리 지어졌고 그
들은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아마도 사형이나 종신형이 지어질 것이었다.

철우는 봉순을 만나러 갔다. 사무실 앞에서 봉순이 나오길 기다리던철우는 회전문을 밀며
나오는 봉순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범인이 잡혔다며?"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봉순이 묻는다.
"응"
"아, 다행이다. 정말."
"미순인 괞챦니?"
"기억상실에다 정신 착란 증세까지 겹쳐져서 병원에서 요양소로 옮겼어. 의사 말이 기억은
아주 조금씩 되돌아오고 있긴 하지만, 그 동안 너무 힘든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이
삼년은 병원에서 지내면서 경과를 봐야 될 것 같다고 했어.

심적으로 너무 깊게 병이 들었데. . . 마음의 상처가 너무 커서 모든 걸 받아들이고 회복하
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꺼라나봐. 아마도 미순이가 자신이 범인이라고 했던 건 정신착란
때문에 자신이 진짜 남편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남편을 사랑하기에 모든 걸
참고 견디기로 생각했으면서도 자신을 배신한 남편을 미워하는 마음도 함께 공존 했을테니
그런 상상도 할 수 있었을거야. 그게 현실인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남편을 죽인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괴로워 했을테고. . . 그래서 경찰서로 자수를 하러 갔었겠지.어쨌든 현실이
아닌 것이 밝혀지고 범인이 잡혔다니 정말 다행이다. 그나저나 고생 많이 했지? 너무너무
고마워."

"나야 뭘 늘 하는 일인 걸. 어쨌든 미순이가 빨리 낳아야 할텐데 정말 큰일이다. 미순이 아
이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어? "
"어, 지금 외가 집에서 지내고 있긴 한데, 그 곳이 서울과 너무 떨어져 있는 시골이라 학교
공부 때문에 방학이 끝나면 서울로 데려오려고 해. 친가 쪽 역시 아이들 맡아 줄 만한 여건
이 되는 집들이 없어서, 미순이 퇴원해서 자리 잡을 때까지 내가 데리고 있기로 했어. 지네
아빠 장례 치르고 게다가 엄마가 병원에서 장기간 동안 수용되어 있어야 한다니 그 충격 속
에서 헤어나려면 아이들도 당분간은 힘들겠지만 이겨내야겠지. 어쨌든 아이들이 제일 안됐
어."

철우 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너도 아이들 맡아 돌보려면 고생 좀 하겠구나."
"고생은 무슨, 미순이 아이들이 얼마나 밝게 잘 자란 아이들인데. . . 게다가 늘 혼자라서 외
로웠는데 함께 지낼 사람이 생겨서 나야 좋지 뭐."
범인이 잡혔다는 말에 기운을 얻은 봉순 이 다소 생기 있는 모습으로 철우 에게 웃어 보였
다.

"근데, 넌 언제까지 혼자 살 꺼야?"
"왜? 네가 내 애인 돼 주려구?"
"쓸 데 없는 소린, 싱겁게스리."
애궂은 머리통을 끍적이는 철우 의 모습을 재밌어 하며 봉순 이 짖궂게 웃었다.
"아마, 이 사건 겪고 나서 아무한테고 장난이라도 애인하자는 말 못할걸? 맞지?"
"그래. 맞다. 나 니말대로 내 와이프 하나만 바라보고 평생 살 꺼다. 너한테 빛 갚는다 생각
하고, 내 와이프가 부족한 날 사랑해 주는걸 감사해 하면서. . ."
"와, 철 들었다. 너? 그런 의미에서 오늘 너 그냥 집에 일찍 가서 너희 와이프한테 효도 좀
해라. 나도  데이트하러 가야돼."

"그~래? 축하한다. 어떤 사람인데?
날 세상에서 가장 사랑해 주는 우리 엄마하고 식구들!"
봉순의 말에 철우가 허허 웃으며
"그래. 나도 사랑하는 내 와이프하고 식구들 보러 이만 간다. 잘 가라! 그리고 언제 미순한
테 갈 때 연락해라 나도 한 번 가 봐야지."
"그래, 알았어. 잘 가! "
봉순과 철우는 각자의 가족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따라 따듯하게 맞아 줄 그들의 모습이 몹시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범인이
잡힘으로써 미순이 혐의에서 풀려났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마워 누군가와 함께 기뻐하고 싶
었기 때문이었다. 집으로 향하면서 봉순은
"아줌마, 끝까지 우리 엄마를 믿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저희들도 내 친구들에게 아줌마 같은
친구가 돼 줄 꺼예요"
라고 했던 미순의 아이들의 말을 생각하며 미순을 끝까지 믿었음을 스스로 대견해 했다.